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세미한 음성 왕상19:9-18

장경태 2010. 7. 31. 16:44

세미한 음성                   열왕기상19:9-18             09. 6. 21

사람이 살다보면 고독할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 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겉잡을 수 없이 방황하게 됩니다.
고독하면 먼저 육체적인 고독이 있습니다. 건강할 때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하며 살아 왔습니다 만은 육체에 질병이 찾아오면 쓸모 없는 사람으로, 귀찮고 지겨운 존재로 스스로를 부인하는 고독에 들어갑니다. 두번째는 정신적인 고독입니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전부가 실패요, 완전한 실패임을 시인해야 하는 순간 고독이 밀려옵니다. 통계에 의하면 의사들 특히 정신과 의사들이 자살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남의 문제는 잘 해결해 주면서 정작 자신의 문제에 부딪히면 완전히 열등생이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랍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고 절망할 때에 밀려오는 고독입니다.
세 번째로는 영적인 고독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되는 이 고독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잃고, 가정을 잃고, 친구를 잃고, 명성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있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마저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대적으로 여기시며, 나를 외면하시니 이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 밖으로 밀려난 고독, 버림받은 고독, 이는 가장 절실하고도 종말적인 고독입니다.
우리는 이런 고독을 이겨내야 합니다. 나 혼자만 이라는 고독을 이겨내야 합니다. 특별히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경제일교회라는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인하여 우리는 깊은 가족이 된 것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아파해 주고, 기뻐 해줄 수 있어야 한 식구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교회를 만들어 나갑시다.
그런 의미로 오늘 엘리야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깊은 고독 속에 있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으켜 세우시는가를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한사람으로 인하여.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엘리야는 기적의 대명사처럼 불려지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엘리야가 행한 많은 기적 중에서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기적을 들라면 갈멜산에서의 바알의 선지자850명과 엘리야 혼자서 대결을 벌렸던 그 일입니다. 단을 쌓아놓고 하늘에서 어느 신이 불을 내리는가 대결해보자, 그래서 불이 내리는 신이 진짜 신이다. 라는 것을 증명해 보자는 영적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이 싸움에서 엘리야의 제단에 하나님은 불을 내리셔서 대승리를 거두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에 3년6개월 동안 가물어서 메말라 있는 땅에 그의 믿음의 기도로 큰비를 내리게 하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능력 면에서나 선지자로서의 권세 면으로나 뒤지지 않는 놀라운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기적의 주인공인 엘리야가 오늘 분문 에서는 한없이 무너지는 모습니다.
그 기적의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무너뜨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름이 아닌 한 여인입니다.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던 여인 이세벨의 말 한마디가 엘리야를 사정없이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19장2절에 보면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고 엄명을 전합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가 금방 보인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3절에 보면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라고 합니다. 그는 살기 위해서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라고 합니다. 저가 하나님 앞에 죽여달라고 합니다. 불과 몇 일전 만해도 그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었습니까?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비를 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망하고 죽여달라는 사람입니다.
심리학에서 낙인효과 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자꾸만 강조하게 되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여자들이 결혼 만 하면  남편을 자신이 원하는 작품으로 만들어 보려는 강한 사명감을 발동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그 남편을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 최고의 신랑감으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잔소리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모르는 것은 그 잔소리가 오히려 남편들의 귀를 막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아무리 좋은 권면 이라 할지라도 남편에게 잔소리로 비춰지면 남편은 아내의 말을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내에게 분노의 감정을 터뜨리게 됩니다. 
아내로서는 남편의 행동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그러한 잔소리는 자신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고 그러한 잔소리는 곧 자신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는, 아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라 단정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아내들은 남편을 향한 대단한 사명감으로 남편의 이러, 저런 일에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내가 시키는 데로 해! 하면서 본격적으로 나오게 되면, 결국 그 결과는 피차간에 커다란 불행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피그말리온 효과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로 잘하게 되는 행동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이용해서 남편을 기분 좋게 성공시켜 가지만, 지혜 없는 아내는 낙인효과 를 이용해서 남편을 망쳐버리고, 자신도 망쳐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말입니다.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을 망칠 수도 있고, 성공 시킬수도 있습니다.
지금 엘리야는 말 한마디에 쫒겨 가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세벨은 엘리야를 쫒아 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연약함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한사람이 독기를 품고 내뱄은 말은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입니다.

