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사랑하는 이를 찾아서 아3:1-11

장경태 2010. 7. 31. 16:49

사랑하는 이를 찾아서            아가서3:1-11            09.8.9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느 병원에서 한 산모가 쌍둥이를 조산으로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따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의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자, 의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선생님 이왕에 며칠 있으면 죽을텐데 제 형하고 같이 인큐베이터에 있게 하지요.”라고 말했답니다. 병원법으론 안 되는 것이지만, 죽을 아이니까 한 인큐베이터에 형과 동생을 나란히 눕혀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이 오른손으로 동생의 목을 감아주었고, 하루가 지나자 동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산아지만, 형이 동생을 사랑으로 포옹해 줄 때, 놀라운 치유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며칠 후에 건강해져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사랑은 상처를 치유하고,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러브스토리가 바로 성경입니다.  그 러브스토리 중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아가서입니다.
이 아가서는 솔로몬이 썻는데, 솔로몬이 술람미여인이라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의 감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아가서는 기록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아가서에서 솔로몬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하고 술람미여인은 성도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을 통해서는 솔로몬의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랑하는 이를 찾아서.
오늘 본문에 1절에서 4절까지의 모습을 보면 사랑하는 이를 찾아서 헤메이는 모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술람미여인이 자기의 사랑하는 이를 찾아서 여기 저기 헤메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이를 찾아 헤메이는 안타까운 심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찾았었는가 하면, 밤중에 城을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 이사람, 저사람에게 내 사랑하는 이를 못 보았냐고 물어보면서 헤메이는 한 여인의 안타까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배경은 솔로몬이 젊었을 때에  술람미의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 술람미여인 또한 솔로몬을 만나자 마자 서로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솔로몬이 이 여인에게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아가서의 내용전체를 보면서 깊이 느낄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 여인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1장6절에 보면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즉 그 여인은 백옥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태양에 그을렸습니다, 또한 포도원에서 일을 했으므로 그의 복장과 피부는 거칠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예쁜 공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그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오늘 솔로몬이 발견한 아름다움은 그 여인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입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니까. 외모의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부부들은 신랑이 멋있게 생겼으면, 그 신부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고 보면, 실망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어떤 잘생긴 남자가 결혼을 앞두고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주례비를 얼마를 드려야 될지를 고민하다가 목사님께 솔직하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주례비는 얼마 정도가 좋을까요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신부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만큼 주게나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결혼식날 신랑은 목사님께 10만원을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예쁘지 않아도 사랑하는 신부인데, 이것밖에 책정을 안했나 하고 드디어 결혼식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계속해서 신부의 얼굴이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고 목사님이 주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결혼식을 끝낸 뒤 신랑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랑에게 5만원을 돌려주면서 말했습니다.  자, 이거 거스름돈일세!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반드시 외모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솔한 아름다움이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습니다.  한번 사랑에 빠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두 사람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어떻게 여자가 체신머리없이 저렇게 돌아다닐 수가 있는가? 하면서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여인은 한마디로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자면 사랑에 눈이 멀었다 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게 되면, 자신의 자존심도 버리게 되고, 그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만 있다면, 어떤 고생도, 험한 일도, 그리고 사람들의 조롱도 참아낼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오늘 이 여인의 사랑은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랑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을 향해서 우리는 얼마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찾아 헤메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과 가졌던 사랑의 시간이 있었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주님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습니까?  요한 계시록의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렸을 때 그들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계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게 옮기리라” 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가 옮겨진다는 것은 엄청난 징계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었어도 주님이 보시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입니다. 지금입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오늘 여인이 사랑하는 이를 찾아 헤메이는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하는 예수님을 향해서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우리의 첫사랑이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예수님만 생각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행복하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했던 그 사랑을 우리 이 한 주간에 다시 찾아 나서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의 꿈
5절에 보면 꿈과 같은 사랑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사랑하는 이를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솔로몬이 여인들에게 부탁하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
이 말속에 얼마나 사랑의 감정이 깊이 묻어져 나오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이와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잠든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맛있고 달콤한 잠자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지켜주고 있는 솔로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가 있습니까? 바로 우리가 예수님과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에 주님과의 그 사랑을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옥합을 가지고 온 여인 이 그 옥합을 깨어서 향유를 발라 드리는 그 모습은 여인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그 숭고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제자들이 방해를 놓았습니다. 어떻게 방해했습니까? 마26:8-9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겟도다 하거늘”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의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 여인의 품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제자들은 더욱 방해를 놓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마26:10-11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라고 더 이상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모습은 더욱 감동을 줍니다. 주변의 그런 따거운 시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에 들리는 온갖 비난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향한 그 모습이 변치를 않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가치를 따집니다. 그 돈이 얼마인데, 그것을 팔면 뭐를 할 수 있는데 하면서 그 돈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대체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면서 남들의 것으로 생색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돈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솔로몬은 여인의 잠을 깨우지 말 것을 말합니다. 시편에 보면 127: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우리에게 잠을 주시는 주님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편안한 잠은 사랑하는 이의 품에 있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길을 일어버린 아이가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또 긴장 속에서 울며 헤메이다가 부모의 품에 안길 때 아이는 그 품안에서 모든 긴장감이 사라지고 그 품안에 잠들어버리는 모습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은 바로 사랑하는 이의 품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렇게 우리를 품으시려고 했습니다.
