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아는 자 창25:27-34
가치를 아는 자 창세기25:27-34 10.4.18
재력이 있는 중년 남자에게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고생을 모르고 자라 돈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돈을 물 쓰듯 하는 아들이 못내 걱정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하루는 아들을 불렀습니다. “이제 너도 장성했으니 돈을 벌어 오거라.” 아버지 말에 아들이 투덜거리며 방을 나서자 그의 어머니가 아들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걱정마라, 엄마가 돈을 줄 테니 며칠 후에 아버지께 갖다 드려라.” 아들은 그제야 희색이 돌았습니다. 며칠 후, 아들은 자랑스럽게 아버지 앞에 돈을 내놓았습니다. “아버지, 제가 번 돈입니다.” 아버지는 아들 얼굴을 흘끔 쳐다보더니 그 돈을 바로 옆에 있던 난로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건 네가 번 돈이 아니야. 네가 직접 번 돈을 가져오너라.” 또 며칠이 지난 후, 아들은 어머니가 준 돈을 들고 아버지 앞에 갔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그 돈을 활활 타는 불에 던졌습니다. 이에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아버지가 다 아신 모양이니 네가 직접 돈을 벌어와야겠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며칠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아버지 앞에 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이번에도 돈을 난로에 던지려 하자 아들이 소스라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돈!” 그제야 아버지는 아들을 보며 말했습니다. “정말 네가 번 돈이구나. 이제 돈에 대한 가치를 알겠니?” 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치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유는 했지만 고생하지 않고 그냥 손에 넣은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얻기 위해서 땀을 흘린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안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두 사람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그 둘은 너무나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둘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2란성 쌍둥이입니다. 그래서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그 둘은 정말로 다른 외모와 또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라서 서러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들이 쌍둥이 둘째입니다. 몇 년 터울을 지고 태어난 둘째는 괜찬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분을 차이로 태어난 둘째는 늘 억울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장자와 차자의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그렇게 태어났다면 더욱 억울한 것이지요. 그런데요, 장작 그 가치를 알아야 할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당연한 줄 알고 살아가고, 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가치가 엄청난 것이고, 그것을 소유하려고 애를 씁니다.
1. 장자권의 가치
예나 지금이나 장자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더욱 그랬지요. 저도 형제들이 많은데, 큰형님의 어린시절을 저는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전설처럼 들리는 이야기는 시골에서 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초등학교때까지 업어서 학교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형제들이 모이면 합니다. 모든 좋은 것은 다 형님 몫이고, 형님이 먹고 남아야 동생들한테 옵니다. 그러니 동생들은 형이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지금도 형님이 하는 말은 아버지 말처럼 들리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형 말을 잘 들어라! 는 말의 영향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그랬는데, 옛날로 가면 갈수록 그런 것들은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장자의식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왜냐하면 장자들이 받아 누리는 혜택이 우리보다도 훨씬 더 많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을 하나님은 장자를 통해서 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장자를 중심으로 그 집안의 가계를 이어가시는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남들은 은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동생들은 무조건 형님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2. 가치를 모르는 자
그런데 이런 장자 됨의 특권을 스스로 무시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에서입니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합니까! 별거 아니라고 합니다! 아들만 있는 집에서는 아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딸이 더 좋다고 합니다. 딸만 가진 사람을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지! 오히려 더 낮다고 하는 말인지! 어떤 때는 분간이 잘 안 될때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비자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없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갖고 싶어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돈은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까! 좀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로커들이 많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늘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걸음 옮겨서 우리 주변에 있는 병원에만 가봐도 지금 내가 마음대로 먹을수 있고, 마실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금방 깨달게 됩니다. 우리가 저녁에 되면 집에 들어가서 쉬고 잠잘곳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에노 공원이나 큰 공원에 잠깐만 나가보시면 밤이 되어도 들어갈 집이 없어서 공원벤치에서 밤을 새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오늘 에서에게 있어서 장자권이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장자권을 니가 가져가도 내가 장자가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이 자신의 생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사냥을 하고 배가 고파서 돌아온 에서에게 장자권은 그냥 주어버려도 될 만큼의 하찬은 것으로 그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의미에 있어서의 장자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됨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치루신 댓가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셔야 했고, 그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어야 했습니다. 아들을 버리는 엄청난 댓가를 치루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혜택만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잊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된다는 너무나 단순한 조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자녀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자녀됨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고생 고생을 해서 자녀됨을 얻었다고 한다면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너무나 단순한 과정을 거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구원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기에 그냥 믿기만 하라고 하신 것인데, 우리는 별거 아니기 때문에 그런 줄로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녀 됨의 가치를 팥죽한 그릇처럼 팔아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체면을 지키려고 교인된 모습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립니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관련이 된 인간관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된 가치를 팥죽 한 그릇처럼 팔아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장자권은 또 무엇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까! 예배입니다. 장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제물이었습니다. 장자권이 소중한 것은 언제나 영적인 의미들이 그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예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봉사를 맡습니다. 성가대원으로 기도자로, 헌금위원으로, 안내로 또 식사당번으로 예배를 위한 봉사자로서 섬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적 장자권자가 가져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우리는 쉽게 팥죽한 그릇으로 팔아 버릴 때도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것이지를 알지 못합니다. 아무에게나 이런 것들을 시키지 않습니다. 특별히 직분을 맡는다는 것도 이런 장자권입니다.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교사가 되는 모습들은 예수 믿는다가 무조건 시키는 것들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그런 직분들을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직분들을 가볍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팔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들입니다. 제가 소원이 있었는데, 저는 집안에서 예수를 처음 믿은 사람이기에 믿음이 좋은 권사, 집사님을 부모로 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예수 믿는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요, 세례 받고 후에 집사가 되었을 때 너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권사가 되는 것을 꿈꾸었는데, 결국 권사가 되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그것이 서운 하든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 꿈을 우리 장모님에게 걸어봅니다. 지금은 집사이지만 장모님이 권사가 되는 날을 지금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되고 싶어도 평생 못해보고 끝이 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교회의 직분의 가치를 아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가치를 아는자.
