제일의 말씀

다 주께로 왔습니다. 롬11:33-36

장경태 2010. 7. 31. 07:36

全ては主から参りました     

                             ローマ書 11:33-36 
 
 ある男がカリフォルニア海岸を祈りながら歩いていました。彼は突然大きな声で "神様、一つ願いを叶えてください。"と叫びます。すると、天から神様の声が聞こえて来ました。"君の変わらぬ信仰を見出した。その願いを聞いてあげましょう。" 男は言います"ハワイへ、車で行けるほどの大きな橋を造ってください。

" 神様が答えました。"その祈りは大変な事だ。確かに、尋常ではない。大橋の橋脚が太平洋の底に達するには、いかに多くのコンクリートや鉄筋がかかると思いますか。どう考えても、この世を生きる上で必ず必要だとは思えないんだが。その他に、私の栄光を表すためのお願いはないのかな?" 男はしばらく悩んだ果てに、次のように切出しました。 "神様、私に女性を完全に理解できる心をください。女性たちがすねたり無口になっている時に、何を感じ、何を思い、なぜ泣くのか。彼女たちが言う "いいの、気にしないで"の本当の意味などなど。彼女たちをどうすれば、本当に幸せにさせることが出来るのでしょうか"
すると神様は、間を置くことなく直ぐさま答えられました。"ハワイまでの大橋は、4車線でいいの?それとも、8車線がいいの?" 笑い話ですが、人の気まぐれなお気持ちを理解するのは神様であっても困難だという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さて、本文には神様の深い心について語られています。使徒パウロは神様の御計画を、人の立場からは理解に困っていたものに対し悟り得たことを告白している場面です。" ああ、神の富と知惠と知識のなんと深いことか"と、驚きを隠せない内容です。
私たちは瞬間ごとに直面する出来事を信仰を持っている方でも"いったい神様がなぜこんなことを。私には解りかねます" と、話すことを耳にします。皆さんご自身の持つ信仰の中でも、こんな悩みがあると思います。神様は、なぜ私にだけに、苦しみを与えるの? 私なりに頑張ってきたつもりだけど、「山あり谷あり」と延々に続く試練はなぜ? 他人の目からしても、あの人は明らかに胡散(うさん)臭いクリスチャンなのに仕事も順調。しかも、私だけが苦しむのはなぜ? このように信仰の面から理解に困り、葛藤する時もあると思います。
しかし、当時の常識では理解し兼ねたことも、時間が過ぎた後になって "なるほど! 様にあんな計画まで見据えていたのか!"と気づく事があるでしょう。そのお気づきと共にこのように告白します。さすが、神

本文にも使徒パウロがこのように告白しています。 "ああ、神の富と知惠と知識のなんと深いことか" 使徒パウロが気づいた神様の奥深い内容とは、こういうことです。

様は、なぜイスラエルを見捨て、代わりに異邦人をお選びになったか。彼はその奥深い意味に気づいたのです。神様があれほど愛していたイスラエル民族はもはや神を崇めること無く、罪の泥沼の中にいました。遂に神様はイスラエル民族をお捨て、当時は救われないと思われていた異邦人たちをお選び、彼らを通して神の国を築いていく様子がありました。ここで重要なのは、「様は最初からイスラエル民族に罪を犯さないように、導くことは出来なかったのだろうか!」のことです。全知全能なる神様は、イスラエル人たちがひたすら神様だけを崇めるようお造り出来たはずなのに、なぜ彼らの罪を黙って見届けたのか。更には、罪を犯したイスラエル人たちをお捨て、異邦人たちを神様の民として受け入れたことに対する疑問でした。これに対し使徒パウロは、神様は誰であろうも御救いからのけ者される霊が無いように皆にチャンスを与えた事実に気付いたのです。

  結局は、イスラエル民は重い罪悪によって神様に逆うことさえできなくなりました。更には、異邦人たちを通しても御救いは成し遂げられることを教えるためでした。むしろイスラエル人々が焼もちをやかせてまでも再び神様への信仰を立て直したいとお考えなっていたのです。異邦人を通しても救いの働きが行われる御業をイスラエルが見返させ、御救いの神様の深い愛と、大いなる知恵の御前には讃美を捧げるためだったのです。
本日は、使徒パウロが気づいた点を、これからお話をさせていただきます。
 
