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백향목같은 성도 겔17:22-24

장경태 2010. 7. 31. 16:30

백향목같은 성도                 에스겔17:22-24                   09.2.22

조엘 오스틴(Joel Osteen)이라는 분이 쓴 책중에‘세나무 이야기’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요단강 계곡의 경사면에 세 그루의 나무들이 있었는데. 이 나무들은 저마다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번째 나무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세공을 받아 하나님의 성전재목이 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경배하는 하나님의 성전의 한 부분이 되어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나무는 바다로 가고 싶었습니다. 범선이 되어 사람들의 왕래를 도울 뿐 아니라 온 세계로 두루 다니면서 환상적인 생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대로 그 자리에 남고 싶었습니다. 아주 높이 자라서 하늘을 향해 가지를 치켜들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그 그늘에 앉아 쉬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해주고 싶다고 소원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세 그루의 나무들은 잘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기둥이 되고 싶었던 첫 번째 나무는 잘려서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세공을 받아 작은 구유가 되었고. 나귀가 핥아먹고 소들이 핥아먹는 먹이통이 되어 마구간 한 귀퉁이에 팽개쳐지는 슬픈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큰 배가 되어 대양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서글프게도 찍히고 깎이어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갈릴리 호수로 가게 되어 냄새나는 어부들이 올라타고 비린내 나는 생선이나 싣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일이 없을 때는 쓸모 없이 버려진 채 호숫가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 자리에 그냥 있고 싶어했던 소원과는 달리 찍히고 다듬어져 엉뚱하게도 저주받은 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세 그루의 나무들은 모두 꿈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위대한 일을 하기 원했는데, 꿈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초라한 신세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나무들은 자기들의 모습에 견딜 수 없는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오랜 후에 유대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분은 태어날 곳이 없어 마구간으로 들어가 말구유에 태어났는데, 첫 번째 나무였던 그 말구유는 결국 예수를 눕히는 침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나무는 큰 영광을 얻었던 것입니다.
다시 세월이 더 흘러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할 때 갈릴리호수에 와서 보잘것없는 한 조각배에 올라앉아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가 올라앉은 그 조각배가 두 번째 나무로 만들어진 배였습니다. 그 조각배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강단을 빌려드리는 뜻밖의 영광을 입었습니다.
몇 년쯤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바로 그 세 번째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에 그가 달리셨습니다. 그 나무는 길이길이 추앙을 받는 십자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세나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의미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가지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무 의미 없이 그리고 쓸모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에는 실패나 가치 없는 것이나 무의미하거나 실패한 것이 없습니다. 더욱이 인간을 이 땅에 보내실 때는 그들에게 맞는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셔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나무에 대해서 많은 비유들을 통해서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백향목"이라는 나무를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본문에 등장하는 22절의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꺽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라고 하는데, 여기서 “백향목의 연한 가지”는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유적 이야기입니다. 이사야53장2절에서는 메시야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메시야 되신 예수님은 연한가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지만, 그러나 그 연한 가지를 통해서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분이신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이것을 생각하면서 또 하나 그 백향목의 연한가지와 같은 우리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서 조명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연한 가지와 같은 성도.
에스겔 선자자가 사역하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외국에서 방랑하고 있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역시 외국에서 나라 없는 설움을 당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방황하게 되었는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들을 규명해 주면서 그것이 결국은 자신들이 지은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할 것을 책망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에게 회복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 때에 그것을 때로는 날까롭게 지적을 하면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날만큼 고통을 줄 때가 있지만 반면 하나님은 그렇게 고통 속에서 울고 있는 백성들을 끌어안으시고 치료해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저의 아버님은 굉장히 엄하셨습니다. 보통때는 매를 잘 들지 않지만, 한번 매를 들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제가 초등학생때에 한번은 아버님께 매를 무지하게 많이 맛은적이 있습니다. 한번 매를 들면 어머니도 건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절뚝거리면서 울면서 건너방으로 건너오면 어머니는 손에 연고를 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끌어 앉으시고는 약을 발라주면서 도닥거려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야단을 치면 한쪽에서는 약을 발라주시는 모습이 부모님들의 모습니다. 아버님이 그렇게 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그런 성품을 알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식이 잘못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마지막 수단으로 택하는 그런 징계의 모습은 뒤돌아보면 한없는 사랑인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골아 터지기 때문에 째시고 싸매 주시는 그런 사역을 바로 에스겔 선지자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계속해서 당신의 사랑을 이스라엘에게 전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백향목의 비유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의 전달입니다.
하나님은 백향목 꼭대기에 있는 연한 가지 하나를 꺽어서 높은 산에 심으실 것이다. 라고 합니다. 이 산은 바로 이스라엘에 있는 산이며, 사람들이 마음속에 소망하고 있는 시온산입니다.
백향목은 최고의 건축자재로 쓰입니다. 다윗이 궁전을 짖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백향목이 자재로 사용되었습니다. 백향목은 아주 중요한 존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백향목 가지를 심으시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적합하고 중요한 존재를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우리들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바로 “백향목 가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꼭대기에 있는 연한 가지는 곧 부러지기도 쉽고, 싶게 상처를 받기도 하는 가지입니다.
가만히 보면 성도들 안에는 연한가지들이 있습니다. 쉽게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비바람을 견딘 굳건한 가지는 어떤 태풍이나 천재지변 속에서도 나무에 굳건하게 붙어 있지만, 연한가지는 금방 꺽여 버리고 맙니다. 상처받기를 잘하는 성도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마음 아파하고, 그것 때문에 금식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누구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모습이요, 나의 모습니다.
가만히 보면 크리스챤들 속에는 마음이 연한 사람들이 유독 많습니다. 세상 속에서는 그렇게도 강하게 대응하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연한 가지가 됩니다. 세상사람들 같아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고 고통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도 마음이 아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 합니까? 그 가지를 꺾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신다고 합니까?

