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뻐할 사람 마2:9-12
가장 기뻐할 사람 마태2:9-12 07.12.23(성탄절예배)
메리 크리스마스!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하시길 바랍니다.
몇 년전에 성지순례를 다녀왔었습니다. 여행코스 중에 시내산을 오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내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시간을 맞추어서 정상에 도착하려니까 한밤중에 일어나서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정상중간까지는 낙타를 타고 올라가고, 나머지는 낙타가 올라갈 수 없어서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갑니다. 한밤중에 낙타를 타는데, 처음 타보는지라, 얼마나 겁이 났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낙타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니까 얼마나 높이 올라가던지,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해서 안절부절 하기도 했습니다.
그 어색했던 낙타가 이제 조금씩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니까 몸이 춥기도 하고, 그래서 옷깃을 여미고 밤하늘을 처다 보는데, 그 하늘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밤하늘에 별들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리고 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맑은지,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별들같이 느껴졌습니다.
분명 저 별들은 내가 한국에서 보았던, 그리고 일본에서 보았던 별들과 똑같은 별들 일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보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신성하게 보였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놓고 밤하늘의 별들을 처다 보게 하고 네 자손이 이 별들과 같이 많아지리라, 했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에 얼마나 흥분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동방박사들이 바로 이별들을 보면서 그리고 가장 크게 빛난 별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아기 예수에게까지 왔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별들을 처다 보면서 교회를 생각하며 사랑하는 성도들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기도했던 시간이 저에게는 잊을수 없는 행복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성탄절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성탄절 당일에 예배를 드리지만, 일본에서는 평일이기 때문에 오늘 예배를 드립니다.
1. 가장 기뻐했어야 할 사람.
여러분 성탄절이 제일 기뻐했어야 할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을 합니까! 당연히 그 날을 기다려왔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누가 그 날을 기다려왔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메시야 를 기다리면서 수많은 고통의 날들을 인내하면서 참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백성이 들어야 할 메시야의 소식을 먼저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헤롯왕입니다.
헤롯은 25세때 로마제국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되어서 34년간 유대 땅을 다스린 왕입니다.
이 헤롯왕 때에 이스라엘은 가장 힘들어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헤롯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가장 포악한 왕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원래 약탈과 습격을 일삼던 산적출신이었는데, 그는 자기의 힘을 가지고 사병을 동원해서 로마군을 도운 공로가 인정받아서 로마황제로부터 유대인의 왕의 작위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잔인하고, 무섭고, 그리고 다중인격자로서 자신의 아내 미리암네에게서 난 친아들 2명을 살해할 정도로 냉혈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헤롯의 정치 스타일은 포악하기 이를 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폭정을 펼치고 있는 헤롯왕에게 동방박사들은 유대의 다른 왕이 태어난다고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헤롯이 메시야가 기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박사들에게 아이를 발견하면 그 장소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말은 자신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가 온 때는 바로 이런 시기였습니다. 그러므로 헤롯은 칼로 메시야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다른 백성들, 특히 제사장들이나, 당시의 경건하다고 소문이 난 바리새인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메시야의 소식에 가장 기뻐하고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메시야가 오는데, 이 땅에 그 사실을 알고 정말 기뻐했어야 할 사람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기뻐했어야 할 백성들은 만삭이 되어서 아기를 출산하려고 이리저리, 아기 낳은 만한 장소를 찾고 있는 임신부에게 어느 누구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헤롯의 왕정에 민심은 더욱 야박해졌던 것입니다. 자기들도 피곤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다른 사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너무 생활이 어렵고, 힘이 들면, 만사가 다 귀찮아지는 것처럼, 그래서 “될대로 되라!” 식으로 포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메시야를 맞이하고 말았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메시야되신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는데, 평화라는 말은 샬롬인데, 이 말의 본래의 뜻은 “빚을 완전히 청산하다” 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갚아 버리는 것이 “평화(샬롬)”인 것입니다.
메시야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샬롬을 주러 오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각박해지는 것은 경제적인 고난이 있을 때, 가장 각박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경제적 고통으로도 샬롬을 주러 오신줄로 믿습니다.
메시야 되신 주님은 우리의 죄의 모든 빚을 완전히 갚아주심으로 우리들에게 영적인 샬롬을 주신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샬롬을 주러오신 예수님을 우리는 마음이 각박하다는 것으로 야박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마땅히 메시야를 가장 기뻐하고 기뻐해야 했을 제사장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예수를 핍박하는 모습을 우리는 압니다. 그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는 엄청난 일을 벌리고 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메시야로 오셨는데, 그 사실을 알고 기뻐하고 기뻐했어야 할 사람들은, 칼을 들고, 또 야박하게 마굿간으로 내어 몰고, 그리고 십자가로 몰아갔던 것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기쁨, 그 기쁨을 우리는 정말로 느끼고 있는 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2. 가장 기뻐한 사람들.
그런데 오늘 아기 예수를 보고 가장 기뻐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본문10절에 보면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더라” 그들은 동방박사들입니다. 메시야가 나신 곳을 인도하던 별이 다시 나타났고, 그리고 그 별이 인도하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그곳에서 메시야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하고 또 기뻐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입니다. 그들은 별을 연구함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점쳐왔던 점성가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별의 출현을 위대한 왕의 출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믿고 그 장소를 알기 위해서 동방에서 별의 위치를 추적하다가 유대땅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심은 메시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왕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에게 드릴 예물을 가지고 와서 자신들이 처음으로 찾았던 왕을 발견하고는 기뻐하고 기뻐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2장에 나오는 목자들은 천사들의 말을 듣고 구세주,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들도 달려가서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누어있는 아기 예수를 보고는 그들이 고백하는 말은 동방박사들의 고배과는 달랐습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2:20) 고 합니다.