 1.
万物は主による。
パウロの気づいた事1つ目は、すべての万物は主によるものだということです。この世のいかなる民族も神様によって生まれた人であります。イスラエルも、異邦人たちもそして今を生きる皆さんや私さえも、この地上に生きる皆は神様によって生まれました。私たちの身の回りに必要不可欠なものすべては様によるものです。お召し上がる飲食、綺麗な服、お持ちになっているものすべては様によるのが、事実であります。
中には"いいえ! これは私の手作りです。これは某会社の製品です!"と、反論する方もいるでしょう。しかし、この地上に人によって創造されたものは何一つありません。すべては神様によって創造されたものです。ただ、私たち人間は様からの知恵によって作り立てたものを、発見したにすぎません。様は私たちの必要なものを一つ一つお造りにはなりません。ただ、山奥に私たちに必要欠かせない原料を造って置き、必要に応じて私たちがそれを用いるように導かれるのです。従って、人の手によって創られたとしても、それは様によるものなのです。
 そして神様によるものがやがて人に知恵として伝わり、それを成し遂げるように思い、アイデアを与えて下さるのです。発明家たちにはアイデアを与えてくださったのです。彼らに疑問を抱かせ、同時に解決に至るまでの知恵を与えてくださっています。従って、すべては様によるものなのです。
皆様、夢はお持ちでしょうか? ご自分の夢が誰によるものかを考えてみてください。我が欲望によるものか、それとも神様によるものなのか! そのお気持ちや動機は何によりますでしょうか!

その夢から成ろうとしているのは神様の栄光のため?それともご自分のためなのか! それによって、今現在成し遂げようとしている事や夢が、果たして神様によるのか、ご自分によるのか、サタンによるのかを見分ける事ができるでしょう。イスカリオテのユダの考えはサタンによるものでした。しかし、何とかしてでも栄光のために生きようともがいた使徒パウロの熱情は神様によるものでした。
願わくは今、皆様のご計画でいらっしゃる人生のプランが神様の御旨による事を祝福致します。
様はご自分の考えや計画を吹き込む事での御業が行われます。
様は信じる人々に様の考えや夢を吹く込まれます。やがて、そのような人々を通して素晴らしい事を成し遂げてくださると信じています。
 
2.
主によります。
 そして、計画や夢が神様によるものならば、 成し遂げてくださるプロセスの中にも必ず様がおられる事実を念頭に置いてください。本日の本文112節からはエリヤのお話があります。エリヤ時代の北王国イスラエルは、悪名高きアハブ王が治め、そして悪妻としてもその名を轟かせていたイゼベルがいました。 神様の人々は皆捕まり、いたる所にバアルやアシェラの預言者たちがウロウロしていた時代でした。エリヤはカルメルの頂にバアルの預言者たちとの霊的な戦いによって天から炎が降りる素晴らしき勝利を経てバアルの預言者たちをやっつけたのです。しかし、そのことに腹を立て仕返しをしようとするイゼベルから身を逃れるための逃亡生活が続きます。彼はホレブ山で主と出会った後"主の預言者は皆亡くなり、私一人だけが取り残った"と、告白しています。しかし、次のように神様は答えられました。"わたしはイスラエルに七千人を殘す。これは皆、バアルにひざまずかなかった者である."(列王紀上19:18) 彼だけが取り残されたと思いきや、神様は7千人もの人々を残していたのです。この地上で、ご自分一人だけ辛い重いをし、苦しんでいるとお思いでしょう。神様は、ご自分の事を自らなされる方です。もし、「私はこんな事したくない」と切り出したとしても、神様は道に置かれた石を使ってまでも事を成し遂げる方です。様が計画なさる教会には、様ご自分の手で成し遂げると信じています。これこそが、私たちが忘れてはいけない事です。
 私がしなくても主の御旨は停滞したり、挫折されないという事実です。神様の御救いが取止めにされたり、変更され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人々はまるで自分でないとはかどらないとばかり思い、すべての労や功績を自分にまわし、何事も自分でやり遂げたかのような錯覚に陥った言動をします。その時、はそのをおわしにはなりません。
信徒の大きな栄光は、神にお遣われることにあります。遣われる事のない道具は不幸です。アクセサリにすぎません。私の書斎にも年中一度も手にとらない本があります。一方で毎日のように見る本もあります。皆さん、このどちらの本が幸せな本だとお思いでしょうか
 する皆様!

