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눅8:22-25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누가8:22-25 10.2.7
미국의 “로저 밥슨”이라는 기자가 아르헨티나의 한 정치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 받는 그 지도자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밥슨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럽의 백인들이 먼저 정착한 곳은 북미가 아니라 남미였습니다. 지하 자원과 물도 북미에 비해 부족하지 않습니다. 기후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왜 북미가 남미보다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밥슨 기자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지도자가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남미는 스페인사람들이 황금을 구하러 찾아온 땅이다. 그러나 북미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을 위해 찾아온 땅이다.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1923년에 미국의 시카고에 있는 한 호텔에서 당시 미국 최대 부호였던 9명이 자리를 같이했을 때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들이 '20세기의 신화'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때는 황금 만능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돈만 번 것이 아니라 큰 회사의 사장들이었기 때문에 교육도 많이 받았고 명성도 있는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표준으로 볼 때는 정말로 성공한 사람들이었고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25년 후인 1948년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는 미치고 셋은 파산해서 빛에 쫓겨 도피 생활을 하다 죽었으며 둘은 출옥해서 자살 직전에 있었고 셋은 자살했습니다. 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인생의 궁극 목표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애의 기로 어디에선가 주님의 내게로 오라는 음성을 거부하고 다른 것을 목표로 삼아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거나 허무주의로 살고 있습니다. 동양 최대의 성자이고 인도인의 태양이었던 간디도 죽기 전에 자신은 괴로운 사람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부지런히 뛰어 보았지만 그것은 궁극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사람은 세상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멸시를 받은 사람이 되었든지, 무시 받고 천대받는 사람이었든지 상관없이 그들의 삶은 예수 만난 이후의 변화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이 되었고, 그들의 행한 일들도 기록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 자신의 가장 귀한 물건이었던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던 여인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한 일도 함께 전해지리라! 하면서 귀하여 여겨주셨던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벌써 2010년이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고 2월이 되었습니다. 한국인은 작심삼일이라고 결심도 잘하지만 포기도 잘한다고 하는데, 2월의 첫주에 다시 한번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를 확인하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호수 저편으로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사역을 하시다가 다음사역지로 장소를 옮기시기 위해서 배를 타시게 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도 피곤하셨는지,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고는 그만 잠이 들어버리신 내용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목적지를 설정해주셨습니다. 그곳은 호수 저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곳에만 머물러서 사역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온 유대땅을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못 가실 곳은 어느 한곳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사마리아인의 땅에도 거침없이 들어가셨습니다. 늘 제자들과 함께 이동하실 때는 목적지를 설정하시고 다니시던 것을 봅니다.
목적에는 큰 목적이 있고, 작은 목적들이 있습니다. 즉 비젼을 가질 때는 큰 비젼이 있고, 그 큰 비젼을 이루기 위한 작은 비젼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의 최대의 목적지는 갈보리였습니다. 그곳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비젼이었고, 목적지였던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예수님은 쉬임 없이 유대 땅을 돌아다니셔야 했고, 그때 그때마다 다음에 갈곳들을 제자들에게 설정을 해주셨던 것을 봅니다.
18세기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25세에 예수를 믿고,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출세의 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대영제국의 노예제도를 폐지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정치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30세에 영국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후로 오직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그가 48세 되던 해, 영국의회는 노예무역폐지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노예폐지의 비전을 세운 지 35년 만인 62세가 되던 해에 노예제도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그는 64세에 정계에서 은퇴하였고, 그의 나이가 72세 되던 해에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해방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예해방법이 통과된 지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오로지 노예제 폐지라는 한 가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희생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나를 일평생 재촉하신 이는 주님이셨다고...
