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다리는 사람들! 마가2:13-17 07.6.3
어떤 이발사가 하루는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은혜는 다른 것이 아닌 전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평생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 믿으라고 한사람도 전도하지 못한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작정을 하고 우리가계에 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전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드디어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손님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도의 기회를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용기를 내지 못해서 전도를 못하고 손님들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루종일 그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용기를 못 내서 한사람에게도 말을 못 건 냈 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오늘 마지막일 것 같은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젊잖은 신사가 들어왔는데, 이 사람에게는 꼭 놓치지 말고 전도를 하자, 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드디어 손님이 앉았고, 이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어떤 말로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아! 죽음 의 이야기를 가지고 하면 영생을 이야기 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보니 면도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옛날 이발소에는 면도칼이 있고, 거기에 가죽 혁띠가 있습니다. 그 가죽 혁띠에 면도칼을 갈아서 면도를 해주곤 했는데, 그 이발사가 가죽띠에다가 면도칼을 갈면서 드디어 용기를 내어서 전도하리라 하면서 말을 꺼냅니다. “ 저~~~ 손님은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 이 말을 듣고 있던 손님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그제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깨닥고 도망가는 손님을 붙잡고 사정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그 이발사의 진지한 모습을 통해서 그 손님은 전도가 되어서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크리스챤으로 살면서 과연 몇 사람들이나 전도를 하셨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는 여러분의 전도를 받고 성도 되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예수 믿는 재미 중에 제일 큰 재미라고 한다면 전도하는 재미입니다. 내가 전도했던 사람이 세례 받을 때의 기쁨을 여러분은 누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직 그런 재미를 누리지 못하셨다면 이제부터라도 전도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제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깨닥고 도망가는 손님을 붙잡고 사정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그 이발사의 진지한 모습을 통해서 그 손님은 전도가 되어서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크리스챤으로 살면서 과연 몇 사람들이나 전도를 하셨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는 여러분의 전도를 받고 성도 되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예수 믿는 재미 중에 제일 큰 재미라고 한다면 전도하는 재미입니다. 내가 전도했던 사람이 세례 받을 때의 기쁨을 여러분은 누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직 그런 재미를 누리지 못하셨다면 이제부터라도 전도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1. 죄인들을 찾으시는 주님.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쫓으라” 하십니다. 이 모습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파격적인 모습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세리였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당시에 사람취급도 안 해주는 매국노라는 이름으로 불려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사람이 세리였습니다. 그저 돈만하는 돈벌레로 불렸던 것이 세리였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 세리입니다. 세상에 독한 놈이라고 불렸던 것이 세리였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로마의 하급관리가 되어서 유대인들의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정부에 바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세금을 책정하고 강제로 빼앗듯이 거두고 자기의 주머니를 채우고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관리들도 알면서도 눈을 감아주어서 서로, 자기 민족들끼리 싸우고, 미워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세리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레위에게 찾아가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찾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죄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면서도 하신 말이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면서 죄의 용서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의 용서가 바로 그 사람이 고침을 받는 구원을 받는 지름길이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보면서 교회는 “착한 사람들만 다니는 곳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착하지도 않고 못됐기 때문에 교회에 안나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에 일본인 교회에 있으면서 동네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전도를 하는데, 그가 하는 말입니다. “나는 영어를 못해서 교회에 못 간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교회 가는 것과 영어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 영어도 잘하고, 교회에 미국사람들도 오고, 하는 하이칼라 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영어를 못해서 교회에 다니고 싶지만 못 간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를 그런 특정계층만 다니는 곳으로 인식이 되었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미국선교사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일본선교의 초창기에 와서 했던 것이 “영어회화”였습니다. 영어를 통해서 선교를 하겠다는 것은 좋은 동기였지만, 교회를 하이칼라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선교사들은 일본에 와서 영어회화를 무기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요즘에서야 한국어강좌도 하지만, 초창기 한국선교사들은 한국어를 선교의 도구로 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선교사들은 전할 수 있는 것이 복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선교사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랬더니 그 죄인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가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사람을 가려서 전도를 합니다. 저는 어떤 교회에 설교목사로 봉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장로님이 있었는데, 교회가 어려우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헌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관심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 중년부인이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마치고 난 다음에 그 장로님이 저에게 “목사님 그 중년부인을 잘 좀 전도합시다. 내가 보니까 손가락에 커다란 반지를 끼고 있고 여유도 있어 보이는데, 그 사람이 교회 오면 교회재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지요! 어떤 이는 자기교회에는 박사들만 모이는 교회라고 자랑을 합니다. 사업가들이 많아서 교회가 부자라고 자랑하는 곳도 있습니다. 엘리트들이 많다고 자랑하는 곳도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합니까! 교회는 죄인들이 모여야 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인들만 찾아 다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7)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못된 사람들이 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인이 한 명밖에 없는 교회에 부임을 해서 첫 주일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부목사로 사역하던 교회에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했었지만, 이제 새로 시작하는 교회에서 한사람을 앞에 놓고 설교를 하려니까 힘이 쭉 빠졌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라서 나름대로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부터 이 사람 마져 도 보이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뒤에 그 사람이 찾아와서 목사님께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목사님, 몇 달 전에 제가 교회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었는데, 그때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답니다.