ご自分の人生のためではなく、主にためにお遣わしになるよう祝福致します。主に快く遣われますよう、どうぞ皆さんご自身をお差し出しください。皆さんの体を差し出し、時間を差し出し、心を差し出すよう願います。
私たちが主の事をし、主が私たちの事を代わりにしてくださると信じております。ご自分で自分の事をするよりも神様が私たちのことをしてくださる方が遥かに優れます。
 ロックフェラーの逸話にこんなお話があります。

あるおじさんが幼いロックフェラーにご褒美として、キャンディーをあげようとしました。おじさんは言いました。ねぇ、ここにあるキャンディーを一握り分あげる。幼い彼はとても礼儀正しく断ります。いいえ、僕はいいです。おじさんはその子の神妙な態度に関心し、手に一握りのキャンディーを取ってあげました。後になってお母さんが子に尋ねました。どこで、そんなお行儀を教わったの?”すると、幼いロックフェラーが言いました。だって、僕よりあのおじさんのきかったもの
様が皆様のことをしていただくためには、皆様が様にお遣わしにな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私たちが神様にお遣わしになれなけば、サタンに遣われることにもあります。主に遣われるのは喜び、感謝、賛美、栄光でありますが、サタンに奪われれば虚しさ、浪費、辛さ、苦しみ、後悔であります。 "こうなる事やら、神様に捧げるべきだった"と後悔しても、もはや手遅れです。
様から頂いた夢と思いは必ず様によって参ります。ご自分によって直接成し遂げます。その方が私を、直接お遣わす道具になるようお祈りください。これこそが、献身です。
私がお遣わされなければ、他の者が遣われます。この点を、使徒パウロが気づきました。イスラエルが神様に遣わされることを拒み続け、背いたせいで、神様も心を入れ替え異邦人たちを通しその御業を成し遂げていたのです。イスラエルを救い、イスラエルに捧げるべき祝福を異邦人たちに差し上げたのです。
 
3.
主に還す
全てが成し遂げられた時の栄光は、主に捧げます。神様によるものは全て様に還すことを忘れないでください。
やがて人間が土に帰るように、全ては再び帰します。
これにて全ての栄光を神様に捧げ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様へ返すべき栄光を私たちが奪い取ってしまっては、その時から問題が起きます。その代表的人物がサウルです当然、様から頂いた王座の栄光を様に捧げず、自分のためばかり使い切ってしまった彼は、不幸な王になりました。ソロモン王が全ての富や栄光を様からいただいたことを忘れて自分の宮殿を建て、肉身の欲望に溢れていた時、彼は全ての名誉や財産についてこのように告白していました。" なんという空しさ/なんという空しさ,すべては 空しい."(コヘレト1:2)  従って私たちには、全てを主に還すことの出来る信仰が必要です。

今、皆様にある健康、財産、子供やすべての才能を神様の栄光のために還した時、大きな恵みが与えられます。オリンピックのような大きな大会でメダルをとった後、選手たちはこんな質問をされます。"今のこの感動を誰に一番、お伝えしたいですか!""まず、全ての栄光を神様に捧げます"と言う告白を耳にした私たちは、限りない恵みを受けます。
その通りです。今私がやっている事が神様によるものだという信仰告白があれば、それを通して頂いた結果も神様にささげるのです。これこそが、真信仰告白です祝福のために神様に祈ったものの成し得られた瞬間に、様とは関係の無かったかのように自己満足で終わってしまうのは、栄光を奪い取ったことになります。


 
愛する信徒の皆様
私たちは今、どんな信仰と共に生きているのでしょうか? 今のお仕事は神様によるものですか? それとも、ご自分の欲望によるものでしょうか? どうぞ、自己評価をなさってみてください。  
願わくは、信徒の皆様のお仕事、お考え、計画やあらゆるものまでもが神様から頂いたものになりますように。
ゆえに、皆様の信じる心が生活の上にいるにも関わらず苦しみが押し寄せてくるなら、すべては結局、主の御旨通りになれます。との真実な信仰にてあらゆることを十分に勝っていくと信じます。そして、最終的な栄光を神様に捧げることで、やがてこう言われるでしょう。"忠実な良い僕だ。よくやった。お前は少しのものに忠実であったから、多くのものを管理させよう。主人と一緖に喜んでくれ。"マタイ25:21
このような輝く褒め言葉を頂く、東京第一教会の信徒になれることを主の御名において、祝福いたします。

