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예수님을 찾아서 눅2:41-51
장경태
2010. 7. 31. 07:46
예수님을 찾아서
누가복음2:41-51 07.9.9
누가복음2:41-51 07.9.9
밖에 나가 아이가 들어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안 들어옵니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서 여기 저기에 연락을 해보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온 동네를 다 돌아다니다가 혹시나 하고 오락실에 들어가 봤더니 아들이 정신 없이 오락기 앞에서 뚜드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화가 나서 아이한데 야단을 칩니다.
그때에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오락을 좋아하는 내가 오락실에 당연히 있는 줄을 몰랐습니까?"
TV를 보면서 온 국민을 가장 많이 울린 프로그램이 잃어버린 가족 찾아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잠깐 한눈팔다가 엄마를 잃어버려 30년을 엄마 찾아 다닌 이야기, 학교 갔다 돌아오니 부모님이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해외 입양된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서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용서한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온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충분했던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울면서도 계속해서 보는 것은 그곳에 감동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십년을 헤어져 있다가 어찌, 어찌 소식이 닿아서 사전에 DNA검사를 다 마치고 나중에 서로 상봉시켜주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런 감동을 받고 싶어서 사람들은 그런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을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에 납북된 자신의 딸 요코다 메구미씨를 찾기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국의 대통령까지도 만나면서 몸부림치고 있는 아버지 요코다 시케루씨의 집념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잃어버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숭고한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유일하게 자세히 기록이 되어있는 곳입니다. 유월절이 되어서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성전에 올라갔다가 너무나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만 예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신 없이 소년 예수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예수가 랍비들과 함께 토론을 하는 장면을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모친 마리아가 야단을 칩니다.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냐!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하면서 야단할 때에 예수가 한말입니다."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면서 반문하는 내용입니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서 여기 저기에 연락을 해보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온 동네를 다 돌아다니다가 혹시나 하고 오락실에 들어가 봤더니 아들이 정신 없이 오락기 앞에서 뚜드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화가 나서 아이한데 야단을 칩니다.
그때에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오락을 좋아하는 내가 오락실에 당연히 있는 줄을 몰랐습니까?"
TV를 보면서 온 국민을 가장 많이 울린 프로그램이 잃어버린 가족 찾아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잠깐 한눈팔다가 엄마를 잃어버려 30년을 엄마 찾아 다닌 이야기, 학교 갔다 돌아오니 부모님이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해외 입양된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서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용서한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온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충분했던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울면서도 계속해서 보는 것은 그곳에 감동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십년을 헤어져 있다가 어찌, 어찌 소식이 닿아서 사전에 DNA검사를 다 마치고 나중에 서로 상봉시켜주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런 감동을 받고 싶어서 사람들은 그런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을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에 납북된 자신의 딸 요코다 메구미씨를 찾기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국의 대통령까지도 만나면서 몸부림치고 있는 아버지 요코다 시케루씨의 집념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잃어버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숭고한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유일하게 자세히 기록이 되어있는 곳입니다. 유월절이 되어서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성전에 올라갔다가 너무나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만 예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신 없이 소년 예수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예수가 랍비들과 함께 토론을 하는 장면을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모친 마리아가 야단을 칩니다.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냐!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하면서 야단할 때에 예수가 한말입니다."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면서 반문하는 내용입니다.
1. 잃어버린 예수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엇 때문에 잃어버렸습니까?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자기의 목적지만 바라보고 가서 그렇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모든 기준을 아이에게 두어야 합니다. 아이의 발걸음, 아이의 관심 꺼리, 그리고 언제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지만 때로는 예수님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것 역시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너무 바빠서 그렇습니까? 너무 정신이 없이 살다 보니까 그렇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면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눈을 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말고 다른 것을 바라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인생에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하루 하루를 아무 의미도 없이 살아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아이에게서 눈을 떼면 큰일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눈을 떼면 큰일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했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에게서 눈을 떼게 만듭니까? 돈이 그렇습니까? 명예가 그렇습니까? 권력이 그렇습니까? 직장이 그렇습니까? 자녀가 그렇습니까? 남편, 부인이 그렇습니까? 바쁜 사업이 그렇습니까?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시선을 예수에게서 떼게 만들면 그 순간 우리는 예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예수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잠이 오겠습니까? 밥이 넘어갑니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정신 없이 뛰어다니기 시작할 것입니다. 늘 같이 있을 때는 몰랐다가 막상 없어지면 우리를 얼마나 당황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들은 착각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가 같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없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이런 착각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내 안에 언제나 계신 줄 알았는데, 매주일 교회도 나오고,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했는데, 그런데, 왠지 마음이 허전하지 않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나도 마음속이 기쁨이 없습니다.
