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 마16:24-27
자기 십자가 마태16:24-27 사순절 10.2.21
교회 절기 상으로 지난 수요일인 2월17일부터 부활절전날이 4월3일까지가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시간들을 상징합니다. 부활주일을 기준으로 40일전까지가 사순절의 기간에 해당합니다. 이기간의 강단과 목사의 후드색은 보라색이고, 보라색은 회개를 상징합니다. 이 기간동안 성도들은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면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공생애를 살아오시면서 드디어 자신의 삶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21절에 보면“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모든 일들이 결국은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행해왔었는데, 그것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을 정확하게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살아오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시기도 하시고, 바리새인들이 잡으려고 해도, 때가 이르지 않았을 때는, 일부러 피하시기도 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계획하셨고, 그리고 관리하시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동안에 인류를 구원하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라고 하면서 우리들에게 시간의 사용에 대해서 지혜로울 것을 말씀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다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하루 24시간, 한주일, 한달, 일년, 이런 시간들은 누구에게든지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그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놓고, 어떤 이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그냥 시간의 흐름만을 처다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간의 사용을 철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그냥 헛되이 흘려버리는 여러분들이 아니라,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생산적인 결과를 얻는데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33년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하나의 정점을 삼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입니다.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서, 자신이 이땅에 온 이유들, 앞으로 되어질 이유들을 진지하게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들을 봅니다. 예수님의 이 진지한 말씀의 내용을 아직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간절하게 붙잡았지만,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오히려 예수님은 그래, 내생각해 주는 것은 너밖에 없구나! 가 아니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면서 야단을 치셨던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이어집니다.
1. 나를 따라오려거든
아마도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 “아마이(甘い)"한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는 어려운 일이 없었습니다. 첫출발부터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맛보면서 출발을 하면서, 하루도 병자를 고치거나, 기적과 이사를 보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없었을 만큼 신이 나는 하루 하루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틈이 있을 때마다 들려주시는 신기하고 놀라운 말씀들은 그들의 영육간에 달콤하고, 놀랍기 그지없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를 잘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생각들이 틀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이분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인데, 앞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이다. 아마도 로마를 뒤집어엎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키시고, 왕으로 등극 하실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어느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한쪽 구석에서는 누구나 다 그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왔던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지금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자신들의 신세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부모님도 버리고 불효하는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어머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내가 이분 밑에서 성공해서 나중에 다 갚을께요! 라는 생각들을 하면, 지금의 노숙도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에 혹시 이런 제자들과 같은 마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 예수 믿으면 건강하게 살수 있다. 예수 믿은 사람들은 다 잘살더라, 라는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한국을 보면 1950년에 있었던 전쟁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심지어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불리면서 지진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아이티로부터도 도움을 받았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은 전후60년 만에 세계가 놀라는 엄청난 부자의 나라로 일어섰습니다. 삼성과, 현대로 대표되어지는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이루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역시 예수를 믿어야 잘산다고 우리는 설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니라” 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맞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기적도 이적도 병 고침도, 복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후의 믿음의 단계에 이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머물러 서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여기에서 머물러 서있으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고 교회가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여기에서 머물러 버리면 더 이상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복음이 더 이상 복음 되지 못하고 퇴색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다음 믿음의 단계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나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자기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간에 잠깐 짊어진 구레네 사람 시몬이 있지만 그도 그것을 끝까지 대신 할 수도 더욱이 대신 박힐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는 예수님만이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기 십자가를 부인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기 십자가를 버리려고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기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짊어 주려고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만이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아픈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십자가는 눈물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어는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것이 아픔입니다. 아이들이 아픕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무리 자식의 아픔을 대신해주고 싶어도 그것은 마음뿐이지, 실제로 대신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산모들이 출산할 때, 출산의 아품을 아무리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30년 동안 연극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맡은 안톤 레이지라는 유명한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는 여행가들이 와서 자신도 그 십자가를 짊어지는 장면을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되자 한부부가 무대에 접근했습니다. 남편이 그 연극속에 십자가를 지고 폼을 잡고 부인이 그 장면을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애를 써도 그 십자가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십자가를 가지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 그 유명한 배우 레인지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 여행가는 그에게 “이것은 연극입니다. 이 십자가는 소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사용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배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만일 내가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내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약에 자기십자가라고 짊어지고 있는 것에서 그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수치심입니다. 아픔이고 피흘림 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믿으면서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2.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려면
그리고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은 목숨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목숨을 부지하고 싶은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잃어라 고 합니다.
