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강림 사도행전2:1-4 성령강림주일. 09.5.31
어떤 낭떠러지 절벽 골짜기가 있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야만 하는데 그 사이에는 깊은 낭떠러지가 놓여 있어서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이쪽에서 저쪽 편까지는 약 10미터쯤 됩니다. 어떤 사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고자 힘껏 뛰었습니다. 그러나 겨우 4미터밖에 뛰지를 못해서 결국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사람은 더 힘껏 뛰었습니다. 그는 5미터를 뛰어서 앞서 뛴 사람보다 1미터를 더 멀리 뛰었으나 그도 결국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더욱 온 힘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놀랍게도 8미터나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그 절벽을 건너뛰기에는 못 미쳐서 그만 똑같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떨어져 버리기는 4미터를 뛴 사람이나 5미터를 뛴 사람이나 8미터를 뛴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구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자의적 구원이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4미터, 5미터 뛸 때 나는 8미터를 뛰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10미터에는 도달하지 못해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것이 율법적인 구원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의 사람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자기의 의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다 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어 놓으신 선에 인간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의인입니다. 열심히 자기가 의를 행하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착한 일을 행하면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인 10미터에는 모두가 다 못 미쳐서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저 영생의 나라 저 건너편 언덕에 이르는 방법이란 단 하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언덕과 저 언덕을 연결하는 사닥다리가 놓여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 힘으로는 저쪽으로 건너갈 수가 없으니 누군가 사닥다리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 사닥다리, 연결 다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 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어진 줄로 믿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자신의 일로 “아멘”할 수 있을 때까지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날마다 기도하기 시작했고, 오순절이 이르렀을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제자들은 뜨겁고, 강하게, 그리고 새롭게 거듭난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성령의 강림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내렸던 그 강림의 역사가 그리고 충만케 하시는 역사가 임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1. 한곳에 모여.
성령의 강림이 임하기까지 제자들이 한일은 한곳에 모여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이곳, 저곳이 아니라 한곳에 모여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1절에 보니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1장15절에 보니까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명이나 되더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니까 “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고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그들은 철저하게 순종을 했습니다. 그들은 전혀 기도에 힘을 썻다고 합니다.
기도는 역사를 일으키는 줄로 믿습니다. 각자가 개인기도 하는 것도 좋지만, 다같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은 큰 불을 지피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행전12장에 보면 성령받고 난 다음의 베드로의 모습을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걸기 시작했을 때 사단은 불같이 역사 했습니다. 헤롯이 교회를 해하려고, 야고보를 순교시키고, 그리고 베드로도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회는 함께 모여서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12장5절에 보면“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빌더라”고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옥에서 풀어주십니다.
옥에 있는 베드로를 흔들어 깨우고 천사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서 갔더니 그는 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역사를 일으키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기도했으면 이미 받은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되면, 된다고, 안되면 안된다고, 때가 아니면 기다리라고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이런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여러분은 많은 응답을 받은 경험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응답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은 다른 누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속에 기도생활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기도 없이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암송하고 있어도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기도는 성도의 삶에 힘을 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없이 하는 어떤 신앙적이 행동도 마귀는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말씀 없는 기도도 문제입니다. 말씀 없는 기도는 주문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없는 기도는 헛된 소리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속에는 말씀을 붙잡고 하는 기도여야 됩니다. 주님이 약속해주신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 때 놀라운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씀과 기도의 바란스를 잘 맞출 수 있는 건강한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 성령의 강림.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들이 전혀 기도에 힘을 썻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라고 합니다.
성령의 강림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령이 어떻게 임했습니까? 바람같이, 불같이 임한 것입니다. 바람도 강한 바람입니다. 그리고 불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바람 같은 소리가 났다고 한 것은 성령의 강력한 활동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성령께서 조용하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강하게 임했습니다. 모든 사람들 그 강력한 바람에 흔들리고, 자신을 주체할수 없을 정도의 강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받을 때 보면 온몸이 흔들립니다. 나의 모든 고정관념과, 생각들을 다 흔들어 놓으십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합니다.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흔들리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강한 바람이 우리의 불필요한 생각들과 온갖 의심과, 불평하는 생각들, 불 신앙들을 다 날려보낸 줄로 믿습니다.
구약 히브리 원어나 신약 헬라어 원어에서는 ‘성령’과 ‘바람’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히브리어에서도 성령과 바람을 “루아흐”로 말하고 있으며 헬라어에서도 성령과 바람을 “프뉴마”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령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거룩한 바람”입니다. 마치 태풍이 불면 모든 것이 다 날라 가듯이 거룩한 바람이 우리의 연약한 신앙생활위에 불어서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날려보내야 합니다.
