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신앙의 회복 대하34:14-21

장경태 2010. 7. 31. 16:30

신앙의 회복                역대하34:14-21                     09.3.1 

오늘부터는 사순절이라는 절기에 들어갑니다.  사순절이란 부활절을 기준으로 해서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을 말합니다. 그 기간은 주님의 십자가와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경건하게 보내는 시기를 말합니다.
사순절은  오순절이나 유월절과 같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절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의 전통 속에서 사순절은 오히려 유월절보다 더 확고한 전통으로 지켜져 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일반적으로 사순절 기간을 금식과 특별 기도를 통해 경건하게 지켜왔으며 보통 이 기간에 신입 교인들의 교육과 세례 준비 기간을 가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사람들은 40일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묵상한 후 부활절에 세례를 받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매우 의미가 깊은 수입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예수님 역시 40일 금식하신 후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낸 시간도 40년이었습니다. 즉 40이라는 숫자는 중요한 것을 위해 준비하고 단련하며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이 40일을 정하여 특별히 지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40일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준비시키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끝난 후에는 부활절을 통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승리와 우리의 영생을 기념하였던 것입니다.
사순절기간동안에는 강단의 색깔을 보라색으로 정하는데 이것은 주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이 보라색 강단을 볼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와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고난 당하심을 기억하는 절기로 보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금년에는 제가 회복이라는 주제로 목회를 하겠다고 연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의 성경의 이야기 역시 회복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 앞에 있는 내용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시야왕의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히스기아왕 때부터 이야기를 해 와야지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아왕은 남쪽 유다의 왕인데. 한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이었으나 그만 죽을병에 걸렸었습니다. 그 병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던 왕으로 유명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을 해주셔서 그의 생명을 15년이라는 생명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이제 그의 삶은 은혜로 받은 삶입니다. 당연히 그는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강해진 나라의 모든 보물들을 이웃 바벨론 왕들에게 자랑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그가 은혜로 생명을 연장 받고서 낳은 아들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므낫세인데, 그 아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히스기아의 교만과, 방탕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12살이 되던 해에 그 아버지가 그만 죽고 맙니다. 그 후에 그는12살의 나이로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고 난 다음에 불행하게도 그는 아버지가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헐어버렸던 우상의 산당을 다시 짖고, 또 바알상을 세우고, 아세라의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섬기고 특별히 그것들을 하나님의 성전마당 에다가 세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도대체 갑자기 아들 므낫세가 왜 그렇게 우상들을 세우고 섬기고 하나님앞에 죄악을 행했겠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주변국가들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장면들이 무엇인가 하면 주변의 강대국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늘 약하게만 보이고 주변의 강대국에게 늘 당하기만 합니다. 특별히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라는 나라에 의해서 망해버린 이야기들이나 남 유다는 바벨론이라는 나라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강대국에는 무엇이 있는가가 궁금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하면 바로 강력해 보이는 신상들을 보았습니다. 그렇구나 저들은 저 신들이 지켜주는 구나, 결국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보다 이방의 신들이 더 강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결국 그는 온 나라를 우상으로 뒤덮어 놓았습니다. 그후에 그가 죽고 난 다음에 그의 아들 아몬이 22살에 다시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그 역시 아버지 와 같이 또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자 그는 불행하게도 2년밖에 왕위에 있지 못하고 신복들의 손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이 분을 내고 그 암살한자들을 다 잡아죽이고, 아몬의 아들인 요시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요시야가 왕위에 앉을 때의 나이가 8살이었습니다.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왕이 요시야왕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앞의 이야기를 나눈 것은 바로 어린 요시야가 왕위로 앉게 될 때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가 얼마나 암울했는가를 볼 수가 있고, 계속되어지는 왕들의 불행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린 요시야는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그리고 그 어린 요시야를 왕으로 세우면서 백성들은 무엇을 기대했겠습니다.  다행히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어린 요시야에게 신앙적인 교육을 시켰던 위대한 인물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바로의 궁 속에서 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있으면서 철저하게 여호와 신앙을 가르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서론은 좀 길지만 이런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잃어버린 신앙을 찾아서.
여러분 오늘 요시야는 나이가 어렸지만  왜 우리 아버지가. 그리고 할아버지가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왕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해서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하나님만이 이민족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가졌다가도 다시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잘되고 형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되는 것 같이 보여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하고 인간관계가 흩뜨려 지면 그것을 회복하려고 말로 변명하고, 설득하고 하려고 피곤해 보이는데, 그런데 오히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술 한잔하고 "잊어버려!" 하면서 모든 것을 털어 버리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히려 불교에서는 성탄절이 되면 "성탄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 정도로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교회에서는 "예수말고는 절대로 구원이 없다!"라는 말이 옹졸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자꾸만 매력이 있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신앙에서 결국은 떨어지게 됩니다. 차라리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더 좋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사람들을 흉내내기 시작합니다.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살면 편한 것 같고 멋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살아보니까 그 속에서는 생명이 없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요시아왕이 발견한 허무라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역대왕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시아는 더욱 더 신앙으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한번 세상 속에서 타락을 맛 본 사람이 돌아오는 경우는 그 속에서 만족함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는 진정한 기쁨이 없었음을 발견하면서부터 입니다. 처음에는 뭐가 있는 것 같아서 갔는데 가보았더니 아무것도 없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매력 있어 보입니까? 거짓매력입니다. 우리를 현옥 시키려는 매력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요시야왕은 그것을 어려서부터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왕으로서 성장해 가면서 더욱 성전을 사랑하게 되었고, 한나라의 왕으로서 나라를 살릴 길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아 알았던 것입니다.
 
