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은혜의 자리 삼상3:1-9

장경태 2010. 7. 31. 16:11

은혜의 자리                사무엘상3:1-9                 08.8.24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부한속에서 살아가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빈곤하다는 말이지요, 환경은 풍요인데 정작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것이 그림의 떡처럼 보일 때 하는 말입니다.  일본이라고 하는 거대한 경제대국 속에서 살면 모든 사람들이 다 풍부한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국민들의 삶 속에서는 한푼이라도 절약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부부가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현실들, 그리고 우에노공원이나, 큰 공원들에 넘쳐나는 홈리스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것을 더욱 느낍니다. 온 세계의 축제라고 하는 올림픽개막과 함께 일어난 러시아와 그루시아의 전쟁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온 세계사람들이 축제의 기분으로 메달 앞에 환호하며 축배를 들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총알과 포탄에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두 나라의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또 다른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던 시대인데, 사사기21장 마지막에서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즉 선을 행하는 기준이 사람에게 맞추어졌던 시대였습니다. 의의 기준, 선의 기준이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보기에 좋은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오늘 본문에 보면"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진 시대, 어쩌면 그 시대는 우리의 지금의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주일예배를 위해서 한 주간을 준비하고 주일이면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주일에 드릴헌금을 깨끗하게 다림질해서 준비하고 성경책을 옆에 끼고 예배당에 가시던 그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매일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주님 앞에 달려가서 교회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던 그 모습들을 기억합니다. 금요일이면 당연히 그 밤을 꼬박 세우는 철야기도회였고, 그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기도원에서 그 뜨겁게 외치던 그 기도의 음성으로 오늘날 풍요로운 우리의 조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많았고, 주님의 음성을 많이도 들었던 시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던 그 신앙, 그 믿음 그때는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그려보면 이미 하나님의 축복으로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사라졌습니다. 주일예배도 겨우, 겨우 나오는 우리의 현실들, 수요,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가 낫설어 버린 우리의 예배생활들, 주님 앞에 오래 앉아 있어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기도를 한꺼번에 쏫아 내버리고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 응답을 기다릴 줄도 모르고 일어나 버리는 우리의 기도생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깊이 묵상하지 아니하고 내 좋은 말만을 찾아서 읽고는 "아멘, 이것이 제게 주신 응답인줄로 믿습니다." 하면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결정해버리고 맙니다. 그나마도 자기 자신이 기도한다면 다행인데, 이제는 자기 자신은 기도하지 않고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대신 기도를 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말해달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인터넷만 열면 자기가 원하는 목사의 설교를 얼마든지 골라서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각자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골라서 들을 수 있는 설교의 풍요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홍수속에서 살아가는데도 우리의 영성은 오히려 메말라 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 홍수 속에서 자신의 목을 축여줄 진정한 생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이 희귀해진 시대가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이 희귀해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1. 말씀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무엘이 나오는데 이 사무엘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 앞에 바쳐졌던 인물입니다. 어머니 한나가 자식 없는 서러움에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드렸던 그 아들이었습니다. 그 서러움의 기도를 응답으로 주신 아들 젓을 떼자마자 하나님앞에 드려져서 성전에서 자라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3절에 보면 그가 자고 누웠던 곳이 어디냐 하면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즉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2장21절에서도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알아듣던 못알듣던지 교회에서 놀고 자라게 해야 합니다. 어려서 교회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는 아이들은 혹시 나중에 세상에 나가게 되어서도 그시절을 기억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일들이 많습니다.  