그래요! 다 날라가야 합니다. 성령의 강한 바람이 우리 안에 있는 의심, 걱정, 근심, 불안, 염려, 그리고 모든 병마들, 온갖 잡스러운 생각들을 성령의 강한 바람이 다 날려보내는 줄로 믿습니다. 온갖 쭉정이 같은 신앙도 다 날려보내고, 알곡만 남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알곡만 남아야 합니다. 온갖 거품도 다 날려 버려야 합니다. 쪽정이보고, 거품보고, 와! 많다!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교회 안에도 성령이 강하게 임하면 쪽정이 같은 신앙은 다 날라가 버리는 줄로 믿습니다. 바람 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불같이 임했다고 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성령의 성품을 표현할 때 불로 가장 많이 표현합니다. 그래서 불같은 성령이라고 합니다. 불은 다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 옛성품, 옛습관, 모두를 다 태워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다 태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온전하게 거듭나는 것입니다. 불은 뜨거운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뜨거운 것이 임해야 합니다.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뜨거운 사람은 왠만한 것은 다 불태워 버립니다. 왠만한 유혹, 왠만한 죄, 왠만한 시련, 왠만한 어려움은 다 불태워 버릴 수 있습니다.
교회도 이 불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신 분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충만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은 우리를 충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충만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날마다 무너지고, 쓰러지고, 죄악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울고, 실패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성령의 불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이들이게 바로 이불이 임한 줄로 믿습니다.
3. 성령의 충만.
그리고 났더니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4절에 보니“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고 합니다. 미국의 D L 무디(1837̃99) 목사만큼 기독교 부흥시킨 인물도 드뭅니다. 그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복음적이며 영감 있고 열정적인 설교로 수많은 영혼을 주께 인도했습니다. 그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은혜를 받으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한 지역에서 무디 목사를 초청, 전도집회를 가지려는 준비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때 어떤 젊은 목회자가 벌떡 일어나 “왜 강사로 무디만 고집합니까? 무디 외에는 설교자가 없단 말입니까? 그가 성령을 독점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존경받는 원로 목회자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무디만이 성령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시대에 무디를 독점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장내에는 박수갈채가 터져 났다고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성령은 기도하는 사람을 독점해서 사용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령께서 그들을 독점했습니다. 자신의 말이 나오질 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그들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이끄시고, 성령이 쓰시고자 하는 데로 그들이 복음을 위해서 놀랍게 쓰임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도 분명히 성령께서 쓰시는 사명자들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쓰임을 받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쓰임을 받을 때 존재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이사회에, 이 회사에, 필요한 존재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 그곳에서 사명감도 나오고, 책임감도 나오고, 그런 사람들의 쓰임 받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는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인 존재들인데, 우리는 누구에게 쓰임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가 거듭나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사용하겠습니까? 그것은 사탄입니다. 마귀에게 쓰임을 받는 다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매일 누군가를 울리는데, 매일 누군가를 넘어뜨리는데, 상처주고, 아프게 하는데, 누군가를 때리는데 내가 쓰임을 받는다면 그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쓰임 받으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성령께 쓰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데, 살리는데, 소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데, 쓰임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령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성령이 그들의 입을 통제했습니다. 아무 말이나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말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받은 성령을 한순간에 다 쏫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사람은 말수를 줄여야 합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성령받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입을 열 때에 그 말에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정말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입이 통제됩니다. 똑 해야할 말만하게 됩니다. 사람을 살리고, 힘을 주는 말들이, 나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들이 입을 열어서 말을 하기 시작할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들었습니다. 각자 자기의 난곳 방언으로 다 알아들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못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사실은 놀라운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을 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을 하면 모든 이들이 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즉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답답한 사람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은 말이 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 성령강림주일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놀랍게 힘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놀랍게 증거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성령강림을 통해서 드디어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려 내 증인이 되리라”(행1:8)의 말씀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의 성취는 바로 이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바람같이, 불같이 내 심령속에, 우리 교회위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탄력을 받기 시작하고, 힘을 얻기 시작하고, 능력을 얻기 시작하고,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일들이 다 사라지고 놀라운 승리, 부흥을 가져올 줄로 믿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하기를 즐겨하시는 그래서 그 충만케 하시는 성령으로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일이 이제부터 일어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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