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의 길목 마4:17-25
갈릴리의 길목
마태복음4:17-25 08.2.24
갈릴리는 이스라엘 북쪽의 큰 호수가 있는 지역으로 예수님 당시에는 인구가 많고 여러 성읍 들이 있었습니다. 약 250여개의 부락이 있었다고 하며 “둥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갈릴리호수가 둥그스름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갈릴리 호수는 그 크기가 커서 성경 어느 곳에서는 바다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세 지역으로 나누는데 남부 지역이 유대 지역이었고, 중부 지역이 사마리아 지역이었고, 북부 지역이 갈릴리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이방과 같은 지역이었고 이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멸시를 받는 사람들이 살던 소외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주 관심은 갈릴리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생애의 마지막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그의 사역의 대부분은 갈릴리에서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 받기를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분부하셨지만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만나신 곳은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열 한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만나시고 마지막 선교 위임명령을 부여하신 곳이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는 예수님의 사역의 출발점이었고 또 주요 사역지였고 또 사역이 마지막 장소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갈릴리에 가보았었습니다. 그 호숫가에서 배를 타기도 해보면서 바로 이곳이 예수님의 숨결이 있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니까 눈물도 나고 은혜가 가장 많았던 곳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로 광야의 시험이후에 왕성하게 사역하시는 출발점이 바로 갈릴리의 길목이었습니다. 즉 사명의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사명과 책임과 또 헌신의 길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사명의길
가슴아픈 일들 중에 하나는 꿈이 없는 젊은이를 볼 때입니다.
우에노공원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구제선교활동을 하다보면 한참 일할 젊은 청년들이 그 속에 앉아있는 것을 봅니다. 꿈을 상실한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입니다. 눈은 초점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자기를 가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자신의 삶을 규모 있게 조절합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리고 것을 위해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그리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갑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도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사명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사람이 놀기가 뭐해서 한 은행의 수위로 취업을 했습니다. 수위는 문 앞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나 하고 안내와 감시, 경비만 하면 되는 데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처음 해보는 수위 일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사명인양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을 안내하고, 청소를 하고, 눈이 내리는 날에는 은행 앞 도로를 쓸고, 빈터에 꽃을 심고... 어찌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금방 그 은행은 친절한 은행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은행장은 당장에 그 사람의 월급을 올리고, 좀 더 편한 자리로 옮겨주기로 결정하고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사표를 내고는 나가버렸습니다.
은행장은 수위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서 수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냈습니다. 광고를 보고 여덟명이 지원을 해 왔는데, 놀랍게도 그 가운데 바로 사표를 써 던지고 나갔던 그 사람이 끼어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일 보다도 수위 일이 너무 좋소. 수위 일을 계속 하려면 이렇게 다시 지원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여러분 정말 자신이 할 일을 깨닫고 흔들림이 없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복중에 복이며, 바로 그것이 사명의 완성이고 진정한 성공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30세까지 개인적으로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하심을 깨닫고 그 일을 하시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은 언제 바로 이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공생애의 길을 걸어가시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예수님이 12살 때 성전에 들어가셔서 여러 가지를 보시면서 랍비들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내 아버지의 집을 위한 아버지의 일을 깨닫고 그 동안 준비를 하시고 기다리셨다가 서른이 되셔서 본격적으로 그 일을 하시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30살이면 자신의 인생에 큰일을 할수 있는 나이입니다. 요셉도 서른 살에 총리가 되었고, 알렉산더는 25살에 가장 많은 정복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재일 한국인 3세로 그러나 국적문제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의 본적은 인터넷에 있다” 라고 말하는 인터넷 제왕이자 일본의 최고의 부자인 손정의 회장이 있습니다. 그는 한때 정체성 혼란을 가지고 살았었지만 그가 미국에 유학을 하면서 다시 정체성을 찾고 그의 성을 정식 일본 성으로 등록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성공하기까지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계획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계획은 시간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는 1년을 12개월로 나누어 쓰지 말고 14개월로 나누어 쓰고, 일주일은 7일이 아니라 9일로 나누어 쓰라고 합니다.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반드시 계획되는 대로 일이 진행되리란 법이 없기 때문에 2개월, 혹은 2일분의 여유를 남겨둔다면 마음에 여유를 주며 능률도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 50년 계획이라는 것을 UC버클리대 유학생이던 19세 때 결혼식 후 부인 앞에서 선포를 했습니다.
그는 “20대에 깃발을 올리고, 30대에 수 천억엔 단위의 군(軍)자금을 마련하고, 40대에 큰 승부를 펼쳐, 50대에 완성한다”는 것이 그의 인생50년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잘 설계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여성들이 좋아하는 브렌드 “샤넬”이 있습니다.
이 샤넬은 어린 시절 매우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이모에게 샤넬을 맡기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성공해서 돌아온다던 아버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고, 당시 이모 역시 가난해서 삯바느질로 어렵게 생활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채 이모의 바느질 일거리를 돕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어린 시절에 이모에게서 배운 바느질 솜씨가 어른이 되어서 세계적이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놀라운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느질 하나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나갔던 사람입니다. 꿈과 사명이 있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자신의 길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이제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이일을 분명하게 하시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의 시험도 이기십니다. 예수님의 일은 결코 마귀의 명령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오셨기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아시고 그 일을 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달란트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쓰여지기를 원하는가를 빨리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사명의 길목 갈릴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책임의 길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은 그 사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됩니다. 사명에는 책임감이 뒤따릅니다. 왜냐 하면 사명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의 책임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는 책임, 하나님의 나라안에 거하게 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동분서주하십니다. 여러분 회개라는 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마음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인식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땅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가질 수 있는 의로운 마음, 새로운 마음, 인격, 환경을 갖도록 하는 회개하는 책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 눈먼 자, 눌린 자, 죄로 인해서 마음이 상한 사람들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그곳에 속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의 책임이 무엇인가 하는데서 착각을 합니다.
