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생각의 결과 렘6:16-21
장경태
2010. 7. 31. 07:49
생각의 결과 예레미야 6:16-21 07.10.7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더러는 주어진 환경을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찬습니다.
모든 면을 언제나 어둡고, 부정적인 부분들만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건너와서 살기로 작정했던 이유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많은 사람들도 지방에서 동경으로, 동경으로 몰려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다 나은 삶이 도시로 가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올라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필수입니다. 그런 비젼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과 같은 것입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학시절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접시를 닥았던 이야기, 청소아르바이트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추억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의 그 고난이 우리에게 변장된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도구였고, 또 고난이 나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고난이 우리를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만들고, 낯선 땅에서 적응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는 놓여있는 돌이 장애물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주어지 환경은 우리에게 최악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최고의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오늘 성경의 본문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둡게 보여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남쪽 유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내용인데,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유다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평강의 길을 주었지만 원치 않았고, 파수군의 나팔소리를 들려주었지만 듣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들이 당할 일을 봐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이것은 너희의 “생각의 결과”다 이제 너희가 아무리 금은을 들고 와서 나한테 제사해도 나는 받지 않겠다 너희는 멸망할 것이다" 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은혜 받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이 "생각의 결과"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마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말이 나오고, 행동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부정한 생각을 하면 부정한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한 생각을 하면 거룩한 말과 거룩한 행동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징계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실 앞에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진정한 마음을 알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식의 때리는 부모의 본래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 오늘의 메시지는 심판이지만 하나님이 정말 원하셨던 것은 무엇입니까?
1. 평강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16절 중간에 보면"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합니다. 그런데 그 평강이 어떻게 해서 얻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면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그리하면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옛적 길은 무엇을 말합니까? 옛날에 걸었던 선한 길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나눠지기 전 다윗이 통치하던 때에 이스라엘은 평화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왕의 시절에 태평성대를 허락하셨습니다. 나라는 부강했었고, 백성들은 은혜가운데 살았었습니다.
하나님은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평강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선한 길을 걸어가면 평강 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어 졌던 이스라엘, 남 유다의 왕들 중에는 역대 왕들을 따라서 선한 길을 걸었던 왕들이 나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유다 민족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히스기야 왕정초기의 모습은 더욱 그러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25살에 왕이 되고 난 다음에 히스기야는 모든 우상들의 신상들을 다 때려 없애버립니다. 그런 모습을 성경에서는 왕하18:5~7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만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14:27에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이 여러분에게 깆들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을 보면 평안해지는 사람이 있고, 불안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떨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얼굴은 어느 누가 보아도 평안입니다.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잘못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공격적입니다.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말이 공격적이고, 도전적이며, 얼굴에 편안함이 없으면 은혜를 잘못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은혜를 잘못 받은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위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찾아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잃어버리고, 더군다나 자신들이 처형당한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에게도 불행이 찾아 올까봐 그들은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잠긴 문을 통과하시고 들어오셔서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눅24:36)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 평강 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떨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것이 사업입니까? 사람입니까? 환경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겁내게 만들고, 우리를 기를 펴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네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이 땅의 어떤 문제들도 예수님 앞에서 안될 일은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됩니다. 어떤 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어떤 가난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해답입니다. 어떤 종류의 문제들을 가지고 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 해결되어집니다.
2. 나팔소리를 들려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들에게 들려주시기 원했던 것은 파숫꾼의 나팔소리였습니다. 17절"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입니다.
