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되는 날
사도행전3:19 07.3.4
사도행전3:19 07.3.4
사람은 살아가면서 웃을 날이 많아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점점 세상은 웃을 일이 없어집니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좀 실컷 웃어봤으면 좋겠는데, 웃을 꺼리가 없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어느 때부터인가 TV를 봐도 드라마는 안보고 코메디 프로들을 즐겨보기 시작합니다. 웃을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샌가 저도 드라마보다는 개그프로그램들이 좋습니다. 억지로라도 웃어보려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마음이 우울할 때는 아무리 웃기는 프로를 보아도 웃음이 나지 안습니다.
세상의 돌아가는 일들이 모두들 어두운 이야기들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요즘 개그맨 들은 참 힘들겠다 싶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어느 때부터인가 TV를 봐도 드라마는 안보고 코메디 프로들을 즐겨보기 시작합니다. 웃을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샌가 저도 드라마보다는 개그프로그램들이 좋습니다. 억지로라도 웃어보려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마음이 우울할 때는 아무리 웃기는 프로를 보아도 웃음이 나지 안습니다.
세상의 돌아가는 일들이 모두들 어두운 이야기들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요즘 개그맨 들은 참 힘들겠다 싶습니다.
현진건씨가 지은 단편 소설 중에 '운수좋은 날'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암울했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은 인력거로 손님들을 나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 아저씨는 그 날도 병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일을 나가는데 아내는 그 날만큼은 자기 곁에 꼭 있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합니다.
그런데 하루 벌어 먹고사는 힘든 형편에 그 아저씨는 어쩔 수 없이 병든 아내를 뒤로한 채 일을 나가게 되는데, 그날 따라 이상하게 그 인력거에 많은 손님들이 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편이 하는 일마다 잘되는 가장 운수 좋은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일이 잘되어 기뻐해야 할 이 남편은 그 운수 좋은 그 날에 마음이 영 평안하지도 기쁘지도 않은 것입니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돌아와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죽어 있었고 그 남편은 통곡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애처롭게 끝나게 됩니다.
암울했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은 인력거로 손님들을 나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 아저씨는 그 날도 병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일을 나가는데 아내는 그 날만큼은 자기 곁에 꼭 있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합니다.
그런데 하루 벌어 먹고사는 힘든 형편에 그 아저씨는 어쩔 수 없이 병든 아내를 뒤로한 채 일을 나가게 되는데, 그날 따라 이상하게 그 인력거에 많은 손님들이 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편이 하는 일마다 잘되는 가장 운수 좋은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일이 잘되어 기뻐해야 할 이 남편은 그 운수 좋은 그 날에 마음이 영 평안하지도 기쁘지도 않은 것입니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돌아와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죽어 있었고 그 남편은 통곡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애처롭게 끝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음껏 웃고 싶지만 그것이 오히려 울음이 되어지는 슬픈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웃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7장에서 이세대를 비유하기를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합니다. 진정한 웃음과 울음을 상실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은 우리의 감성을 점점 흐리게 만들어놓습니다. 그래서 개그맨들도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웃기게 하기 위해서 점점 더 유치하고, 강한 것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을 웃기려고 애를 쓰는 안타까운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성경은 우리가 이렇게 웃음을 잃어버리고 진정한 유쾌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을 향해서 진정으로 웃을수 있는 유쾌함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영적인 즐거움을 맛보아야 영혼이 잘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럼 본문은 우리의 영적 유괘함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누가복음7장에서 이세대를 비유하기를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합니다. 진정한 웃음과 울음을 상실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은 우리의 감성을 점점 흐리게 만들어놓습니다. 그래서 개그맨들도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웃기게 하기 위해서 점점 더 유치하고, 강한 것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을 웃기려고 애를 쓰는 안타까운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성경은 우리가 이렇게 웃음을 잃어버리고 진정한 유쾌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을 향해서 진정으로 웃을수 있는 유쾌함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영적인 즐거움을 맛보아야 영혼이 잘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럼 본문은 우리의 영적 유괘함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 회개할 때 주어진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면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을 때 그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던 이사건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와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달라고 하면서 있을 때 그들을 향하여 설교를 했던 설교의 내용 중에 한 부분입니다.
