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복있는 사람 시1:1-6

장경태 2010. 7. 31. 16:27

복있는 사람           시편1:1-6                09.1.25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또 한번 하게 됩니다. 내일이 한국에서의 설날입니다.
한국의 새해인사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덕담은 언제, 누구에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사람처럼 복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나면 “살롬”이라는 인사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가장 필요한 것이 샬롬 즉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샬롬했던 시절은 이스라엘역사상 거의 없었습니다. 있다해도 잠깐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사람들이 서로들 만나면 하는 “샬롬” 이라는 인사는 이스라엘에게야말로 샬롬이 가장 필요한 민족이라고 하는 강한 열망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이 “복”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야말로 복이 정말로 필요하다는 또 하나의 열망이기도 하겠지요.
일본인 교회에서 사역할 때에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할 때가 있었습니다. 서로의 기도제목을 놓고 중보기도회를 하는데, 한 청년에게 물었더니 그의 기도제목이 “세계의 평화” 였습니다. 저는 놀랐었습니다. 어떻게 개인의 기도제목이 세계의 평화인가! 우리의 개인적인 기도제목은 거의 대부분이 개인의 신상에 관한 기도제목이 대부분인데, 세계평화를 놓고 기도하는 한 청년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기도제목은 역사상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인류는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싸움과 전쟁이 그친 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기도는 한번도 응답이 되어지지 않은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은 기도의 제목이 개인적이 기도의 제목이 되어도 좋습니다. 왜냐 하면 그 때로는 조그마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의 기도라 할 때에도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의 시간이 깊어진다면 오히려 그것이 훨씬더 좋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이 잘되기를 바라시고 계십니다. 개인 개인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한사람이 잘되어야지 모두가 잘 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교회는 복된 교회가 되어지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사회가 복된 사회가 되어지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국가가 복된 국가가 되어집니다.  이번에 오바마씨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성경에 손을 얻고 선서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복된 나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믿음의 사람들 청교도들이 철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었고 그 복을 받은 사람들이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어 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전 세계에 미치는 커다란 일을 하시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들이 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출발에서도 “생육과 번성”의 복을 허락하셨고, 특히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 첫 장이 바로 복의 이야기로 출발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는 공생애의 첫 출발점에서 말씀하셨던 것이 팔복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 있어서 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아시고 우리에게 복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던 것을 봅니다.
복에 대해서 우리는 흔히 돈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저에게 오는 메일이 있는데 그 메일의 내용이 “믿음과 돈” 이라는 주제의 글이었습니다. 읽다가 그럴듯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돈'이 안 벌린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어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돈을 많이 벌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돈은 사람이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돈에는 다리도 날개도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 돈이 저 혼자 스스로 나에게 오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돈은 사람이 지갑에 넣어 가지고 오거나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옵니다. 그러므로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을 부르지 말고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불러야 합니다. 사람을 부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어떤 분이 신용카드를 쓰고서 갚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 말을 들으니 전화벨이 울려도 혹 빚 독촉 전화가 아닐까 하여 가슴이 철렁하고, 누가 대문을 두드리기만 해도 빚 갚으라고 찾아오지 않았을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혈압이 올라 '대인 기피증'까지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지 말고 사람을 만나라. 도망 다니지 말고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로 의논해 보아라. 자꾸 사람을 만나야 사람이 돈을 가지고 온다... 뭐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현금은 잘 안주십니다. 그 대신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자꾸 사람을 부르세요. 나에게 오는 사람은 빈손으로 오지 않습니다. 뭐든 들고 옵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을 극진히 대접하세요. 혹 그가 주머니에 나에게 줄 돈을 넣어 가지고 왔을 수도 있으니까요. “
여러분 어떻습니까! 사람이 중요합니다. 어렵다고 할수록 많은 기도하시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사람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여러분의 필요를 체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물질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이 우리 인생에 차지하고 있는 힘도 굉장히 쎕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물질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 라고 하면서 물질이 가지고 있는 힘이 하나님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에 있어서의 적그리스도는 “황금만능주의” 라고 말할 만큼 물질이 성도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물질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이 우리를 복되게도 하지만 잘못하면 그것이 우리를 무너트릴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복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복에 대해서 말할 때 물질을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은 물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관심을 물질, 현상에서부터 사람으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조금 전에 소개해드린 글에서도 관심을 사람에게 돌릴 것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피할 것.