마치,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마침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계단으로 10층까지 올라갔는데, 집 열쇠를 차안에 놔두고 온 것을 문 앞에서야 알았을 때의 허탈감과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주머니 속에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뒤져보니까 아닌 것입니다. 내가 분명히 예수를 믿은 것 같았는데, 환난이 오고, 큰 고난 앞에 서보니까! 내 안에 예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내가 예수님과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감각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제일 서운한 일들이 성도들이 큰일을 당했는데도 목사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제일 서운합니다.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같이 있으면 온통 성도들 전화 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성도들이 전화를 많이 합니다. 내용은 별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제 전화는 늘 조용합니다. 집에서 아내가 밥 먹으러 빨리 들어오라는 전화 밖에 없습니다.
성도가 큰 일을 당해도, 목사가 나중에서야 그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어야 한다면, 목사는 외로운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서 목사가 달려가서 기도해주어야 할 일에 목사를 찾지 않는다면, 여러분과 저는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어도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어려워서 그랬다고 합니다. 목사님 불편할까봐 그렇다고 합니다. 물론 압니다. 여러분이 저를 너무 사랑해서 저를 힘들게 안하겠다는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목사로서 외롭습니다.
이것은 제가 그동안 목회하면서 느껴온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정작 예수님을 찾아야 할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지를 않습니다. 이런 것까지도 기도하는가 하면서,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눈은 다른 데로 가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모르게 됩니다. 교회는 나오는데,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다면 너무 오래 동안 주님께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 동안 교회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그리고 내가 속한 일만 하고 끝난다면, 그 바쁜 일 때문에 주님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외롭습니다. 주님을 외롭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늘 주님을 확인하시고, 부르시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늘 의식하시길 바랍니다.
늘 옆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당황하고 불안해 지겠습니까!
여러분은 혹시 예수님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습니까?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은 교회에 나와있지만 우리 마음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성도들은 없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엇 때문에 잃어버렸습니까?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자기의 목적지만 바라보고 가서 그렇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모든 기준을 아이에게 두어야 합니다. 아이의 발걸음, 아이의 관심 꺼리, 그리고 언제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지만 때로는 예수님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것 역시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너무 바빠서 그렇습니까? 너무 정신이 없이 살다 보니까 그렇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면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눈을 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말고 다른 것을 바라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인생에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하루 하루를 아무 의미도 없이 살아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아이에게서 눈을 떼면 큰일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눈을 떼면 큰일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했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에게서 눈을 떼게 만듭니까? 돈이 그렇습니까? 명예가 그렇습니까? 권력이 그렇습니까? 직장이 그렇습니까? 자녀가 그렇습니까? 남편, 부인이 그렇습니까? 바쁜 사업이 그렇습니까?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시선을 예수에게서 떼게 만들면 그 순간 우리는 예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예수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잠이 오겠습니까? 밥이 넘어갑니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정신 없이 뛰어다니기 시작할 것입니다. 늘 같이 있을 때는 몰랐다가 막상 없어지면 우리를 얼마나 당황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들은 착각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가 같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없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이런 착각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내 안에 언제나 계신 줄 알았는데, 매주일 교회도 나오고,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했는데, 그런데, 왠지 마음이 허전하지 않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나도 마음속이 기쁨이 없습니다.
마치,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마침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계단으로 10층까지 올라갔는데, 집 열쇠를 차안에 놔두고 온 것을 문 앞에서야 알았을 때의 허탈감과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주머니 속에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뒤져보니까 아닌 것입니다. 내가 분명히 예수를 믿은 것 같았는데, 환난이 오고, 큰 고난 앞에 서보니까! 내 안에 예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내가 예수님과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감각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제일 서운한 일들이 성도들이 큰일을 당했는데도 목사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제일 서운합니다.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같이 있으면 온통 성도들 전화 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성도들이 전화를 많이 합니다. 내용은 별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제 전화는 늘 조용합니다. 집에서 아내가 밥 먹으러 빨리 들어오라는 전화 밖에 없습니다.
