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장이 하나님 렘18"1-6
토기장이하나님 예레미야 18:1-6 08.1.27
토기장이와 그릇이야기 라는 글이 있습니다.
모든 진흙덩이가 그렇듯이 질그릇으로 최고의 작품이 되어서 왕궁의 식탁이나 부잣집의 장식장에 올라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들의 토기장이가 이 나라 최고의 장인이란 것이었다. 그가 만든 그릇들은 거의 다 왕궁이나 부잣집으로 팔려나갔다.
어느 날. 토기장이가 내 앞에 앉아서 나를 반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품으로 태어날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토기장이가 빚는 나의 모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주둥이에 유난히도 넓은 손잡이. 나를 지켜보는 다른 진흙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를 이런 흉칙한 모습으로 빚은 토기장이의 손길이 밉고 또 미웠다. 마지막으로 불가마에서 나온 내 모습은 정말 절망적이었다. 토기장이가 날 왜 이런 모습으로 빚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토기장이는 내가 완성되자마자 나를 품에 앉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이었다. 아무리 나를 이렇게 가난한 농부에게 팔려고 했어도 이런 모양으로 만든 토기장이가 나는 생각할수록 미웠다. 차라리 바닥에 떨어져 내가 깨져 없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농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난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 농부는 농사일을 하다가 두 손이 잘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하게 생긴 그릇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토기장이는 이 사실을 알고 이 농부를 위해 손이 아닌 팔로 사용할 수 있는 나처럼 생긴 그릇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농부에게 토기장이가 말했다.
“더 고마운 것은 나요. 내가 질그릇을 만들면서 이렇게 기뻤던 적은 처음이요. 이 그릇은 나의 최고의 작품이요.” 토기장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 나라는 사실을 난 그 때 깨달았다. 그리고 나를 빚던 토기장이의 그 따스한 손길을 그제야 느낄 수가 있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고 우리는 바로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년 627년부터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586년 이후 얼마까지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만큼 그는 자기 민족을 사랑했고 자신의 고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선지자 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품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외쳐도 돌아오는 않는 자기 백성들을 보면서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마늘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이 상황 속에 놓여져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소망의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 토기장이 하나님
하나님은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야외예배에 가면 반드시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면서 이모든 것이 주님의 솜씨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좋으셨던 것은 바로 인간의 창조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창조물들은 만드시고 난 다음에 기분이 좋으셔서 “보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지만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면서 너무 좋아하셨던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시고 너무 너무 행복해 하셨습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한 입 먹어보았을 때 생각했던 그 맛이 나오면 너무 행복해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는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형상을 닮은 것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그 창조물이 생각한대로 움직여줄 때에 하나님은 너무 너무 행복했던 것을 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창조물이 즉 아담과 하와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숨으려고 하고, 가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물어보십니다. “아담에 내가 어디 있느냐” 너 왜 자꾸 숨느냐! 라고 물어보십니다. 그랬더니 내가 벌거벗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처음에 만들 때부터 벌거벗고 다니게 만들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야! 그들이 하나님의 창조에 맞지 않게 빚나가기 시작합니다.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노아 시대에 와서는 더 이상 그대로 놓고 볼 수가 없는 지경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사람을 만든 것에 대해서 가슴아파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만 남기시고 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창조물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는 사람을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기로 작정하시고 무지개를 그 증거로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이 만드실 때는 하나님께서 목적가지고서 만드셨습니다. 화병을 만들 때는 그곳에 꽃을 꽂기 위해서 만들고, 그릇을 만들 때는 음식을 담기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만들 때도 목적이 있어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인간도 창조하실 때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창조의 목적에 반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벗어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가슴이 아프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속이 상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대로 나가지 않고 속을 상하게 하고, 세상으로 돌아다니고, 그렇게 믿음으로 살라고 해도 믿음으로 살지 않을 때에, 공부해야 할 때에 공부하지 않을 때에 부모의 속이 상하는 것은 자기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배아파서 낳았는데, 속을 썩이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부모는 언제가 자기 자식이 최고이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도 제일 잘나 보이기를 원합니다. 교회에서 발표회를 할때에 아이들이 나오면 부모들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자기 자식 나오면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자기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기대에 맞게끔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1:26-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면서 우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환경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가인에게도 말씀하시기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고 하셨지만 죄에게 오히려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환경을 잘 못 다스리니까 지금 온 인류가 환경의 재앙 속에서 살아갑니다. 오존층의 파괴로, 점점 겨울이 없어지고, 남극의 빙하가 녹아 내리기 시작하고, 지구상에 없었던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인류가 환경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죄악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과연 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넘쳐나는 불신과 불만과 불안의 모습들, 어떤 때는 패배 의식 속에 사로잡혀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모습들, 날마다 죄와 싸울 때마다 져서 죄 의식 속에 빠져 버리는 모습들, 날마다 새로운 각오를 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여전히 실패하는 모습들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가지고, 꿈과 비젼을 가지고 승리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면서 하나님의 큰 꿈을 이루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나약한 모습으로 있지는 않습니까! 그 모습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2. 부서뜨림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꼭 이런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돌아오라고 경고를 하고, 선지자를 통해서 애원을 해도 돌이키지 않는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한가지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향해서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2)하십니다.