여러분의 큰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이 일본에 오셨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 여러분이 정한 작은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우리는 이런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이 진행이 되어지고, 행사가 이루어집니다. 이번에 지방회의 뜻있는 목사님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재일대한기독교회에 속한 교회들이 동경교회와 몇 교회를 빼면 다 연약한 교회들입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 연약하고 늘 동경교회만을 의지해서 사역을 해 가는 것이 안쓰러워서 금번 4월4일 부활주일에는 좀 다른 것을 계획을 했습니다. 그동안 매년 하던 지방회 주최 부활절성가경연대회를 올해는 부활절 축제로 하자고 제안을 하고 장소도 동경교회를 떠나서 제3의 큰 홀을 빌려서 최대한 많이 한번 모여보자! 는 것이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라가와구에 있는 아라가와쌍파루 라는 곳을 빌렸습니다. 1,000명이 들어가는 홀입니다. 이곳에 우리 관동지방회 교회들이 최대한 많이 모여보자 해서 지난번 지방회 임직원회의때 각교회 참석가능 최대숫자를 적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 820명이 나왔습니다. 이제 그 일을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그 820명이 정말로 다 모일 수 있도록 작은 목표들을 세워나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전 교인이 4월4일 올 부활주일에 참석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한 것이 작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되고 싶은 꿈도 있고, 비젼도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작은 목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꿈이 꿈으로 끝이 나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작은 계획들을 많이 만들었고, 그리고 그것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겨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작은 계획들을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오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꿈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가면 여러분의 큰 꿈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주 작은 다음 목적지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는 것입니다. 명확합니다. 간단합니다. 분명합니다. 확실합니다. 눈에 보입니다. 이런 것이 중요합니다.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2. 광풍 속에서도 잠드신 예수
그리고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를 맡기고는 잠이 드셨습니다. 제자들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늘 하던 일이었고, 힘든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는 예수님이 없어도 괜찬을 것 같은 일 아니겠습니까! 하루종일 쉬지도 못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를 맡기고는 곤하게 주무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어부출신 제자들이 많이 있어서, 늘 겪던 일이기도 해서 그들도 별 생각 없이 노를 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느새 바람은 광풍으로 변했고, 자신들은 이미 호수 한가운데로 와버렸습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배 안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잘못하면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깨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겠나이다” 라고 외칩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상황이 이 정도가 되면 배가 굉장히 흔들렸을 것이고, 물이 들어와서 옷도 적었을 것인데, 제자들이 예수님이 깨실까 봐 조용조용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좁은 배 안이 난리가 났을 것인데, 여전히 예수님은 잠을 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그야말로 업어가도 모를 만큼 피곤하셔서 잠에 취해 계셨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선잠으로 제자들이 어떻게 하는가! 하고서 자는 척하고 계셨던 것일까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한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데, 요나의 이야기입니다. 요나가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타고 도망할 때에 배가 바다한가운데서 광풍을 만납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살아보려고 난리를 칩니다. 배 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바다에 던져버리기도 하고 사람들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다 최후의 방법으로 이일이 누구 때문에 생긴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제비를 뽑기 시작합니다. 그때 요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배 안에서 제일 깊은 곳에 내려가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가 정말로 잠을 자고 있었을까요! 그는 그 상황 속에서도 정말로 잠이 왔을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 속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계속해서 주무시고 계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에게는 마치 이 배를 삼키려고 덤벼드는 어떤 바람도, 광풍도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상황 속에서도 주무실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잠시 후에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아 잠잠하라! 말씀한마디 하시니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잔잔해졌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광풍이 불고, 태풍이 온다 할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배에 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것이 죽을 것 같은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의 크기가 얼마나 됩니까! 그 문제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그 문제들을 예수님은 모르고 계실까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여전히 힘들어합니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면서 사는지 모릅니다. 죽겠다! 라는 말을 어떤 사람은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한번 세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죽겠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지! 생각보다도 더 많이 할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도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라는 말을 “주여, 주여”하면서 외쳤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시는데도 제자들은 죽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댑니다.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제자들은 지금 주님과 같이 있으면서도 어떤 상황 속에서 살 것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아무리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들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제자들이 인식해야 할 중요한 것은 지금 일어난 환경보다도 지금 이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한날은 예수님께서 제자들만 따로 배를 타고 건너가라 하시고 예수님은 산에 가서 기도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밤에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있는 배를 향하여 가셨습니다. 한참 배를 저어가던 제자들이 밤에 유령을 본 것입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다 위를 걸어오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유명인줄로 착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라며 안심을 시켰지만 베드로는 의심이 들어서 확인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만약 주시어든, 나로 명하여 바다를 걷게 하소서“ 예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놀랍게 베드로도 바다 위에 서있게 됩니다. 그리고 발을 떼기 시작합니다. 그도 예수님처럼 바다를 걷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말고 바다 위를 걸었던 사람은 베드로가 유일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믿음의 사람입니까!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바다를 걷다가 갑자기 파도가 칩니다. 베드로는 파도를 보자마자 물 속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베드로의 손을 잡아 주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를 잠잠케 하시고 하신 말씀이 “너희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무엇이 평소에는 믿음이 있는 줄 알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때, 교회에 다니면서도 아이고 죽겠다! 가 됩니다. 죽게 되었다는 말은 우리의 믿음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파도 속에서도 예수님과 같이 잠을 잘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문제가 생겨도 여전히 예배시간이 되면 성경책 끼고 교회로 당연하게 올 수 있는 그리고 찬송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믿음이 생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졸지도 않으십니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면 안됩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한 우리의 삶 속에 의미 없는 죽음은 없습니다. 의미 없는 고난도, 의미 없는 슬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유가 있고, 그것 때문에 내가 살게되고, 그것이 내 인생에 놀라운 선물이 되어지는 일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한배를 타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당연히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작은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일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그저 늘 하던 대로 배를 저어서 건너가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 속에는 아무리 적은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나! 라는 사실을 주님은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까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아주 작은 문제가 생기면 “이런 것까지도 기도하나!” 하면서 쉽게 기도 없이 우리끼리 해보려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까지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작은 것 하나도 주님이 없으면 내 인생에 엄청난 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는 엄청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주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님 앞에서는 그런 것이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주님은 그앞에서도 주무실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보리를 향하여 가시면서도 하루 하루 작은 목적지를 주셔서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더불어 기억함으로 여러분의 큰 꿈을 이루기 위한 오늘의 작은 목적지를 여러분도 설정을 하시고 그곳을 향하여 갈 때에 주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잊지 마셔서 결국 우리는 호수건너편으로 건너가게 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