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감사의 이유 시1071-9

장경태 2010. 7. 31. 16:19

감사의 이유           시편107:1-9                추수감사주일   08.11.16
 
어느 해, 독일에서는 무서운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그런데 한 마을에 착한 부자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매일 아침 동네의 어린이들을 불러 빵 1개씩을 나눠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할아버지가 매우 고마웠습니다. 아침마다 어린이들은 할아버지의 빵 바구니를 기다렸고, 어린이들은 빵 바구니를 보자 벌떼처럼 달려들어 빵 1개씩을 갖고 갔습니다. 힘센 아이가 먼저 가장 큰 빵을 집어갔고, 다음 힘이 센 아이가 그 다음 것을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린첸이라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다 집어간 후, 맨 나중에 제일 작은 빵을 집고는 할아버지에게 가서 “할아버지 !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집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린 후 나누어 먹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아침이 되자 아이들이 나와 빵 1개씩을 갖고 갔습니다. 그린첸 소년은 여전히 할아버지에게 가서 맨 나중의 가장 작은 빵을 갖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하고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와 빵을 나누는데, 먹다보니 그 빵 안에서 은전 한 닢이 나왔습니다. 소년은 얼른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그 은전을 돌려주었는데,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아이에게 주려고 빵 속에 넣은 것이니 그 돈은 네 것이다”라고 하며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 추수감사 예배 속에서는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식물만을 위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 전체 속에 부어주시는 많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 감사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아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선하심에 감사.
오늘 본문 1절에 보면"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고 난 다음에 그 벅찬 은혜에 감사하면서 쓴 감사의 고백입니다.  그 감사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이 주님은 선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선함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면 2,3절에 보면"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지 70년 만에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지난 70년의 설음의 시절은 어디로 가고 다시 돌아오게 하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만이 남았습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던 그 고향입니다. 다시는 밣지 못할 줄 알았던 그 고향입니다. 돌아와 보니 주님은 선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요한복음16:21절에 보면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고 하는 것처럼 고통의 과정은 너무 너무 힘을 들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를 안고 있으면 또 낳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하심으로 그들은 고향에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과거의 그 고통은 다 잊어버리고 선하신 하나님만이 남았던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물론 그 기원은 감사절을 지키라는 성경에 있지만, 근대적 기원은 1620년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칸 대륙에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들이 그 해 47명이나 목숨을 잃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 해 첫 농사를 지어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것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그들이 금식을 했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갖은 고생을 다한 끝에 아메리칸대륙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 이상이 굶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아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논하는 자리에서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생각을 달리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는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낫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널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감사와 기쁨을 나누는 기념일을 정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아무리 어려움이 있고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여러분을 놓지 않으셨고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셨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품에 앉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은 그 주님의 선하신 부분을 보지 않고, 고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온 것을 생각지 않고 포로로 끌려가고 그곳에서의 생활만 생각했다면, 불만이었을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칸 대륙에 도착하여 인디언들의 보호 속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영국에서 떠나던 그 서러움의 시간과 먼 뱃길에서의 여행과, 그 중에 만난 파도와의 싸움만 생각했다면 불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본에 와서 생활 때문에 말도 안통하고, 감정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받은 서러움만 생각한다면 불평 불만뿐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그 바쁜 일들 속에서도 오늘 내가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주신 그 주님 앞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절대로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2. 인자하심에 감사.
또한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그분의 그 인자하심에 감사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자하십니다. 그 분의 인자하심은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4절부터 보면"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길로 인도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 할찌로다"(4-8) 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갈 때의 모습이 그들의 범죄 함으로 인한 결과이지만 하나님은 인자하셔서 그들의 고통 속에 간구 하는 그 부르짖음으로 들으시고 건져주셨습니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고, 좋은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출2:23"여러 해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그래서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사사기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에 죄악으로 인하여 이방인들에게 고통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이 있을 때마다 사사들을 보내주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것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인류의 고통 하는 부르짖음이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짖을 때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청교도들이 66일간의 바다여행에 그들은 지쳤었고, 질병과 죽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메리칸 대륙에 도착했을 때 이번에는 인디언들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 인디언들에게 옥수수씨앗을 주게 하여서 그들이 농사 지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그 인자하심이 오늘도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임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할지라도 인자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 인자하심 속에서 우리의 삶이 안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안식하는 것입니다. 
 
3. 채워 주심의 감사.
본문 9절에 보면"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합니다. 채워주심의 은혜에 대한 감사.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의 배고픔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영혼의 배고픔을 채워주십니다.
여러분 사실 요즘에는 우리주변에서는 잘먹지 못해서 그렇지 먹을 것이 없는 육신의 배고픔 때문에 고통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을 세계적인 수치로 본다면 빈부의 격차가 심해서 먹는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이 많지만, 적어도 우리주변을 보면 먹는 것으로 인한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이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앞에 놓인 이 많은 과실들과 야채들이 우리의 육신의 배고픔을 다 채워 주셨습니다.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배고픔이 있는데 그것은 영혼의 배고픔이라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8:11 "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 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라고 합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배고픔이 있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번씩 우에노 공원에서 있는 노숙자집회에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메시지를 전하다 보면 한가지 느끼는 것이 있는데, 말씀을 듣는 그들의 태도입니다. 그 속에는 얼마나 진지함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밥 한끼를 위해서 앉아 있을까! 를 생각해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우리가 밥을 나누어주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나누는 급식으로 한 주간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오후2시부터 있는 집회에 10시,11시부터 줄을 서서 앉기 시작하고 그리고 장시간을 그 자리에서 앉아서 있는데, 메시지의 시간에 보면 그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봅니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어서 기갈이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그 말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소망의 말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구원의 소식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 영혼의 기갈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매주일 여러분들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찾아오시는 이 시간이 주님이 여러분의 영적인 기갈을 갈증을 채워 주시는 시간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교회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정말 목사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잘사십시오, 돈버십시오, 부자 되십시오, 건강하십시오. 사업이 번성하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까? 이런 말들은 처음에 들을 때는 좋지만 그러나 이런 말들은 교회에서 안 들어도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듣고 싶은 이야기는 예수님 이야기 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괴롭고 힘들어도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 회개하라는 말씀, 서로 섬기라는 말씀, 낮아지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의 영혼이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평안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안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역시 하나님의 자녀 맞다, 는 확신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인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의 기갈을 채워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을 위해서 베풀어주신 올 일년동안의 모든 양식에 감사하면서, 또한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 잊고 있었던 감사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그 선하심에 감사했고, 인자하심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채워주심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그것은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채워주심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순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두번 주다가 그만두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채워주심이 영~원 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유일한 것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인 감사절기를 맞이한 우리의 회복해야할 거룩한 믿음인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