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위로자로 오신 주님 사40:1-11

장경태 2010. 7. 31. 07:57

위로자로 오신 주님                     이사야40:1-11                       07.12.16

 

지금 한국에서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나라 전체가 분주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번주 수요일이면 그동안 대권을 위해서 달려왔던 많은 후보들이 손에 진땀을 쥐고 결과를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의 당선을 위해서 수많은 시간들을 투자해서 손이 되고 발이 되어서 뛰었던 사람들이 잠을 못 자고 개표방송을 보면서 긴장감속에서 온밤을 세울 것입니다.
국민들도 역시 그 개표 일은 쉽게 잠들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국민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재외국민 모두의 관심사입니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갑자기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온 나라를 뒤집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삼성의 비자금 사건, BBK 라고 하는 주가조작 사건들, 그리고 그 와중 속에서 일어나 태안반도의 기름유출사건으로 온 나라가 정신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비리를 케기 위해서 온갖 정보들을 다 끄집어내고,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무작정 언론에 퍼뜨려 버리고 그것을 변명하고 또 다시 공격을 하는 모습들을 온 국민이 지켜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켜보는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전 세계로 전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모습들, 한심한 모습들, 이런 모습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 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권력이 뭐 길래! 라는 생각과 더불어서 저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라는 가정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공약들로 민심을 사로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얼마나 현실감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집권을 하고 보자! 는 마음으로 내어 뱉는 말들 속에서 국민들은 희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공허함과, 쓸쓸한 마음만 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어떤 정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삶과 관계가 있는,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낳아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 대권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 모습입니다. 실제적인 경제회복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냐! 깨끗한 사람이냐!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저기 이런, 저런, 흠집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되도 똑 같을거야! 하면서 선거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영주권자라고 해서 한국에 투표권도 없고, 또 일본에서도 외국인이라해서 투표권도 없어서 이래, 저래 투표를 못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뿐입니다.
이제 다음주면 성탄절이 됩니다.  다음주일에 성탄절 예배로 드리고 오후에는 성탄축하 발표회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온 교회가 축하하며, 그리고 우리의 교회 위에 가정 위에,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이 일본 위에 주님의 오심이 복음이 되어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온 나라가 위대한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늘 그렇게 나왔던 사람들은 우리에게 실망밖에 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중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왕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오랜 세월동안 고통과 슬픔을 당한 뒤에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나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11절이라는 짧은 묘사를 통해 이사야 선지자는 그림을 그리듯이 그 여정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백성들을 위로하여 새로운 제2의 출애굽과 같은 여정에 동참하게 합니다(1-2절). 그 다음에 탈바벨론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서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합니다(3-5절). 그리고 그 길을 통해 목적지인 시온산으로 향합니다. 시온산으로 향하는 도중 이사야는 시온산 허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그 때 이사야는 자기 옆에 있는 들풀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모든 풀은 시들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산에 오릅니다. 시온산 정상에 올라 백성들에게 힘껏 외칩니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10절)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1.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백성을 위로하라” 고합니다. 물론 이들이 바벨론에 잡혀 간 것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제는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동안 고생한 백성들을 찾아가서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상하고 찢긴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이 위로가 상한마음을 감싸주는 것입니다.
어릴 때 엄한 아버지 때문에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어서 아버지에게 휘초리로 피가 나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아프다고 울면, 운다고 더 때렸습니다. 옆에 있던 어머니도 겁이나서 말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가, 옆방에 와서 쓰러져서 울고 있는 저에게 피가 나는 다리를 치료해주면서 안아주셨던 그 품을 잊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너를 사랑해서 그래! 하면서 하는 그 말 한마디는 저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위로의 말 한마디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말로 바뀌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잘못된 것을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엄하게 야단을 치고, 그리고 엄마를 보내주어서 위로해 주라고 합니다. 안아주고, 씻겨주고, 따뜻한 국을 끌여서 먹여주라고 합니다.  저에게 어머니는 위로자 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나는 아픈데 상대방은 몰라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울고 있는데 상대방은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숨기고 싶은데 상대방은 들추어내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런 내 마음을 모를 것 같습니다. 이것이 상한 사람의 마음상태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금방 닫아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두가 몰라주는 것 같지만  우리주님만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위로자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새벽에 욥기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등장하는 욥의 세친구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욥이 당한 일을 보면서 위로해주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욥과의 대화를 나누면서 욥이 지금 당한 상황에 위로는커녕 오히려 욥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의 친구들은 위로자로 왔지만, 오히려 욥의 정죄자가 되어서 욥의 마음을 더욱 괴롭히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위로자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주는 것이 위로자의 모습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위로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혹 여러분이 무슨 일이 있을 때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그리고 따뜻하게 해주는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따뜻하게 손만 잡아주어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로의 말 중에서 상을 당한 사람에게 가서 인사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말이 잘안 될 때는 손만 잡아주어도 괜찬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백성을 위로해주라고 합니다. 그의 위로의 말은 무엇입니까!