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작은 자가 천으 이루리라 사60:21-22

장경태 2010. 7. 31. 15:44

작은 자가 천을 이루리라.          이사야60:21-22                             08.4.20
 
오래 전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온 이야기 한편이 생각이 납니다. 어느 대장간에 매일같이 양반집 도령이 대장간에 떨어진 못 조각을 주어서 갔습니다. 그 대장간지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작업하다가 망가지면 버리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수년을 지나면서 그 대장간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망해서 엉엉 울면서 먹고 살 일을 걱정하고 있던 때에 그 도령이 그동안 그 대장간에서 주워서 모아둔 못을 몇 가마니를 담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해주면서 앞으로는 조그만 것 하나라도 아끼면서 다시 시작해보라고 전해주는 내용입니다.
많다고 생각 없이 낭비하고,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서 그만 망하고 만 대장간지기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대로 살면 언젠가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 지혜로운 도령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적은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그에게 있는 능력이 발휘되기만 하면 우리가 감히 근처도 가지 못할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1. 작은 것을 바라보는 눈.
우리의 눈은 자꾸만 큰 것, 모든 것이 다 준비된 사람, 그리고 성공한 사람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예수님은 작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또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를 주목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베드로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냥 하루, 하루 고기를 잡고 살아가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성격이 괴팍해서 금방 흥분도 잘하고, 그래서 실수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베드로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막달라 마리아를 사람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전적이 그렇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고 있었던 마리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리아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여주셨고, 그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 부활의 첫 모습을 보여주신 이도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놀라운 영광을 소유한 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울 된 사울에게서 위대한 사도성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핍박하는 일에 제일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철저한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관심을 가지셨고, 그에게 자신을 보여주셨고, 그를 변화시켜서 가장 위대한 사도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이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고전1:26)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세상의 미련한자,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자학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안돼! 합니다. 나는 못 배웠어! 합니다. 나는 가난해! 합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귀한 분들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버린 돌을 가지고서 성전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가장 소중하게, 가장 크게 사용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어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진 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더러운 것을 가지고, 부족한 것을 가지고 쓰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아 나올 때는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는 모습 그대로를 받으시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는 그렇게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어느 날 성자 프란체스코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하는데 그 놀라운 사역의 비결이 무엇입니까?”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땅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통해서 내 강함과 지혜로움과 능력을 나타내리라’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연약하고 무지하고 미련하다고 생각한 프란체스코를 선택하셔서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선택하신 후에 하나님이 그들 훈련시키시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은 은혜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을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2:28~29)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하셨다는 고백이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2. 훈련시키시는 주님.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잘 압니다. 집을 나간 탕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허비하고 거지가 되어서 아버지 집에 돌아옵니다. 그는 스스로 아들이기를 포기하고, 하인의 한사람으로 아버지 집에서 살기를 원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어떻게 맞아 주었습니까? 그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습을 그 모습 그대로 달려가서, 그를 끌어안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십니다. 그가 집에 데리고 들어와서 아버지가 한일은 무엇입니까? 그를 목욕시키는 일입니다. 새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새 신발을 신겨주었습니다.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아들이 아들 되기 위해서는 더러운 옷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모습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고, 주님께 택함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은 그때부터 그를 회개시킵니다. 모든 죄를 벗어놓게 만듭니다. 그리고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을 회복시켜주시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하신 일이 그들을 3년 동안 데리고 다니시면서, 교육하셨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잠자고, 기적의 현장으로, 가르침의 현장으로, 때로는 그룹으로, 때로는 개인적으로 그들을 교육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구원받기 위해서”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서 예배에 나오고, 주일날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하고, 사회에서 선한 일을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한다고 한다면 그것을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이미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선한 행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목사인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틀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루종일 교회에서 봉사하고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평가한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름 받은 성도들입니다.  성도가 성도 되는 것은 교회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구원하는 역할이 시작 될 때에 비로서 여러분은 진정한 섬김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이미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백성을 하나님께 나아 오게 하는 역할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자리에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구체적인 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우리는 훈련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훈련된 성도가 된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훈련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사명은 바로 여러분은 잘 훈련된 예수님의 제자 만드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훈련받기를 거절한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를 거절한다면 여러분에서 성장은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교회의 제직으로 섬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무식한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저의 사명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 훈련시키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훈련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저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잘 훈련받아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을 보다 보니까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저는 광야대학 고생과에 다니고 있어요...
저는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성적이 별로 좋지 못해서 입학한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 졸업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요. 내가 다니는 학교는 광야대학교 고생과 입니다.  총장은 하나님이신데 어물쩡 넘어 가는 일이 절대로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컨닝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시험을 볼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학비가 비싸냐고요? 예, 좀 비싼 편입니다.  인생을 모두 걸어야 할 정도니까요. 때로는 목숨까지도 저당 잡혀야 하니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과목은 버리기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하고 내 고집을 버려야 하고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인간적인 모든 수단 방법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시체와 같이 사는 방법을 배웁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요. 감정도 없고 흥분할 일도 없고 실망하고 슬퍼할 일도 없습니다. 담담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하고 있답니다.  또 있어요. 하나님 찬송하는 일을 배운답니다.  즐거울 때라면 누가 못하겠어요.  밤중에 찬송하는 일을 지금 아프게 배우고 있습니다. 병들었어도 가난해져도 주님을 찬양하는 일을 배우고 있어요.  인생의 밤중이 찾아왔을 때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잊어버리면 안 된답니다.  또 한가지는 감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엎드러지고 쓰러져서 너무나 절망스러워도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지요. 부유한 것도 하나님 은혜. 가난한 것도 주님의 주권아래 있으니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건강한 것도 병든 것도 모두 감사해야 한대요.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매일, 매일 낙제를 해서 이렇게 졸업을 못하고 있잖아요!
이번에는 반드시 합격하리라 결심을 하고 도전해 보고 있습니다.  합격하는 자에게는 졸업 선물이 주어지겠지요.
소망, 기쁨, 문제해결이라는 은혜의 선물이 주어질 것입니다. 나는 그 선물을 받고 싶어요. 어서 고생과를 졸업하고 헌신과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 한 눈만 살짝 감아주세요.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번 시험에는 꼭 합격하도록 제발, 제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헌신과, 충성과. 어서 어서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부탁해요.  은혜를 감사 드리며....
어떻습니까? 이것이 훈련입니다. 이 훈련을 통과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교실에서 훈련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책을 가지고 훈련 시키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어떤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리이삭을 비벼먹으면서, 그리고 어떤 때는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이시고, 그리고 실습도 시키시면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 훈련들을 제자들이 다 잘 받아낸 것이 아닙니다. 그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팔아버렸고, 또 하나는 배반해버렸고, 나머지는 다 도망했었습니다. 제자 되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한사람이 양육되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운 댓가를 치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실패작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교육시킨 제자들을 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다시 불러모으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끝내는 목숨을 바쳐서 제자로서의 삶을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철저하게 3년 동안 12제자를 양육하는데 온 시간과 정열을 다 쏫으셨 던 것입니다.
 
