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소원을 주시는 하나님 빌2:12-18
장경태
2010. 7. 31. 07:48
소원을 주시는 하나님 빌립보 2:12-18 07.9.23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사람인가를 보려면 그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조그만 생각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작은 일 밖에 이루질 못합니다.
그러나 큰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주님은 "네입을 크게 열라 그러면 체우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의 꿈을 얼마나 크게 갔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도 마음도 행동도 달라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어떤 꿈이어야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어야 합니다.
어느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사람이 큰소리를 치면서 "다 물러가라! 너희들은 오늘부터 내 백성이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오늘부터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누가 너를 대통령이라 했느냐 했더니 하나님이 오늘부터 대통령이라고 했다.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야단을 치면서 하는말이 "네가 언제 너보고 대통령하라고 했어" 하더랍니다. 이런 꿈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착각 속에 사는 것과 꿈을 가지고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소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사람인가를 보려면 그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조그만 생각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작은 일 밖에 이루질 못합니다.
그러나 큰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주님은 "네입을 크게 열라 그러면 체우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의 꿈을 얼마나 크게 갔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도 마음도 행동도 달라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어떤 꿈이어야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어야 합니다.
어느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사람이 큰소리를 치면서 "다 물러가라! 너희들은 오늘부터 내 백성이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오늘부터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누가 너를 대통령이라 했느냐 했더니 하나님이 오늘부터 대통령이라고 했다.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야단을 치면서 하는말이 "네가 언제 너보고 대통령하라고 했어" 하더랍니다. 이런 꿈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착각 속에 사는 것과 꿈을 가지고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소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1. 소원을 주시기전에.
먼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는 하나님은 12절에 보면 우리에게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무엇인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선한 행동이나 착한 일들을 통해서 구원을 이룬다는 말입니까?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힘입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의 문제 앞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서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에 우리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제 구원받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의 은혜를 더욱 성화 시켜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소중한 구원의 가치를 헛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 구원을 받은 사람답게 정말로 소중하게 두려운 마음과 떨리는 마음으로 사도 바울이 고백 한 것처럼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는 고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몸은 이 죄악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죄악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구원을 빼앗아가려고 얼마나 집요하게 공격해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사라져버리게 만들고,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을 집어 넣어주기도 하고, 우리에게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지 못하는 삶을 살도록 갖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해 옵니다. 우리가 점점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쉽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두렵고, 떨림입니다. 영적 긴장감입니다.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선생님은 우리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고 권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그런 성도들에게 주님은 소원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는 하나님은 12절에 보면 우리에게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무엇인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선한 행동이나 착한 일들을 통해서 구원을 이룬다는 말입니까?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힘입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의 문제 앞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서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에 우리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제 구원받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의 은혜를 더욱 성화 시켜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소중한 구원의 가치를 헛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 구원을 받은 사람답게 정말로 소중하게 두려운 마음과 떨리는 마음으로 사도 바울이 고백 한 것처럼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는 고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몸은 이 죄악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죄악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구원을 빼앗아가려고 얼마나 집요하게 공격해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사라져버리게 만들고,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을 집어 넣어주기도 하고, 우리에게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지 못하는 삶을 살도록 갖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해 옵니다. 우리가 점점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쉽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두렵고, 떨림입니다. 영적 긴장감입니다.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선생님은 우리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고 권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그런 성도들에게 주님은 소원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2. 소원을 주시는 하나님.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소원은 어떤 소원일까요! 그 소원은 하나님이 갖게 하시는 소원이라 합니다. 그 소원은 세상의 헛된 것을 꿈꾸는 소원이 아닐 것입니다. 그 소원은 우리의 육신의 정욕을 위한 소원이 아닐 것입니다. 그 소원은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소원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그 소원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소원일 것입니다. 그 소원은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싶은 소원일 것입니다. 그 소원은 이 땅의 상처받고, 고통받고, 힘겨워 하는 영혼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싸메 주기를 원하는 소원일 것입니다. 그 소원은 이 땅에 구원받아야 할 수많은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며 눈물을 흘리면 영혼구원을 위한 몸부림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 소원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거룩한 소원일 것입니다. 성경은 그 소원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한 소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소원을 갖고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성도들에게 거룩한 소원을 품고 살게 하십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를 생각하시면서 이 한 주간의 주어진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쁨입니다. 자식이 잘되는모습을 바라보면 아버지는 기뻐합니다. 그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착하고 건강하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는 모습, 부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것을 알아차려서 행하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건강한 모습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육신적으로도 건강한 것입니다.
