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애굽에서 광야로 마2:13-15

장경태 2010. 7. 31. 15:36

애굽에서 광야로                 마태2;13-15 , 4:1-3                   08.2.17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1세기 말에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황제였습니다. 로마 황제들 가운데는 자기 스스로 신격화하여 황제숭배의 제의를 지내도록 강조한 황제들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대표적으로 이런 유의 사람이었고, 또한 도니티아누스 황제도 황제 숭배를 대단히 강조하였습니다. 황제들이 황제숭배를 강조하면서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사교가 되어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도니티아누스황제는 자기 조카 도미틸라와 조카 사위 클레멘스가 기독교인이었음을 적발하여 투옥하고는 다른 기독교인들의 적발하여 처형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적발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다윗의 후손을 색출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었음으로 다윗 가문에 속한 사람들을 잡는 것은 곧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잡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황제숭배를 강조한 황제들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어했습니다. 왜냐 하면 기독교인들이 다른 왕을 내세우며 반역을 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잡혀 온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예수님의 친척인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친히 그들을 국문하면서  우선 다윗의 혈통임을 확인한 다음,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었습니다.  9천 데나리온 정도에 해당하는 토지를 가지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국문을 받는 교인은 자기 손에 굳은살을 보여주면서 이 땅에서 힘들게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다시 황제는 기독교인들이 늘 새로운 땅과 하늘,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나라를 세우냐고 물었습니다.
이 교인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끝에 오는 것으로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이들의 대답을 듣고는 근본적으로 무시하게 되었으며 아예 바보로 취급하고 그냥 놓아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세상 권력자나 부자의 눈에 비친 초대교인들의 모습은 “바보”였습니다. 
기독교인으로 발각되면 공직에서 추방되고, 재산 몰수, 투옥, 태형, 화형, 사형 등의 엄청난 희생을 당하는데 왜 하찮은 종교로 화를 자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일을 할까, 돈을 열심히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있는 돈 써가며, 나눠주며, 없애가며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할까,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바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 묵상집을 잘 활용하다보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경건한 삶을 살아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사순절을 보내는 동안에 여러분의 신앙이 더한층 성장하는 기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사순절기간동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오신 이유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 시간까지를 묵상을 합니다.  지난번에는 “하늘에서 땅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편에서는 영광스러운 일이요, 감사, 감사한 일입니다.

 

1. 애굽으로의 길
그런데 오늘본문의 내용에서는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환영하는 환영의 소리들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으로 메시야가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헤롯왕이 새로운 왕의 출현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기 예수님께 칼을 들이대면서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아기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카이로에 가면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난 가셨을 때 숨었던 동굴 위에 “예수 피난교회” 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몇 년전에 이 교회를 방문을 해보았었습니다. 허름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이 교회 안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저 편안하게 예수를 구주로 믿습니다! 라는 고백하나로 구원을 얻었지만 그 구원의 길을 위해서 예수님은 아기시절부터 죽음의 고난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애굽으로 가시는 길! 그것은 헤롯의 칼을 피해서 가는 피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또 하나의 시험의 길이요, 시련의 길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앙의 초기에는 구원받았다고 하는 기쁨이 있고, 그 기쁨으로 살아갈 때 어떤 말씀도 다 은혜롭고, 모든 것이 좋아만 보이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조금 성숙하고 나면 이런, 저런 아픈 일들이 함께 찾아오게 됩니다. 이것을 시험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그 시험을 잘 이기면 더욱 큰 믿음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믿음에서 떨어지는 일들도 생기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백세에 낳은 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신기하고, 행복했겠습니까! 그러나 얼마 후에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이 찾아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시험을 잘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시험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문제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에는 언제나 이런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갈 때는 노예로 팔려 가는 신세였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부족함이 없었던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시기를 받아서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가 간 곳이 애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애굽에서 요셉은 꿈을 이루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 7년 풍년을 잘 준비하고, 다음 7년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 흉년으로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게 되었을 때에 야곱이 자식들을 애굽에 보내서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들어갔던 그곳에서 죽은줄 알았던 요셉을 만나게 되고, 그래서 먹을 것이 풍부했던 애굽으로 야곱의 집안이 이민을 오게 됩니다. 그곳에 가면 먹을 것이 풍부하고, 이제는 고생 없이 잘먹고 잘 살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발걸음이 그곳에서 이스라엘이 민족을 이루는 큰복을 누렸지만, 그의 백성들이 애굽에 400년 간이나 애굽의 종노릇하는 발걸음이 되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떤 일이 늘 잘되어 지는 것 같지만, 바로 그곳에서 어려움을 당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기쁨이었지만, 애굽으로의 피난길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런 일들이 놓여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어려움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힘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다. 이것만 이야기한다면 듣기에 좋은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다면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 믿어도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려면 홍역을 알아야 합니다. 병을 치려야 합니다. 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면역성이 생기고, 그 일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고생은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생각대로, 계획대로, 형통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이 생겨도, 고난이 와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 귀하면 귀할수록 고생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에 전입을 해온 한 사병이 있었습니다. 똑같이 저녁에 기합도 받고, 매도 맞고, 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았는데, 그 사병의 아버지가 투스타 였었습니다. 투스타의 아들이라면 충분히 후방의 편하고 좋은 보직으로 보낼 수도 있는데, 가장 힘이 들고, 어려운 곳에 일부러 보냈던 것을 알고는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존경 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군인이다! 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은 후에 병장이 되어서 알았습니다. 그 아들도 끝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아들과 같이 같은 중대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애굽으로의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애굽으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셨던 것을 봅니다. 목숨을 담보로 하고, 떠난 피난장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약에 야곱 족속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민족은 생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애굽에서 있으면 후에 그들이 출애굽 할 때 약 200만명이나 되었었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엄청난 성장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 족속이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한 민족이 되어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련을 겁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애굽으로의 길을 겁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그 애굽에서 출애굽 할 날이 입합니다. 출애굽 할 때는 민족을 이루어서 출애굽 하는 것입니다.

