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자유 요8:31-32
진리와 자유 요한8:31-32 사순절 10.2.28
지난주간에는 제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 교단선교사들의 모임인 GMS선교사 영성수련회로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위치한 메구미샤레 라는 곳에서 2박3일 동안의 영성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 메구미 샤레 라는 곳은 미국선교사들이 초창기때에 세운 시설인데, 미국선교사들은 2년 동안 반드시 일본어와 일본에 대한 연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역을 할 수 없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국선교사들의 일본선교의 전초기지의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날씨가 추울 줄 알고서 두터운 옷을 가지고 갔지만 예상외로 너무 따뜻한 봄날을 맞았습니다. 산에는 얼음들이 녹기 시작하고 고드름이 녹아서 떨어지는 곳에서 한국에서 오신 강사목사님들로부터 많은 도전이 되는 말씀들을 들으면서 은혜의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많은 교단선교사들과의 만남 속에서 서로 위로하고 힘을 얻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의 중심에 자리 잡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마치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같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진리가 여러분의 신앙의 중심을 잡고 있으면 아무리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도 꿈적도 하지 않고 때를 따라서 열매를 맺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다닙니다. 사실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고 신흥종교들이 판을 칠수 있는 것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 감성적인 것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면 그들은 금방 그곳에 매료가 되어지고 빠지게 됩니다. 이 땅에는 거짓진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 같아 보이는 세상입니다. 일명 짝퉁 이라고 하는 명품 가방들은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렵고 심지어 본사에서도 잘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가짜가 진짜처럼 행동을 하면서 다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해도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잘 모르는데, 그것을 간단하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화창한 날 갑자기 비가 오면 안답니다. 짝퉁은 가격이 싼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가방으로 머리에 대고 비를 피하는 것은 가짜이고, 가방을 품에 품는 것은 진짜라고 합니다.
진리도 이단들이 말하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리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아도, 가짜입니다. 그곳에 속으면 안됩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진리를 찾아서 헤메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를 믿고, 진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를 가짜같이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별 감동을 받지 않고 은혜도 받지 않고 오히려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가짜는 진짜같이 행동을 하면서 뜨거운 열정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있는데, 진짜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오히려 이것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오히려 무관심하고, 말아버리는 경우들은 없는지요.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예수님은 진리를 알라고 하십니다.
1. 진리를 알지니.
오늘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진리를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히셔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진리가 무엇이냐?”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여기에서 예수님과 빌라도의 대화는 평행선을 긋고 있습니다. 서로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고발한 죄인 예수께 대하여 죄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는 로마법에 저촉되는 혐의를 찾아 처벌하려 허점을 노렸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을 교묘하게 연결시켜 자신을 변론하시며 하나님 나라와 왕을 변증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아무런 혐의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빌라도와 예수님은 끝끝내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궁금증만 더 높아져 갔고, “진리가 무엇이냐!” 라는 마지막질문으로 심문을 마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빌라도 궁금했던 진리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집중력이 높습니다. 핵심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오래 공부한다고 좋은 성적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책을 많이 본다고 많이 아는 것도 아닙니다. 밑줄 새까맣게 그어가면서 무조건 달달달 외운다고 시험 잘 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주제가 무엇인지, 핵심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속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신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에 속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떡과 생선을 공짜로 먹이시면서 가르치셨던 축복은 가난한 심령, 애통, 온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긍휼, 마음의 청결, 화평, 의로 인한 핍박 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땅에 속한 것들만 강조합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전력질주합니다. 그러다가 이루지 못하면 비난을 받거나 자학을 합니다.
“능력이 없기 때문이야.”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진리를 알지 못하면 왜곡된 진리가 참 진리를 대신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옳은 것으로 인식합니다. 성경은 거짓된 진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누누이 경고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진리가 무엇입니까? 빌라도가 듣지 못했던 진리, 들으려는 마음조차 없었던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빌라도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눈앞에 계셨지만 알아보지를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십니까? 예수께서 세상을 향하여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 주의 영이신 성령께서 마지막 때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6). 회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리이신 주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주께서 입의 검, 즉 말씀으로 깨우쳐서라도 돌아오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한 자가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가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가 들어갑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잘 깨달으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집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우선순위를 잘 하면 나머지는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공중의 새를 보고,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듯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염려가 키를 한자나 더 키워주지 않습니다. 주님은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를 돌봐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여러분은 얼마나 노력하셨습니까!
