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의 말씀

주의 길을 예비하라. 막1:1-8

장경태 2010. 7. 31. 17:27

주의 길을 예비하라.       마가1:1-8              09.11.29  

오늘부터는 교회절기상으로 대강절이라고 합니다. 대강절은 아기 예수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과 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강단의 색깔은 보라색으로 정합니다. 보라색은 슬픔과 통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대강절, 사순절 에 사용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을 기다리면서 스스로 나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를 뒤돌아보면서 회개하면 경건하게 믿음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만 하면 자신들의 꿈대로 영원한 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고 영원히 행복을 누리면서 살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삶의 현실은 더욱 어렵고 비참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유대는 주변의 거대한 국가들 때문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은 또다시 로마라는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어떤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영적이 기갈속에 있었습니다.  그 세월이 약400년이나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침묵하시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하기를 우리가 버림을 받은 것인가! 라는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압제자에 의한 고통보다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고통이 더욱 컷을 것입니다.
북한선교를 하는 한 단체가 있는데 그곳에서 했던 방법 중에 하나가 풍선 속에 성경구절이 적혀진 것을 넣어서 북한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을 6개월정도 하였을 때, 북한에 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는 한 단체에서 이런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북한의 한 마을에서 아이가 학교에 가려는데 울타리에 주황색 풍선이 걸려 있더라는 겁니다. 아이가 그걸 주워서 어머니에게 주니까, 놀란 어머니는 학교에서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기독교인이었던 친정 어머니에게 보여줬답니다. 그러자 친정 어머니는 ‘우리가 잊힌 줄 알았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고, ‘언젠가 국군이 이곳에 오면 이 풍선을 들고 나가자’고 했답니다. 북한 지하교인들은 남한이나 외부 세계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성경 삐라를 통해 자신들이 잊히지 않았다고 다시 한 번 신앙의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잊혀져 버렸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할 때, 밀려드는 고독감과 슬픔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그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느날 유대 광야에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요단강이 흐르는 광야에 살면서 옷은 약대 털옷이고, 음식은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요한의 등장은 우연이 아닙니다. 구약 이사야 40장3,4절에서는“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메워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는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라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세례요한이 이 일을 위해서 광야에 등장한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세례요한이 외친 음성을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복음의 시작.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라고 마가복음을 출발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일년의 시작은 1월1일부터가 아닙니다. 대강절이라고 부르는 오늘부터 교회력은 시작이 되어집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서 교회력이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세계의 역사의 분기점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이전의 세계를 BC 즉 Before Christ 라고 합니다. 그리고 서기력이 되고 있는 AD즉 Anno Domini 라고 하는데 이것은 라틴어로 그리스도의 날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쓰고 있는 서기력이 바로 AD2009년 즉 그리스도께서 오신지 2009년째 된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곧 역사의 분기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삶과,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의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삶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20에서는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라고 하고 고린도후서5:17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을 하고 봉사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적이 없고 그래서 여전히 나의 삶의 방식이 자기중심적이고, 예수님은 늘 손님을 대하듯이 한다고 한다면, 나는 아직도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나는 아직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첫출발도 못하고 있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간증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일과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증입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지금 예수님은 나의 마음속에서, 또는 내 삶 속에서 어떻게 계시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출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출발점에서 가장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기 앞서서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셔서 복음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세례요한에게 주어진 사명은 본문3절에 보면 “ 주의 길을 예비하라” 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 주님이 오실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길을 걷지 않으니까 길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잡초가 나고 풀이 나고 하면서 어디가 길인지,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서 길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먼저 보내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이 누구를 통해서, 누구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됩니다. 나 혼자서, 갑자기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이끌려서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래서 그를 통해서 내 인생이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역이 세례요한의 사역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오실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기 시작했고, 오래 동안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주의 길을 예비하라.
세례요한은 무엇으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습니까! 본문4,5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이 외친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는 외침이었습니다. 강팍하게 굳어져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강한 말씀으로 망치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그들이 스스로 돌아서서 회개하게 만드는 사역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돌같이 굳어져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녹아져야 합니다. 부서져야 합니다. 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습니까! 그는 칼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유대인의 왕이 나말고 누가 또 있단 말이냐! 하면서 3살 미만의 모든 남자아이들을 죽이는 엄청난 학살을 했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돌같이 딱딱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이했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이런 사람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여러분 주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사역이 바로 그런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례요한에게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어느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영권을 주셔서 그의 말을 듣는 자마다 반항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강력했습니다. 심지어 로마의 군병들까지도 그의 말을 받아들이게 되는 역사가 나타났고,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고 했지만 군중들이 무서워서 죽이지 못하고 있었을 만큼 하나님은 강한 영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회개시키는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강한 역사 하심이 있을 때, 사람들이 그 앞에서 꼬꿀어 지고, 엎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2천년전의 예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 하시면 그 모든 것이 믿어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역사 하심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또 마태복음 16장 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는데 이것도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고 고백한 것이지 혈육으로 안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와같이 성령의 사역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수 있도록 역사 하시는 부분들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예수 믿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수도 있고, 그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안티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이 유행을 합니다. 그들이 왜 안티가 되었을까요! 대부분은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가 싫고, 교인들이 싫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교인들이 되어지면 우리는 주님의 길을 평탄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험악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의 길을 막아버리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요한이 했던 것 같은 주님의 길을 평탄 케하는 사역을 위해서도 우리의 삶의 모습이 경건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세례요한의 복장에 대해서 특별히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본문6절에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하면서 그가 당시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는 말이 세상사람들이 들을 때, 좀 다르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왠지 믿음이 가고, 그의 말이라면 믿어볼 만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당시 요한의 이런 모습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적인 모습이었고, 그리고 수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나타난 스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 속에서도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알았고, 역할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면에서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기를 본문7절에 보면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매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고 고백합니다. 즉 나의 사역은 내 뒤에 오시는 그분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기까지라는 것을 말하고, 또 그분과는 자신을 비교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즉 나는 그분의 신발끈도 풀지 못할 존재라고 고백합니다.