일본이 패전하고 모든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하나 미국의 교육자이자 선교사 였던 클라크박사가 꿈을 상실한 청년들에게 했던 유명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꿈을 가져라" 그런데 이 말에 원래는 "Boys be ambitious in christ・소년이여 그리스도 안에서 꿈을 가져라 "입니다. 예수안에서 꿈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이 말 한마디에 당시 청년들에게 큰 소망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실망과 좌절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꿈이 있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있고, 삶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건너올 때 여러분들도 꿈을 가지고 왔지 않습니까? 그꿈은 어떤 꿈이었습니까? 혹시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꿈은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가져야 할줄로 믿습니다. 저는 꿈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일본에 건너올 때의 그 꿈이 현실 속에서 좌절되어질 때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망가트리는 것입니다.
어느날 아침, 아직 이른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가게의 문이 열기도전에 빠찡코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말들은 한국사람들의 말소리들을 들을 때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끼어있는 어떤 사람이 눈에 뛰었는데 제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순간 그 영혼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릅니다. 왜 저렇게 되었을까? 밤새도록 일을 하고는 그 번 돈을 빠찡고에 집어넣는 사람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꿈을 주십니다. 그전에 내가 세상 속에 있을 때 가졌던 꿈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주어지는 건강한 꿈입니다. 건전한 꿈입니다. 그것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의 새로운 인생관을 갖게 되어집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건강하고 힘찬 출발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보증해주시고, 여러분의 등뒤에서 밀어주시고, 후원해주시는 삶입니다.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소원은 어떤 소원일까요! 그 소원은 하나님이 갖게 하시는 소원이라 합니다. 그 소원은 세상의 헛된 것을 꿈꾸는 소원이 아닐 것입니다. 그 소원은 우리의 육신의 정욕을 위한 소원이 아닐 것입니다. 그 소원은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소원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그 소원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소원일 것입니다. 그 소원은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싶은 소원일 것입니다. 그 소원은 이 땅의 상처받고, 고통받고, 힘겨워 하는 영혼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싸메 주기를 원하는 소원일 것입니다. 그 소원은 이 땅에 구원받아야 할 수많은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며 눈물을 흘리면 영혼구원을 위한 몸부림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 소원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거룩한 소원일 것입니다. 성경은 그 소원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한 소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소원을 갖고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성도들에게 거룩한 소원을 품고 살게 하십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를 생각하시면서 이 한 주간의 주어진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쁨입니다. 자식이 잘되는모습을 바라보면 아버지는 기뻐합니다. 그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착하고 건강하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는 모습, 부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것을 알아차려서 행하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건강한 모습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육신적으로도 건강한 것입니다.
일본이 패전하고 모든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하나 미국의 교육자이자 선교사 였던 클라크박사가 꿈을 상실한 청년들에게 했던 유명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꿈을 가져라" 그런데 이 말에 원래는 "Boys be ambitious in christ・소년이여 그리스도 안에서 꿈을 가져라 "입니다. 예수안에서 꿈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이 말 한마디에 당시 청년들에게 큰 소망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실망과 좌절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꿈이 있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있고, 삶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건너올 때 여러분들도 꿈을 가지고 왔지 않습니까? 그꿈은 어떤 꿈이었습니까? 혹시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꿈은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가져야 할줄로 믿습니다. 저는 꿈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일본에 건너올 때의 그 꿈이 현실 속에서 좌절되어질 때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망가트리는 것입니다.
