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선택 룻1:15-18

장경태 2010. 7. 31. 16:31

선택                      룻기1:15-18                               09.3.8
 
한국인 선교를 위하여 만주에서 일하다가 신사참배 반대로 1941년 10월 일본 경찰에 연행된 미국 정통 장로교 소속의 헌트 선교사가 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겨울이 되면서 날씨가 추워져 생활하기가 곤란하여 요를 넣어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외투 한 벌만으로 딱딱하고 찬 감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는 소문이 감옥 안에까지 퍼져 술렁거리던 어느 날 헌트 선교사는 소장실에 불려갔습니다.
소장실 입구에는 전에 감옥 측에 부탁한 짚을 넣은 요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몸집이 크고 공부 깨나 한 것 같은 일본인이 책상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 미국에 돌아가기를 원합니까? 물론 우리가 당신을 보낼 것이라는 약속은 못하지만 그러나 만약 갈 수 있다면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이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감옥에서 많은 모욕과 고난을 받은 뒤 이 나라를 떠난다는 조건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문 앞에 있던 누더기 요를 바라보았습니다. "미국이냐? 아니면 저 요 대용품을 가지고 한없는 감방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냐?" 헌트 선교사는 결정했습니다.
"나 자신의 안전만 생각한다면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로서 나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보내신 것을 확신하며 따라서 내가 있어야 할 그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조국 대한민국에는 이런 좋은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놀라운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선택이라는 것을 놓고 고민할때가 있습니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를수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어느쪽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룻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오늘 이 여인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 속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참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고향에 큰 흉년이 들어서 갑자기 먹고살기가 답답해진 한 가정이 이민을 결심하게 됩니다. 더 이상 고향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모아서 돈이 될만한 것은 돈으로 바꾸고 해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모압 이라는 곳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 남편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한번 잘살아보자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그만 남편 엘리멜렉이 고생고생 끝에 그만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낮선 외국 땅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버린 나오미는 이제 의지할 것이라고는 두 아들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만을 의지하고 또 한번 용기를 내서 살아보리라고 작정을 하고 또 작정을 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서 이제 두 아들도 혼기가 차서 두 아들을 결혼을 시킵니다. 유대인중에 며느리를 얻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서 지들이 좋다고 하는 모압 여인들을 며느리로 삼게 됩니다. 큰아들 “말론”은 “오르바”라는 여인을, 둘째 “기룐”은 “룻”이라는 여인을 각각 부인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다행히 두 며느리는 착했고, 나름대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잘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어느덧 나오미가 고향을 떠난 지가 10여년쯤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허리를 펴고 살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무슨 운명인지, 그만 두 아들이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나오미는 얼마나 서럽든지요, 잘먹고 잘살아보자고 외국에까지 왔는데, 남편 잃고 이번에는 두 아들까지 잃고 난 나오미는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서러움과 눈물로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날 이제는 이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결심을 합니다. 그래 이제, 남편도, 두 아들도 잃은 마당에 내가 이 땅에 계속 살아갈 이유도, 명분도 다 없어졌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욕을 먹더라도 그래도 내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까 이제는 두 며느리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날 두 며느리를 불어놓고, 형편을 이야기하고 이제 아무 소망도 없으니, 너희들은 너희들의 친정으로 돌아가라 고 권유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1. 선택의 기로 속에서.
오늘 이런 상황 속에서 두 며느리는 선택의 기로 속에 놓이게 됩니다.
일단 두 며느리들은 어머니를 따라서 나설 생각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들도 없이. 두 며느리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어머니의 굳은 결심 앞에 큰 며느리 “오르바”는 결국은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결혼해서 살다가 남편 잃고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무겁고, 또 무겁지만, 그러나 어머니의 말대로 아직 한참 젊은 나이에, 평생을 혼자서 살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둘째 “룻”이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의 룻은 어머니의 이런 강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이 이런 상황 속에 놓여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 놓인다면 참으로 심각하게 고민할 것입니다. 이것을 택할 것이냐, 저것을 택할 것이냐! 이렇게 생각해보고, 또 저렇게 생각해보고, 어느 쪽이 나에게 유익이 되어지고, 어느 쪽이 손해가 될 것인가? 
우리는 인생을 살다가 이런 선택의 기로 속에 놓이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선택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뷰페식 식당에 가면, 음식의 선택 앞에 고민 할때가 많습니다. 과연 어떤 것들을 선택을 해야지, 좋을지 몰라서, 무조건 닥치는데로 접시에 담아 놓고 보면, 나중에 손도 안대는 것들이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옷을 입을 것인가, 저 옷을 입을 것인가! 버스를 탈것인가! 전철을 탈것인가!  그러나 이런 선택은 다시 반복할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선택 중에서는 그 한번의 선택이 자신의 인생전체를 좌우하는 선택들도 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언론기관에서 ‘순간 순간 세계에서 가장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은 과연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에 관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그 첫째가 교전 중인 국가의 야전군 대대장이었고 둘째는 프로페셔널 갬블러, 셋째는 영화감독, 넷째와 다섯째는 외환 딜러와 프로야구 감독이었다고 합니다.  한번의 선택이 씻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원에 대한 선택입니다. 이 영원에 대한 선택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가끔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모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왠 만하면 아이들 스스로 선택을 하게 합니다. “니가 알아서 골라라!” 합니다. 이제 이 정도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그리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은 부모가 직접선택을 해서 줍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잘못선택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직접선택을 하도록 허락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가 복을 받으며 사느냐, 축복 받지 못하는 삶을 사느냐는 내가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달려 있습니다.
신명기30:19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두고서 택하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택해서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에 대해서는 우리보고 선택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15장16절에 보면“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중요한 선택, 우리의 영혼구원에 대한 선택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있어서 복과 저주는 우리에게 선택할 것을 명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마음으로는 복을 원하고 선택을 했지만, 늘 몸으로는 저주를 선택한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는 고통이 끝날 날이 없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택의 기로 속에 놓일 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 선택의 기준.
오늘 룻은 무엇을 선택했습니까? 그는 자신의 안락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선택을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본문 16절입니다.“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있어서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라는 고백입니다. 그녀가 어머니를 선택의 기준으로 본 것은 시어머니속에 있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머니 나오미가 신앙이 엉망이었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왔다고 한다면, 나오미에게 있어서 선택의 기준은 어머니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 나오미 속에 있는 하나님을 룻이 보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분명 당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룻은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의 앞날이 훨씬 더 편안하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더 좋은 남편을 만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자신의 육신의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어머니 속에 있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선택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는 많은 선택 속에서 가장 고민해야 할 것은 “과연 이 선택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이 선택이 나에게 유리한가!” 라는 고민이 아니라 “과연 이 선택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이것을 통해서 내 이웃에게 이득이 되는가! 내가 속한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비록 그 선택을 통해서 내 삶에 어려움이 오고, 고통이 오고, 손해가 되어질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 나는 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한 7가지를 제안했습니다.
1. 이 결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      
2. 이 일은 중요한 일인가? 아니면 긴급한 일인가?
3. 반드시 내가 아니면 안될 일인가?              
4.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일인가?
5. 욕심 때문에 이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6. 5분 후에 다시 생각해봐도 꼭 필요한 일인가?
7. 이 일에 대하여 잠시라도 기도해 보았는가?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이 7가지를 5분만 생각해도 우리의 선택의 후회는 사라진다고 합니다.
 