여러분 주변에 나는 죄가 많아서 교회에 못나옵니다! 라고 하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걱정하지 말고 전도해서 오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초청하는 분은 다 죄인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쫓으라” 하십니다. 이 모습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파격적인 모습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세리였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당시에 사람취급도 안 해주는 매국노라는 이름으로 불려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사람이 세리였습니다. 그저 돈만하는 돈벌레로 불렸던 것이 세리였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 세리입니다. 세상에 독한 놈이라고 불렸던 것이 세리였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로마의 하급관리가 되어서 유대인들의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정부에 바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세금을 책정하고 강제로 빼앗듯이 거두고 자기의 주머니를 채우고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관리들도 알면서도 눈을 감아주어서 서로, 자기 민족들끼리 싸우고, 미워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세리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레위에게 찾아가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찾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죄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면서도 하신 말이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면서 죄의 용서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의 용서가 바로 그 사람이 고침을 받는 구원을 받는 지름길이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보면서 교회는 “착한 사람들만 다니는 곳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착하지도 않고 못됐기 때문에 교회에 안나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에 일본인 교회에 있으면서 동네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전도를 하는데, 그가 하는 말입니다. “나는 영어를 못해서 교회에 못 간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교회 가는 것과 영어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 영어도 잘하고, 교회에 미국사람들도 오고, 하는 하이칼라 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영어를 못해서 교회에 다니고 싶지만 못 간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를 그런 특정계층만 다니는 곳으로 인식이 되었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미국선교사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일본선교의 초창기에 와서 했던 것이 “영어회화”였습니다. 영어를 통해서 선교를 하겠다는 것은 좋은 동기였지만, 교회를 하이칼라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선교사들은 일본에 와서 영어회화를 무기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요즘에서야 한국어강좌도 하지만, 초창기 한국선교사들은 한국어를 선교의 도구로 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선교사들은 전할 수 있는 것이 복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선교사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의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랬더니 그 죄인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가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사람을 가려서 전도를 합니다. 저는 어떤 교회에 설교목사로 봉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장로님이 있었는데, 교회가 어려우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헌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관심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 중년부인이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마치고 난 다음에 그 장로님이 저에게 “목사님 그 중년부인을 잘 좀 전도합시다. 내가 보니까 손가락에 커다란 반지를 끼고 있고 여유도 있어 보이는데, 그 사람이 교회 오면 교회재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지요! 어떤 이는 자기교회에는 박사들만 모이는 교회라고 자랑을 합니다. 사업가들이 많아서 교회가 부자라고 자랑하는 곳도 있습니다. 엘리트들이 많다고 자랑하는 곳도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합니까! 교회는 죄인들이 모여야 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인들만 찾아 다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7)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못된 사람들이 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인이 한 명밖에 없는 교회에 부임을 해서 첫 주일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부목사로 사역하던 교회에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했었지만, 이제 새로 시작하는 교회에서 한사람을 앞에 놓고 설교를 하려니까 힘이 쭉 빠졌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라서 나름대로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부터 이 사람 마져 도 보이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뒤에 그 사람이 찾아와서 목사님께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목사님, 몇 달 전에 제가 교회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었는데, 그때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답니다.
여러분 주변에 나는 죄가 많아서 교회에 못나옵니다! 라고 하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걱정하지 말고 전도해서 오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초청하는 분은 다 죄인들입니다.
2. 함께 식사하시는 주님.
오늘 본문에 보면 15절에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쫒으니라” 고합니다.
예수님은 찾으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같이 식사를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최고의 전도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의 첫출발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있었던 먹는 일이었고, 오병이어의 일도 먹는 일이었고, 오늘 레위를 부르시는 일도 먹는 일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다 도망가고 없었던 그들을 다시 제자로 부르시는 일도 갈릴리바닷가에서 떡 구워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마음에 안 맞는 사람하고 한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 밥이 넘어갑니까! 먹는 것마다 체할 것입니다. 원수하고 같이 앉아서 밥을 먹는다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 손님을 청할 때는 식당 좌석배치를 잘해야 합니다. 잘못배치를 해놓으면 좋은 마음에 모였다가 기분만 상하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리는 같이 밥 먹고 싶어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는 분이라든지, 아주 좋은 사람하고 같이 밥을 먹었다면 그 사람하고 한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일본에서 이런, 저런 사역을 하다보니까 한국교회에서 유명하신 분들하고 함께 식사를 할 일이 종종 생깁니다. 그런데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그렇게 자랑거리가 되고 기분이 좋고, 마치 그분들하고 잘 아는 것처럼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세리들이 평소에 하도 유명해서 얼굴도 쳐다보지 못할 그분, 하도 거룩해서 자기들과 같은 사람하고는 상대도 안 하실 것 같은 그분, 예수님과 한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영광입니까!
