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주께로 향하는 교회 애5:21

장경태 2010. 7. 31. 16:25

주께로 향하는 교회         예레미야애가5:21             09.1.4  신년예배

금년도 목회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계속적으로 제 마음속에 생각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회복”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회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서 계속 기도합니다. 무엇을 회복하라는 것입니까! 이 질문을 놓고 지난 한달을 강단에서 기도하면서 묵상을 했습니다.
그때 떠올랐던 생각들입니다. 우리 동경제일교회를 목회하면서 우리교회의 이야기를 이곳 저곳에서 들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소속되어있는 재일대한기독교회는 일본에서 고통스러운 역사를 안고 있는 재일교포들의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교단으로서 그 사명을 지금까지 100여년간 해왔습니다.  우리교회가 설립되어지던 1960년대에는 아직 교단 내에서 뉴커머들의 교회는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에 교단의 뉴커머 1호 교회로 등장한 것이 바로 우리교회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3년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대사관의 직원들과 수많은 주재원들과 유학생들이 모여들었던 교회입니다. 많이 모일 때는 200여명이 넘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숫자가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비록 그때는 교회당이 없어서 이곳, 저곳으로 일본교회를 빌려서 예배드렸던 시절이었지만 동경제일교회는 뉴커머교회로서의 주님의 크신 축복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런 영광스러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교회가 40년을 흘러왔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우리를 지켜주셨고, 오늘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올해로 우리교회는 43년을 맞이합니다.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교회에 과거의 그 영광을 다시 한번 허락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역시 하나님 앞에 동일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방회 일로 여기저기 교회를 방문할 일들이 있는데, 그 교회 몇분이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우리교회에서 유학생으로 있었다는 이야기, 지금은 어느 대학의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 우리교회를 거쳐간 많은 유학생들이 지금은 대학의 강단에서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있는 이런 모습들을 봅니다. 어느날은 인테넷에서 한국의 한 대학교수가 한 선교단체의 1억원을 기증하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분이 과거에 동경제일교회의 성도였었다는 이야기를 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통해서 하셨던 일들, 이런 것을 보면서 분명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할 부흥의 이야기로 제 마음속에 새겨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찬란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다윗왕국의 시대에 이루었던 강대국의 모습과 솔로몬시대의 부귀영화의 시대, 모든 사람들이 흠모했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받아서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포로 되어져 가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선지자들을 보내주시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을 위해서 울면서 기도하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울면서 기도했는지 그를 가르쳐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울면서 쓴 책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애가 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런 눈물의 기도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들이 우리교회에 필요합니다.
교회가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실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는 기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안에 이런 기도자가 많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를 움직이시고 계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가정에 복을 내리시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기업에 복을 내리시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에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그러면서 예례미야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이 있는데 오늘 본문입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며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예레미야애가5:21)
우리를 주께로 돌이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돌이키는 주체가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이루시는 주체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만이 백성들을 주님께로 돌이킬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돌이키시게 하면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주께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가면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해주시고 옛적과 같은 영광의 날을 다시 허락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면 주님은 모든 것을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날을 회복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든지 만나면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삽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보면 그 사람의 얼굴이 빛이 나는 것을 봅니다.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면 다시 영광스러운 날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 여러분의 그 좋은 시절을 다시 한번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께 돌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2009년도의 동경제일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로서 목회의 방향을 회복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주께로 향하는 교회” 라는 표어를 정했습니다. 

1. 주께로 향하는 믿음
먼저는 믿음이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보면 저마다 방향이 다른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의 방향이 주님께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언제든지 그것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극히 이기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 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수단에 불과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지식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것을 벗어난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놓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저는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행하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정말로 잘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설명하라고 하면 정말로 잘하는데, 그대로 자신이 믿고 있느냐! 그대로 자신이 행하고 있느냐! 를 물어보면 머뭇거리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9장 에 보면 어느 청년이 하루는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그리고는 물어봅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 청년은 말하기를 그 계명들은 어릴 때부터 다 지켜왔다고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쫒으라” 하십니다. 그때 청년의 반응입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그 청년은 계명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잘 지켜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영생을 알고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니까! 근심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돈 이야기가 나오니까 고민이 되다가 예수님을 떠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믿음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십일조의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반발을 합니다. 아직 믿음이 없어서 드리지 못합니다, 이런 솔직한 고백이 아니라 돈 이야기를 한다고 반발합니다. 그것으로 믿음을 잰다고 합니다.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음이 별로 없는 것 같이 보이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하나님의 것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혹시 내 믿음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양을 위해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방향은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내 경험을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어떤 일이 와도 실망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는 것은 주님을 향한 믿음 때문입니까 아니면 주님말고 믿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믿음의 방향이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러면 죽은자를 살리시는 역사를 믿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주님께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 했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받칠 수 있었습니다.  한나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렵게 낳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릴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되돌려 주었고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한나에게는 사무엘 이후로 3남2녀를 더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께로 향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으로 돌려주십니다.