성도가 큰 일을 당해도, 목사가 나중에서야 그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어야 한다면, 목사는 외로운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서 목사가 달려가서 기도해주어야 할 일에 목사를 찾지 않는다면, 여러분과 저는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어도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어려워서 그랬다고 합니다. 목사님 불편할까봐 그렇다고 합니다. 물론 압니다. 여러분이 저를 너무 사랑해서 저를 힘들게 안하겠다는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목사로서 외롭습니다.
이것은 제가 그동안 목회하면서 느껴온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정작 예수님을 찾아야 할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지를 않습니다. 이런 것까지도 기도하는가 하면서,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눈은 다른 데로 가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모르게 됩니다. 교회는 나오는데,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다면 너무 오래 동안 주님께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 동안 교회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그리고 내가 속한 일만 하고 끝난다면, 그 바쁜 일 때문에 주님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외롭습니다. 주님을 외롭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늘 주님을 확인하시고, 부르시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늘 의식하시길 바랍니다.
늘 옆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당황하고 불안해 지겠습니까!
여러분은 혹시 예수님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습니까?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은 교회에 나와있지만 우리 마음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성도들은 없습니까?
2. 성전에 계신 예수
예수를 잃어버렸다면 다시 찿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들 속에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혹시 잃어버리신 분들이 있습니까?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찾아서 헤메었던 것 같이 찾아 나서야 합니다.
계시록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어디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졌는지, 어디서 예수님을 잃어버렸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계실 만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성전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성전입니다. 예수의 부모들이 예수님을 찾아 헤메다가 랍비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야단치는 그 소리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집, 성전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성전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세상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성전입니다.
예수를 잃어버렸다면 다시 찿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들 속에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혹시 잃어버리신 분들이 있습니까?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찾아서 헤메었던 것 같이 찾아 나서야 합니다.
계시록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어디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졌는지, 어디서 예수님을 잃어버렸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계실 만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성전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성전입니다. 예수의 부모들이 예수님을 찾아 헤메다가 랍비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야단치는 그 소리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집, 성전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성전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세상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성전입니다.
종교다원주의 자들은 불교에서도 예수가 있다고 합니다. 수행을 통해서도, 고행을 통해서도, 다른 종교에서도 예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속종교에서도 예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싶으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야 합니다. 성전에 교회에 가야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진리를 찾아 헤 메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려면 교회에 가야한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찾아 헤 메는 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찾아 헤 메이는 그 진리가 바로 예수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만나려면 교회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를 발견한 사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해야할 책임입니다.
또한 여러분 예수님이 계셨던 곳이 성전이듯이 예수 믿는 우리도 성전에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가야할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좋은 일을 하는 곳에 가면 언제나 그 사람이 있는 것들을 보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쁜 일을 하는 곳에는 언제나 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우리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합니다. 은혜 받는 자리, 베풀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자리, 연합하는 자리, 좋은 일을 하는 자리에는 늘 여러분이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는 집사님을 만나야 한다면 어느 빠찡코에 가면 된다. 라고 하면 이거 되겠습니까? 가지 않아야 할 곳에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것보다도 창피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늘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만나려면, 동경제일교회로 오면 된다는 소문이 나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동경제일교회에 찾아가면 해결된다는 소문이 나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가면 반드시 그 사람이 있다는 선한 소문들이 나야 합니다.
오늘 당연히 예수님이 아버지 집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잃어버렸으면 당연히 아버지집 교회로 찾아 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싶으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야 합니다. 성전에 교회에 가야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진리를 찾아 헤 메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려면 교회에 가야한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찾아 헤 메는 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찾아 헤 메이는 그 진리가 바로 예수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만나려면 교회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를 발견한 사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해야할 책임입니다.
또한 여러분 예수님이 계셨던 곳이 성전이듯이 예수 믿는 우리도 성전에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가야할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좋은 일을 하는 곳에 가면 언제나 그 사람이 있는 것들을 보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쁜 일을 하는 곳에는 언제나 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우리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합니다. 은혜 받는 자리, 베풀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자리, 연합하는 자리, 좋은 일을 하는 자리에는 늘 여러분이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는 집사님을 만나야 한다면 어느 빠찡코에 가면 된다. 라고 하면 이거 되겠습니까? 가지 않아야 할 곳에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것보다도 창피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늘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만나려면, 동경제일교회로 오면 된다는 소문이 나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동경제일교회에 찾아가면 해결된다는 소문이 나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가면 반드시 그 사람이 있다는 선한 소문들이 나야 합니다.