같이 밥을 먹는 다는 일은 인간관계에 대단히 좋은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같이 식사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셨던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한 식탁을 하는 것처럼, 좋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사도행전2장46,47절에 보면 “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고합니다. 같이 밥 먹는 것을 우습게 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한국사람들은 밥 먹은 것을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는 민족입니다. 친한 사람만 만나면 “같이 밥 먹자!” “식사 한끼 해요!” “제가 맛있는 거 대접할께요!” 합니다. 그리고 서운한 일이 있다가, 화해를 할 때도 밥으로 해결을 합니다. 같이 밥 한끼 먹고 나면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같이 밥 먹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입니다. 화해입니다. 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친해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본성도들도 한국인들과 친하게 지내려면 같이 밥 먹자고 하면 금방 친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그 세리들하고 같이 밥 한끼 먹은 것으로 인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15절에 보면“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쫒음이러라.” 합니다. 오늘 그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 한끼의 식사가 그저 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이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화해였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천하다고 손가락질 받던 모든 서러움이 눈 녹듯이 녹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를 쫒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누군가와 함께 한끼 식사하는 것이 그 영혼을 품에 앉고 기도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영혼을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전도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사람, 미웠던 사람에게 전화 걸어서 같이 밥 먹자고 이야기하시길 바랍니다. 의외로 그 사람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5절에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쫒으니라” 고합니다.
예수님은 찾으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같이 식사를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최고의 전도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의 첫출발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있었던 먹는 일이었고, 오병이어의 일도 먹는 일이었고, 오늘 레위를 부르시는 일도 먹는 일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다 도망가고 없었던 그들을 다시 제자로 부르시는 일도 갈릴리바닷가에서 떡 구워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마음에 안 맞는 사람하고 한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 밥이 넘어갑니까! 먹는 것마다 체할 것입니다. 원수하고 같이 앉아서 밥을 먹는다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 손님을 청할 때는 식당 좌석배치를 잘해야 합니다. 잘못배치를 해놓으면 좋은 마음에 모였다가 기분만 상하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리는 같이 밥 먹고 싶어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는 분이라든지, 아주 좋은 사람하고 같이 밥을 먹었다면 그 사람하고 한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일본에서 이런, 저런 사역을 하다보니까 한국교회에서 유명하신 분들하고 함께 식사를 할 일이 종종 생깁니다. 그런데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그렇게 자랑거리가 되고 기분이 좋고, 마치 그분들하고 잘 아는 것처럼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세리들이 평소에 하도 유명해서 얼굴도 쳐다보지 못할 그분, 하도 거룩해서 자기들과 같은 사람하고는 상대도 안 하실 것 같은 그분, 예수님과 한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영광입니까!
같이 밥을 먹는 다는 일은 인간관계에 대단히 좋은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같이 식사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셨던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한 식탁을 하는 것처럼, 좋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사도행전2장46,47절에 보면 “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고합니다. 같이 밥 먹는 것을 우습게 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한국사람들은 밥 먹은 것을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는 민족입니다. 친한 사람만 만나면 “같이 밥 먹자!” “식사 한끼 해요!” “제가 맛있는 거 대접할께요!” 합니다. 그리고 서운한 일이 있다가, 화해를 할 때도 밥으로 해결을 합니다. 같이 밥 한끼 먹고 나면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같이 밥 먹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입니다. 화해입니다. 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친해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본성도들도 한국인들과 친하게 지내려면 같이 밥 먹자고 하면 금방 친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그 세리들하고 같이 밥 한끼 먹은 것으로 인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15절에 보면“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쫒음이러라.” 합니다. 오늘 그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 한끼의 식사가 그저 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이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화해였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천하다고 손가락질 받던 모든 서러움이 눈 녹듯이 녹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를 쫒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누군가와 함께 한끼 식사하는 것이 그 영혼을 품에 앉고 기도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영혼을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전도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사람, 미웠던 사람에게 전화 걸어서 같이 밥 먹자고 이야기하시길 바랍니다. 의외로 그 사람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3. 예수님을 기다렸던 영혼.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세리 레위와 그 동료들은 오늘 보면 준비되어 있었던 영혼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그들의 모든 가치관이 녹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적으로 조금도 저항이 없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셨고,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이 소문 되어서 훗날 세리장 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의외로 여러분이 조금만 손을 대어도, 조금만 말을 걸어도 교회로 금방 따라 들어 올 준비된 영혼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어느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꼭 자기는 주일날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인데 전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예수를 믿으란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회사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도 다른 이야기는 늘 하지만 한번도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은 설교를 듣고 나서 전도를 못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서 꼭 전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 회사 사무실에 나가서 사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후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자기 비서였습니다. 가만히 생각 해보니까 이 비서에게 한번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비서가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지 하면서 사장은 다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서는 "제가 사장님을 15년 동안 모셨는데 저한테는 한번도 전도를 안 하셔서 제 생각에 저 같은 존재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나보다 생각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한테 전도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에 다니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의외로 준비된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여러분을 향해서 늘 마음을 열어놓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같이 교회 가자고 말 한마디만 하면 금방 따라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 여러분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한국에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집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무조건 찔러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구마를 쌂을 때 익었나 안 익었나! 를 알려면 젓가락으로 찔러 보는데, 그것처럼, 일단 한번 찔러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진짜 무르익은 고구마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보지도 안하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찔러 보시길 바랍니다. 그분의 고구마 전도법에서 는 이렇게 구호를 외친다고 합니다.