3. 선택의 결과.
룻은 결국 어머니의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를 따라서 이번에는 그녀가 낯선 땅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어머니는 고향으로 룻은 낮선 땅으로 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힘든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룻의 선택을 굉장히 기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룻에게 보아스라고 하는 새로운 남편도 허락해 주시고, 그리고 아들도 주십니다. 그 아들이름이 오벳이었는데, 이 오벳이 바로 후에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되어집니다. 그리고 이 룻의 이름이 후에 어디에 등장하게 되는가 하면,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계보가 나오는데, 1장5절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고 기록됩니다.  한 이름 없는 여인의 순간의 선택이 그의 영원을 좌우하게 되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보 속에 등장되어지는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는 복된 선택이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뜻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때에 때로는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 아닙니다. 그 선택은 최후의 영광의 선택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저와 여러분은 선택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속에는 후회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못 선택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니야!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선택하신 것은 잘못됐어, 나는 능력도 없고,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배경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놈이야! 하나님은 좀더 힘이 있고, 능력 있고, 많이 배우고, 배경도 든든한 사람을 선택해서 당신의 종으로 사용했어야 했어!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선택, 예수님의 선택은 언제나 바른 선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12제자를 통해서 전 세계를 복음화 시키시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어떤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기준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까? / 나만 좋은 것입니까? 모두가 좋은 것입니까?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그 선택의 기준이 예수님께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이 기준 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기준이 아니라, 멀리 바라보면서, 장래의 이익을 기준 삼아야 합니다. 룻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어머니에게 있었고, 어머니의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의 기준이 바로 룻의 선택의 기준과 같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룻 에게 주어진 모든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참 불행한 인생을 보낸 것 같지만, 룻이 자신의 고향 모압을 떠나서 하나님의 땅 유다에 들어가서 그의 인생이 피기 시작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갈 때 그때부터 우리의 인생에 놀라운 축복이 이어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동경제일교회 라는 곳으로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곳이 여러분에게는 룻이 들어간 영적인 축복의 땅 유다인 것처럼,  우리교회가 바로 여러분의 인생에게 있어서 그 축복의 땅 인줄로 믿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 속에 동참하면서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