2. 제자로 아는 진리.
예수님은 진리를 아는 방법으로 제시해 주신 것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처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간직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제자가 된다 고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은 어떤 거창한 것들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가르침을 받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아주 단순하지만 그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실은 이렇게 사는 것이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내안에 간직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안에 내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내 지식과 내 상식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주님의 말씀과 상충되지 않으면 좋겠는데, 대부분의 것들이 주님의 말씀과 상충이 됩니다. 말씀을 내안에 놓으려고 하니까! 부딪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했더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늘 이것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같은 사람도 이것 때문에 고통했다고 합니다. 로마서에 보면 그의 갈등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 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18-25)
얼마나 진솔한 고백입니까! 사도바울같은 위대한 사도도 그 안에 있는 죄의 법과 싸움을 늘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생명의 법을 알면서도 그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아픈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이런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누가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것을 모르겠습니까!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고, 그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늘 우리의 연약한 육신이 문제입니다. 늘 여기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래서 또 다시 실패하고 실수하고, 주님을 떠나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주님 눈좀 한번 감아주세요! 하면서 애원을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안되는지 알면서도 예수님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하면서 어쩔수 없는 죄를 지을때도 있습니다. 힘이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우리의 인내로는 한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민을 하다가 해결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8장1절 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성령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안될 것 같던 것들도, 내 의지로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도, 내 인내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들도, 성령 안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되십시오. 제자가 되는 방법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나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입니다.
3. 자유케하는 진리.
제자가 된 사람은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원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의 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암호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문제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야말로 여유로운 사람입니다. 즉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모르면 안절부절합니다. 근심합니다. 걱정합니다. 불안합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 제자가 된다는 것, 진리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한없이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땅에 살아가다 보면 우리를 얽매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짖누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선수와 은메달을 딴 아사다 마오선수를 보고 있으면서 무척이나 측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두 딸들 위에 놓여져 있는 국가적 기대감, 온 국민이 반드시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기대감과 또 수많은 언론의 금메달에 대한 강요가 연약한 두 딸들의 어깨 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었겠습니까! 더욱이 김연아의 엄청난 점수를 보면서 그 다음순서를 맡았던 아사다 마오선수의 부담감은 얼마나 컸겠습니다. 불과 5분도 안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겠습니까!
그런데, 5분도 안되는 사이에 모든 것이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모든 무거운 짐에서 자유했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메스컴은 또 다시 무거운 짐을 줍니다. 이긴자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할것이냐! 올림픽 2년패를 할것이냐! 진자에게도 지금의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또 다시 4년후에는 반드시 금메달을 딸 것은 강제아닌 강제로 밀어냅니다. 이런 질문 앞에 그동안의 짐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지금 이 기분을 좀더 즐기고 싶습니다. ” 라고 김연아선수가 대답을 했겠습니다. 너무 심합니다. 이제 막 금메달의 짐을 벗었는데, 또 짊어지우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데, 지나기 전, 시작하기 전, 문제 앞에 서있을 때의 시간, 우리를 무겁고 힘들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 일이 지나가면 끝이 날것 같은데, 끝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진리는 우리를 자유 하게 합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 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결과를 주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주인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학생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가르친 선생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은 진리가 책임을 져주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깨달은 진리대로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고, 만족이 있고,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리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진리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진리를 아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내안에 간직하면 됩니다. 그것이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의 힘으로는 안되지만 나를 잘아시고, 나를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안에서는 우리가 말씀속에서 살아갈수 잇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자유하게 만들어줍니다. 더 이상 염려, 근심, 걱정하지 않게 해주십니다.
우리를 얽매고 있는 모든 죄악의 끈도 끊어주시고, 환경의 끈도 끊어주시고, 질병의 끈도 끊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어느 환경속에서도 얽매이지 않고 진리되신 예수님을 믿으면서 살아갈수 있게 해주시는줄로 믿습니다.
왜냐 하면 진리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의 문제를, 질병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순절기간에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진리안에서의 자유를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