2. 높은 산에 심기는 가지.
하나님은 그 연한 가지를 꺽으셔서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 산은 시온산입니다. 시온산은 신정왕국이었던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은 다윗시대 이후부터 이스라엘 왕권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이곳에 성전이 세워짐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상징이 되었던 산입니다. 그래서 이 산을 시편9:11에서는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 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스겔 20:40에서도“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 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온산은 구약시대로부터 메시야께서 친히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 통치하실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2:6) 이 말씀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도의 고통 속에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에게 내가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한 가지 같은 우리들을 바로 그 산 시온에 심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연한가지로 있으면 안됩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꺽일 것 같은 모습. 조금만 바람이 쌔게 불어도 부러질 것 같은 연한가지로 우리를 놔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꺽으셔서 높은산 시온에 심으신다는 말씀은 무슨 말입니까? 시온산은 위대한 산입니다. 나무가 풍성한 산입니다. 영양이 많은 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로 그 산에 심으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게 하시고 우리를 어떤 세상의 세력들과도, 악한 마귀와의 전쟁 속에서도 끝내 이기고 승리하는 굳건한 나무로 세우기시를 원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서 감람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감람나무는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나무라고 합니다. 2천여년을 살아온 나무입니다. 노송이 되어서 키는 크지 않았지만, 그 노송을 보면서 신기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 나무는 그 숫한 세월 속에서 예수님의 행하셨던 모든 일들을 초대교회의 모든 일들을 그 많은 박해와 고통스러웠던 모든 역사를 다 알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왜지 나무가 거룩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직 믿지 않는 미신자들은 오래된 노송을 신으로 생각하고 그 앞에서 빌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성도들을 비닐 하우스 속의 화초로 키우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비닐 하우스 속의 화초는 바람도 없고, 잔잔한 곳에서 알맞은 온도에 수분을 맞추어 주어서 아름다운 꽃을 한겨울에도 피우고 있지만, 그 화초는 잠깐만 바람을 맞아도, 금방 죽고 맙니다. 얼마나 연약합니까?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강하게 키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비바람 속에서도 살아남는, 사람들에게 밣히고, 밣혀도 또 다시 일어나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이름 모를 들꽃처럼 우리를 키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조금만 일에도 금방 상처받고 주져 앉아 버리는 그런 성도를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또 다시 일어나는 굳센 성도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때에 따라서 적당한 고난을 주셔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단련시켜주시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를 어디에다가 심어놓으시고 단련시키는가! 입니다. 바로 우리를 시온산에 심어놓으시고 단련시키시고 강하게 키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든든한 반석 위에, 토대 위에 심어 놓으십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곳 인줄로 믿습니다. 말씀이 든든해서 어디에서든지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놓으시고, 훈련을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성도들 속에서도 이미 그 훈련을 받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통하고, 힘들어하는 일들이 있는 분들은 모두 그 훈련 속에 있는 분들입니다. 굳건하시길 바랍니다.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왜냐 구원의 반석이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가 시온산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를 등안시 하면 안됩니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여러분의 뿌리를 더욱 깊은 곳에 내리는 일입니다. 그 뿌리로 주님의 말씀의 양분을 충분히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나무가 되어 지는 지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3. 백향목되는 성도
본문은 계속해서 말씀하기를 “ 그 가지는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것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23,24) 라고 합니다.
연한 가지였던 나무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성하고 열매를 맺는다,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다.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 것이다. 그 가지 그늘에 거할 것이다. 이 얼마나 멋있는 모습입니까?
이 말씀은 마택복음13:32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에서 겨자씨가 성장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 말씀의 내용은 연한 가지 같았던 예수그리스도로 출발한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가 점점 성장하여 큰 나무로 성장해 갈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모든 성도들의 앞날을 말씀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장을 합니다.
우리가 시온산에 심겨졌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큰 백향목으로 성장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무성한 나무됩니다. 각양 새들이 우리의 그늘아래 몰려오고, 많은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뿌리가 든든한 나무를 그렇게 세워주십니다. 그래서 그 나무를 통해서 많은 그늘을 낼수 있도록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큰 그늘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큰 그늘이 되기 위해서는 나무가 커야 합니다. 키도 장성해야 합니다. 잎도 많아야 합니다. 가지도 많이 뻗어 나가야 합니다.  큰 그늘을 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은 큰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일본 속에 큰 나무로 성장시켜주셔서 큰 그늘을 세상에 주어서 이땅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 와서 충분히 쉴 수 있는 백향목,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을 처다 보면 전부다 연한 가지 같은 사람들입니다. 쉽게 흔들리고, 상처를 잘 받고, 아파하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반석으로 하고 있는 시온산인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분을 받아서 성장합니다.  아무리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나무는 큰 나무가 되어집니다. 뿌리가 든든한 나무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굳게 잡으시길 바랍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여러분의 뿌리는 더욱 시온산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큰 나무되어서 많은 사람이 여러분 한사람의 그늘 밑에서 쉬고, 먹고사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멋진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