베드로는 설교를 하면서 담대하게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너희가 저를 빌라도에게 고발을 했고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는데 너희가 억지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 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19절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회개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말을 들을 때에 동의합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살았던 분인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수가 있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나하고 상관이 없는 일이다! 상관이 있다면 그때 상시 살았던 사람들의 죄악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면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을 때 그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던 이사건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와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달라고 하면서 있을 때 그들을 향하여 설교를 했던 설교의 내용 중에 한 부분입니다.
베드로는 설교를 하면서 담대하게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너희가 저를 빌라도에게 고발을 했고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는데 너희가 억지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 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19절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회개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말을 들을 때에 동의합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살았던 분인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수가 있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나하고 상관이 없는 일이다! 상관이 있다면 그때 상시 살았던 사람들의 죄악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2004년도에 미국에서 한 유명한 영화가 개봉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일반극장에서 개봉되어 큰 영향을 미쳤던 영화가 있습니다. “The Passion of Christ” 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시비를 걸어서 더욱 유명해진 영화입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 영화 때문에 반 유대주의가 형성된다고 걱정하며 이 영화를 만들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반 유대주의를 부추길 것이라고 그들이 생각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이 영화의 줄거리가 그들에게 걸렸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약 12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로마에 반역하는 죄를 지었다고 고소하고, 법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만드는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가 방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었습니다. 강도짓을 하고 도망하던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서 회개하고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한일도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일들이 많았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고서 얼마나 울었었는지요!
이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한 사람은 바로 유명한 영화 배우인 멜 깁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전 재산을 투자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너무나 좋은 반응을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자가 멜 깁슨에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기자가 멜깁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생각합니까?” 이에 그의 대답은 “전 인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멜 깁슨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때문에 인류에게 비로소 평화와 화평의 소식이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반 유대주의를 부추길 것이라고 그들이 생각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이 영화의 줄거리가 그들에게 걸렸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약 12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로마에 반역하는 죄를 지었다고 고소하고, 법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만드는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가 방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었습니다. 강도짓을 하고 도망하던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서 회개하고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한일도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일들이 많았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고서 얼마나 울었었는지요!
이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한 사람은 바로 유명한 영화 배우인 멜 깁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전 재산을 투자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너무나 좋은 반응을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자가 멜 깁슨에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기자가 멜깁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생각합니까?” 이에 그의 대답은 “전 인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멜 깁슨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때문에 인류에게 비로소 평화와 화평의 소식이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회개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인정하는 순간에 되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단순히 회개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지 못하고, 누구를 욕하고, 미워하고, 도적질하고 하는 그런 내용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용서를 비는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회개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떤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되었는가가 우리의 구체적으로 지은 죄의 모습입니다. 몸으로 행동해서 지은 죄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으로 지은 죄악까지도 포함한 모든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지 못하고, 누구를 욕하고, 미워하고, 도적질하고 하는 그런 내용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용서를 비는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회개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떤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되었는가가 우리의 구체적으로 지은 죄의 모습입니다. 몸으로 행동해서 지은 죄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으로 지은 죄악까지도 포함한 모든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순절이라고 하는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준으로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기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된 사실을 기억하고 그 모든 일이 나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 온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른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내 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정할 때에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쾌함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은 죄의 무게 때문입니다. 죄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평화와 기쁨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의 영혼을 짖누르고 있었던 모든 짐들이 사라지고 우리의 영혼이 잘되어지고 유쾌하게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른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내 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정할 때에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쾌함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은 죄의 무게 때문입니다. 죄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평화와 기쁨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의 영혼을 짖누르고 있었던 모든 짐들이 사라지고 우리의 영혼이 잘되어지고 유쾌하게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2. 용서함을 받을 때 주어진다.