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너희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주신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그분이 오셔서 너희들의 모든 슬픔과 눈물과 아픔을 감싸줄 것이다. 라고 위로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런 위로하심이 바로 여러분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의 위로자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 주님을 받아들이기 만 하면 주님은 여러분의 힘들어하는 어깨를 감싸 안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주의 길을 예비하라.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일이든지 즉흥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창조의 질서를 세우시고, 모든 것을 질서에 맞게 그리고 순서에 맞게 정확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생겨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삭을 바치는 대신 그 곁에 있었던 양을 준비하시고 대신 바치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장막에서 출발하여 모리아산 위에서 칼을 들어 찌르려 할 때까지 모든 일정은 하나님이 철저히 준비한 시나리오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마음이 어떠한가를 체험케 하기 위하여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시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례요한의 사역을 떠올리는 부분입니다. 광야에서 주님의 오실 것을 예비하는 사역을 했던 세례요한의 사역으로 사람들은 더욱 메시야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라고 외쳤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것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40:3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높은 산을 깎아 내리듯 우리의 교만을 깎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다는 어리석은 교만을 깎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살았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는데도 예배 생활에 힘쓰지 아니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물질과, 지식과, 지위가 있다고 남을 무시하는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남의 생각은 존중하지 않고 내 고집만 부리던 잘못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만 무엇인가 가지고 있어도 그것으로 금방 교만 하려고 합니다. 자랑하려고 하고, 폼잡으려고 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평가받기를 바라는 마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다 회개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또한 골짜기들을 메워야 합니다. 우리의 게으름의 골짜기, 성경 말씀 읽기를 게을리한 것들, 기도생활에 게을리한 것들, 주의 일을 힘쓰지 않고, 한다고 해도 기쁨으로 하지 아니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무기력한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소금의 역할,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 회개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한 것 회개해야 합니다.
사막 길을 닦으라는 말씀처럼, 삭막하고 메마른 우리의 마음을 이해와 사랑으로 부드럽게 온유와 겸손하므로 은혜로운 교제의 길을 닦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 오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천국이 이루어지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높은 산처럼 솟아있는 교만과 욕망과 정욕, 모든 악독을 회개하므로 깎아 내려 겸손의 도로를 만들어야 주님이 내 안에 오십니다. 게으름과 무능력과 불신의 골짜기를 힘써 돋우어 능력과 충성과 성령 충만으로 봉사의 길을 닦아서 기쁨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여 맞이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여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게 선교하는 일에도 우리가 힘을 써서 주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3. 그의 구원을 외치라.
그리고는 외치라고 합니다. 무엇을 외치라고 합니까!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강한 팔로 구원하시고 다스리실 것이다.” 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위치라 합니다.
인도에 가서 선교하던 영국인 선교사 한 사람이 영국으로 귀국하여 만찬 석상에서 선교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례를 하나하나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셨고, 은혜를 베푸시는지를 감동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생활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인도인들이 회개하였는지를 보고하였고 그와 같은 일을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 때 만찬회에 자주 인도에 사냥을 즐기러 가는 한 부자 상인이 일어서더니 거만하게 인도 선교사에게 질문했습니다. "선교사님, 거 참 이상합니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인도에 수도 없이 갔는데 예수 믿는 인도인들을 한 사람도 못 만났습니다. 선교사님의 말씀대로라면 인도에 그리스도로 개종한 인도인들이 상당히 많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이 때 선교사는 조용히 일어나 그 부자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는 인도에서 호랑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 상인은 뽐내며 대답했습니다. "호랑이요? 말도 마십시오. 나는 호랑이들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호랑이 사냥을 자주 다녔는데, 수많은 호랑이를 잡았고 그 가죽도 나의 집에 많이 있습니다." 상인의 말이 끝나자 선교사는 대답했습니다. "거 참 이상하군요. 저는 선교사 생활 20년 동안 한 마리의 호랑이도 보지 못했습니다." 호랑이를 찾아 헤매던 사람은 호랑이를 보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던 선교사는 상처입고 방황하는 인도인들을 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성탄의 계절에 바로 이런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실 것이다.”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성탄의 계절이야말로 복음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계절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때로는 우리의 잘못을 엄하게 꾸짖으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우리에게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뒤에 우리를 감싸안고 치료해주시는고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우리는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위로자 이십니다. 우리의 어떤 형편과 사정도 이해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고, 또한 당신이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실 때 겪었던 그 수많은 환란과 핍박들, 목숨의 위태로움을 모두 겪으시고,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시기 받고, 억울하게 누명쓰시고, 배고프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모든 일을 다 겪으신 분, 그분이 우리에게 위로자가 되어주십니다.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에게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배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픈 사람에게 위로자가 되지 못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자가 되지 못합니다. 고통을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고통 하는 사람의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의 충분한 위로자가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감싸안고, 우리의 손을 잡고, “내가 있으니까 괜찬다. ” “내가 다 안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의 메시야입니다.
그 메시야의 길을 우리는 예비해야 합니다. 주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우리는 예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아직도 예수님을 모셔들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서 그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놓아야 합니다. 내가 받은 그 사랑으로 녹여놓고 복음을 전하면 그들도 나와 같이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모셔들일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위로자가 되신다는 이 엄청난 좋은 소식을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계절을 살아가는 건강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 복된 계절에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우리동경제일교회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