2. 주께로 향하는 소망
다음은 소망입니다. 요한 일서 3:1-3에 보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고 합니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시카고 대학에서 신학특강을 하고 난 후에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쓰신 책을 많이 읽었는데 정말 모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평생 동안 신학을 연구하시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칼 바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불러 온 찬송 한 구절을 외워주었다고 합니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칼 바르트는 질문한 학생에게 이 가사를 들려준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핵심이고 중심이네. 그리고 또 나의 신앙 고백이라네” 대 신학자가 평생을 걸려 연구한 결론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의 소망은 오로지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원한 소망을 예수님께 두고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명예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학식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거나 시험들지 않습니다. 오로지 예수님만 있으면 됩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소망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소망을 두지 않는 사람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이 조금만 내려가도 불안해서 견딜 수 없고, 자녀들의 성적이 내려가면 안절부절입니다. 건강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무슨 큰 병이 걸린 것 아닌가 불안해합니다.
“샤르니”라는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 황제에게 밉게 보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친구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 면회를 오던 가족들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그는 돌 조각으로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바닥에 깔려 있던 돌 틈에서 푸른 싹 하나가 고개를 들고 나왔습니다. 샤르니는 간수가 매일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서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곤 했습니다. 그 싹은 마침내 꽃 봉오리가 생기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썼던 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소망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옆방에 면회왔던 죄수의 딸이 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감옥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소문은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조세핀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여왕은 말했습니다.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이는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황제에게 건의했습니다. 그래서 샤르니는 석방되었습니다. 소망은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갖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소망을 어디에 두겠습니까! 늘 변하고 움직이는 세상입니까! 아니면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소망은 주님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희망을 주는 소망을 간직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3. 주께로 향하는 사랑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습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물도 피도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졌다 해도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강제적으로 내가 너희에게 그렇게 했으니까 너희도 나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임스 미케너의 실화소설인 “알라스카” 의 내용을 보면 어머니는 딸이 세상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규율이 엄한 어느 대학에 진학을 시킵니다. 착한 딸은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는 마음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됩니다. 어머니는 주말이면 200마일이 넘는 거리를 자동차를 몰고 달려가서 딸을 집에 데리고 옵니다. 어머니는 스물두살인 딸이 아직도 미덥지가 않습니다. “혹시 올코올이나 마약에 빠지진 않았을까! 나쁜 친구를 사귀지는 않을까! 교회에는 잘 출석하고 있을까” 어머니의 사랑의 근심은 하루도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딸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딸은 어머니의 간섭과 구속에 거의 정신이 돌 지경이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어머니를 떠나 알라스카로 도망쳐 완전히 독립을 합니다. 어머니는 사랑을 주었는데 딸은 왜 그것을 못견뎌 하는 것일까요! 사랑은 간섭과 감독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믿어주는 것이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아이가 판단을 잘 못하고 사리분별이 없기 때문에 자상하게 가르쳐도 주고, 잘못하는 때로는 야단을 치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믿어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을 해도 그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 그리고 자녀의 잘못을 모두가 다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자기 아이가 잘못을 했어도 우리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것이지 우리 아이의 마음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여리다고 말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아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에서 이제는 사랑의 철이 들어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2009년도에는 여러분의 삶의 방향이 주님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는가에 따라서 여러분의 모습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올 한해를 다 살고 난 다음에 여러분의 모습이 주님과 더욱더 가까워져 있는 그런 모습으로 올 한해를 사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방향을 소망의 방향을 사랑의 방향을 주님께로 돌리십시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의 생애에 가장 놀라운 복을 내려주시는 그 은총으로 금년한해를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