3. 적은 자가 천을 이루는 은혜.
예수님은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제자들로 인해서 온 세계의 복음화를 꿈꾸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적은 자가 천을 이루는 놀라운 능력이 제자들의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제자를 낳는 놀라운 방법을 통해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해서 일어나 결과입니까? 한사람에게 충실했을 때 일어난 결과입니다. 우리가 꿈꾸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본문의 내용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네 백상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선포입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고,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작은 자처럼 보이겠지만, 그 작은 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천을 만들겠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 받은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반드시 걸쳐야하는 것이 훈련이라는 단계입니다. 그 단계를 지날 때 일당백, 이 아니라, 하나님은 “일당천”을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세계 복음화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 인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교회적다, 좁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미어터져도 우리는 이 땅에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이 있는 한 전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는 말씀의 의미를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제자 삼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먼저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디모데후서2:2 “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고합니다. 
오늘 제자 삼는 사역을 통해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교회들이 지금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은자 속에서 천을 바라보는 영적 시각이 이제 우리게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디에다가 신앙생활의 기준을 두고 있습니까? 일주일에 한번씩 예배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그리고 성도의 의무인 십일조헌금을 하고, 조금 더해서 감사헌금에, 선교헌금을 드리고, 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예수가 되어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잘하고 열심히 해도 결코 예수님처럼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목표는 그곳에 두어야 합니다. 높은 곳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의 자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뒷산을 정복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랑, 후지산을 정복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준비하는 것이 다릅니다. 또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겠다고 하는 사람의 가치관은 또 다른 차원일 것입니다.  목표가 높으면 높은 만큼 자신의 삶을 절제하고, 훈련합니다.  그의 온 삶을 정상에 오를 것을 위해서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높은 기준에 삶의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예수 닮는 것, 주님이 말씀하신,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8-20) 라고 명하신 말씀의 실천을 위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가치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제서야 내가 예수 믿는 이유가 분명해지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의 일의 가치가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그 제자 되는 사역에 동참하여서 일본 땅에 놀라운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도록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