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내 인생의 장애물 수6:8-11

장경태 2010. 7. 31. 16:15

내 인생의 장애물!                  여호수아6:8-11              08.9.28

95세가 되신 어느 할아버지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쓴 수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10년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 날 95살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이분에게 있어서의 인생의 장애물은 무엇이었을까요! 성취감입니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하는 성취감이 30년의 그 이후의 삶을 후회하는 삶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지만, 그 인생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장애물을 만날 때 어떻게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서 장애물이 오히려 성공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도 꿈에 그리고 그리던 가나안땅에 이제 들어가서 정복전쟁을 치루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정복전쟁의 첫 길목에서부터 엄청난 장애물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리고성 이었습니다. 이 여리고성은 가나안에서 가장 견고한 성읍으로 이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지만 이제는 적지에 들어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광야였기 때문에 전쟁을 해도 대등한 관계 속에서 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사정이 다른 것입니다. 적지에서 하는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섯불리 했다가는 큰일을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나안정복에 있어서의 최고의 걸림돌, 장애물이었던 그 여리고를 그들은 어떻게 무너뜨리고 정복을 했습니까!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어떤 꿈의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데, 마치 여리고와 같은 엄청난 장애물이 놓여져 있다면 우리는 그 장애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오늘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믿음으로 무너졌다.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은 순전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복전쟁을 치루면서 철저하게 가르쳐준 믿음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전쟁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전쟁도 하나님께서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여리고성을 정복할 방법을 알려줍니다. 3-5절에 보면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라고 합니다.
여리고성은 견고한 성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온다는 소문을 듣고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놓은 성입니다. 그런데 전쟁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방법은 무슨 특공대를 조직해서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무기를 만들 것을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냥 성을 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입니다.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여러분은 “아멘” 하고 금방 그렇게 따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을 통해서 모든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혹 “아멘”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고개를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냥 돌라고 하십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하루에 한 바뀌씩 아무 말 말고 돌라고만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때로는 이런 것입니다.
내가 기대 하는 것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목사님 교회에 한 성도가 있는데, 그만 말기 암에 걸렸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목사님이 심방을 갖습니다. 제대로 안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귀챤고, 누가 문병이라도 오면 그냥 빨리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방을 간 목사님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 성경공부를 하자고 했습니다. 힘이 들어서 죽겠는 환자를 보고 성경공부하자고 합니다. 빨리 기도만 해주고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목사님이 몇 시간을 공부를 하자니 환장하겠습니다. 지금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서 성경을 공부하면 뭐 하는가 라는 생각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목사가 하자니까 억지로라도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공부하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아픔을 느끼지 못 하겠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책 한권을 거의 끝이 났을 때 이상하게 자기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말했더니 한번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는데, 온몸에 퍼져있던 암덩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물질이 어려운 사람에게 십일조를 정직하게 바치라고 합니다. 누구를 돕는데 구제를 하라고 합니다. 열왕기상17장에 보면 엘리야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르밧 과부가 이제 먹을 것이 없어서 마지막 떡반죽으로 아들하고  그것 먹고 이제 죽으려고 하는데, 엘리야는 염치도 없이 그 떡 반죽으로 떡을 만들어서 자기먼저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것을 아들 주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과부가 말씀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일이 생겨 났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실 때에 우리 생각과 같지 않는 엉뚱한 것을 말씀하시고 요구하실 때도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는 철저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상식도 버리기 위함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상식 속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사야55장8,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 하십니다.  믿음은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 같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서로 충돌 될 때는 언제든지 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2. 순종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그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 때, 건성 건성으로 돌지 않았습니다.  성을 돌 때 무장한 군인들이 맨앞에 서고 제사장이 나팔을 불고 앞서가고 그 다음에 언약궤를 들고 돌라고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함께 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면서 10절에 보면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라고 합니다.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돌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순종하는 자의 모습니다. 아무소리도 못 내게 합니다. 원망과 불평의 소리들, 이런, 저런, 소곤거리는 소리도 못 내게 합니다. 오로지 한가지 마음으로만 돌게 합니다. 그렇게 폼을 가지고 돌지만 한바퀴 돌고 나면 그것이 다입니다. 그 다음날도 똑같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엿새 동안 합니다. 첫날은 심오한 각오를 하고 돌 수 있지만, 계속적으로 의미 없는 것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열왕기하5장에 나오는 나아만장군의 이야기를 압니다. 그가 당시 강대국 아람군의 장군으로서 문둥병에 걸립니다. 마침 집에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가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라는 말에,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엘리사에게로 갑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이럴 것이면 차라리 다메섹강이 더 깨끗하다! 한번 들어가도, 두 번들어가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에 얼마나 불평과 그리고 엘리사에 대한 분노도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종들이 그래도 한번 해보자! 이보다 더한 일을 시켰어도 해야할 판인데, 이 정도 순종 못하겠는가! 하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끝까지 믿고 마지막 일곱 번까지 순종했을 때 놀랍게도 그의 몸이 어린아이들 피부처럼 깨끗하게 낳았던 기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미 없는 행동 같지만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 원망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원망이 나올 때가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다 보면 있습니다. 