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비젼 대상17:1-2
다윗의 비젼 대상17:1-2 09.5.17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까 제일 부러운 것이 진로가 정해진 아이들입니다. 빠른 아이는 중학교때부터, 아니면 고등학교 1,2학년때면 보통 진로가 정해집니다. 진로가 정해졌다는 것은 재능을 빨리 발견했다는 것이지요. 아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뭘 재미있어하는지, 그 달란트가 발견되어졌기 때문에 진로가 정해졌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모 된 마음에서 답답한 것이 아이의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너는 뭘 좋아하니,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니!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 스스로도 뭘 해야 할지를 몰라서, 있는 것을 보면 대답하는 아이도 민망하고 질문한 부모도 미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이 있는 교회가 있고, 꿈이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금방 태어난 교회라도 꿈을 가지고 태어난 교회가 있는가 하면 수십년이 지나도 꿈이 없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하는 말처럼, 꿈이 없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이 없으니 힘이 없고,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를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모르고, 복을 받아도 그 복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허무한 것이 뭔가 하면 어디에서 생각지도 않은 몫 돈이 생겼는데, 그 몫 돈을 어디한군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다 써버리고 없어졌을 때가 제일 허무합니다. 다 쓰고 나면 써야될 때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꿈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것을 어디에 써야할지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과 비젼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1. 다윗의 비젼
오늘 성경본문에 보면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다음에 엘리 제사장시대에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를 못하고 이스라엘의 국경지대인 벧세메스의 아비나답의 집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후 법궤는 20여 년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울왕의 시대를 맞게 되면서 서서히 잊혀지게 됩니다. 그 이야기가 사무엘상 6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면서 그 법궤를 기억을 하고 사람들을 시켜서 운반해 오는 도중에 흔히 “베레스웃사” 라는 사건이 터집니다. 원래 법궤는 레위인들이 어깨에 매고 운반을 해야는 것인데, 수레를 가지고 옮깁니다. 아무래도 사람들 어깨보다는 수레가 빠르겠지요. 그런데 운반도중에 수레를 이끌던 소가 그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깜짝 놀라서 뛰면서 그만 수레에 있었던 법궤가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 운송책임을 맡았던 웃사가 뒤를 따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잡았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죽음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위적으로 옮기려고 하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말씀을 잡으려고 했던 인본주의적인 것이 동기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 앞에 놀라서 법궤를 다윗성으로 계속해서 들이지를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깁니다. 결국 3개월을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머물게 되면서 놀라운 일은 법궤를 모셔들인 그 집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벧에돔 역시 그 법궤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에 기쁨마음이었겠습니까! 다윗왕이 중간에 주춤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들어오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 생활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도되었던 것이 아닌데, 어쩔 수 없어 지게된 십자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너무 지치고 더 이상 한 걸음도 더 걷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던 로마병정이 마침 그 광경을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처럼 로마병정들에 의해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지었던 그 십자가였지만 후에 구레네 시몬은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 쓰임 받았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여러분에게 때로는 억지로, 주의 일이 맡겨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다가 보면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행사를 앞두고 누군가가 이일을 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나에게 그 일이 주어질 때도 있습니다. 지금 내 형편도 어려운데, 힘이 드는데, 그 일을 나에게 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떡하시겠습니까! “아멘”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오벧에돔이 받았던 바로 그 복을 여러분이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서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복이 넘치기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다시 용기를 내어서 법궤를 다윗성으로 이송작업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이 저번과 같이 하지 않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레위인들을 동원시켜서 성경대로 운반을 하게 합니다. 그 장면을 성경에서는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 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역대상15:13) 라고 합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겨도 말씀대로 섬겨야 합니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인간적인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우요곡절 끝에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 다윗성의 뜰에 안치가 되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법궤를 아침마다 자신의 침실에서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좋은 궁 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데, 아침마다 자신의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나님의 법궤는 아침 이슬에 늘 젖어 있었고, 홀로 외로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의 마음속에 지금까지 없었던 생각들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의 궤를 위해서, 무엇인가 해봐야 겠다. 나만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좋은 곳에 모셔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다윗의 거룩한 비젼의 출발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비젼의 출발은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에 있어야 합니다. 내 중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에 비젼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비젼의 출발입니다.
탕자의 이야기에서 큰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자기 동생을 그저 못된 놈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문열어놓고 멍하니 처다 보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가 달려가서 끌어안고 목욕시켜주고 새 옷 입혀 주고 새 신발에 반지 끼워주면서 잔치 벌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눈과 마음으로 동생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큰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아버지 여기 계세요 내가 가서 찾아오겠습니다. 그러면서 나갔다면 아버지가 큰아들을 인해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우리의 시선이 큰아들의 눈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눈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받아야 할 모든 영혼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보면 사람만이 보입니다. 미운 모습, 못된 모습, 그런 사람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혼을 보십니다. 불쌍한 모습을 보십니다. 안되고, 측은한 모습을 보십니다. 우리는 어느 눈으로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바로 보시겠습니까!