오시겠다고 하셨던 메시야의 예언의 성취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기쁨에 대한 표현인 것입니다.
즉 동방박사들은 메시야에 대한 경배가 아니라 왕에 대한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메시야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유대의 새로운 왕을 제일먼저 발견하고 경배했다고 하는 기쁨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성탄절을 어떤 기쁨으로 맞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성탄절이 기쁨이고, 우리에게 샬롬을 주러오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들떠있습니까!
그런데 정말로 그래야 할 우리들은 오히려 잠잠하고, 담담하고,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니까! 세상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그 날이야말로 대목입니다. 엄청나게 돈을 벌 수 있는 날이고, 자신들의 욕망을 체울 수 있는 날로 그 날을 기뻐하고 또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지 않으면 세상이 그렇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성탄절 카드보다는 연하장을 더 많이 보내고 있는데, 우리는 연하장보다도 성탄절카드를 더 많이 보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탄절을 세상사람들 보다도 더 기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우리보다 더 성탄절을 기뻐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날의 의미를 모르기에 더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산타마스로 인식이 되어집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산타크로스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는 그런 이야기로 사람들은 더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미 고요한밤, 거룩한 밤은 성도들만의 노래가 아니라 술집에서도 불러대는 노래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의미도 모르는채, 그저 선물 주고받는 날, 그리고 연인들의 사랑을 고백하는 날.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선물사주는 날, 그런 날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기뻐했어야 할 사람들은 잠잠하고 있었던 그 날이었습니다.
3. 가장 크게 기뻐할 사람.
그런데 여러분 이날을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사람들 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그야말로 복음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화, 샬롬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들인줄로 믿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2:14)라고 목자들이 고백하고 찬양했던 것처럼. 메시야,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에게 한없는 기쁨이요 평화인줄로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샬롬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 죄로 인하여 늘 무겁게 살아가는 우리 모든 인간들을 위해서 그 모든 죄로부터 자유를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는 말씀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어집니다. 그 복음은 우리의 모든 영육간의 문제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평화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영혼만의 구원이 아닌 이 땅의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모든 빚을 완전하게 청산해주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빚을 자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힘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갚아도, 갚아도 줄어들지 않는 빚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당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러한 고통에서도 우리에게 샬롬이 되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간증 속에서 사업에 실패했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그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말로 가난하고 가난했던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 복음이 들어가면서 일인당 국민소득 2만불을 이야기하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부자들의 상당한 숫자들이 거의 크리스챤들이고, 그들의 과거는 거의 가난에 찌들렸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경제적 샬롬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땅에 약하고 병든 영혼들에게 치유의 복음을 주셔서 모든 사람들을 고치시는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이 육신이 아프면 모든 것이 병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병도 치료하시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 은총으로 사람으로는 고칠수 없었던 수많은 질병들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었던 나사로도 살려주시는 은총으로 이땅에 사망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샬롬을 주셨습니다. 이 질병으로부터 샤롬을 누린 사람들의 수많은 간증은 또 다른 간증을 낳고, 그것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 가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문제들, 장벽들, 사람의 힘으로 할수 없어서 포기하고 있었던 일들이 메시야의 능력으로 모든 벽을 허물어 내셨던 그 은총이 우리에게 샬롬이 되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믿음을 숭고한 믿음의 자리에 까지 끌고 올라가시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사역의 초창기때는 많은 기적과 이적으로 사람들의 육적인 모든 문제로부터 샬롬을 주셨던 주님은 사역의 후반에서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놀라운 고난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사람들이 기대했던 일들을 행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도 참으시고 그 고난의 길에서 끝내 죽음까지고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죽음까지고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어주시는 완전한 구원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온전한 믿음의 단계에까지 성장을 해서 초급신앙때 가졌던, 무엇을 보아야만 믿고, 만져야만 되는 신앙에서 보이는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세상일들로 인해서 편안해지는 것이 없어서 예수님 한 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 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놀라운 믿음의 단계에까지 이끌어 가시는 그 은총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성탄을 가장 기뻐하고 기뻐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모든 사실을 알고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성탄을 가장 즐겨야 합니다. 우리가 찬양해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야를 몰라서 유대의 왕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메시야로 인하여 기뻐하면 찬양을 했습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는 바로 이런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할아버지에게 어느 성탄 전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내일 성탄절날 너의 집을 방문하고자 한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잠을 깨었을 때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성탄의 아침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에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청소부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청소부를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라고 하시고 그를 맞이해 들였습니다.
점심 때가 다 되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 아이를 싸 들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측은하여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 있는 아기의 발을 할아버지는 보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 보았던 조그만한 신발을 신겨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습니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어느 듯 마을에 저녁 기운이 몰려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스프와 빵을 데웠습니다. 그 때 한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훔치고 달아나던 아이를 붙잡아 때리며 경찰서로 데리고 갈려고 끌고 갔습니다. 그 때 파파파노는 그 할머니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배고 고파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주고 내가 대신 과일 값을 지불하지요" 파파파노의 마음에 할머니는 그 아이를 용서했고 그 아이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어느새 할머니와 아이는 정답게 길 저 쪽으로 함께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라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파파파노 나를 보았지!”라고 하는 어제 밤 꿈의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찾아갔지!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여인으로 마지막으로 거지로 말이예요. 파파파노가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고마웠단다!.”
세상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행복해하는 우리동경제일교회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