파수꾼의 일이 무엇입니까? 감시하고, 망을 보는 것입니다. 성이 있으면 그 망대에 올라가서 사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적이 오는지. 어떤지를 살펴봅니다. 그러다가 적들이 공격해올 것 같으면 나팔을 붑니다. 사람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고 전쟁을 준비하고, 싸울 것을 준비합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의 나팔소리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에 나팔소리가 울렸는데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다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팔소리를 듣고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분명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 종전이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남, 북의 관계는 휴전이었는데, 이제는 전쟁을 완전히 끝은 내는 종전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의 북한 방문 속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 것으로 아는데,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철책과,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경계근무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 짖는 중대한 일입니다. 그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계를 섭니다. 그리고 혹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낮에 철책선에 올려놓거나, 끼워 넣은 돌맹이들이 떨어져 있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비상이 걸립니다. 왜냐 하면 그곳으로 간첩이 들어 왔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당시의 파수꾼의 나팔소리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파수꾼이 보초를 서다가 멀리서 적군들이 쳐들어오면 바로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이 나팔소리만 들리면 온 성안의 사람들은 금방 전투태세를 갖추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성이 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파숫꾼 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바로 나팔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마다 파숫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소리를 싫어했습니다. 그 나팔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지금 유다가 바로 그 나팔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입니까?
간단하지요. 파수꾼의 나팔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삽니다.
교회은 바로 이런 파숫꾼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매일새벽마다. 주일마다, 수요, 금요일마다 나팔소리가 들려집니다. 우리의 삶에 영적 각성을 가져다 줄 나팔소리들이 울려 퍼집니다. 우리의 삶에 어떤 때는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도 합니다. 위험하다는 크락숀을 울려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언제나 설교시간에 듣지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축복에만 "아멘"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에도, 듣지 싫은 소리에도, "아멘"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내 마음에 찔림이 있고, 듣기에 괴로워도, 여러분이 "아멘"한다면 여러분은 나팔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나팔소리를 들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즉각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 적이 공격해 오기 때문에 즉각 우리도 그에 대처해야 합니다. 창을 들던지, 칼을 들던지, 우리는 위기 앞에 대처해야 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서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자기 결단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들으나 마나 입니다.
의사가 당신의 건강에 이상이 있습니다. 그 병을 낮기 위해서는 음식을 당장에 줄여야 합니다. 이것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하면서 이런 저런 처방을 내려주면, 당장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수 있습니다.
의사가 경고를 했는데도 듣지 않고, 또 듣고도 행치 않는 다면 그 사람은 그 일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유다는 17절 후반에 보면"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유다의 멸망의 원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소리를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결국은 그들이 멸망의 길을 걸어갑니다. 20절에 보면"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을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합니다.
시바의 유황과 원방의 향품은 당시의 최고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것을 가져와도 내가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들이 나중에 급하게 되면 돈으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입니다.
의사의 처방이 초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사의 처방을 듣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일이 커지고, 병이 커지면, 이제 다급하게 와서 의사에게 고쳐달라고 합니다.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 경고의 나팔소리를 무시했던 사람 앞에서는 나중에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급하면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미 때가 늦으면 아무리 억만 금이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을 드려도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영적으로 위험할 때에 경고를 주십니다. 나팔을 불어주십니다.
우리에게 그 나팔소리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입니까? 나의 삶을 컨트럴 해 줄 수 있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행복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당을 한번 옮긴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일본에서 교회건물을 구한다는 사실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때 그 건물을 얻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을 설득하고, 나중에 건물주인이 그럼 이 교회가 어떤 종교활동을 하는지 써오라는 말을 듣고,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쓴말이 건물주인께서도 알다시피 일본에는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 올 때 꿈을 가지고 오기도 하지만, 막상 외국에 오면 방황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또 타락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을 위해서 교회가 영적인,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서 그들을 잘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써서 보냈더니, 건물주인이 OK한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죄악과 타협하려고 하면, 타락하려고 하면, 나팔을 불어주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아라, 회개하고, 다시 정신 차리고 살아라, 말씀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하면서 나팔을 불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나팔소리가 있다는 사실 앞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나팔소리에 늘 귀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수 있습니다.
유다의 멸망은 바로 그 나팔소리를 듣지 않았던데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어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19절에 보면"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여 내 법을 버렸음이라" 합니다.
생각의 결과가 재앙이라 합니다. 어떤 생각의 결과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나팔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생각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의 생각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고, 나팔소리를 듣겠다는 생각의 결과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평강 입니다. 그것은 안전입니다. 그것은 보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듣고 있습니까? 그 생각의 결과가 재앙일수도 있고 축복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놀라운 축복의 결과를 가져올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더러는 주어진 환경을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찬습니다.