오늘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너희 죄 없이 함을 얻으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를 없게 하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죄를 짖고 도망하는 사람은 평생에 그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경찰만 보면 괜히 주눅이 들고, 피하게 되고, 언제나 두다리를 뻗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죄든지 공소시효라는 것이 있습니다.
죄를 짖고도 일정기간이 지나게 될 때까지 잡히지 않고 도망하게 되면 그 죄가 면해지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났다 할지라도 그 다음에는 양심의 법이 그 사람을 평생을 괴롭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죄를 없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자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아서 정당한 죄값을 치루고 나오게 될 때에 그 사람은 그때서야 자유로울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너희 죄 없이 함을 얻으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를 없게 하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죄를 짖고 도망하는 사람은 평생에 그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경찰만 보면 괜히 주눅이 들고, 피하게 되고, 언제나 두다리를 뻗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죄든지 공소시효라는 것이 있습니다.
죄를 짖고도 일정기간이 지나게 될 때까지 잡히지 않고 도망하게 되면 그 죄가 면해지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났다 할지라도 그 다음에는 양심의 법이 그 사람을 평생을 괴롭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죄를 없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자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아서 정당한 죄값을 치루고 나오게 될 때에 그 사람은 그때서야 자유로울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죄를 지었으면, 그 죄의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죄의 삯에 대해서 대단히 높은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그 기준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 죄의 온전한 해결은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만이 해결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는 이미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완전하게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라고 합니다.
내가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인가의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늘 죄값은 치루는 삶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봉사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어떤 선한 일이라도 해야지 죄값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지만,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오히려 더 죄책감으로 속박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그 기쁨을 가지고 너무 좋아서 하는 봉사, 선행, 이런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주님도 기뻐하시는 일이요, 일하는 나도 기쁨으로 섬길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받기 위해서 하는 봉사와 용서받은 기쁨으로 하는 봉사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전자는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기쁨도 평안도, 만족함도 없습니다. 피곤함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기쁨입니다. 누가 몰라주어도 좋습니다. 피곤하지 않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요 용서받았다는 기쁨이 우리를 유쾌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용서받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평생에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 죄의 온전한 해결은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만이 해결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는 이미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완전하게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라고 합니다.
내가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인가의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늘 죄값은 치루는 삶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봉사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어떤 선한 일이라도 해야지 죄값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지만,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오히려 더 죄책감으로 속박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그 기쁨을 가지고 너무 좋아서 하는 봉사, 선행, 이런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주님도 기뻐하시는 일이요, 일하는 나도 기쁨으로 섬길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받기 위해서 하는 봉사와 용서받은 기쁨으로 하는 봉사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전자는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기쁨도 평안도, 만족함도 없습니다. 피곤함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기쁨입니다. 누가 몰라주어도 좋습니다. 피곤하지 않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요 용서받았다는 기쁨이 우리를 유쾌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용서받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평생에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용서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헛된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피흘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에게 영혼의 즐거움, 자유, 그리고 유쾌함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기쁜 용서의 기쁨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주께로 오는 유쾌함.
본문 후반절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유쾌함으로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인생의 진정한 즐거움, 찬송, 기쁨, 감사, 우리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유쾌함은 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반전을 가져오는 것, 어둠고 깜깜하고, 소망이 없었던 내 인생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오는 놀라운 기쁨은 어느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간증을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이 유쾌하게 변한 사람 들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저는 그중에서 삭개오라는 인물을 들고 싶습니다. 삭개오는 세무서장을 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세무서장을 하고 세무서에 다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세리라고 불리는 세무서 직원들은 세금을 걷는 일을 하는데, 그들은 로마의 세금을 위해서 자기의 민족들을 강탈했던 사람입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던 시절, 식민지인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기도 했기에 그들은 반민족적인 일들을 저지르곤 했습니다. 로마의 세력을 등에 엎고 반강제적으로 세금을 걷었기에 그것도 자신의 욕심을 체우기 위해서 정직한 세금이 아니라 울며 겨자먹기 식의 세금을 거둬들여 폭리를 취했던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반민족자다, 하면서 모두에게 욕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삭개오는 늘 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은 모았지만 그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의 인생이 변합니다. 그는 더 이상 돈을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생이 변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은 안되었지만 필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손가락질하지 않고 그를 친구로 받아주었고 그에게 이제야 마음속으로 웃을수 있는 기쁨을 유쾌함을 사람들을 만나도 손들고 인사할 수 있는 인생으로 바꿔진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바꾸어주신 인생의 유쾌함입니다. 그의 영혼이 잘된 것입니다.