에밀 부르너는 교회는 학원도 아니고, 구제 기관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류사회와의 사교클럽을 만들고, 동정을 베푸는 구제가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든지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갖지 못한 사람들을 회개시켜 치료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우리 안에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한국교회의 원로이신 옥한흠목사님이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서 한국교회를 진단을 하시면서 목회자들을 향해서 “목회자로서 정말 말씀대로 가르치고 죄를 죄라고 말하고 있는가” 라고 하면서 “오히려 무슨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맘 상해 떠나지 않을까 성경을 반 토막 잘라 전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은퇴한 뒤 매일 성경을 볼 때마다 기가 막힌다. 복음은 정말 좋은데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하려고 하니 숨이 막힌다”고 고백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조용기목사님도 한국교회는 지금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을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귀족화되어 자기들끼리만 살기에, 지난해 많은 행사를 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들끼리 행사하는데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며 냉소했고, 적대감을 갖기까지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자기들끼리만 노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갈릴리 길목에서 알고 해야 할 사명과 책임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고 바울은 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책임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빚진자다, ”그러므로 그것을 갚아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이 책임의 일은 반드시 해야 만 하는 일 과 반드시 보내야만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복음적 사명과 책임은 “전파하라” 고 하셨기에 해야만 하는 것이고, “보내노라”고 하셨기에 보내심을 받아야 합니다.
이 일은 현재적이면서도 미래적으로 동시에 움직여야 하며 목숨을 바치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 해야만 한다는 결단이 있으면 그곳이 어디이든, 어떤 환경이든, 그 중심은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이고,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사람을 다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리도 만나고, 창녀도 만나고, 사마리아도 만나고, 이방인도 만나고, 유대인도 만나면서 그들과 부딪치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을 봅니다. 이것이 사명감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3. 헌신의 길
여러분 그럼, 예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자신의 온 삶을 헌신하셨습니까!
그분은 두루 다니시면서 일하셨습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아다니십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시면서 자유와 해방, 구원과 용서를 선포하시면서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혼자서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부르셔서 그들을 자신의 사역의 동역자로 여기시고, 그들을 가르치시면서 후에 복음이 계속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하셨던 것을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살피면서, 그들의 육신도 어루만지셨던 것을 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책임감을 가지시고 헌신하시는 그 모습이 바로 갈릴리 길목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사명과 책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이구나! 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러므로 내가 이일을 해야 한다는 결단의 순간이 있어야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갈릴리의 길목에는 허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강한 자, 있는 자, 큰 자도 있었지만, 약한 자, 병든 자, 장애자 등 삶의 파산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이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헌신 봉사하는 그 모습이 오늘 예수님처럼 갈릴리 길목에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 헌신에 대해서 성경은 “온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지니라” 고 합니다. 그런 헌신의 삶을 통해서 복음이 갈릴리를 넘어 시리아 에 까지 퍼지게 되었고, 그 소문이 퍼지니 다시 허다한 무리가 몰려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교회가 이 갈릴리의 길목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의 사랑, 그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늘진 곳, 흑암에 있는 백성들에게 큰 빛을 비추게 되고 만민을 비추는 빛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슈바이처 박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우고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여 명성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병원에 입원하여 있는 환자가 아침 일찍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니 밖에는 보리밭이 있었고 그 보리밭에서 한 노인이 열심히 그 보리 밟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 병원의 원장이신 슈바이처 박사라고 대답했습니다.
환자는 병원 원장인 박사도 저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구나 하고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슈바이처에게 왜 의사가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말로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갈릴리 길목에서 어떻게 해야, 무엇을 해야 과연 주님의 소문이, 복음의 소식이, 교회의 평판이, 교인들의 이름이 아름답게 퍼질 수 있겠습니까?
책임과 사명을 위한 헌신만이 주님처럼 하는 헌신만이 감동이 되고, 치유가 되고, 가르침이 되고, 훈련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회개합시다. 말로, 이론으로, 그럴듯한 구실로 남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려고 복음적 일을 하려고 했던 착각, 교만함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새로운 결단으로 우리의 삶의 길목에서 주님이 사셨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갑시다. 두루 다니면서, 열심히, 사명과 책임을 위해서 믿음으로 삽시다. 우리는 이 길목에서 위대한 일, 휼륭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주 작은 일이라도, 사랑의 눈빛으로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일을 그만두고, 진정으로 네가 용서받은 그 사랑의 빚을 내 이웃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감당해야할 일입니다.
갈릴리 길목 그 길은 우리가 믿음의 삶을 출발하는 바로 그 길목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자신 없는 모습이 있을 수 있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주님이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경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제는 다른 곳에서 방황하지말고, 바로 이 사명의 길, 갈릴리로 다 모여서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그 일을 위해서 힘차게 나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