오늘 당연히 예수님이 아버지 집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잃어버렸으면 당연히 아버지집 교회로 찾아 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가 있습니다.
3. 깨닫지 못하는 세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누구 신지 잠시 잃어버렸습니다.
분명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자녀들은 정상적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또한 성령의 의해 출산한 자녀이기에 이는 분명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부모가 세상 속에 살면서 그 사실은 깜박 잃어버리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영적 무지 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되는가 하면 우리가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아갑니다.
마치 아기 예수님을 처음 낳았을 때 요셉과 마리아가 그 감격 속에서 살아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어느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들로 자라가면서, 또 아버지를 도와서 목수의 일도 더불어서 하고 있던 그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 그만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실 때에 50절에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었을 때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아무런 감각도 없어지고, 그저 의무감으로 때로는 습관적으로 교회를 나오기 시작할 때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에 처음에 건너올 때는 대단한 각오를 하고 건너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들이 식어지고 매일같이 이어지는 다람쥐 채박이 돌 듯이 똑같은 생활만이 반복되어질 때에 때로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자기의 삶에 회의를 가져와서 나중에는 그냥 마음대로 방탕 하는 삶을 살아가기가 쉬운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데, 아무런 감각이 없이 믿기 시작하면, 우리의 믿음의 삶이 무미건조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안에 말씀을 새롭게 체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의 기쁨을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는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참석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요즘 교회 성장에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해서 구원할 수 있을까!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출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보시고, 예배출석에 최선을 다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의 가치가 날마다 새롭게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해보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자기를 이겨보려고 애를 쓰시길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늘 경험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주님을 위해서 나의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늘 기도로 애쓰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께 집중하는 일이고, 예수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누구 신지 잠시 잃어버렸습니다.
분명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자녀들은 정상적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또한 성령의 의해 출산한 자녀이기에 이는 분명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부모가 세상 속에 살면서 그 사실은 깜박 잃어버리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영적 무지 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되는가 하면 우리가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아갑니다.
마치 아기 예수님을 처음 낳았을 때 요셉과 마리아가 그 감격 속에서 살아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어느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들로 자라가면서, 또 아버지를 도와서 목수의 일도 더불어서 하고 있던 그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 그만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실 때에 50절에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었을 때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아무런 감각도 없어지고, 그저 의무감으로 때로는 습관적으로 교회를 나오기 시작할 때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에 처음에 건너올 때는 대단한 각오를 하고 건너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들이 식어지고 매일같이 이어지는 다람쥐 채박이 돌 듯이 똑같은 생활만이 반복되어질 때에 때로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자기의 삶에 회의를 가져와서 나중에는 그냥 마음대로 방탕 하는 삶을 살아가기가 쉬운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데, 아무런 감각이 없이 믿기 시작하면, 우리의 믿음의 삶이 무미건조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안에 말씀을 새롭게 체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의 기쁨을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는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참석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요즘 교회 성장에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해서 구원할 수 있을까!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출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보시고, 예배출석에 최선을 다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의 가치가 날마다 새롭게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해보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자기를 이겨보려고 애를 쓰시길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늘 경험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주님을 위해서 나의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늘 기도로 애쓰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께 집중하는 일이고, 예수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에 모습 속에서 너무 바쁜 일들 때문에 우리마음속에 꼭 계셔야할 그분이 어느날 처다 보니까 안 계신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같이 계신 줄 알고 착각하고 살아가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어느날 예수님을 한번 불러봤는데, 내 안에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에 떠나가신 분은 안 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찾아서 나서야 합니다.
그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오늘 새롭게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성전에 늘 계시는 그분 예수님을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드리다가 다시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시는 우리의 시선을 떼는 일이 없이 늘 주님과 동행하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에 모습 속에서 너무 바쁜 일들 때문에 우리마음속에 꼭 계셔야할 그분이 어느날 처다 보니까 안 계신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같이 계신 줄 알고 착각하고 살아가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어느날 예수님을 한번 불러봤는데, 내 안에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에 떠나가신 분은 안 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찾아서 나서야 합니다.
그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오늘 새롭게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성전에 늘 계시는 그분 예수님을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드리다가 다시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시는 우리의 시선을 떼는 일이 없이 늘 주님과 동행하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