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3대 사명 마28:18-20
교회의 3대 사명 마태 28:18-20 설립44주년기념예배 2010. 2. 14
오늘은 우리교회가 설립되어진지 4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마치 오늘은 우리조국의 명절인 설날이기도 해서 아마도 오늘 식사는 다른 때보다 더 맛있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우리교회를 설립하신 분은 이미 작고하신 이기준목사님이십니다. 이분은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회고와 전진” 이라고 하는 이기준목사님의 설교집을 우리교회에서 낸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이기준목사님이 어떤 분인지를 조금 알았습니다. 이분은 1947년에 고 이승만 대통령께서 국가의 인재 양성을 위해서 당시 신학생 2명을 뽑았는데, 그 2명중에 한 명이 되어서 미국에 국비장학생이 되어서 공부를 하시고는 한국을 살릴 수 있는 길은 기독교교육이라는 생각을 가지시고 한국에서 교수로 그리고 1966년에 일본에 오셔서도 교수로도 섬기시면서 당시 유학생들과 주재원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시게 되었는데, 당시는 코리안채풀 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아카사카에 있는 뉴재팬호텔의 한 홀을 빌려서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도미하셔서 또 LA에서 코리안채풀을 또 설립하셨고 후에 작고하셨습니다.
이기준목사님에 대해서 들려주신 분들이 있는데, 그분은 교육에 관심이 대단히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교회의 출발도 성경공부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일이 교회의 출발이었다고 한다면 우리교회는 출발부터가 말씀으로 출발한 아주 좋은 교회입니다. 이분의 설교집을 읽어보면 “교회의 3대 사명” 이라는 제목의 설교가 있는데, 오늘의 본문말씀과 동일합니다.
참 은혜를 받았고, 그리고 동의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교회가 가져야 할 중요한 사명을 3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제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지상의 교회에게 남긴 중요한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의 내용을 지상명령이라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여러분 명령이라는 말은 반드시 해야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지요. 좋고 싫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명령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 제자삼으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고 합니다. 그런데, 명령을 내리기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너희에게 주셨으니” 라는 말입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이, 아무것도 손에 든 것이 없이 나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시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미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 주님은 그것을 통해서 해야할 일을 명령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2 제자들을 전도여행에 보내실 때에도, 그들에게 능력을 미리 주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쫒아 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미리 주십니다. 복음을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권세를 먼저 허락해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를 하면서 실패하는 이유들은 이런 하늘의 권세 없이 내 생각으로, 내 방법으로 하려고 할 때에 실패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전도를 할 때는 상대방이 무슨 힘에 끌리듯이 따라오는 경우들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늘의 권세와 능력이 임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제자들을 모아놓고는 그들에게 다른 것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기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난 다음에 그들은 정말로 불같이 일어나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아침에 3,000명이 회개를 하고, 그들이 예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들에 회개하고 예수께로 돌아오는 모습을 사도행전에서는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하면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며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41) 고 합니다. 성도의 수가 삼천이 되었다고 하지 않고 제자의 수가 삼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도 그 숫자가 구경꾼의 숫자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자의 수가 삼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초대교회를 통해서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의 마스터 하면 제자가 되는 것입니까! 제자훈련 성경공부를 마치면 제자가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어렵고, 힘이 드는, 나 같은 사람은 감히 될 수도 없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과 24시간을 함께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부름을 받은 제자들이 보여준 행동은 그들의 배를 버리고 예수를 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 간을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다닙니다. 먹으면서, 자면서, 쉬면서 예수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또 보고 느끼고, 행동하고, 기도하면서 그들의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속 에서 모든 일이 다 바르고 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실패도하고, 욕심도 가져보고, 폼도 잡아보고, 그러다가 야단도 맞아보면서 그들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위대한 일꾼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삶의 시간들은 늘 주님과 함께 하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먹는 것도, 주님이 지금 내 옆에 계시고, 나는 주님께 오늘도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다 라는 생각 속에 살아간다면 우리도 제자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이 생업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버리고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속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그냥 구경꾼에 그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냥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이었고, 구경 삼아서 다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도 보았고, 물고기도, 빵도 먹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위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 무리들 중에서 더 가까인 나온 사람들은 70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예수님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둘씩 따로 떼어서 전도여행을 보내기도 하셨던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서 일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12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거, 동락 했던 이들이었습니다. 이 12명을 통해서 예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놀라운 복음의 도구로 사용 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구경꾼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하는 제자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비텐베르크 시는 마르틴 루터 시로 개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독일 전 국민의 98%가 루터교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 사람, 종교개혁자 한 사람의 영향은 시대를 초월했습니다. 독일 학교의 방학은 모두 기독교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매년 10월1일부터 두 주간은 추수감사절 방학이고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부활절에도 각각 두 주간 방학을 합니다. 모든 국민은 교회를 위해 종교세를 내고. 목사는 정부 공무원이며 모든 아이는 유아세례를 받고 13세가 되면 1년간 매주 두 시간씩 100시간 이상 성경을 배워서 14세가 되면 입교식을 합니다. 이 날은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다 모여 축하잔치를 열어줍니다. 얼마전 독일에서는 주일날 장사를 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뉴스를 보기도 했습니다.