모든 면을 언제나 어둡고, 부정적인 부분들만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건너와서 살기로 작정했던 이유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많은 사람들도 지방에서 동경으로, 동경으로 몰려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다 나은 삶이 도시로 가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올라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필수입니다. 그런 비젼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과 같은 것입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학시절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접시를 닥았던 이야기, 청소아르바이트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추억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의 그 고난이 우리에게 변장된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도구였고, 또 고난이 나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고난이 우리를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만들고, 낯선 땅에서 적응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는 놓여있는 돌이 장애물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주어지 환경은 우리에게 최악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최고의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오늘 성경의 본문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둡게 보여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남쪽 유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내용인데,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유다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평강의 길을 주었지만 원치 않았고, 파수군의 나팔소리를 들려주었지만 듣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들이 당할 일을 봐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이것은 너희의 “생각의 결과”다 이제 너희가 아무리 금은을 들고 와서 나한테 제사해도 나는 받지 않겠다 너희는 멸망할 것이다" 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은혜 받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이 "생각의 결과"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마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말이 나오고, 행동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부정한 생각을 하면 부정한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한 생각을 하면 거룩한 말과 거룩한 행동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징계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실 앞에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진정한 마음을 알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식의 때리는 부모의 본래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 오늘의 메시지는 심판이지만 하나님이 정말 원하셨던 것은 무엇입니까?
1. 평강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16절 중간에 보면"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합니다. 그런데 그 평강이 어떻게 해서 얻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면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그리하면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옛적 길은 무엇을 말합니까? 옛날에 걸었던 선한 길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나눠지기 전 다윗이 통치하던 때에 이스라엘은 평화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왕의 시절에 태평성대를 허락하셨습니다. 나라는 부강했었고, 백성들은 은혜가운데 살았었습니다.
하나님은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평강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선한 길을 걸어가면 평강 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어 졌던 이스라엘, 남 유다의 왕들 중에는 역대 왕들을 따라서 선한 길을 걸었던 왕들이 나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유다 민족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히스기야 왕정초기의 모습은 더욱 그러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25살에 왕이 되고 난 다음에 히스기야는 모든 우상들의 신상들을 다 때려 없애버립니다. 그런 모습을 성경에서는 왕하18:5~7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만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14:27에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이 여러분에게 깆들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을 보면 평안해지는 사람이 있고, 불안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떨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얼굴은 어느 누가 보아도 평안입니다.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잘못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공격적입니다.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말이 공격적이고, 도전적이며, 얼굴에 편안함이 없으면 은혜를 잘못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은혜를 잘못 받은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위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찾아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잃어버리고, 더군다나 자신들이 처형당한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에게도 불행이 찾아 올까봐 그들은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잠긴 문을 통과하시고 들어오셔서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눅24:36)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 평강 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떨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것이 사업입니까? 사람입니까? 환경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겁내게 만들고, 우리를 기를 펴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네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이 땅의 어떤 문제들도 예수님 앞에서 안될 일은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됩니다. 어떤 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어떤 가난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해답입니다. 어떤 종류의 문제들을 가지고 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 해결되어집니다.
2. 나팔소리를 들려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들에게 들려주시기 원했던 것은 파숫꾼의 나팔소리였습니다. 17절"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입니다.
파수꾼의 일이 무엇입니까? 감시하고, 망을 보는 것입니다. 성이 있으면 그 망대에 올라가서 사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적이 오는지. 어떤지를 살펴봅니다. 그러다가 적들이 공격해올 것 같으면 나팔을 붑니다. 사람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고 전쟁을 준비하고, 싸울 것을 준비합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의 나팔소리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에 나팔소리가 울렸는데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다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팔소리를 듣고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분명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 종전이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남, 북의 관계는 휴전이었는데, 이제는 전쟁을 완전히 끝은 내는 종전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의 북한 방문 속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 것으로 아는데,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철책과,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경계근무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 짖는 중대한 일입니다. 그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계를 섭니다. 그리고 혹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낮에 철책선에 올려놓거나, 끼워 넣은 돌맹이들이 떨어져 있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비상이 걸립니다. 왜냐 하면 그곳으로 간첩이 들어 왔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당시의 파수꾼의 나팔소리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파수꾼이 보초를 서다가 멀리서 적군들이 쳐들어오면 바로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이 나팔소리만 들리면 온 성안의 사람들은 금방 전투태세를 갖추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성이 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파숫꾼 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바로 나팔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마다 파숫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소리를 싫어했습니다. 그 나팔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지금 유다가 바로 그 나팔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입니까?