마태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라고 우리를 품으시고 예수님은 애를 쓰셨습니다. 그분의 품안에 있을 때가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 품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평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가장 행복할 때는 우리가 주님의 품안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오늘 솔로몬은 그 여인을 지켜주려고 애를 씁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분의 품안에서 지켜주시려고 오늘도 성령님을 통해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3. 사랑의 기다림.
6절부터 11절의 모습은 이제 신부는 신랑이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모습니다. 신랑 되는 솔로몬이 그 연(輦)즉 왕의 가마를 타고 용사들을 거느리고 신부를 맞으러 오는 그 모습은 마치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날에 우리를 맞으러 천군 천사를 대동하고 오시는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싫은 순간은 저녁에 헤어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 헤어짐이 싫어서 빨리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신랑으로 우리에게 오실 때에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되는 영원한 행복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다신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데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성경에서는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 마태복음25:1-11까지를 보면 지혜로운 열처녀의 비유 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결혼풍습은 낮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 올립니다.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날이 선선해지면서부터 밤을 새워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그런데 성경에 보면 10처녀 중에서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리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축하행렬에 참여하기 위해서 등을 가지고 갔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도 충분히 준비를 해서 가져 갔습니다.  주님 당시에 여자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10대 중반에 결혼을 했습니다. 왜냐 하면 이때당시의 평균연령이 40대 중반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회 중에 축하의 의미로 횃불을 켰습니다. 이 행사의 절정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이었습니다. 신랑은 장인이나 장모에게 가서 신부를 위해 지참금을 지불하고 결혼 약정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랑은 단장하고 기다리는 신부에게 가서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에 신부집에서는 열 처녀로 구성된 들러리들이 그 일을 돕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 열 명의 들러리들은 일반적으로 신부 또래의 절친한 처녀 친구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결혼식에 가보면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끼리만 따로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들을 볼 수 있는데, 당시에는 신랑이 신부의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벌리는 것이 결혼식의 아주 즐거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신부의 친구들이 거기에 걸 맞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옷도 깨끗한 것으로 입고, 머리도  단장하고, 화장도하고 몸을 단장하고 결혼식의 참여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중요한 준비는 오늘날과 같은 전기가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밤중에 열리는 축제에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준비였습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기름을 많이 준비한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신부도 결혼식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것처럼, 그리고 함께 잔치에 초대받은 그의 친구들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부들은 결혼을 앞두고 신부수업을 따로 받습니다. 음식 만드는 것과 살림살이에 필요한 모든 것과, 또 시댁 어른 모시는 법, 등을 부모로부터 배우든지, 아니면 학원에 가서 배우든지 합니다. 어떤 분은 결혼을 위해서 꽃꽂이까지 배웠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임신한 부인은 10달후에 만나게 될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서 특별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이것을 태교라고 하지요. 말수도 줄이고, 좋은 말을 하려고 하고, 좋은 책도 많이 보고, 좋은 음악도 듣고, 좋은 생각을 하고, 남에게 해가 되는 말을 하지 않고 성경을 자주 일고, 그리고 많은 기도로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까? 오늘 지혜로운 여인은 기름으로 준비했다고 했는데, 우리에게 있어서 기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성령의 충만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서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기도를 많아 하는 것만을 가르키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성령이 충만한 상태는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성도가 성도다운 삶의 모습을 가지는 것이 성령의 충만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내용이 바로 성령의 충만한 상태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의 솔로몬과 술람미여인의 사랑이야기는 바로 예수님과 우리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런 사랑으로 닿아 오시는데, 주님의 그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은 짝사랑 입니다. 한쪽에서만 일방적인 사랑을 하는 것인데, 그 일방적인 사랑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에 이제는 반응을 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온 생명을 희생하면서 사랑해 주셨는데, 이제는 우리도 주님께 우리의 그 사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신랑으로 오실 주님을 오늘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으로, 희락으로, 화평으로, 오래 참음으로, 자비로, 양선으로, 온유와 절제로 준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맞으러 오시는 그 날에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