어떤 때보면 맨날 나만 일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은혜롭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대충, 대충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불평을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한일들이 사람들이 몰라줄 때도 있습니다. 일에는 표가 나는 일이 있고 표가 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주부들이 받는 스트레스중에 하나가 아무리 쓸고 딱아도 표가 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무슨 일을 하면 표가 나는데, 주부의 일은 표가 안나서 남편들에게 한소리 들으면 신경질나고, 하고싶은 생각이 안날때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한바퀴 돌았을때랑, 두바뀌 돌았을때랑, 뭐 변한 것이 있어야 계속 돌맛이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금이 조금씩 가기 시작했다거나, 어디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거나 하는 표가 나야지 계속해서 돌 수 있는데, 오늘도, 내일도 아무리 돌아도 변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 지기도하고, 나중에는 대충대충 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일수록 더욱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성을 한바퀴 돌고 난 다음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것 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오늘도 순종했다는 사실로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표나는 일은 안했어도 내가 오늘도 주님의 일을 성실하게 했다 라는 생각으로 만족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하고 약속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잘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약속시간을 늦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바로 그 사람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약속시간보다 늘 조금 먼저 가는 편인데, 아내가 말합니다. 오늘도 늦을 것인데, 당신도 늦게 나가요! 왜 맨날 나가서 혼자서 기다리고 있냐! 고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약속시간을 안 지킨 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고, 나는 약속시간을 지켰다고 하는 그 생각만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그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상대방이 늦게 와도 그 사람을 향해서 원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일이 있을 때 늘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성실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성을 매일 돌고 있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기억한다면 오늘도 성실하게 성을 한 바퀴 돌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3. 함성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이 어떻게 무너졌는가 하면 제 칠일째는 성을 일곱 번 돌게 하시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일제히 크게 함성을 지를 때 성이 무너졌습니다. 20절에 보면 “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함성을 지르게 할 날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아무 일없이 돌게만 하지 않았습니다. 함성을 지르게 하셨습니다. 이 함성은 믿음의 함성입니다. 순종의 함성입니다. 그리고 승리의 함성입니다. 제사장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힘차게 질러대는 이 함성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창조 과학회에서 이 여리고 성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당시 이성은 이중벽으로 되어 있는데 외벽과 내벽이 있고 그 사이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는데, 아마도 라합이 이곳에 살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외벽은 기초벽이 5m 그위에 8m 그리고 두께가 2m 정도가 되고 내벽은 지상으로부터 14m 의 높이에 두께가 4m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성이 밖에서 안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곳이 있는데, 그곳이 라합의 집이 있었던 곳이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밖에서 성을 공격해서 무너트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에서 밖으로 무너 뜨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큰 지진 같은 것이 와서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담대하게 외쳐된 그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키고, 결국은 그 엄청난 여리고가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견고하게 지어놓아도, 하나님이 무너트리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꾸만 성을 쌓으려고 합니다. 더 높이 더 넓게 쌓아서 아무도 그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 정도 하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겠지 하면서 성을 쌓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으로 여리고성을 쌓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로 여리고를 만듭니다. 권력이 있으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들은 든든한 기반위 에다가 나름대로 쌓았다고 하는데, 하나님보시기에는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안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성을 무너트리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순종의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의 확신에 찬 함성소리를 통해서 무너트리십니다. 이 여리고가 무너져야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혹시 이런 여리고는 없습니까! 이 여리고를 무너트려야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복을 주시는 영적 가나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들어오기 전에도 여전히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축복의 땅이 되어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땅에 되어야 그땅은 그제서야 진정한 축복의 땅 가나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팔소리와 함께 함성을 질러야 합니다. 믿음의 함성, 승리의 함성을 질러야 합니다. 그래야 철옹성같은 성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그동안 무너지지 않고 있었던 헛된 자만심, 자존심, 허영심, 교만, 그리고 못된 버릇들, 습관들, 이런 것들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함성은 기도입니다.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함성은 믿음입니다. 이 지르는 소리는 성을 무너트린다는 놀라운 믿음의 표출입니다.
우리는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 때나가 아닙니다. 이 함성을 지르기 위해서 그들은 육일간의 침묵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그는 삼년동안 아라비아광야에서 침묵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삼년만에 복음의 함성을 지르기 시작할 때 그 견고했던 이방 땅에 우상들이 무너지고 복음이 확산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적인 가나안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 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성을 지르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침묵하면서 참고, 견디고,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때는 단조로운 일의 반복입니다. 다람쥐 채박이 돌 듯이 돌고, 도는 생활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오늘도 성을 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성을 지르라고 하시는 날까지 돌아야 합니다. 철저히 침묵하면서 하나님만 묵상하면서 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은데, 여러분의 가나안을 방해하는 견고한 성은 무엇입니까! 장애물이 있다고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더욱 정복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손에 붙였으니”(2) 라고 확신을 주십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어떤 방법이든 하나님만을 순종하게 합니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서 함성을 지르게 하실 때 여리고는 철저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것처럼. 여러분의 꿈을 방해하는 견고한 성 여리고를 믿음의 함성으로 무너트리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성을 돌 때도 함성을 지를 때도, 언약궤가 중심이었고 제사장의 나팔이 우선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일보다도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에 견고했던 성읍은 무너지고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가나안이 여러분위에 가정위에 사업장위에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