간단하지요. 파수꾼의 나팔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삽니다.
교회은 바로 이런 파숫꾼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매일새벽마다. 주일마다, 수요, 금요일마다 나팔소리가 들려집니다. 우리의 삶에 영적 각성을 가져다 줄 나팔소리들이 울려 퍼집니다. 우리의 삶에 어떤 때는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도 합니다. 위험하다는 크락숀을 울려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언제나 설교시간에 듣지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축복에만 "아멘"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에도, 듣지 싫은 소리에도, "아멘"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내 마음에 찔림이 있고, 듣기에 괴로워도, 여러분이 "아멘"한다면 여러분은 나팔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나팔소리를 들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즉각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 적이 공격해 오기 때문에 즉각 우리도 그에 대처해야 합니다. 창을 들던지, 칼을 들던지, 우리는 위기 앞에 대처해야 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서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자기 결단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들으나 마나 입니다.
의사가 당신의 건강에 이상이 있습니다. 그 병을 낮기 위해서는 음식을 당장에 줄여야 합니다. 이것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하면서 이런 저런 처방을 내려주면, 당장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수 있습니다.
의사가 경고를 했는데도 듣지 않고, 또 듣고도 행치 않는 다면 그 사람은 그 일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유다는 17절 후반에 보면"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유다의 멸망의 원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소리를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결국은 그들이 멸망의 길을 걸어갑니다. 20절에 보면"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을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합니다.
시바의 유황과 원방의 향품은 당시의 최고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것을 가져와도 내가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들이 나중에 급하게 되면 돈으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입니다.
의사의 처방이 초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사의 처방을 듣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일이 커지고, 병이 커지면, 이제 다급하게 와서 의사에게 고쳐달라고 합니다.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 경고의 나팔소리를 무시했던 사람 앞에서는 나중에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급하면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미 때가 늦으면 아무리 억만 금이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을 드려도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영적으로 위험할 때에 경고를 주십니다. 나팔을 불어주십니다.
우리에게 그 나팔소리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입니까? 나의 삶을 컨트럴 해 줄 수 있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행복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당을 한번 옮긴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일본에서 교회건물을 구한다는 사실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때 그 건물을 얻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을 설득하고, 나중에 건물주인이 그럼 이 교회가 어떤 종교활동을 하는지 써오라는 말을 듣고,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쓴말이 건물주인께서도 알다시피 일본에는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 올 때 꿈을 가지고 오기도 하지만, 막상 외국에 오면 방황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또 타락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을 위해서 교회가 영적인,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서 그들을 잘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써서 보냈더니, 건물주인이 OK한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죄악과 타협하려고 하면, 타락하려고 하면, 나팔을 불어주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아라, 회개하고, 다시 정신 차리고 살아라, 말씀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하면서 나팔을 불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나팔소리가 있다는 사실 앞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나팔소리에 늘 귀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수 있습니다.
유다의 멸망은 바로 그 나팔소리를 듣지 않았던데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어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19절에 보면"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여 내 법을 버렸음이라" 합니다.
생각의 결과가 재앙이라 합니다. 어떤 생각의 결과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나팔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생각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의 생각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고, 나팔소리를 듣겠다는 생각의 결과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평강 입니다. 그것은 안전입니다. 그것은 보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듣고 있습니까? 그 생각의 결과가 재앙일수도 있고 축복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놀라운 축복의 결과를 가져올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