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믿음으로 여는 문 시118:19-29

장경태 2010. 7. 31. 15:53

믿음으로 여는 문              시118:19-29                 08.7.13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답답한 일들을 당 할 때가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門으로 표현합니다. "門이 안 열려, 저 사람이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고 있어서 들어 갈 수가 없어,"라는 식으로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한국의 학생들은 대학의 문을 들어가기 위해서 고등학생 만 되면 특별히 고3이 되면 거의 공부에 시달려야 합니다. 그 대학의 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들어가기 어려운 문인지, 고3병은 이미 옛말이고 중학교 때부터 대학을 위해서 공부하고, 한국에 강남의 어느 곳에서는 아에 초등학교때부터 공부를 시키는 극성스러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학의문" 사람들은 그 문 만 들어가면 인생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대학을 졸업하면 이번에는 취업의 문이 기다리고 있어서, 대학보다 더 좁은 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잘 사귀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갑자기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사소한 오해에 있어서 그런 때가 많은데, 아무튼 마음 문이 닫힌 사람과 함께 있는 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인지 모릅니다. 마음 문을 닫아놓고 지내는 부부들, 마음 문을 닫아놓고 지내는 직장 동료들, 마음 문을 닫아 놓고 지내는 이웃들, 그런 세상은 얼마나 황량한 세상입니까. 건조하고, 메마르고, 차겁고, 아마도 아무도 그런 세상에서는 살고 싶은 생각이 안들 것입니다.
문(door)에 대해서 사전에 찾아보았더니 "한 장소의 경계나 건축물의 입구 또는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 개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구조물."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오늘 분문의 문에 대해서 "의의 문을 열지어다"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때의 문에 대해서 원어성경에 보니까 (샤아르)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쪼개다, 떼어놓다, 값을 매기다, 평가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문이란 나누는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였는데, 쪼개어서 나누어 놓은 것이 門이라는 것입니다. 원래는 부부가, 친구가, 가족이, 이웃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데, 문이 생겼다는 것은 강제로 쪼개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강제로 쪼개어 놓여진 상태가 문이 닫혀진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원래는 에덴동산에서 함께 살게 되어 있었는데, 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쪼개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은총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마귀가 죄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축복에서, 은총에서 쪼개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문이 닫혀져 버린 이유가 마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얼마나 마귀가 미운지요. 죄가 미운지요, 원래 우리는 하나님과 행복하게 살게 되어져 있는데,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그 무한한 은혜와 은총가운데 아무런 걱정도 없이 아무런 근심도 없이, 날마다 찬송하며 살게 되었었는데, 쪼개어 졌다는 것입니다. 쪼개어 질 때에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 고통은 얼마나 엄청났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문을 열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새로운 힘이 솟아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말씀은 성도들이 참 좋아하는 말씀이고, 또 기도할 때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두드리면 열어주시겠다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굳게 닫혀있었던 문이 열린다는 것은 소망을 말합니다. 희망을 말합니다. 그것은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환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문을 열어야 합니다. 어떻게 열겠습니까? 