3. 메시야를 향하여.
그는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향해서 사역을 했던 선지자입니다. 자신의 모든 초점을 예수님께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많은 그의 제자들이 예수께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서 고백한말이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무엇을 생각해도, 어떤 일을 해도, 교회에서 모든 프로그램들을 향할 때에도, 주님께로 향하는 것들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 교회의 표어가 무엇인지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주께로 향하는 교회”입니다.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씩 자신의 삶의 방향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나!, 이런 것들을 중간, 중간 점검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방향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최종목적지까지 결국은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빠르든지, 늦든지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이땅의 모든 성도들의 삶의 방향은 그리스도에게 향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요한의 그의 방향이 분명했습니다. 그의 사역의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는 자신의 헤롯왕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지만, 그는 마지막 구약의 선지자로서 메시야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부터 대강절이 들어가는데, 세상은 벌써 성탄절무드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이 연말에 성탄절을 이용해서 돈벌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성탄절을 준비하고 그날을 예비하는 이들이 되겠습니까! 오늘 세례요한이 했던 사역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할 사역자의 한 사람으로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때문에 이번 성탄절에 예수 믿는 사람이 생겨나도록, 나 때문에 주님을 떠났던 영혼들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도록 한달 남은 성탄절까지의 신앙생활의 방향을 그렇게 잡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가기로 작정하신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성도의 삶의 모습입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도 이어지는 복음의 도구가 되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땅에 안티기독교인들은 사라지고,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놀라운 천국을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서 천국을 맛보아야지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뜨겁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서도 맛보지 못한 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소망할 수 있겠습니까!  이 대강절의 계절만큼이라도 우리가 회개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을 통해서 천국을 맛보아 알아서 예수그리스도 만나서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