또한 우리의 비젼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 다면 잘못하면 우리가 말하는 비젼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있는척하고, 잘난척하고, 폼 내려고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우리의 비젼과 꿈이 하나님을 바로 보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눈을 향하는 곳을 우리도 같이 처다 보다가 생겨나는 비젼이어야 합니다.
2. 거절당한 비젼
그런데 여러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놀라운 비젼, 꿈, 하나님의 성전을 짖겠다고 한 그 비젼이 거절당했습니다. 4절에 보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못하게 합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역대상22장8절에 보면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 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거절의 이유는 다윗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일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꿈과 비젼은 성결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힘이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하나님의 일을 맡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꿈이 좋아도,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다는 명목을 세워도, 아무리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당신의 일을 맡기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비젼을 실행하기를 원한다면 거룩하십시오. 손에 피를 묻히지 마시길 바랍니다. 전쟁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싸우지 마시길 바랍니다. 싸움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화평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거룩하십시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거룩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비젼을 거절하셨는데, 하나님은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왜냐 하면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법궤를 위해서 이렇게 까지 생각을 하고 말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윗의 비젼은 거절하셨지만 마음은 너무 기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놀라운 축복을 해주십니다.
본문 7절부터가 다윗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내용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쉬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은 이름을 내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는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지라”(7-10)
여러분 여기보세요.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짖겠다고 했더니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다윗의 집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생각만 했습니다. 짖고 싶다고, 말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다윗을 복을 주고, 다윗의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다윗이 한 말이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말 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지어서 바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폼만 잡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마음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 후로부터 하나님이 다윗에게 엄청난 물질을 붙여주시기 시작합니다. 갑자가 주변나라들이 강해진 이스라엘을 위해서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고 전쟁을 했다하면 승리해서 엄청난 제물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시려고 애를 쓰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다윗의 마음을 아시고 엄청난 복을 주신 것처럼,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아시고 엄청난 복으로 부어주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을 받아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다윗은 17:27절에서 “주께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정말 복으로 알고 받아서 누리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복을 달라고는 잘하는데, 받은 복을 누리지 못하고 구석에 처박아 두는 일이 많습니다.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받은 것을 내 것으로 삼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일단은 포장을 뜯고, 박스를 열어서 찍어서 발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은 자기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물을 받으면 포장지 뜯는 것부터 조심 조심하면서 뜯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혹시 편지가 없나 봅니다. 그리고는 다시 잘 붙여둡니다. 그리고는 잘 놔둡니다. 누구한테 선물할 때 있으면 그것을 쓰려고 할려는 마음인 것이지요.
여러분 그러지 말고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누리는 것입니다.
3. 성취된 비젼
그런데 여러분 그럼 다윗의 꿈은 비젼은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다윗은 거절된 그의 꿈을 포기하고 말았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절대로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죽을 때까지 성전에 대한 꿈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알수 있는가 하면 다윗은 자신에게 갑자기 들어오는 물질들,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을 어떻게 했는가 하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준비하는 것으로 다 표현했습니다. 다윗은 대상22장에 보면 “ 다윗이 명하여 이스라엘 땅에 우거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못에 쓸 철을 한없이 준비하고 또 심히 많아서 증수를 셀수 없는 놋을 준비하고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다윗이 가로되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열약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2-5)
어떻습니까! 다윗이 포기했습니까! 성전에 대한 꿈을 버렸습니까! 하나님이 거절했다고 모든 것을 손놓아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원대한 꿈과 비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모아서 준비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아들의 손에 의해서 지어질 성전이지만 그는 심지어 성전 문짝의 못 하나까지도 준비했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모습을 크게 기뻐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전무후무한 왕으로 세워주시고 놀랍게 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살아가다 보니까 나그네의 삶을 살게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발령이 나면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떠나야 합니다. 사실 일본에 그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주인의식이 없이 언제나 떠날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교인들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나는 잠시 여행으로 왔습니다. 나는 공부하러왔습니다. 나는 돈벌려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비젼을 갖는다 해도 나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비젼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주 은혜 받고 가면 됩니다. 라는 마음으로 앉아있는 분은 없습니까! 내가 이룰 수 없어도,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떠나기 전날까지라도 그 비젼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헌신할 때에 그 놀라운 비젼은 여러분의 것이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조립만 하지 않았지, 사실상의 모든 건축은 다윗의 손의 의해서 준비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비젼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저는 다윗의 비젼을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다윗이 생각했던 비젼의 출발점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의 비젼의 출발점이 사람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출발점은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비젼에는 하나님의 거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인간적인 일들이 가미되지 못 하도록 아무리 다윗이라 할지라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거절하실 것은 거절하십니다. 그러므로 비젼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비젼을 들고 서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 자세,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그 마음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없이 그에게 복을 내려주셨고 다윗은 그 복을 자신의 포기할 수 없었던 하나님을 향한 꿈과 비젼을 위해서 끝까지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를 가장 위대한 왕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비젼은 결국은 그의 아들을 통해서 성취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모습 속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갖는 거룩한 비젼들을 이루기 위해서 날마다 성결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비젼에 합당한 믿음에 서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놀라운 비젼을 맡기시고 이루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