1. 믿음으로 여는 문
그 문은 믿음으로 여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20절에 보면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의로워 집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1:17에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로워 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쪼개어지고 나누어진 그 관계를 그래서 굳게 닫혀져 버린 그 문을 무엇으로 여는 것입니까?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하나님과 인간과의 그렇게도 굳게 닫혀있었던 성막의 휘장이 아무나 들어 갈 수도 없고 대제사장만이 벌벌 떨면서 들어가야 했던 그 성막의 휘장이 양쪽으로 쫙 찢겨서 하나님 앞에 누구든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오늘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집에서든지, 길에서든지, 혼자서든지, 우리가 제사장 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쪼개어져 버렸던 그 문이 이제는 활짝 열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찬송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쪼개어진 상태가 아니고 아버지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믿음으로 문을 여시길 바랍니다. 이제 그 문은 우리가 두드리기만 하면 언제든지 열려지는 문이 된 것입니다. 아니요! 이미 하나님은 모든 문을 다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죄인이야, 나는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지 않을 꺼야,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집을 떠난 탕자가 세상 속에서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춥고, 굶주리고 있을 때에 아버지 집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아들로서 아버지 집을 찾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그때에 내가 아버지에게 재산을 내 놓라고 할 때에 아버지는 안된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로! 어차피 아버지 돌아가시면 내 몫으로 올 것인데, 미리 좀 달라는 데 뭐가 나쁜거요, 내가 이것가지고 밑천으로 삼아서 성공 좀 하겠다는데, 왜 안 주는거요! 하면서 큰소리치고 나왔을 때 아버지는 문을 꽝 걸어 잠궈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는 더 이상 열려지지 않는 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아버지나 나를 돌아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 됨을 포기하고 아버지집에 종의 한사람으로라도 받아 주었으면 배는 안고프겠다는 생각으로 닫혀진 문을 생각하고 멀리서 멀리서 한발자국씩 옮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문을 닫아 놓았습니까? 집 떠난 아들놈! 이제 그놈은 내 아들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열고 나간 그 문을 그 뒤로 한번도 닫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한순간도 문을 닫아 놓고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언제 아들놈이 돌아올지 모르기에 날마다 문을 열어놓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눈은 언제나 아들 떠난 그 문을 향해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이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도 그 아들이 다른 집의 종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 집의 종이 되자고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온 그 아들, 더럽고 냄새나는 그 아들을  끌어안고 목욕시키고 새옷 사서 입히고 새 신발 신켜 주고 잔치 벌려주고 반지 끼워 줬습니다. 아들로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이 장면이 우리가 의로워지는 장면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보내주시고 예수님의 그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모든 더럽고 추한 몸을 목욕시켜주시고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시며 우리를 받아주시는 우리 하나님 앞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2. 감사로 들어가는 문
또한 그 문은 무엇으로 들어갑니까? 감사로 들어갑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그 구원의 은혜로 들어간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은 감사입니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19下) 우리의 구원이 나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의 문에 들어가서 해야할 일은 감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많이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직장주신 것 감사. 좋은 가정, 부모, 남편, 아내, 자녀,  주신 것 감사.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하는 모든 것으로 감사. 우리에게 건강주신 것으로 감사.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 조건들이 무지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보다 우리가 더욱 감사해야할 이유는 "날 구원하신 주 감사"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으로 인한 감사가 없어지거나, 구원받은 은혜의 감사는 점점 작아지고, 자꾸만 다른 조건으로 인한 감사의 조건들만을 찾을 때, 우리의 감사는 들쑥, 날쑥한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 내가 확신 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8:38,39) 세상의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구원의 은혜와 은총으로 인한 감사. 무엇보다도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쪼개어져 버렸는데, 주님이 다시 쪼개진 우리를 하나님과 붙여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감사한 것입니다.
하박국선지자의 감사의 내용을 보시길 바랍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3:17-18)
하박국선지자의 감사의 내용은 손에 주어진 그 무엇 때문에 하는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손에 주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여호와만 생각하면 즐거워지고,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만 생각해도 절로 기쁨이 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쪼개졌던 우리들이 나무되신 예수님께 가지 되어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감사입니까?
흑인으로서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남아프리카의 첫 번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백인 정부에 의해 26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그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70세가 넘었는 데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 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6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그렇게 건강한 상태로 출옥을 할 수 있었냐고 사람들은 질문했습니다. 그는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분명 나무되신 예수그리스도께 꼭 붙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감사의 사람을 통해서 인생의 닫혀져 있는 문을 열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기적을 주시고, 놀라운 일을 일으켜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로 문을 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3. 축복을 주는 문
그 문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 합니까 26절"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할렐루야.
여호와의 집에서 축복하시는 그 축복이 진짜 축복입니다. 그 축복이 우리를 형통케 합니다. 우리의 영육을 형통케 합니다. 복도 어는 누가 빌어주느냐! 에 따라서 다른 것입니다. 누가 복을 빌어준다고 해서 무조건 머리를 내밀거나 하면 큰일납니다. 스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빌어준다면 여러분 그 복을 받겠습니까? 어느 이단에 복을 빌어 준다면그 복을 받겠습니까?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이가 복을 빌어준다면 복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무조건 복이 좋다고 아무에게나 다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듣고 싶은 뉴스가 있는데, 어느 점쟁이가 로토복권에 당첨됐다는 뉴스가 들리기를 기대하지만 지금까지 그 수많은 점쟁이들이 자기가 신통하니. 뭐니 하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이 로또복권에 담첨 됐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축복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아샬 ashar"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바르게 가게 하다. 인도하다. 지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에게서 축복을 기대합니까? 누가 우리를 바르게 가게 인도하겠습니까? 어디에 가서 축복을 기대합니까? 진정한 축복은 그 복이 우리를 바르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연말 연시가 되면 다까라꾸지가 유행을 합니다. 한국에서도 한동안 롯또복권 열풍이 분적이 있었습니다. 한번 당첨되면 인생역전이라고 해서 엄청난 사람들이 롯또복권을 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어느날 몇십억을 손에 넣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이것으로 행복이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그돈 때문에 결국은 그에게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돈 때문에 부모도 잃고 친구도 잃고, 이웃도 잃고, 결국은 그돈 때문에 강도를 만나고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결코 갑자기 생기는 엄청난 물질은 우리에게 복이 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바르게 살도록 인도해 주시를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복은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잘 압니다. 그런데 새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가 한 동네서 살았습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와도 별 염려가 없습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매일같이 놀면서 노래만 불렀습니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개미집에 가서 얻어먹습니다. 그런데 개미는 너무 일을 많이 해서 디스크가 왔습니다. 고치느라고 돈을 많이 써서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어느 날 음반을 냈는데 이게 떠서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개미는 목사님한테 가서 안수 받고 디스크를 고쳐 다시 일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매일같이 술과 노름으로 탕진해서 마침내 거지가 되어 병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체워 주시는 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우리로 하여금 후회하지 않는 것으로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의 전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만이 우리를 축복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축복을 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받는 축도는 여호와의전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이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하신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기도가 여러분의 한 주간의 삶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주어지는 축복이 여러분의 삶속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저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속에 은혜의 문이 닫혀버렸을 때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고통이었고, 얼마나 큰 기갈이요, 메마름입니까!
더욱이 그 문이 의미하는 것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쪼개어서 분리시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죄가 얼마나 미운지요. 그래서 우리의 삶에 고통이 왔고, 절망이 왔고, 아픔과 빈곤이 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괴로웠는지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은혜의 문을 열어주셔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워 지는 구원의 문에 감사를 들고 들어가서 찬양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전에서 주시는 축복이 우리의 삶에 다시 넘처 흐르게 된다는 사실을 얼마나 기쁜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 앞에 끝까지 붙어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하늘의 열매로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이 충만하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