어느날 아침, 아직 이른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가게의 문이 열기도전에 빠찡코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말들은 한국사람들의 말소리들을 들을 때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끼어있는 어떤 사람이 눈에 뛰었는데 제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순간 그 영혼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릅니다. 왜 저렇게 되었을까? 밤새도록 일을 하고는 그 번 돈을 빠찡고에 집어넣는 사람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꿈을 주십니다. 그전에 내가 세상 속에 있을 때 가졌던 꿈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주어지는 건강한 꿈입니다. 건전한 꿈입니다. 그것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의 새로운 인생관을 갖게 되어집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건강하고 힘찬 출발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보증해주시고, 여러분의 등뒤에서 밀어주시고, 후원해주시는 삶입니다.
3. 소원을 성취하는 방법.
우리의 삶에 주님이 주신 소원들, 꿈을 우리는 어떻게 성취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가지고 방법이야 어찌했던 돈만 벌면 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방법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14절 에 보면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그래야 15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빛의 자녀들처럼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주님은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과정입니다.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5"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법대로 경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거룩한 꿈을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오늘의 본문에서는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원망이라는 말은 "불평을 늘어놓는, 수군거림, 불평, 중얼거림, 투털대는자"라는 말입니다. 즉 투덜대며 일하는 것은 거룩한 소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 백화점의 왕이라 불리우는 페니(J.C.penny)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 그는 하바드 대학 출신으로 총장의 추천을 받고 또 다른 동창생 한 사람과 함께 백화점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입사한 그들에게 맡겨진 일이란 엘리베이터 안내였습니다. 실망한 동창생은 불만 이 많았습니다. 늘 투덜거리고 불평만 하다가 그만 백화점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페니는 엘리베이터 안내를 하면서 손님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 물건의 선호도라든가 혹은 그 백화점에 대한 손님들의 견해, 불평, 요망사항 등을 포착하여 보고서로 관계자에게 제출, 백화점 운영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계속하는 가운데 그는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결국 중역을 거쳐 사장직을 역임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는 백화점의 왕이라 불리 울 정도로까지 탁월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하면서 원망하는 마음. 투덜대는 마음. 그것은 꿈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꿈을 가진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자기를 훈련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입니다.
또한 시비가 없이 하라는 말인데, 시비란 말은, "의심하다, 변론하다. 논쟁하다. 망설이다. "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해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망설이고, 논쟁하는 것들은 비젼을 품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할 중요한 일은 결단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반대자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들은 반대자 앞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시비가 있다는 것은 주저한다는 것입니다. 주저한다는 것은 소극적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승리자의 모습으로 잠을 든다는 것은 하루의 삶을 성실하고 충실되게, 그리고 그 꿈의 성취에 한발자국 오늘도 다 가까이 갔다 는 말입니다. 16절에 보면 "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땀흘림이 헛되지 않게 된다. 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수고와 땀을 헛되게 만들고 있는지 아십니까! 공든탑을 무너트리는 것은 잠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아왔던 그 시간을 헛된 일로 돌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안에 있으면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온전히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즉 믿음으로 온전히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주님은 꿈을 주시고, 여러분의 달려가는 길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심으로 헛된 시간 낭비가 없는 땀흘린 것이 기쁨의 단으로 주어지는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이 주신 소원들, 꿈을 우리는 어떻게 성취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가지고 방법이야 어찌했던 돈만 벌면 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방법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14절 에 보면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그래야 15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빛의 자녀들처럼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주님은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과정입니다.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5"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법대로 경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거룩한 꿈을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오늘의 본문에서는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원망이라는 말은 "불평을 늘어놓는, 수군거림, 불평, 중얼거림, 투털대는자"라는 말입니다. 즉 투덜대며 일하는 것은 거룩한 소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 백화점의 왕이라 불리우는 페니(J.C.penny)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 그는 하바드 대학 출신으로 총장의 추천을 받고 또 다른 동창생 한 사람과 함께 백화점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입사한 그들에게 맡겨진 일이란 엘리베이터 안내였습니다. 실망한 동창생은 불만 이 많았습니다. 늘 투덜거리고 불평만 하다가 그만 백화점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페니는 엘리베이터 안내를 하면서 손님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 물건의 선호도라든가 혹은 그 백화점에 대한 손님들의 견해, 불평, 요망사항 등을 포착하여 보고서로 관계자에게 제출, 백화점 운영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계속하는 가운데 그는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결국 중역을 거쳐 사장직을 역임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는 백화점의 왕이라 불리 울 정도로까지 탁월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하면서 원망하는 마음. 투덜대는 마음. 그것은 꿈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꿈을 가진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자기를 훈련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입니다.