복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해야할 것이 피해야할 것 있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것을 먼저 말합니다. 이거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면서 먼저 가이드 라인을 그어놓고 시작합니다. 안전선을 미리 그어놓은 것입니다. 그 안전선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복있는 사람이라는 말에서의 “복”은 “아쉬레” 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여 준 구역 안에서 마음껏 활동하며 돌아다닌다” 는 뜻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16:6 에서는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릅답도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줄로 재어준 구역은 내가 세상에 살면서 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나 재능이나 나의 삶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하나님의 울타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선을 그어주시고 그 안 있는 사람을 복된 사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할 것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첫 번째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우리 주변에 있는 어느 나쁜 사람을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또 하나의 악인이 있는데, 그것은 과거 내 속에 살고 있던 옛사람입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7장에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20) 고 고백합니다.  언제나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밖에 있는 악인을 만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쉽게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악인을 만나지 않는 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언제나 내 안에서 악은 꾀를 줍니다. 그럴듯하게 나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어주신 구역 안에서만 있는 것이 쉽지 않는 것은 우리의 눈을 유혹하고 갖고 싶은 것 내가 소유하고 싶은 모든 것을 사단은 그 바로 옆에 가져다 놓습니다. 우리 눈에 잘 뛰는 것에 놓고 잠깐만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곳에 있으라 하지 않습니다. 잠깐만 나와서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역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복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 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복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악인의 꾀를 쫒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도록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 시킬 수 있는 사도바울과 같은 영성을 소유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해야할 것.
그런데 우리가 그 사도 바울과 같은 영성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시편은 말하기를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 묵상이 비결입니다. 복된 사람이 된 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또 되새김질하고, 되새김질해서 완전히 나의 것으로 소화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처음에 들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쉽게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내 속을 채워 나가면 결국은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말씀이 싸우는 것입니다. 말씀이 악인의 꾀와 싸우고, 말씀이 죄인의 길과 싸우고, 말씀이 오만한자의 자리와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내 영을 살찌우고, 나를 강하게 만들고, 나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고, 말씀이 나로 승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헨델의 일화 입니다. 어느날 헨델이 길을 가다가 가발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시에 가발은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한참동안 난처해하고 있을 때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의 가발을 찾아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근처 이발관에서 일하는 아가씨였습니다. 그 후 헨델은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를 자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헨델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의 친필 악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헨델은 그녀와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헨델은 그 이발관에 다시 들렀습니다. 그 아가씨는 헨델이 온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발을 하러 온 한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던 그녀는 무심코 다른 이발사에게 “머리를 말게 악보 몇장만 갖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헨델은 조용히 이발관을 나왔고 그 후로 다시는 그 이발관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헨델의 명작 ‘메시아’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여인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지만 그 말씀을 깨닫거나 묵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똑같은 말씀이라도 그것을 즐거워하고 묵상한 사람은 그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좋아하시길 바랍니다. 즐거워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사도행전17장에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아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11) 라고 합니다.
그런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바로 이런 복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3. 형통의 복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 속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은 형통입니다. 아무리 주변이 가뭄으로 인해서 메마른다 해도,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든다 해도, 금융위기로 아무리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뿌리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언제나 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때가 되면 과일을 맺게 된다는 것이 형통입니다. 
형통을 이야기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야말로 형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할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속에서도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것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왕의 진미를 거부하기도 했고, 다니엘의 친구들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다는 죄목으로 풀무불속에 던져지기도 했고, 다니엘은 모함을 받아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이유로 사자굴속에 던져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들의 온갖 위협과 시련 속에서도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왕의 4대에 걸친 왕권 속에서도 정부의 고관으로서 평생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형통입니다. 다니엘이 관직에 있는 동안에 그 나라는 형통하는 복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서에서는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단6:28)엘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무엇이 형통이었습니까! 다니엘의 처한 환경은 정말로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믿음을 지킬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의 뿌리를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인 시냇가에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의 형통이 진짜 형통입니다. 남들도 다 잘되는 가운데서의 형통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힘들어하고 믿음의 절개를 버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의 형통이었습니다.
우리의 형통이 바로 이런 형통이어야 합니다. 남들은 어렵다, 힘들다 할 때에야말로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더욱 시냇가에 심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공급되어지는 진액을 받아서 때가 되면 잎이 푸르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그런 형통함이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두 형제가 살았는데 동생이 성경 읽다가 형에게 물었습니다. 형! 만사 형통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야?... 이 때 형은 기회가 왔다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응 그건 다른 뜻이 아니고 만사를 항상 형을 통해서 하라는 말이야. 알겠니… 하나님께서는 형 말 잘 듣는 사람을 축복하시는 분이야!
우리의 만사형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에게 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악인은 어떻다고 합니까!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쭉정이를 말합니다. 악인은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날아간다고 합니다. 환란이 오거나 어려움이 왔을 때 의인과 악인이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기에 어떤 환란에서도 굳건하게 서있지만 악인은 망하고 만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복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관심을 사람에게 두고 있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잘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 사람이 속한 모든 곳이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 동경제일교회 성도들이 바로 복 있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말씀을 즐거워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 그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으로 주어져서 인생이 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목사에게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그 말씀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기쁨의 삶을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전혀 얻은 것이 없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말씀을 묵상하시고, 그말씀을 자신의 말씀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말씀으로 삼는 방법은 “아멘”하는 것입니다. 아멘하면 그 말씀이 내 심령안에 들어오고 내 심령 안에 들어온 말씀은 내 안에 있는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의 자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셔서 우리를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일단 시냇가에 심겨지기만 하면 때를 따라서 잎사귀도 나고 열매도 맺는 형통함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형통한 삶이 여러분의 믿음의 삶 속에 임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