본문 후반절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유쾌함으로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인생의 진정한 즐거움, 찬송, 기쁨, 감사, 우리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유쾌함은 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반전을 가져오는 것, 어둠고 깜깜하고, 소망이 없었던 내 인생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오는 놀라운 기쁨은 어느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간증을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이 유쾌하게 변한 사람 들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저는 그중에서 삭개오라는 인물을 들고 싶습니다. 삭개오는 세무서장을 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세무서장을 하고 세무서에 다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세리라고 불리는 세무서 직원들은 세금을 걷는 일을 하는데, 그들은 로마의 세금을 위해서 자기의 민족들을 강탈했던 사람입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던 시절, 식민지인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기도 했기에 그들은 반민족적인 일들을 저지르곤 했습니다. 로마의 세력을 등에 엎고 반강제적으로 세금을 걷었기에 그것도 자신의 욕심을 체우기 위해서 정직한 세금이 아니라 울며 겨자먹기 식의 세금을 거둬들여 폭리를 취했던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반민족자다, 하면서 모두에게 욕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삭개오는 늘 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은 모았지만 그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의 인생이 변합니다. 그는 더 이상 돈을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생이 변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은 안되었지만 필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손가락질하지 않고 그를 친구로 받아주었고 그에게 이제야 마음속으로 웃을수 있는 기쁨을 유쾌함을 사람들을 만나도 손들고 인사할 수 있는 인생으로 바꿔진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바꾸어주신 인생의 유쾌함입니다. 그의 영혼이 잘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정으로 웃고 싶습니까 우리의 영혼에, 여러분의 삶이 유쾌해 지기를 원하십니까! 아무리 재미있는 코메디를 보아도 잠시 웃음입니다. 끝나면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현실 속에서는 슬픔이고 괴로움이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웃음을 잃어버린 생활을 하는 우리들의 인생이 언제나 웃고, 즐겁게 살고 쉽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먼저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진정한 회개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양 어깨를 짖누르던 죄의 문제를 회개하고 나면 주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흰눈처럼, 양털처럼 희고 깨끗하게 용서해주십니다.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내가 믿고 아멘 하기 시작하면 내 삶에 유쾌함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도 어두웠던 내 얼굴 속에 웃음이 돌기 시작하고 기쁨이 넘쳐서 무엇을 해도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몸이 건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 하면 건강한 땀을 흘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삶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형통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일하기에 모든 일들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동경제일교회 성도여러분의 온 삶이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유쾌하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으로 웃고 싶습니까 우리의 영혼에, 여러분의 삶이 유쾌해 지기를 원하십니까! 아무리 재미있는 코메디를 보아도 잠시 웃음입니다. 끝나면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현실 속에서는 슬픔이고 괴로움이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웃음을 잃어버린 생활을 하는 우리들의 인생이 언제나 웃고, 즐겁게 살고 쉽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먼저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진정한 회개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양 어깨를 짖누르던 죄의 문제를 회개하고 나면 주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흰눈처럼, 양털처럼 희고 깨끗하게 용서해주십니다.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내가 믿고 아멘 하기 시작하면 내 삶에 유쾌함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도 어두웠던 내 얼굴 속에 웃음이 돌기 시작하고 기쁨이 넘쳐서 무엇을 해도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몸이 건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 하면 건강한 땀을 흘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삶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형통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일하기에 모든 일들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동경제일교회 성도여러분의 온 삶이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유쾌하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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