 
 
 
다 주께로 왔습니다.               로마 11:33-36                       07.6.17
 
어느 한 남자가 캘리포니아 해안을 기도하며 걸었습니다.   갑자기 이 남자는 큰 소리로 "하나님,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 남자의 머리 위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의 변함 없는 믿음을 보고 내가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마."   그 남자가 말하길 "하와이까지 다리를 하나 만들어서 내가 언제든지 차로 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의 기도는 들어가는 게 너무 많아. 그게 보통 일이 아니야. 다리의 교각이 태평양 바다 밑까지 닿아야 하고 콘크리트와 철근이 얼마나 들어야 하겠냐? 내가 할 수는 있지만 정말 세상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기는 힘들구나.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내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다른 한 가지 소원을 말해봐라." 그 남자는 한참동안 더 생각하다 결국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난 여자들을 잘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여자들이 내게 토라져서 말 안하고 있을 때 마음 속에 어떻게 느끼고 뭘 생각하는 지, 왜 우는 지… 여자들이 "아니, 신경 쓰지 마-"라고 할 때 그 말의 참 뜻이 뭔지 그리고 어떻하면 여자들을 정말로 행복하게 할 수 있을 지 알기 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숨도 안 쉬고 곧바로 대답하셨습니다.   "하와이까지 가는 다리 4차선으로 해주랴, 8차선으로 해주랴?"
우스개 소리입니다만,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이랬다, 저랬다하는 그 변덕 하는 마음은 하나님도 알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겠지요.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깊으신 속마음에 대해서 하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동안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에 깊은 영적 깨달음을 가졌을 때에 고백한 말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라고 놀라면서 감탄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어떤 일을 당할 때 신앙적으로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이러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요, 우리자신의 신앙 속에서도 하나님이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나는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산 넘어, 산처럼 놓여져 있는지, 어느 누구는 내가 보기에도, 예수도 엉망으로 믿는 것 같고, 그런데도 하는 일마다 잘되는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신앙적으로 고통하면서 갈등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내가 그때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 일들이 "아! 하나님이 그때 이런 계획이 있었구나!" 하면서 깨달은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의 그 깨달음 속에 고백하는 말이 “야 역시 하나님이시다” 라고 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을 그와 똑같은 말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부함이여"
오늘 사도바울이 깨달았던 하나님의 깊고 심오하심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이방인들을 택하셨었는지, 그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던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계속되는 죄악 속에 있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당시는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한 이방인들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애초부터 죄를 짖지 않도록 하실 수는 없었겠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이 꼼짝못하고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게 만들 수 있으신데, 왜 그들이 죄를 짖게 내 버려두고, 그리고 그 죄를 지었다고 그들을 버리고 이방인들을 오히려 당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셨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의 깨달음이 바로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의 기회 속에  제외된 영혼들이 없이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하시겠다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의 강팍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이 항변할 수 없는 이유로 이방인들을 또한 사랑하시고 그들을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그 모습을 이스라엘이 바라보고 그들이 또 시기하는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이스라엘의 신앙도 바로 세워주시고, 이방인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깊고 심오하신 그 지혜의 풍부함 앞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깨달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만물이 주님께로 나왔다.
바울의 첫 번째 깨달음은 모든 만물은 주님께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민족도,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도, 이방인들도, 그리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이 땅의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우리 주변의 그 어느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고있는 그 음식도, 그리고 입고 있는 그 예쁜 옷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요! 이건 내가 만들었는데, 이건 어느 회사제품인데요!"라면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이 땅에 사람이 창조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입니다. 인간들이 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그 지혜를 가지고 다만 만들어내고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다만 산 속에 우리의 필요한 모든 원료를 만들어 놓으시고, 이제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찾아서 우리가 두드려서 만들어 쓸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로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로 나온 것을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생각을 주시는 것입니다, 발명가들에게 그런 생각을 집어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 속에 궁금증을 가지게 하시고, 그리고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도록 모든 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꿈이 있습니까? 그 꿈이 누구에게로부터 왔는가를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내 욕심에서부터 왔는가!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가!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그 꿈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 개인을 위한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일과 그리고 이루려고 하는 그 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아니면 나에게서 왔는지, 아니면 마귀에게서 왔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가롯 유다의 생각은 마귀로부터 온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했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몸부림쳤던 사도 바울의 열정은 하나님께로 온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계획하고 있는 모든 인생의 계획들이 바라기는 하나님께로 온 생각들이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각과 계획을 불어 넣어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각과 꿈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내시는 줄로 믿습니다.
 
