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빌립보3:12-14 송년예배 07.12.30
19C후반 미국의 철강산업을 거대하게 성장시켰던 카네기씨가 후계자를 지명한다고 하자 전세계의 눈이 그에게로 쏠렸습니다. 그 회사의 중역들 중에는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았지만 정작 카네기씨가 지명한 후계자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쉬브씨였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쉬브씨는 처음에 그 회사의 청소부로 들어 왔습니다. 그는 정원만 쓸어도 되지만 공장안 까지 말끔히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성실한 그는 윗사람의 눈에 띄어 카네기씨의 비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메모지와 펜을 들고 카네기씨를 그림자 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카네기씨가 업무차 밤늦게 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 가려할 때, 그 밖에서는 쉬브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카네기씨가 깜짝 놀라면서, "왜 퇴근하지 않았는냐?"고 물으면 "사장님께서 언제 부르실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웁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드디어 쉬브씨는 연봉 2만 달러 일 때 백만 달러라는 거액의 보너스를 받았고, 끝내는 대강철 회사의 사장이 된 것입니다.
카네기는 쉬브씨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면서, "자네의 성실한 그 정신적 바탕 위에 이 회사가 성장하리라 믿네. 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는 학력이 문제가 아닐세.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일을 해결하는 정신적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네. 자네에게 지식과 충고가 필요하면 박사,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을 채용하면 되니 그 점은 염려 말게."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벌써 금년한해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제나 이런 날들을 맞이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생각되는 것이 올 한해를 어떻게 살아왔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아니면 대충대충 하면서 살아왔는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한해를 살아오셨습니까! 첫 주에 가졌던 생각들과 결심들을 어느 정도 이루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제 금년도 마지막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한해를 돌아보고.
오늘 13절에서 사도바울은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뒤에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바울이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은 무엇일까요! 그의 발목을 잡고 있을수 있는 것들입니다. 과거의 그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사역 속에서 기회만 있으면 바울을 끄집어내리고, 또 질투하고, 폄하했던 것은 바울의 과거 즉 사울 시대 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 회개하였고 또 용서를 받은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다 해결된 일을 가지고 또다시 끄집어내어서 바울의 앞길을 막으려고 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일들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도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다보면 늘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책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과거에 붙잡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온전한 회개입니다.
수요예배시간때 빌레몬서를 공부했습니다. 그곳에 보면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의 집에서 도망을 한 사람입니다. 그냥 도망이 아니라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망했던 곳이 로마인데, 그곳에서 그는 사도바울을 만납니다. 바울을 만나면서 그는 인생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바울의 심복이 될 만큼의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늘 한가지 그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를 짖고 도망했다는 것입니다. 노예로서 주인 몰래 도망친 것도 엄청난 죄인데, 거기다가 물건을 훔친 절도죄까지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물론 이미 그는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빌레몬에게 묶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줍니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편지를 한 장 써서 보내주면서 그 편지에서 오네시모을 용서해주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강요가 아니라 그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 한 통으로 그리고 주인에게 스스로 찾아가는 그 회개의 발걸음이 그를 붙잡고 있는 모든 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온전한 회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더 이상 과거에 붙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뒤에 것을 온전히 잊어버릴 수 있는 길입니다.
과거로부터의 자유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일에 얽매이지 않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죄책감으로부터 온전히 자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바로 올 한해가 가기 전에 하나님 앞과 또 사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과거를 온전히 잊어버리기 위해서 라도 온전한 회개를 이해가 가지전에 하시길 바랍니다.
또 바울이 잊어버리고 싶은 것은 그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공적입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의 삶은 정말로 놀라운 삶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위해서 이루어 놓은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것들을 더 이상 자랑거리로 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든 공적을 잊어버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과거 자신이 했던 공적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은 내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새로운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새롭게 하나님을 만난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이적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는 오늘의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과거의 간증만 간직하고 있습니다. 늘 과거의 업적만을 자랑하고 살아갑니다. 잊어야 합니다. 잘한 것도 잊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우리는 다시 겸손한 자세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가면 얼마나 엄청난 유산들이 있는 지 모릅니다. 카이로에 있는 국립박물관에를 가보았습니다. 정말로 엄청난 유산들, 그리고 옛날 파로오들이 누렸던 영화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황금으로 만든 파로오의 마스크들, 을보고 있으면 과히 기가 질릴 만 합니다. 엄청난 스핑크스, 그리고 피라밋들 앞에 서보면 이집트인들의 유대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영화입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일강은 지저분하고, 더 이상 그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없습니다. 모두들 과거의 유산 하나로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그리고 “원달러”를 외치며 허드랜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들, 가난하게 살아가는 거리의 모습들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오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가 있어야 합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비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잊을 것은 잊어야 합니다. 언제나 옛날이야기만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올 한해동안 여러분이 아무리 큰일을 한일이 있어도, 잊어버리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겸손하게 다시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한해를 정리하고.