또한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말씀 앞에서 지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지는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희귀해지기 시작하면 내 인생이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내 영혼이 세상의 것들로 차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세상의 것이 나의 마음속에 차기 시작하면 내 생각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나중에는 내 몸도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앉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또 함께 등장하는 인물 당시의 제사장이었던 "엘리 제사장"이 있었던 곳은 어디입니까! 2절에 보면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물론 제사장이 자기 집에서 자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요. 목사도 사택이 있으니 사택에서 자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성경은 왜 이 사실을 기록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엘리제사장의 평상시의 모습을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모습으로 있었지만 역사상 많은 제사장 중에서 엘리처럼 하나님께 둔감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처럼 불행한 제사장도 없습니다. 자기의 자녀들 말씀으로 키우지 못하고 믿음으로 키우지 못해 성전에서 망나니 짓거리는 다해서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두 아들 전쟁터에서 한날에 다 죽고 맙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인 법궤를 불레셋에게 빼앗기고 만 사람입니다. 그 사실 때문에 그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꼬꾸러져 목이 부러져서 죽고 맙니다. 그런 엘리의 모습을 비유하는 것이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하는 그때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들리던 그때에 그는 자기 처소에서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물론 그곳에 반드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들을 수 있는 자리여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기 위해서 였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이렇게 엄청난 기적을 일으킬수 있는 분이라면, 이분이 우리의 왕이 된다면 더 이상 우리는 먹고 사는 일 때문에 힘들지 않아도 되겠다고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었겠지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은 영생을 얻기 위한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사람들은 황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사람 두사람 떠나기 시작합니다. 결국 아무도 남지가 않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때에 제자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말씀의 자리는 비록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들려도, 마음상하는 말씀이 들려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늘 마음을 하나님께로 열어놓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말씀의 자리입니다. 어떤사람에게는 새벽기도시간일수도 있고, 주일예배시간일수도 있고, 수요, 금요기도회시간 일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성경을 펴놓고 묵상하는 시간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한테도 방해 받지않는 장소로 화장실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는 자리라면 그 자리가 말씀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오늘 엘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2.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엘리제사장은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때에 자기의 처소에서 따뜻한 이불 속에서 편안한 베개를 머리에 베고 세상없이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엘리의 나이 많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불행하게 도 끊겨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든지 음성도 나오지 않게 되어 입술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를 술 취한 줄로 알면서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1:14) 말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그 사람이 기도하는 것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이 둘이 악동들이 되어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거망동을 할 때에서 그 아들들을 책망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려는 의도보다는 사람들의 소리에 더 의식에서 백성들이 하는 원망의 소리를 피해보려고 야단을 쳤던 그 모습니다. 그의 의식 속에는 하나님보다도 사람들이 더 있었습니다.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이 희귀해진 사실 앞에 갈증하지 않고 주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그는 자기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그때에 그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다”(벧전4:9)고 말하고 있는데, 제사장된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주의 말씀이 주의 음성이 우리에게서 희귀해 질 때에 여러분은 그 사실로 인하여 답답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님을 갈망하고 외쳐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주님의 찾기 위하여 간절히 매달려 보신 적이 언제입니까? 이미 우리가 세상에 젖어 들어서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해도 아무런 하나님의 징계가 없으니까 이거 아직 괜찮은가 보다! 하면서 태평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이미 주의 음성을 들어 보신 적이 하도 오래되어서 그 음성이 우리에게 분별도 안 되는 이런 영적 감각이 무디어져 버린 상태는 아닙니까?
