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엎드러 질지라도 미7:7-13
내가 엎드러질지라도 미가서 7:7-13 08.11.23
운전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나치게 직선으로만 설계된 도로는 운전자들의 방심을 초래하기 쉽다고 합니다. 가장 과학적인 도로는 어떤 도로일까요? 언뜻 생각하면 출발지점에서 종착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해서 두 지점을 가장 짧은 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만큼 시간도 절약되고 에너지도 절약된다는 점을 감안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로는 3분에서 5분 간격으로 한 번씩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도로가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고속도로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로로 손꼽히는 프랑스 남부의 고속도로는 프랑스 교통의 중심지인 뚤루즈에서 유명한 해변 휴양지인 니스를 연결하는 중간 부분인데, 이 도로는 평균 4분마다 한번씩 곡선로가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너무 평탄하기보다는 가끔씩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을 정도의 굴곡은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날마다 형통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날마다 형통하면 우리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은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고난의 잔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잔이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처럼 고난이 많은 나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고난을 받을수록 약해져 간 것이 아니라 강해져 갔습니다.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도 무시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세계경제는 유대인들의 손에서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조국 역시 많은 고난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고난이 나라를 약하고 힘없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금융위기로 인해서 어느 나라도 편안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통해서 전 세계의 금융시스템들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날마다 형통이 아니라 적당한 굴곡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고난 가운데서 구원을 받고, 그 고난을 이기게 하는 비결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고통의 고난 가운데서 미가 선지자는 그 고난을 이기게 되었고, 아울러 축복까지 받게 되었는데, 그는 어떻게 그 고난을 대처했고, 그 결과 어떤 승리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까? 한마디로 그것을 오늘 본문 7절에서 잘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그러면 이처럼 자신에게 몰아닥친 고난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바라본 미가 선지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무엇이었습니까? 또한 오늘날,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변함 없이 주실 그 하나님의 은총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엎드러질지라도 다시 일어나게 해주십니다.(8절상)
오늘 본문 8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라고 합니다.
나는 일어날 것이다. 나를 멸시하고, 나를 핍박하는, 나의 대적들아, 내가 비록 지금은 엎드러져 외형적으로 회복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자주 넘어지고, 자주 엎드러집니까? 베드로 전서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우리가 넘어질 때는 괜히 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괜히 멀쩡하게 잘 걸어가다가 넘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앞에 돌이 놓여져 있으면 피해서 가야 되는데, 정신을 놓고 걸어가다가 걸려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딴 생각하고 걸어 가다보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넘어질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유는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걸어가면 관찮을 것인데, 피할 것은 피하고, 건널 것은 건너가면서 걸어가면 되는데, 정신을 다른 곳에 두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세상에다 정신을 두고, 물질에다 정신을 두고, 걸어가다 보니까 죄를 피하지 못해서 넘어집니다. 유혹을 피하지 못해서 넘어집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우리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요소, 요소에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얼마나 많이 그들은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죄악과 우상들이 그들에게 늘 접근해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죄와 싸워서 이겨야 되는데, 이기질 못합니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만나면 싸우시실 바랍니다.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알면서도 넘어지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알면서도 쓰러지고, 알면서도 속아넘어가고, 알면서도 당할 때 우리는 더욱 억울한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제일 억울한 일은 알고도 틀린 문제가 제일 억울한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유혹이고, 죄 인줄 알면서 넘어지고, 당할 때 우리는 억울하고, 어디에 변명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연약함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알고도 넘어지는 그 나약함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도 넘어졌다 할지라도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바라는 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시편37:24절에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하나님 손잡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뜨린 마귀야! 사단아 좋아하지 말아라! 나는 다시 일어난다. 4전5기. 7전8기로 우리는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넘어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손잡아서 일으켜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 주간 동안 세상을 살면서 넘어지신 분들이 있습니까? 세상으로 인해서, 물질로 인해서, 죄악과 유혹 속에 넘어지신 분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주일 예배도 지키지 못하신 분들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다시 예배에 나왔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다시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다시 세상을 향해서 재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죄와 유혹을 향해서 재도전 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에는 이길 것입니다.
2.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빛을 주십니다.(8절하)
오늘 본문 8절후반절에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성경에서 어두운 곳을 말할 때는, 악인들이 행하는 길을 말합니다. 마귀나 악한 영들의 거처를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뜻하기도 하고. 죽음의 그늘진 곳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둡고 캄캄한 멸망한 곳에 내가 떨어져 앉아 있다해도, 그곳에서 내가 하나님을 바라면, 하나님께서 나의 빛이 되어 주심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외로운 삼남매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가정을 사랑했었고, 그 집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했었습니다. 그 집은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 이렇게 삼남매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받으면서 살았던 가정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만 나사로가 갑자기 죽고 맙니다. 나사로가 앓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보내서 예수님을 빨리 모셔 오라고 했지만, 예수님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 뒤였고, 이미 무덤 속에 넣은지 나흘이나 지난 때였습니다. 나흘이면 이미 시체가 썩기 시작했기 때문에 전혀 소생이 불가능할 때입니다. 썩어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 나라는 더운 곳이어서 그 날로 장례식을 거행합니다. 지금처럼 냉동실도 영안실도 없었던 때라 그 날로 장례를 치루지 않으면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무덤을 열라고 하셨고, 그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 라고 명하셨습니다. 무덤 깊은 곳에서 어두움 깊은 곳에서 있던 나사로가 그 무덤에서 걸어나왔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주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죽은 자를 살리시고, 어둠을 물리치시는 주님의 능력인줄로 믿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어둠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절망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는 다시 희망의 자리로, 소망의 자리로, 기쁨의 자리로, 감사와 찬양의 자리로 옮겨 앉은 줄로 믿습니다.