그런데 야곱은 그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유하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소고기는 줘도 먹지말고, 돼지고기는 있으면 먹고, 닭고기는 사서먹고, 오리고기는 뺏앗아서도 먹으라”고 합니다. 그만큼 오리고기가 사람 몸에 좋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요. 가치를 알면 빼앗아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야곱은 장자권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그는 태생적으로 장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태어날 때부터 먼저 나가고 싶어서 형의 발뒷굽치를 붙잡고 따라나왔던 사람입니다. 나와서 보니까 아무리 바로 따라나왔어도 차자는 차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둘째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살면 살수록 느끼는 것은 역시 아버지는 장남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에서는 전형적인 남성 호르몬이 왕성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밖에 나가서 사냥하고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이삭은 역시 장남 에서를 보면서 기분이 좋았고, 더욱이 그가 사냥해서 가져오는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 있는 장자권을 형에게서 빼앗을 궁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를 엿보기 시작을 했고 드디어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놓고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사기꾼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후에 정말로 이삭이 장자를 위한 축복기도를 해주려고 할 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짜고 정말로 사기를 칩니다.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이제는 눈도 어둡고 살날이 얼마 안 남은 줄 알고는 마지막으로 장남에 사냥해다 준 고기를 먹고 마음껏 장자의 축복기도를 해주려는 사실을 알고는 에서가 사냥을 한 사이에 어머니가 야곱을 불러서 그몸에 에서처럼 털을 붙이고 에서의 냄새가 베어있는 옷을 입히고는 대신 음식을 만들어주고는 에서인 것처럼 속여서 축복기도를 대신 받아 버립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장자의 축복기도가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장자의 권한은 자신이 형에게서 샀기 때문에 당연히 그 기도도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렸을 때는 나중에 이 기도는 자신이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축복기도마져도 야곱에게 빼앗겼을 때, 에서는 그때서야 분을 내기 시작했고, 뒤늦게 자신이 장자권을 팔아버린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동생을 죽이려고 원수처럼 덤벼들었던 것을 봅니다. 그것 때문에 결국 야곱은 형을 피해서 도망자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무튼 이런 일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야곱에 대하 평가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의 평가는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로마서9장13절에 보면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고합니다. 하나님은 사기를 당한 것 같은 에서를 긍휼히 여겼다고 안하십니다. 오히려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기꾼같은 야곱이었지만 사랑했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야곱이 정말로 사모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정말로 갖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장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물질 때문일까요! 유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그런 것 이 아니라 장자권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의미를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 이런 영적 의미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보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야곱은 천국을 침노한 사람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인 줄 알고, 그것을 침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모습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비록 단점도 있고 비열한 모습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중심에 하나님의 것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 하나님 것으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살겠다고 하는 마음,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가치를 아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알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애를 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3장에서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니다가 좋은 진주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사기 위해서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 산다고 하는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가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아무도 그것이 좋은지 알지 못하지만 가치를 안고 소유한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도 느낄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을 맛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는 거룩한 낭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낭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가장 귀한 투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면서 많은 돈을 교회를 위해서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한 직원의 실수로 회사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한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저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서 그를 비난했지만,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타버렸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은 하나도 타지 않고 그것만 남았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다 없어져 버릴 것 들 입니다. 다 날아가 버릴 것 들 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천국창고에 남아있고, 쌓여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드렸던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자녀의 이름으로 천국에 쌓았던 것들, 안 믿는 남편의 이름으로라도 쌓았던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천국에 쌓은 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다시 축복해주시는 은총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섬기고 있는 이 교회가 얼마나 중요하고 그리고 지금 내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를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와 동시대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공산권, 이슬람권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하고 개종을 강요당하다가 비참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당이 없어서 집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드리고 있는 이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북한에 있는 숨은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사모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영적인 것들의 가치를 우리 분명히 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절대로 빼앗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는 에서와 같은 어리석음을 절대로 범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에서가 가치도 모르고 가지고 있었던 장자권 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자권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야곱에게는 엄청난 가치로 보였습니다. 반드시 소유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왜요, 그것은 단순한 유산을 더 받는 문제가 아닌 영적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 장자권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로 갔습니다.
성경에 보면 비록 태어날 때 육신적으로는 장자로 태어났지만 실제적인 장자의 권한을 빼앗긴 사람들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실제적으로 처음으로 낳았던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지만 그는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에서가 그랬고, 또 다윗 장자가 아니었지만 실제적 장자가 되었습니다. 솔로몬 역시 장자가 아니었지만 실제적 장자가 되어서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 당연하게 주어진 장자들이 있지만 실제적 장자들은 따로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자부심이 교만할 정도로 있어서 이방인들은 무시하고 경멸했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정말로 예배하고 영화롭게 하는 교회들은 다 이방땅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기념교회당만 만아 있습니다. 그땅에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복음의 땅끝은 바로 예루살렘이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소중한 영적가치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절대로 팥죽 한 그릇에 파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마음을 가지고서라도 소유하려고 애를 쓰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영적인 것을 사모하고,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진정한 복을 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