성전을 여러분은 얼마나 찾아오십니까! 여러분은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제가 교회 홈페이지에 설교동영상을 올리고 원고까지 올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말만 들을 것이 아니라 글로도 보면서 한번이라도 더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빠서 교회에 나오지 못할 때에는 이곳을 통해서라도 말씀의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인테넷을 열면 주옥같은 말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동경제일교회성도 되었으면 한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같은 영성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자리에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는 그 소리를 우리도 들어야 합니다. 소년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에 분명히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다들 잠자고 있는 그 밤이었습니다. 분명 사무엘도 어린 소년이었으므로 잠이 많을 때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가 말씀에 자리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불행히 그도 역시 말씀이 희귀해진 시대의 한 인물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경험이 없는지라 그것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줄 모르고 그는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소리로 알고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시대를 만들면 안됩니다. 분명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바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 부모들이 늘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찬송하며,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 기도의 응답 받는 일들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 때에 그 아이들도 하나님과의 직접적이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경험을 해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울어본 사람은 말씀의 은혜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면서 마음이 뜨겁고, 1시간을 기도해도 10분을 한 것 같은  기억이 있는 분은 기도의 은혜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고 또 드려도 무엇인가 못다한 것 같은 사람은 헌신의 은혜를 받아본 사람입니다. 불쌍한 사람만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서 남몰래 그를 도와준 기억이 있는 분은 구제와 섬김의 은혜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좋고, 목사님이 좋고, 성도들만 봐도 기분이 좋고, 뭔가 대접하고 싶은 경험이 있는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경험을 해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왔을 때 그것을 정죄하고, 절제해야한다고 하고, 하나님이 귀가 먹었냐고 하면서 오히려 정죄하게 됩니다. 
오늘 사무엘에게 처음으로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나 평소에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이야기도 엘리 제사장에게 들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는 그 소리를 사람의 소리로 듣고 엘리 제사장에게로 뛰어갔습니다. 엘리는 한밤중에 뛰어온 사무엘을 헛소리를 들은 것처럼 해서 다시 돌려보냅니다. 주님의 음성이 또 다시 들립니다. 또 다시 달려갑니다. 엘리의 영적 감각은 아직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또 다시 돌려보냅니다. 주님의 음성이 또 다시 들립니다. 엘리에게 또 다시 쫓아갑니다. 그때서야  엘리 제사장이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인줄로 깨닫고는 말씀을 듣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8절에 보면 "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로 깨닫고" 라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엘리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도 오랜세월을 은혜하고 담을 싸고 살았기에 영적 감각이 죽어 있었던 것을 봅니다.
여러분 은혜받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분이 있습니까! 빨리 영적 감각을 다시 살리시길 바랍니다. 다시 기도의 생활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세미한 중에도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영적 감각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절대로 기도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경건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배시간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경건의 연습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사무엘처럼 겸손하게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주님이 내게 하시는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 귀에 듣기 좋은 것만 가려서 듣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셔도 내가 듣겠나이다"라는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음성을 듣기 위해서 오늘 사무엘이 있었던 곳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의 궤 있는 성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세상 속에 아직도 파묻혀서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이 여러분 안에 언제 들렸었습니까?  여러분이 은혜 받고 주님의 음성 듣고,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예수님만 생각해도 그렇게 기분이 좋고, 교회에 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고, 하루종일 교회에 있어도 피곤할 줄 모르고 교회에서 성도들과 사랑의 교제를 기쁨으로 나누고, 주님을 위해서 땀을 흘려가면서 봉사하고, 늘 겸손한마음으로 형제를 섬기고, 성가대에서 찬양으로 봉사하면서 감격해하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이고, 이라는 당연한 신앙고백으로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드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십에 2조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간구 했던 기억이 있습니까! 혹 기억이 가물가물해지지는 않았습니까?
혹시 여러분 안에 이미 형식만 남아있는 신앙생활, 어쩔 수 없이 사람얼굴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십일조드리는것도 아까워지고 그래서 수입의 십일조냐!, 생활비의 십일조냐!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아에 그것 마져도 안하는 그런 모습은 아닙니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하는 봉사 때문에 교회 오는 것이 피곤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도 불행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진 시대 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깨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다시 은혜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다시 기쁨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다시 찬송의 자리, 감사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의 기도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음성이 오랜 세월을 깨고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를 부르시는 그 음성이, 나를 찾으시는 그 은혜의 음성이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은혜의 자리로, 말씀의 자리로 다시 들어갑시다. 우리의 잃어버린 영적 감각을 다시 되살리십시다. 그래서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그 영적 축복의 자리에 다시 들어갑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랑하는 우리 동경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임해서 주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