A.J.고든 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 나는 어두움을 쓸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빛을 비추어서 어두움을 내보낼 수는 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두움이 몰려올 때에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 놓여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두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빛을 비추기 시작하면 어두움은 물러가는 줄로 믿습니다. 빛을 이길 수 있는 어두움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도 이런 자리에 앉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런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은 나의 빛이 되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을 지은 존 뉴턴은 위대한 주의 종이요, 찬송가 작가였습니다. 그는 11살에 아버지가 선장인 배에서 선원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배는 당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가 미국의 노예 상인에게 팔아 넘기는 노예선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자신이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서 수많은 아프리카인을 잡아서 노예로 파는 인간백정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탄 배가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가고 있을 때 마침 큰 폭풍우를 만나서 침몰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그는 ‘나의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 매일 어머니가 나에게 전도하던 예수님! 나를 만일 이 폭풍우에서 살려 주신다면 나는 나의 옛 생활을 청산하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거대한 폭풍우가 다가올 때 비로소 그는 죄악의 껍질을 벗고 깨달아서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고 그 폭풍우가 일어난 선상에서 그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흑암에서 광명으로 옮겨지는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29세에 거듭난 이 날을 영적 출생일로 불렀으며 이후에 노예 제도를 강력히 반대하였고 33세 되던 해에 영국의 성공회 사제로 안수 받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평생에 아프리카 노예를 생각하며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그가 지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아프리카인들이 배에서 고통 당하는 신음 소리를 듣고 지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나의 기억력은 이제 희미해지나 나는 두 가지 사실만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첫째, 나는 크나큰 죄인이며, 다음은 그리스도는 크신 구세주라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어두움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광명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오늘 똑같은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미 임한 줄로 믿습니다.
3. 지경을 넓혀주십니다.(11절)
오늘 본문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계십니다.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지경이 넓혀진다는 것은 축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업이 쭉쭉 뻗어나간다는 말입니다. 영토가 확장되어간다는 말입니다. 시간이 길게 연장된다는 말입니다. 경계선이 쭉쭉 늘어난다는 말입니다.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 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사54:2-3)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일으켜 세워주고, 빛을 비춰 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경까지 넓혀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지경이 넓혀지는 역사는 언제 일어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언제입니까?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 속에서 70여년 만에 돌아왔지만, 커다란 숙제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벽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황폐해지고, 무너져 버린 성벽을 건축하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벽이 건축되어지는 날에 지경을 넓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다시는 넘어지지 않고, 어두움에 갇히지도 않습니다.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둘려 진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잘되시길 원하십니까? 먼저 성벽을 든든히 해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먼저 우리의 신앙의 벽을 든든히 세우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벽을 든든히 세우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사단이 다시 공격해 오지 못합니다. 그래야 유혹이 다시 공격해 오지 못합니다. 그래야 죄가 다시 공격해 오지 못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벽을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든든히 세우는 길입니까!
첫째, 주일성수입니다. 주일성수만큼 우리의 신앙의 벽을 든든히 하는 것도 없습니다. 주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킨다는 각오를 하시길 바랍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고는 우리의 신앙의 벽을 든든히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를 지키시길 바랍니다. 오전에 못나왔으면 오후라도 나오세요.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헌금생활입니다. 헌금생활은 신앙의 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십일조는 나의 모든 수익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감사생활을 반드시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나의 삶이 풍부해집니다. 모든 일에 감사가 넘치고, 여러분의 삶을 풍부하게 체워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주일성수와 헌금생활은 우리의 신앙의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벽을 든든하게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의 지경을 튼튼하게 넓혀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힘으로 무엇인가 해보려고 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시고, 그리고 그 일의 형통을 통해서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증을 서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넘어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실패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넘어지고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삶에 이런 일들이 생겨나도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수 있는 분이 늘 우리의 옆에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손 내밀면 언제든지 손잡아 주시는 분이 내 옆에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혹 인생을 살다가 생길 수 있는 황당한 일 중에서도, 넘어지고,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금방 그 일을 떨쳐 버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토크쇼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 라는 여성은 흑인이고, 사생아였고, 가난했고, 뚱뚱했고, 그리고 미혼모였습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녀는 말하기를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불행을 떨쳐버리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조금만 어렵고 힘이 들어도, 조금만 넘어져도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이 좌절하는데, 이제는 그런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빛을 주시고, 지경을 넓혀주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없었던 여러분 인생에 새로운 역사들이 펼쳐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