 

2. 광야의 길
그 다음은 광야의 길을 예수님은 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성하시어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임하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는 영광과 빛나는 일이 이루어졌으나 그것은 잠시 뿐이었고, 예수님은 광야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 길은 금식의 길이었고, 그리고 시험을 받으시는 시험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절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배고품을 해결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자가 받아 주어 안전할것이고, 이세상의 모든 영광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성공을 위해서 기도하고, 성공을 위해서 믿음을 갖는 모든 것은, 우리의 먹는 것에 관한 문제요, 건강에 관한 문제요, 명예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런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사단아 물러가라!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마귀가 주는 제안들을 단번에 물리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세속적 성공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세속적 명예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해결이며, 능력이며, 응답임을 믿어야 합니다. 굶어도, 죽어도, 살아도, 잘 되어도, 못 되어도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다스림, 이것으로 승리를 삼아야 합니다. 가끔은 인간의 방법, 계획, 전락 같은 것이 상당히 괜찮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사람의 병을 고쳐 주고, 떡을 먹여 주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문제, 특히 죄와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게 넓은 길을 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에서 쉽게 쉽게, 대강 대강, 살아가라고 합니다. 믿음의 생활을 쉽게, 쉽게 하라고 합니다. 꼭 그렇게 철저하게 해야 하느냐, 너만 그렇게 튀지 말라고 속삭입니다. 바로 그 쉽게, 편하게라는 말에 함정이 있고, 유혹이 있고, 타협이 있는 것입니다. 쉽게 돈 벌려다 망한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믿는 길, 미고 구원을 얻는 단순한 진리이지만 그 진리고 사는 삶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한국에 거창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철저한 믿음으로 교육하기로 유명한 학교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취직을 하는 학생들에게 몇 가지 지침을 해줍니다. 우선은 어려운 곳을 가라는 것입니다. 월급이 적은 곳과 많은 곳이 있으면 적은 곳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유망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있다면, 덜 유망한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어려운 곳에서 견디면 더 잘 될 수 있고, 적은 것은 많아질 희망이 있으며 유망하지 못한 곳에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주님의 걸어가신 길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늘 시험과 고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험을 치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시험은 우리를 어렵고 힘든 길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확실하고, 더 든든하고, 더 잘 배우는 길, 더 잘 훈련되는 길, 앞날에 보장을 가져오는 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의 길에서 그들은 기적을 맞보았습니다. 출애굽의 그 길은 바로 홍해가 갈라지는 길이고, 마라의 쓴물이 단 물이 되어지는 길이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길이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길이고,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그 애굽의 피난길, 광야의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2:18절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애굽의 피난길, 광야의 시험의 길, 그 길이 내게 있다면 바로 그 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하여 광야의 길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시험, 환난, 억울함, 곤고, 그 앞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의 길에서 더 확실하게 우리를 도우시려고 팔을 벌리고 계시는 임마누엘을 확신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광야의 길은 피할 수 없습니다. 없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의 40년, 예수님의 광야의 40일, 그리고 오늘 우리 앞에 있는 험난한 광야의 세월이 얼마나 길지, 짧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확실하게 광야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또한 확실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우리는 그것을 이길 수 있다,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길, 거기를 나와서 주어진 광야의 길!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과연 나의 이 길은 언제쯤 끝이 날수 있을까요! 과연 내가 그 길을 계속 걸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마귀는 속삭입니다. 유혹합니다. 타협하게 합니다. 포기하게 합니다. 쉬운 길을 찾게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우리를 협박하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고통에서, 연약함에서, 재난에서, 억울함에서, 근심에서 쉽게 벗어나라, 빨리 벗어나라, 왜 이리 오래 기다리느냐? 쉬운 방법, 다른 방법도 있다, 하나님만 고집하지 말라,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더 어렵고, 시험의 불은 더 뜨거워진다, 그래서 계속 견딜수 있느냐? 내가 보장해주마!” 라고 우리에게 마귀는 공격해 옵니다.
여러분 그럴 때 우리는 더욱 확신하고, 더욱 분명해야 합니다.
“아니다, 내 뜻, 내 기분, 내 만족, 내 방법, 나 좋은 것,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섭리, 오직 그것뿐이다” 라고 분명하게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이제 믿음을 순수하지 못하게 하는 찌꺼기는 걸러지고 단련되고, 훈련되고, 성숙하여 정금 같이 나오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애굽의 길!, 광야의 길! 그 길에 십자가의 길로 이어져서 주님께 더 가까이, 그리고 그 길에서 주님을 만나는 그래서 주님과 함께 영생에 들어가게 되어지는 길 인줄로 믿습니다. 이 길이 바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 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편에서 영광이었지만,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걸으셔야 했던 첫걸음은 애굽으로의 피난길이었고, 공생애의 첫출발은 광야에서의 시작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애굽의 길, 광야의 길이 있었기에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십자가의 길로 이어질 수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사람들에게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도 그 소리를 듣고도 그 길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깊은 영적인 의미를 이 한 주간에도 깊이 묵상하여, 주님의 얼굴이 여러분의 얼굴 속에서 더 한층 나타날 수 있는 복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