2. 세례를 주어라
그리고 두 번째 명령한 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사람이라도 전도를 해서 그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신앙고백을 통해서 세례를 주는 숫자가 많아야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는 세례교인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예수 믿기 이전의 옛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이 세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위대한 전도자요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윗치만 니는 세례를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주여 나는 이제 지금까지 좋아하던 세상을 등뒤로 던지나이다. 주님 이제 나는 당신의 세계로 들어가나이다”참으로 멋진 고백입니다. 그는 이 고백 때의 결심과 소원대로 평생을 살다가 후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옥고를 치르고 감옥에서 순교를 했습니다.
세례는 교회에 다니기에 누구나 받는 단순한 의식이 아닙니다. 세례는 우리의 신분을 바꾸는 것이요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예수님 편에서 보면 세례는 자기를 믿는 우리들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완전히 씻으시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너는 이제 깨끗하다”고 날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서 제일 거룩하신 이름으로 싸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증표요 예수와 하나가 되었다는 증표인 것입니다. 때문에 세례 받는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지진과 같은 큰 체험입니다.
또 우리편에서 볼 때 세례는 “주여 나는 주님의 것이 되었으니 내 평생을 주님께 의탁하고 충성하겠나이다”하고 서약하고 서명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와 함께 신분이 완전히 달라지며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에 윗치만 니와 같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례 받는 자의 심정입니다.
이 세례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셨던 것을 봅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세례에 대해서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앞에서는 사람을 차별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공평한 것입니다. 모든 족속이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말은 복음 앞에 소외된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대상을 가리거나, 사람을 차별하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행실이 나쁘면 나쁠수록 더욱 그 사람에게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부러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미움을 받았던 사람들, 무시 받고 천하게 여김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가까이 가셨고, 더 친근하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거룩하다고 폼을 잡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을 향해서는 회칠한 무덤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책망하셨던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세례가 필요한 사람들은 거룩하게 폼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거룩하게 사는 것으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리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일은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교육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을 교육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교회가 존재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교육하면 늘 이야기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교육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교육의 결과가 눈으로 보인 가장 확실한 민족이 바로 유대인들이었기입니다.
이땅에서 받을 수 있는 상 가운데 최고의 큰상은 노벨상입니다. 이 노벨상은 가장 명예스러운 일로 상징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노벨상을 수상하는 가장 큰 기준은 인류에게 어떤 공헌을 했는가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179명의 유대인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인구 600만명의 작은 이스라엘, 전 세계에 흩어진 1500만명의 디아스포라가 이러한 엄청난 수상자를 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우연히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교육입니다. 유대인들은 약 1900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권의 책과 하나의 건물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 책이 성경이요, 그 건물이 회당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회당은 그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 곧 교육기관입니다. 그들은 밤마다 두꺼운 성경을 읽어주며 자녀들을 잠자리에 들게 했고, 눈만 뜨면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유대인 엄마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너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께 뭐 물어봤니’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네가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니,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고 어떻게 남을 도와줄 수 있겠니’라며 야단을 친다고 합니다. ‘너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 ‘배워서 남 주니’ ‘너 좋게 살라고 공부하라지’라고 말하는 우리들의 이야기하고는 먼가 많이 다른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의 교육하는데는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1). "남보다 뛰어나라"가 아니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가르쳐라. 2.) 배우기 위해서는 "듣는 것" 보다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3.) "몸을 쓰는 일"보다 "머리를 써서 일하는 것"을 가르쳐라. 4.) "싫으면 하지 말라, 하려면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쳐라. 5.) 배움을 중단하면 20년에 걸쳐 배운 것도 2년만에 잊어 버린다. 6.)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쌍방을 죽이고, "형제의 개성"을 비교하면 쌍방을 살린다. 7.) 잠 들기 전에 책을 읽어 주라.
8.) 아이를 혼내 준 날에도 재울 때에는 따뜻하게 해주라. 9.) 평생을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어릴 때 충분히 놀게 하라. 10.) 친구를 택할 때에는 한 단계 높게 선택하라고 가르친다. 11.) 자녀에 대한 최고의 형벌은 "침묵"이다. 12.) 자녀를 위협하지 말고 벌을 주거나 용서하라. 13.) 정해진 일은 정해진 사간 내에 해내는 습관을 기른다. 14.) 집안에서도 "내 것". "남의 것", "우리의 것"의 구별을 가르친다. 15.) 남한테 받은 수모는 잊지 말되 용서하라.
오늘 예수님은 가르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배운데서 끝이 난다고 한다면 그 배움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는 것,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운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키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지키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생활을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르키는 것은 쉬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지켜서 행동으로 보이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가르치는 사람이 본을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을 존경하게 될 때에 행동의 변화가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본을 먼저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이와같이 하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오늘 교회의 3대 사명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귀로 듣는 이도 있고, 머리로 듣는 이도 있고, 마음으로 듣는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분명히 알아서 우리교회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기 위해서 복음을 들고 일어서서 전도하러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안아서 누가 오기만을 기다린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전도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긴 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전도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난 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교회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앉아서 부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가 좀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여러분에게 주시길 시작하십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성령은 능력을 주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례 받게 하여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교회가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중요한 일들입니다.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44주년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깊게 인식하고 우리의 전도의 다리가 굳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복음들고 다닐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