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마22:37-40
나 때문에! 마태22:37-40 09.8.2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오늘 여기에 앉아 있으십니까! 누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까?
가장 행복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엄마배속에서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엄마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제일 좋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모태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모태 신앙인 은 부모의 신앙의 대를 이어갈 사람들이지만, 중간에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개척자가 되어서 자신의 신앙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계승해 주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전도를 받아서 교회에 온 사람들입니다.
저는 처음에 교회에 발을 내딛은 것이 초등학교4학년 때입니다. 그 시절은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성경학교를 하는데, 교회에 가면 스케치북도 주고, 노트도 주고, 사탕도 준다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처음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누군지를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는 생각이 안 나는데, 교회에서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은 생각이 납니다. 무척이나 친절했고, 예쁜 여자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내내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것이 저의 교회를 향한 첫발걸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었던 것은 언제입니까? 많은 사람의 경우가 처음에 교회에 발걸음을 내딛기기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지난번에 다른 교회에 다니시는 어떤 한분을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은 교회가 그렇게 가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교회를 꼭 가야지! 하고 양복을 깨끗하게 입고, 교회에 갑니다. 그런데 앞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사람만 보면 그 앞을 그냥 지나가고 말더랍니다. 그 사람이 교회에 한번 들어와 보셔요! 하고 말 좀 걸어줬으면 좋겠는데, 몇 번을 가고 말을 걸어주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지 못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누군가가 자기를 이끌어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가 아는 한사람의 성실한 모습 때문에 그 모습 때문에 스스로 마음이 동해서 교회에 나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하고 친한 사람이 날마다 교회 가자고 해서, 마지못해서 끌려 온 사람도 있고, 부인의 등살에 못 이겨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억지로 교회에 나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주일이면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데 자기만 빼고 모두가 교회를 나가니 자기도 교회에 가는 길이 온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되어져서 교회에 나온 분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로 좋은 사람입니다. 정말로 가족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혹 믿지 않는 남편이 있다면 이런 일이 나에게도 생기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나름대로 이런 저런 이유 이유들이 있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나를 교회로 이끈 그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1. 교회의 존재이유
여러분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 교회는 뭐 때문에 존재해야하고, 또 존재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교회는 사회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사회운동에 적극 나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데모를 주동하기도 하고,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바꾸려고 그곳으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분들이 외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사회구원을 외침니다. 억울한 환경 속에서 인권이 유린당하는 그 속으로 뛰어들어서 그들을 대신해서 싸우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위해서 어떤 이는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고 있는 이들의 의식을 바꾸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의식을 개혁시키는 일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교회가 했던 역할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하고 함께 신학을 공부했던 많은 친구들이 이런 일들을 했었습니다. 80년대에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온통 교회의 관심이 사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마치 선지자들처럼 뜨거운 사명감으로 열정을 뿜은 신학도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민주화를 위한 모든 사회적 잇슈의 제공과 그 근거들은 신학도들이 다 제공을 했기에 어느 신학대학은 한해동안 신학과가 정부에 의해서 없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는 예배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다. 물론 교회의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성도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예배입니다. 교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예배를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교회의 존재이유 중에서 가장 커다란 이유가 됩니다.
어떤 이는 교육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진정한 교육의 장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학교사역에 유난히도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미션스쿨이라는 이름의 학교들은 거의가 다 교회에서 지은 학교들입니다. 학교는 국가의 미래를 결정 짖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국의 연세대학과 이화여대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도 동지사대학을 비롯하여 메이지대학, 아오야마대학, 세이가꾸인대학, 상지대학, 립교대학 등 많은 대학들이 기독교선교사들이 지은 학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중에서 많은 경우들이 기독교정신으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서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건설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전도하다 보면 의외로 미션스쿨을 다녔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채플시간에 찬송가도 부르고 성경도 읽었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그들은 기독교전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하는 사역들이 학교를 세우는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튼 교회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세상에 반드시 존재해야하고 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존재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영혼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갈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지옥입니다. 이 땅에 교회의 존재의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옥을 향한 발걸음을 천국을 향한 발걸음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교회의 가장 강한 존재의 이유입니다. 교회가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그곳에 새롭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으면 그 교회는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아무리 좁고, 열악하다 해도 그곳에 새롭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그 교회는 존재의 가치를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의 존재이유도 이 지역의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서 요리방을 하는 이유도, 바자를 하고, 한글교실을 하는 이유들도 바로 긍극적인 목적은 그런 것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발걸음을 교회에 내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에는 요리방을 통해서도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도 있는 줄로 믿습니다.