또한 시비가 없이 하라는 말인데, 시비란 말은, "의심하다, 변론하다. 논쟁하다. 망설이다. "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해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망설이고, 논쟁하는 것들은 비젼을 품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할 중요한 일은 결단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반대자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들은 반대자 앞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시비가 있다는 것은 주저한다는 것입니다. 주저한다는 것은 소극적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승리자의 모습으로 잠을 든다는 것은 하루의 삶을 성실하고 충실되게, 그리고 그 꿈의 성취에 한발자국 오늘도 다 가까이 갔다 는 말입니다. 16절에 보면 "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땀흘림이 헛되지 않게 된다. 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수고와 땀을 헛되게 만들고 있는지 아십니까! 공든탑을 무너트리는 것은 잠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아왔던 그 시간을 헛된 일로 돌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안에 있으면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온전히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즉 믿음으로 온전히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주님은 꿈을 주시고, 여러분의 달려가는 길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심으로 헛된 시간 낭비가 없는 땀흘린 것이 기쁨의 단으로 주어지는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7절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게 기뻐하리니"라고 바울을 말합니다.
이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의 거룩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도바울의 희생이 혹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너희를 위해서 기쁘게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 왜냐 하면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사도바울에 대해서 각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장에 보면 15,16절에 보면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라고 합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열심을 다했습니다. 사랑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너희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너희의 소원을 위해서라면 나를 관제로 드리더라도 나는 기쁘게 생각하겠다 합니다. 구약에서 흔히 소제(곡물로 드린 제물)에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것을 전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희생제물(동물)에 포도주를 붇는 것은 관제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제물이 되어 희생하여 죽겠다는 각오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을 헌신 자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거룩한 소원을 위해서 희생을 각오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서 드렸습니다.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헌신하시고 희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 꿈은 자신의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두렵고 떨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꿈입니다. 소원입니다.
그꿈을 성취하는데,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그 거룩한 소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그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주셔서 동경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기쁨으로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7절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게 기뻐하리니"라고 바울을 말합니다.
이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의 거룩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도바울의 희생이 혹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너희를 위해서 기쁘게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 왜냐 하면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사도바울에 대해서 각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장에 보면 15,16절에 보면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라고 합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열심을 다했습니다. 사랑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너희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너희의 소원을 위해서라면 나를 관제로 드리더라도 나는 기쁘게 생각하겠다 합니다. 구약에서 흔히 소제(곡물로 드린 제물)에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것을 전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희생제물(동물)에 포도주를 붇는 것은 관제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제물이 되어 희생하여 죽겠다는 각오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을 헌신 자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거룩한 소원을 위해서 희생을 각오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서 드렸습니다.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헌신하시고 희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 꿈은 자신의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두렵고 떨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꿈입니다. 소원입니다.
그꿈을 성취하는데,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그 거룩한 소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그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주셔서 동경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기쁨으로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