죽을 각오로 덤벼드는 사람은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몸에서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의 힘이 남아 있을 때 구하려고 들어가면 둘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우적 되다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다가 온몸에 힘이 다 빠져 버리면 구조대원이 들어가서 구해줍니다.
자신을 죽이는 것은 성숙한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성격과, 자존심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상처를 받아도 금방 되 갚아야 하고, 받아쳐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맛있는 김치를 먹습니다. 정말 맛있는 김치는 배추가 잘 저려져야 합니다. 배추의 순이 살아있으면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배추의 심이 다 죽도록 소금을 치고, 물에 담그고 또 그 물을 빼내기 위해서 무거운 것으로 눌러놓고 배추보고 죽어라, 죽어라 합니다. 배추가 소금물에서 완전히 죽으면 그때서야 그곳에 양념을 집어넣고 김치를 만들게 됩니다. 단순한 배추에서 김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과 기쁨을 주게 됩니다.
갈라디아서2:20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서 갈보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로 그곳에서 다시 사는 부활을 맛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는 것이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죽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사단아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야단을 치시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일을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일은 죽는 것이요. 사람의 일은 안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일어나는 갈등의 문제는 사실은 모두가 내가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죽으세요, 그러면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것입니다.
고난을 받기를 즐겨하세요. 그러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손잡아 주십니다.
3.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27절에 보면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십니다. 영광의 날에 우리들이 행한 모든 것들을 보시고 갚아주시겠다고 합니다.
행한대로 갚아준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두려운 말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복된 말입니다. 이 말이 두려움으로 들리는 분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빨리 믿음을 변화시켜야 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합니다. 여러분 아직은 은혜의 날이요, 아직은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주어졌을 때, 우리의 잘못된 부분들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러한 노력 마져도 하나님은 보시고, 나중에 갚으실 때, 생각하실 줄로 믿습니다.
구약에 보면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당대에 가장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심지어 사단에게도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하는 말이 그에게 재물이 많아서 그럽니다. 그에게 건강이 있어서 그럽니다. 하면서 그 신앙의 모습을 다른 요인 때문에 그렇다고 깍아 내립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사단에게 목숨만 건드리지 말고 모든 것을 니 마음대로 해보라고 합니다. 결국 욥은 까닥 없는 고난을 받게 됩니다. 모든 재산들, 자녀들을 다 잃어버리고, 부인마저도 저주를 하면서 도망하고, 온몸은 질병으로 괴로워 하고 있고, 친구들은 찾아와서 자꾸만 너의 죄 때문이다. 남에게 숨기고 있는 죄가 있지! 하면서 그를 괴롭힙니다. 욥은 그 괴로움 속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들어 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욥의 자신의 의입니다. 하나님은 욥 에게서 드러나는 자기 의를 보시고는 화를 내십니다. 그리고는 욥과 함께 변론을 하십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죽었습니다.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 무릎을 꿇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러한 욥의 모습을 보시고는 욥 에게 갚아주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욥 에게 갚아주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전에 있었던 것의 꼭 배를 갚아주십니다. 그리고 그는 140년을 살면서 자손의 4대를 보는 축복을 누리는 것으로 욥기를 마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처럼, 우리도 우리가 져야 하는 자기십자가를 지고서 살아갈 때에,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의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이 땅에 살아가면서 십자가 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갚아주십니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하세요, 그러면 주님이 갚아주십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습니까! 하세요. 그러면 주님이 갚아주십니다. 망설여지는 일이 있습니까! 결단하세요, 그러면 주님이 갚아주십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하세요! 그러면 주님이 갚아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늘을 처다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를 질수 있습니다. 사람 보면서, 환경 보면서는 십자가를 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따르고 있는 그분 예수님은 실로 엄청난 십자가를 지고서 가고 계십니다. 내 십자가만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큰 것 같지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는 초라하고, 조그마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 나보다 더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처다 보면 우리는 감당할 힘이 생깁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어려운데! 이런 것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땅에서 자기 십자가를 거부하면 오히려 목숨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다 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부활의 영광과 더불어서 우리가 십자가 지면서 당했던 모든 상처와 아픔과 손해와 자존심의 상함을 영광으로 다 갚아주시는 은총을 경험하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이제 시작되는 이 사순절을 보내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