가서 보았더니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만 집어던져서 부서뜨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괜찬아 보이는데, 토기장이의 눈에는 마음에 안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뭉개서 다른 그릇을 만들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장사꾼 토기장이는 모양만 같으면 그것이 어찌되었든지 무조건 많이만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 내다 팔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이 남들 보기에 아무리 괜찬아 보여도 집어 던져서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릇 하나, 하나에 자신의 온 정성과 자신만의 기를 불어 넣는 것입니다. 몇 개 못 만들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장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장인이 만든 물건은 절대로 싸게 팔지 않습니다. 비싼 가격에 팝니다. 그리고 자신의 물건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팔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기분이 좋으면 그냥도 주는 것이 진정한 장인의 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들입니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도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장애가 오히려 더 성공의 요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런 존재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치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손을 대십니다.
야곱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일면 속이는 자였습니다. 장자권을 취득하기 위해서 자기형의 배 고품을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의 장자의 축복을 빼앗기 위해서 엄마하고 짜고, 몸에다 양의 털을 붙여가면서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에서를 피해서 도망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자기보다 단수가 높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오히려 자기의 사랑하는 부인 라헬을 얻기 위해서 마음에 없었던 레아를 얻게 되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외삼촌과 헤어지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의 댓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다시 건강한 양을 얻기 위해서 꾀를 내어서 건강한 양은 자기가 다 차지하고 부실한 양은 삼촌에게 남겨놓고 삼촌집을 떠나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부서트립니다. 압복강가 앞에서 그는 천사와의 씨름을 통해서 철저하게 하나님과 만나게 하시고, 그의 환도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가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진정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기 위해서 우리를 그렇게 손을 보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6절에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토기장이가 작품이 마음에 안 들었을 때에 부숴뜨리는 것 같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3. 새로운 피조물로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6절 후반에 뭐라고 합니까!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고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이겨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잘못 만들어서 새롭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 자유의지를 가지고 우리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부모가 제일 기뻐하는 것이 “우리 애는 스스로 알아서 잘해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할 때 공부하고,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모습을 볼 때 기뻐하는 것입니다. 매일 쫒아 다니면서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면서 감시하고 야단치고 해야지 한다면 속상할 것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모습은 기쁨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자기의 좋은 대로 세상을 향해서 쫒아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다 못해서 주변의 강대국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사랑의 매로 삼아서 징계를 하시기도 했던 것을 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보다 못해서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정말 대고 싶지 않은 사랑의 매를 다시 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환난과 연단의 날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손에 있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너희를 다시 만들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진흙을 버리고 새로운 진흙을 손에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들고 있는 진흙은 먼저 번 깨뜨렸던 바로 그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모든 것을 진멸 한 것 같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작품 노아를 통해서 인류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고 전혀 다른 그 무엇을 통해서 새로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드십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시고, 시몬을 베드로로 만드시고, 사울을 바울로 만드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완전한 작품인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을 통해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로 말미암아 회복될 수 없었던 것 같았던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다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면서 우리에게 새것으로 만들어주신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십니다. 그분의 손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집니다. 그분의 손에서는 절대로 불량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분은 완전하시고 완벽한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한 작품의 가치는 그 물건에 있지 않습니다. 그 작품을 누가 만들었는가에 있습니다. 하꼬네에 가면 “彫刻の森美術館” 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피카소관이 있는데, 그곳에 가보면 피카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작품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저거는 나도 만들겠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그것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런 전시장에 실어주는가! 미술전시장에 가서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손으로 그린 것 같지 않고 발로 그린 것 같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들 밑에 보면 엄청난 가격이 적혀져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입니까?
그 작품이 어떻게 생겼는가 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만들었느냐! 누가 그렸느냐! 가 그 작품의 가치를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작품입니다. 그런데 우리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비관하고, 스스로 자기를 천히 여기고 여기면 하나님은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비록 지난날 우리의 삶이 그저 그렇게 살아서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다 깨뜨렸다 할지라도 이제 우리가 다시 하나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은 새롭게 되어지는 기회입니다.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새로운 비젼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인생을 살수 있는 놀라운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서. 벌써 1월의 마지막주간을 맞이했지만 아직 11달이 남아있는 금년한해에 놀라운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