2. 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반드시 그것을 이루는 과정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장2절부터 보면 엘리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가 사역하던 시대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중의 한사람이었던, 아합왕의 시대입니다. 그의 부인이 사악하기로 유명한 이세벨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잡혔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영적 대결 속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놀라운 믿음의 승리를 통하여 바알의 선지자들을 다 죽였지만, 그 사실앞에 분이 머리끝까지 오른 이세벨의 추격에 살아남기 위해서 도망하는 신세가 되어집니다.  그가 호렙산에서 주님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한말이 "주의 선지자는 다 죽고 오직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답하시기를 "내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천인을 남겨두었다"(열왕기상19:18)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 남은 것 같지만 하나님은 7천을 남겨 두셨습니다. 이 땅에 나 혼자 고통을 격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은 당신이 하십니다. 만약에 내가 안 한다고 한다면 돌들을 들어서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안 한다고 주님의 일이 멈추거나, 좌절되거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취소되거나 변경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모든 일의 공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하고, 무엇을 해놓고도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착각하고  행동을 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성도의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다는 사실입니다. 쓰임 받지 못하는 도구는 불행합니다. 장식품에 불과 합니다. 책장에도 보면 일년내내 한번도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매일같이 손이 가는 책들이 있습니다. 제 서재에도 몇 년동안 한번도 손이 가지 않은 책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손이 가는 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삶을 위해서만 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쓰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마음대로 여러분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여러분을 내어놓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몸을 내어놓으시고, 시간을 내어놓으시고, 정성을 내어놓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일을 대신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내일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내일을 해주시는 것이 훨씬더 좋습니다.
록펠러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록펠러가 어릴 때 한번은 착한 일을 했더니 사탕을 파는 아저씨가 “얘야 여기서 사탕 한 움쿰을 집어 가라” 그랬더니 어린 록펠러가 아주 겸손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닙니다. 저는 됐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가 기특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손으로 사탕을 한 움쿰 집어서 주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예의 바르고 기특한 말을 했니?”라고 물어보니까 록펠러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저씨 손이 내 손보다 더 크잖아요” 라고 했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일을 하주시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마귀가 사용할수도 있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은 것은 기쁨이요, 감사요, 찬송이요, 영광이지만,  마귀에게 빼앗긴 것은 허무요, 허탈이요, 낭비요, 괴로움이요, 고통이요, 후회입니다.  "이왕 이렇게 될 것 하나님께나 드릴 것을" 하는 후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생각은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분이 직접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나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구가 되기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내가 쓰임 받지 못하면 다른 이들이 쓰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깨달은 것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거절하고 불 신앙으로 돌아서니까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어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주실 축복을 그들에게 대신 주었다는 것입니다. 
 
3. 주께로 돌아감이라.
그리고 모든 것이 이루어 졌을 때는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온 것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흙으로 왔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모든 것은 다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로 돌아갈 영광을 우리가 가로채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 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왕권의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쌓는 데에 급급할 때 그는 가장 불행한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모든 부귀와 영화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의 궁전을 짖고 육신의 정욕 속에 빠져있을 때 그의 모든 부귀영화는 그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께로 돌릴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건강과, 재물과, 자녀들과, 모든 재능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시 돌려 드릴 때 그 속에서 큰 은혜가 주어집니다. 올림픽이나 큰 시상식에서 땀을 흘려 성공을 하고 난 다음에 단상 위에서 "지금의 이 감격을 누구에게 전하겠습니까!"라는 질문 앞에 "먼저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는 고백을 들을 때에 우리는 한없는 은혜를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이 하나님께로서 나왔다는 신앙의 고백이 있으면, 그 일을 통한 열매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실한 신앙고백입니다.
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팽개 하면서 그 일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이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만 그친다면 그것은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믿음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은, 하나님께로서 나온 일입니까? 아니면 내 욕심에서 나온 일 입니까? 스스로 평가해보시길 바랍니다.  
바라기는 성도들의 모든 일과 생각과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살아 갈 때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만약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면, 이 모든 일은 결국에는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신실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충분히 이겨나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올려드림으로 "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이 영광의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우리 동경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