양궁을 하는 선수들에게 있어서 표적은 언제나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한가운데입니다. 한가운데가 가장 높은 점수입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갈수록 점수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 표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점수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가장 얻고 싶은 점수는 무엇이겠습니까? 화살을 어디에 정조준하고 쏘겠습니까? 10점 짜리 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해야할 많은 일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10점 짜리 는 영혼구원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교회의 존재이유도 바로 그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10점 짜리 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요!
2. 하나님 사랑
영혼구원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사랑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그것은 나를 구원해주신 구원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죽었던 죄 많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그분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치루시고,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살려주시고 구원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나를 구원해주신 그분의 은혜를 생각하면 오늘 나의 삶 속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이 주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웃고 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다닐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감격입니다. 우리에게 이 구원의 감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38절에 보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할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더욱이 그 은혜가 자신의 목숨과 관계된 은혜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은혜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마도 한평생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정말로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온 삶은 그분에게 집중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뭐라고 해도, 그 말에 순종하고 귀찮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이십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리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면 우리를 이상하게 볼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길래 내가 사랑을 하냐! 라고 오히려 우리를 핀잔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한사람은 시키지 않아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에게 이런 구원의 감격이 다시 살아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이 이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야 합니다. 다른 이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본인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뜨거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3. 이웃사랑.
그리고 본문 39절에 보면“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둘째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계명이라고 함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된다면 그것은 계명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반드시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이것도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싫은데 억지로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사랑도 저절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 이든지요! 내것은 아깝고 남의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것이다 생각하면 아낄려고 하고, 어디 기스 라도 날까봐 조심, 조심하고 다룹니다. 그런데 남의 것이라고 한다면, 기스가 나든지 별생각이 없이 씁니다. 아낄려고도 안 합니다. 처음에 새차를 샀을 때 얼마나 조심, 조심 다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차를 타면 그 마음이 들 합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탑니다. 문도 꽝꽝 닫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 것과 남의 것, 어느 것이 소중합니까? 내 몸과 남의 몸 어느 쪽이 더 소중합니까? 자기가 아픈 것은 조끔도 못 참으면서 다른 사람은 좀 아파도 참으라고 합니다. 오너와 종업원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너는 한가지라도 아끼려고 하지만, 종업원은 없으면 또 사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 즉 우리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라 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 것을 아끼는 것처럼, 내 몸을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것도 그렇게 아껴주고, 그렇게 사랑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사랑이 깊은 사람은 이런 것이 그렇게 어렵지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예수를 믿는 일이라면 욕을 좀 먹어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습니다. 싸움을 걸어와도 그것을 싸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내 것을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습니다. 알면서도 속아줍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믿을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어떤 댓가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한사람이 나 때문에 예수 믿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럴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 감동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여주는 행동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 속에 얼마나 진실이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우리의 교회는 우리주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스스로를 깊이 반성해 봅니다. 우리는 나 때문에 세상이 좋은 일이 생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은 나 때문에 누군가가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믿음 때문에, 내 말 때문에, 내 행동 때문에, 그리고 내 기도 때문에 누군가가 예수님 앞에 돌아오고,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는 감격을 맛 본적이 있습니까?
이 땅의 모든 성도들에게는 이런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이런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영혼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것도 그 교회의 구성원들 때문에, 그 교회의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그 기도 때문에,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고, 복음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 때문에, 성도들이 세상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복된 사회, 국가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이 교민사회, 그리고 유학생들의 학업의 현장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본 땅이 나 때문에, 변하고,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나 때문에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구원을 얻게 되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