바울은 오늘의 순간 순간 자신의 위치를 점검을 했습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고합니다. 자동차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백밀러입니다. 백밀러는 뒤를 처다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운전수든지 뒤만을 보면서 운전하지 않습니다. 백밀러는 가끔 보는 것입니다. 방향을 바꿀 때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백밀러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해를 정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해가 잘 정리되어야 내일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007년에서 2008년으로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바로 이 백밀러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뒤에 무엇이 있습니까!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오늘을 점검해 보았더니 아직 손에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손을 보니까 아직 얻어진 것도 없고, 그리고 이루어진 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아직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목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볼펜의 대명사로 불려진 것이 “모나미 볼펜”입니다. 이 모나미 볼펜에는 153이라는 숫자가 적혀져 있습니다. 이 볼펜이 탄생하게 된 것은 1963년 5월입니다. 당시 볼펜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기술도 없었던 상태에서 도산의 위기에서 송삼석 회장이 기도하면서 직접 붙인 것입니다. 회사가 가장 어려웠을 때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 그간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게 너무 많더라는 것입니다.
첫째, 주일성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회개합니다 “이제부터 철저하게 주일성수하겠습니다.”
둘째, 돈을 많이 벌고도 십일조를 안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었습니다. 이제부터 십일조를 하겠습니다.”
셋째, 새벽기도하지 않은 것을 회개했습니다. “내가 새벽마다 주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제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개를 하고 새로운 마음의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는데, 요한복음 21장 1-14절의 말씀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곳에서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그 말씀을 읽는 순간에 그는 마음에 감동이 임했고 그 감동은 새로운 비젼으로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 제가 모나미153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이 볼펜이 모든 사람의 손, 아니 전 세계 50억 사람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는 목표를 잡고 50억 자루의 볼펜이 팔리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그에게 엄청난 은혜를 주어서 망해가던 회사가 정말로 50억 자루의 볼펜을 판매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알았습니다. 먼저는 영적인 현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다시 잡은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새로운 결단을 하고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이 잘못된 것 인줄 알고, 노선을 바꾼 것입니다. 그랬더니 달려갈 길이 보인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쪽으로 줄을 섰는가에 따라서 속도가 달라집니다. 막히는 줄이 있고 풀리는 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히는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길로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선을 바꾸는 것이 인생의 속도를 조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노선을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감리교의 남자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원래 양복점을 경영하다가 나중에 숙녀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학생들 교복으로 업종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가 업종을 바꿀 때마다 사람들이 다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야에서 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바꾸고 나면 전에 하던 업종은 다 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기성복이 별로 없었을 때 거의가 양복은 맞추어서 입었습니다. 그런데 바꾸고 났더니 대기업에서 기성복들이 쏫아져 나오고, 숙녀복에서 나중에 업종을 바꾸었더니 IMF터져서 경기와 상관이 없는 학생교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학생복을 만드는 공장으로 직원들을 200여명가까이 거느리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할 때 주님이 그 순간, 순간 방향을 정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는 그대로 순종했던 그 순종이 그의 삶을 하나님이 성공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는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회사에서 인도네시아에 교회를 건축하기도 하는 믿음의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현실을 알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의 여러분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현실 앞에 믿음을 더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능력 앞에 하나님의 능력을 더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인생의 목표가 설정될 수 있습니다.
3. 푯대를 향하여
오늘 바울은 이제 자기가 가야할 목표가 분명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14)
그에게는 예수그리스도라고 하는 분명한 푯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그리스도에게 다 달았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명한 상급이 있음을 믿고 달려갔습니다.
인생에는 바른 목표가 필요합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표가 있어도 그 목표가 무엇을 위한 목표인가가 중요합니다.
어느날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공부가 안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전화였습니다. 자기 소개도 없고, 앞뒤 인사도 없고, 무턱대고 따지듯 묻는 전화였습니다. 나이는 들었고, 공부는 안되고,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없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 전화를 했을까 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공부하고 있느냐! 믿음은 있느냐! 몇 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이 공부를 왜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답이 나오면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해지고,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 자신의 삶을 컨트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잃어버리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다 무의미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지 그것을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한 목표설정이 우선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삶의 의미들이 살아나기 시작하고,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목적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목적으로 삼고 있는 그 푯대는 어떤 것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말고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도 아니고, 잘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오로지 예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붇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은 다 배설물처럼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아가면서 어떤 목적으로 살아갑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은 예수님께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멋있는 사람입니다.
오래전 어느 군 형무소에 두 사람의 시형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전방에서 총기 난사로 민간인을 죽였고, 다른 한 사람은 월남전에서 말다툼 끝에 동료를 죽였습니다. 두 사람 다 어쩌다가 분노로 사람을 죽여서 사형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다 식욕이 왕성한 사람인데, 너무도 고기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죽기 전에 고기나 실컷 먹어 보자 하고 자기의 몸을 대학병원에 해부용으로 팔아 선금 1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3만원 어치를 먹고 사형을 당했습니다. 10만원 어치를 채 먹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전해준 전도사님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총재산 15,000을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귀중하게 써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마침 교도소에 교회를 지었는데 전도사님은 교회의 강대상을 사는데 그 돈을 보탰습니다. 그리고 헌당식 날 이 사형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감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사형수는 무기 징역으로 감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육신을 위해서만 살아간다면 결국 사망밖에 남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겠습니까! 우리는 한해의 마지막시점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 위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들, 잊어야 할 것들은 잊고, 정리해야 할 것들은 정리를 하고 그래서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새로운 푯대를 향하여 우리가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이 푯대의 설정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푯대가 설정이 되어집니다. 우리의 전 삶을 다 투자해도 아깝지 않는 푯대를 향해서 한해를 마감하고 또 출발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년에는 더 큰 일들, 더 좋은 일들이 일어날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대한 꿈과 비젼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놀라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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