2. 신앙의 회복을 향하여.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되었습니다. 34장2절에 보면"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16살이 되었을 때에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때부터 세워 놓았던 우상들을 다 없애버립니다. 그리고 26살때는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수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다시 수리하면서부터 성전의 제사장들은 그동안 선조들이 잃어버렸던 신앙을 다시 찾고 성전을 청소하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제사장들이 활기를 갖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무관심 속에 버려졌던 성전을 다시 청소하면서, 그리고 수리하면서 그들은 제사장들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성전을 돌아보는 신앙은 기쁜 것입니다.  그 기쁜 모습으로 성전을 수리하고 청소하다가 성전의 연보괘 즉 헌금함이 있었는데, 그 헌금함 속에서 제사장 힐기야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느라고 신경도 쓰지 못했던 율법책, 즉 성경책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성전을 청소하고, 수리할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주십니다.  잃어버렸던 신앙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잃어버렸던 말씀을 되찾아주십니다.
여러분 그냥 교회만 왔다가 가는 성도들이 되지 마시고 교회당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꼭 기도하러만 오시지 마시고 그냥 지나가다가 라도 들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수 있는 이런 예배당을 주신 것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없을 때 청소라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들의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을 수도 있습니다.  혼자서 고요하게 기도도 해보고,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찬송도해보고, 그리고 청소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 시간은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요시야왕 때 성전을 다 뒤집어가면서 청소를 하고 수리를 하다가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믿음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청소할 때 우리의 잊어버리고 있었던 귀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이사가는 날이나 대청소하는 날이 좋았습니다. 특별히 이사오고 한번도 움직이지 안았던 장롱을 옮길 때에 좋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는 분 있습니까? 장롱 밑에는 반드시 언제 잊어버렸는지 모를 돈이 그 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먼지에 뒤 덮혀 있는 돈을 발견할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청소하다 보면 귀중한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청소하다 보면, 수리하다보면 우리들의 주님을 사랑하던 첫사랑이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는 것입니다.
 
3. 회복된 신앙.
제사장이 발견한 율법책을 오늘 본문에 보니까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기관은 왕에게 달려가서 왕 앞에서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깜짝 놀라면서 처음 듣는 율법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는 옷을 찢으면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동안 왜 자신의 아버지 아몬왕이 살해를 당해야 했는지, 할아버지 므낫세가 바벨론에  쇠사슬에 결박되어 끌려갔어야 했는지(대하33:11) 그리고 북 왕국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고백한 말입니다.(대하34:21)"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풀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했던 것이 모든 죄앙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습니까? 오늘 나에게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 풀리지 않고 있는 재앙의 모습이 혹시 있습니까? 요시야는 그 원인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치 않았던 것에서 찾았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원인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북한에서 많은 기근으로 농사가 흉년이 되고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산에 있는 나무를 다 베어서 썻기 때문입니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비가와도 그 비를 흡수할 수가 없고 그대로 흘러내릴 수밖에 없고 그것으로 홍수를 가져오게 되고 또 가뭄이 드는 것도 바로 반대의 이치 때문에 그렇습니다. 똑같은 한반도인데 왜 그렇게도 차이가 나는가 하면 바로 산의 나무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면 그 산에다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뭄의 문제도 홍수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의사들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치료할 때 모든 병이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에 많은 재앙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 재앙을 해결하는 방법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의 순종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 올 때 문제의 해결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회복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했던 그 첫사랑이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찾아 나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요시야왕은 옷을 찢으면서 통곡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온 나라에 종교의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동안 드리지 잃어버리고 있었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온 나라에 있는 우상들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유월절 절기를 다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신앙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예배가 다시 살기 시작할 때 영혼이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한나라의 재앙의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습니까? 히스기아왕의 은혜를 잃어버린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지금 어떻게 간직하고 있습니까! 매일같이 주어지는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잠깐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다가 금방 언제 그랬느냐 하면서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처럼 그래서 촛대가 옮겨질 위기에까지 놓여져 버렸던 그 영적 위기가 여러분에게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찬송을 부를 때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부르는 찬송 속에 감사의 눈물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덤덤한 마음으로 듣고, 더욱이 성경책은 교회에서 예배시간외에는 거의 들여다보지도 않고 먼지만 쌓이고 있지는 않은지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의 기쁨보다 세상 속에서 찾으려는 기쁨이 더 많지는 않은지요.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찾아서 나섭시다. 우리의 잃어버린 말씀을 향하여. 우리의 잃어버린 신앙의 열심을 향하여, 우리의 잃어버린 기도의 열심을 향하여. 우리 다시 회복하십시다. 성전을 수리하면서, 청소하던 그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예배당을 다시 돌아봅시다. 어디 망가진 대는 없는지. 어디 고쳐야 할 곳은 없는지.  성전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주님은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기쁨이 생깁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은혜가 생깁니다. 예수 믿는 즐거움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성전 사랑하는 마음속에 발견된 율법처럼, 그리고 그 율법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영적 교통이 이루어진 요시야왕의 모습처럼. 여러분의 삶의 모습 속에서도 이런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