*생 고구마 걱정 말고 노는 입에 찔러 보자 *너도나도 젓가락 들고 찔러봐서 확인하자,
*나가면 만나고 안 나가면 못 만난다. *입을 열면 익은 것 찾고 입다물면 국물도 없다.
*너와 내가 입 다물면 동경시민 지옥 간다. *기도와 전도는 천국의 적금통장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세리 레위와 그 동료들은 오늘 보면 준비되어 있었던 영혼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그들의 모든 가치관이 녹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적으로 조금도 저항이 없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셨고,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이 소문 되어서 훗날 세리장 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의외로 여러분이 조금만 손을 대어도, 조금만 말을 걸어도 교회로 금방 따라 들어 올 준비된 영혼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어느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꼭 자기는 주일날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인데 전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예수를 믿으란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회사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도 다른 이야기는 늘 하지만 한번도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은 설교를 듣고 나서 전도를 못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서 꼭 전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 회사 사무실에 나가서 사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후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자기 비서였습니다. 가만히 생각 해보니까 이 비서에게 한번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비서가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지 하면서 사장은 다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서는 "제가 사장님을 15년 동안 모셨는데 저한테는 한번도 전도를 안 하셔서 제 생각에 저 같은 존재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나보다 생각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한테 전도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에 다니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의외로 준비된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여러분을 향해서 늘 마음을 열어놓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같이 교회 가자고 말 한마디만 하면 금방 따라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 여러분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한국에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집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무조건 찔러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구마를 쌂을 때 익었나 안 익었나! 를 알려면 젓가락으로 찔러 보는데, 그것처럼, 일단 한번 찔러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진짜 무르익은 고구마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보지도 안하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찔러 보시길 바랍니다. 그분의 고구마 전도법에서 는 이렇게 구호를 외친다고 합니다.
*생 고구마 걱정 말고 노는 입에 찔러 보자 *너도나도 젓가락 들고 찔러봐서 확인하자,
*나가면 만나고 안 나가면 못 만난다. *입을 열면 익은 것 찾고 입다물면 국물도 없다.
*너와 내가 입 다물면 동경시민 지옥 간다. *기도와 전도는 천국의 적금통장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을 기다리는 여러분이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이미 예수 믿을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영혼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되고 가 아니라, 이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전도해야 하고, 저 사람은 저렇기 때문에 전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영혼이든 구원의 기회에서 제외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병들고, 스스로 나는 죄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분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가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손 내밀지 않으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그 당시 사람들이 다 포기하고 있었던, 더 이상 인간 되기는 틀렸다, 하는 사람들,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르익었을 수 있습니다. 야꾸자라고 아에 전도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 저 사람은 저런 일을 하니까 하면서 빼놓았던 영혼들이 오히려 준비된 영혼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까지 그들을 품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을 주님은 이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나를 기다리는 바로 그 영혼들을 향하여 복음의 손길을 뻗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을 기다리는 여러분이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이미 예수 믿을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영혼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되고 가 아니라, 이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전도해야 하고, 저 사람은 저렇기 때문에 전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영혼이든 구원의 기회에서 제외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병들고, 스스로 나는 죄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분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가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손 내밀지 않으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그 당시 사람들이 다 포기하고 있었던, 더 이상 인간 되기는 틀렸다, 하는 사람들,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르익었을 수 있습니다. 야꾸자라고 아에 전도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 저 사람은 저런 일을 하니까 하면서 빼놓았던 영혼들이 오히려 준비된 영혼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까지 그들을 품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을 주님은 이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나를 기다리는 바로 그 영혼들을 향하여 복음의 손길을 뻗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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