2. 주님의 음성으로 인하여.
그러나 여러분 이런 엘리야가 이제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어찌하여 여기 있는냐?” 라는 하나님의 책망의 소리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있어야 할 자리가 틀렸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을 찾았던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 엘리야는 이세벨의 말에 쫒기고 있습니다. 왜요, 자기의 생각에는 이세벨은 악녀중의 악녀이기 때문에 보통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좀더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산을 찾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오늘 물으신 것입니다.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때에 엘리야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0)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항변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열심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는 하나밖에 남지 않는 자신까지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그럴수 있느냐! 는 말이지요. 그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십니다. 엘리야는 기대감에 젖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내게 뭘 보여주시는가 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기대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자기의 정의로움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나서는 상대방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감을 가질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상대방이 망하는 것을 기대하고, 이제 하나님이 너를 가만히 두는가 보자! 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분노를 삭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큰 지진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큰불을 보내십니다. 엘리야는 야!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보다!, 이것으로 하시는가 보다! 라는 기대감으로 자세히 보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람으로도, 지진으로도, 불로도 응답 지 않으시던 하나님께서 세미한 소리를 엘리야에게 들려주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엘리야는 큰 바람 속에서 위엄 있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고, 큰 지진 속에 두려움의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고,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는 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 흥분 속에 있는 엘리야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십니다. 엘리야의 기대감을 꺽으십니다. 지금 니가 잘못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라고 다시 되물으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때로는 이런 착각 속에서 신앙생활을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커다란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 암 덩어리가 기도한번에 녹아지는 그런 역사를 기대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교회를 안 나오냐고 하면 교회 나가도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안나간다고 합니다. 교회만 가면 눈물이 펑펑 나든지, 설교를 들을 때에 마음속에 엄청난 감동이 일어나고, 목사님이 기도하면 사람들이 나가떨어지는 그런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을 체워 주는 곳이있는데 그곳은 이단들의 집회입니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단들이 부흥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의 기대감을 체워 주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세미한 음성은 귀담아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그 세미한 음성은 곧 성경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입니다. 이 성경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기대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기 위해서 바람과 지진과 불을 먼저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으면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평소에 우리목사의 설교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그 설교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게 됩니다.

3. 사명을 인하여.
하나님은 그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엘리야가 있어야 할 곳을 알려주십니다. 지금 엘리야가 있어야 할 곳은 호렙산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아직 그에게는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가 도망 왔던 곳으로 다시 돌려보냅니다. 15절 이후에 보면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으로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에후 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 에게 기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 되게 하라 이것이 엘리야 에게 다시 부어주시는 사명입니다. 즉 그의 사명은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오늘날 성도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명이 있다면 제자 삼는 사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 에게 계속해서 말하기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18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 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혼자가 아니고 칠천이 더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혼자서 외롭게 감당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와 함께 할 동역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너를 도울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또 우리를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외로이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외로워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 혼자 당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사명의 길에는 반드시 주님께서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무엇 때문에 낙심합니까? 무엇 때문에 아파하십니까?  지금까지 힘껏 살아왔지만, 강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한 사람이 무너지는 데는 너무 어이없는 부분에서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억울한 것입니다. 그것이 서러운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부도가 날 때에 엄청난 돈이 없어서 부도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단돈 몇만엔이 없어서 부도가 나는 것입니다. 큰 덩어리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다 모았는데, 단돈 몇 만엔을 마지막시간까지 대지 못해서 부도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러움은 더 큰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와서 따지기도 하고, 하나님이 크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 때가 있지만,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엘리야가 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엘리야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음성이 엘리야를 다시 살려주었습니다. 그 음성이 마지막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음성이 엘리야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에서 불수레를 통해서 데려가신 것입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을 상고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마지막까지 달리게 하는 줄 믿습니다.
개구장이 어린아이가 정원에서 놀고 있는데,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연못 밖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돌을 들어서 내리 치려고 할 때, 갑자기 그 아이의 마음 속에서 "그러면 안돼!"라고 말하는 분명한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번도 그런 음성을 들었던 적이 없는 그 아이는 깜짝 놀라서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내가 거북이를 돌로 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그러면 안돼'라는 커다란 말소리가 들렸어요. 그것이 누구소리지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르지만, 엄마는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는단다. 네가 그 음성에 순종하면 그 음성은 점점 분명해지게 되고 너를 올바른 의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란다. 그러나 네가 그 음성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면 점점 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될 것이고, 너는 어두움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란다. 네 생애는 너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그 작은 소리를 듣는데 달려 있단다"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세미한 음성은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일에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 소리를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 한 주간 여러분의 마음을 말씀 앞에 내려놓으시고 고요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귀에도 분명히 주님이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이 들릴 줄로 믿습니다. 바라기는 그 음성 따라 하루 하루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