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일의 말씀

영적 자존심 삼상17:24-27

영적 자존심                 사무엘상17:24-27                         07/9/2         
 
중국의 대표적인 고궁인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들어섰던 세계적인 커피점 “스타벅스”가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에 부딪혀 지난 7월에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7년 동안 장사를 잘 하다가 올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스타벅스 퇴출운동”이 벌어지게 되면서, 결국은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자존심입니다. 자금성 측에서는 스타벅스라는 이름을 “고궁”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팔라고 했지만, 스타벅스 측에서는 “이름까지 숨기고 장사를 할 수는 없다” 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철수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어떤 한 여인이 중국산 없는 곳에서 살아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포기를 했다고 합니다. 결론은 중국산 없는 곳에서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보면서 미국 미네소타주는 최근 주내(州內)의 모든 상점에서 미국 내에서 만들어진 성조기만을 판매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의 중국산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게 되니까 적어도 “성조기만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을 쓰자” 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네소타주에서는 올해 연말부터 발효될 이 법안은 위반 시에 최고 1천 달러의 벌금에 90일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고, 애리조나 주와 뉴저지 주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도 이런 유사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산의 유입으로 미국의 제조업이 설자리를 잃게 되자 미국인들이 무너진 자존심을 국가의 상징인 성조기에서부터 찾으려는 몸부림인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는 성조기의 90%이상이 중국산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중국대로의 자존심을 미국은 미국대로의 자존심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저는 지금 두종류의 자존심이 싸움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가지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건 자존심이고, 또 하나는 골리앗이라는 자존심입니다. 이 두 자존심이 충돌을 하고 있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이런 자존심을 걸고 세상과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런 자존심의 충돌 앞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상한 자존심
오늘 본문 17장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사울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골리앗이 이끄는 블레셋 군대와의 전쟁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은 원래 기골이 장대한 사람입니다. 사무엘상9장2절에 보면 사울의 외모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는데,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어서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이스라엘이 처음에 왕을 세워달라고 애원했던 욕구들을 충족시켜주었습니다. 그는 의기 양양했으며, 점점 자신의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그가 점점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어가고 있을 때 그의 인간적인 면들이 들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왕이 범해서는 안될 선까지고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만이 드리게 되어있는 제사를 자신의 왕권으로 강제적으로 드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기에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생각이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마저도 침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의 눈에서 멀어지는 일들만을 행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오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가 그동안 그렇게 폼을 잡고, 지켜왔던 자신의 자존심이 무참하게 상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상했습니까? 드디어 임자를 만난 것입니다. 자신도 크고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임자를 만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적장으로 나온 골리앗의 모습은 본문4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뺌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썻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세겔이며 방패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4-7)고 합니다. 즉 2m가 넘는 키에 그가 입고 있는 갑옷만 해도 50kg도 더 되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이 골리앗 앞에 사울은 자존심이 철저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은 물론이요 이스라엘 진영의 어떤 군인도 감히 그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들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자존심의 상처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베트남에는 자존심 때문에 상처받은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서 젊은 남편은 임신한 아내를 두고 전쟁터로 나가야 했습니다. 몇 년 후 그가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마을입구에서 사내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인을 발견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준 조상에게 깊이 감사 드렸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시장에 가서 조상의 제단에 놓을 과일과 꽃, 다른 제물을 사오라고 말했다. 그녀가 물건을 사러 시장에 간 사이 그는 아들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저의 아빠가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매일밤 집에 왔고, 엄마는 아빠에게 말을 하면 울곤 했어요. 엄마가 앉으면 아빠도 앉았어요. 엄마가 누으면 아빠도 누웠어요.”그 말을 들은 남자의 가슴은 돌처럼 굳어졌습니다. 아내가 돌아왔을 때,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조상님께 과일과 꽃, 향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절하고 나서 돗자리를 둘둘말아 아내가 절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는 아내가 조상들 앞에 나타날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곧장 집을 나가 여러 날 동안 술을 마시고 마을을 돌아 다녔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 지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3일 뒤 그 젊은 부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강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저녁에 남자가 석유등잔에 불을 붙였다. 그때 어린 아들이 소리쳤다. “여기 아빠가 있어요”아이는 벽에 비친 아빠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빠는 매일 밤 저렇게 왔어요. 엄마는 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며 많이 울었어요. 엄마가 앉으면 그도 앉았어요. 엄마가 누우면 그도 누웠어요" 아내는 자신의 그림자에 대고 이렇게 소리치곤 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내곁에 없군요. 저 혼자 어떻게 저 아이를 키울수 있겠어요?”어느 날 밤 아이는 엄마에게 아빠가 누구이고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네 아빠란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도 그리워 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젊은 남편은 모든 것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습니다. 만일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나는 너무 고통스럽소 매일밤 어떤 남자가 집에 와서 당신과 이야기하고 함께 울었다고 우리 아이가 말했소. 그리고 당신이 누울 때 마다 같이 누웠다고 말했소. 그 남자가 도대체 누구요?” 라고 물었다면... 그녀는 설명할 기회를 얻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남편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기다렸는데 남편이 돌아와서 보여준 행동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 또한 자존심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사울은 골리앗에게 상처를 받고 또한 조그만 소년이었던 다윗에게 또한 번의 자존심의 상처를 받고 난 다음에 그의 비극적인 삶이 시작되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자존심의 상처가 있습니까! 그 상처를 우리는 치료해야 합니다. 그 상처가 치료받지 못하면 우리의 삶이 비극적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사람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것 같지만 좀더 넓게 보며, 하나님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골리앗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26절에 보면 “이 할례 없는 블레셋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상처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2. 자존심의 싸움
그래서 다윗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고 있는 사실앞에 의분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그리고 사울의 약함으로 인해서 상처받는 하나님의 이름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당당하게 골리앗앞에 나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45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당당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앞에 서는 모습을 봅니다.
그 앞에 골리앗은 자존심이 상합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네게 나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43,44) 고 합니다. 즉 하나님과 블레셋의 신들과의 영적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땅에 살아가면서 영적 자존심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자긍심”이기도 한 것입니다. 늘 우리는 영적인 전쟁터에서 우리가 사울처럼 자기 자만으로 살게 되면 사단에게 우리의 영적 자존심이 조롱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롯유다는 이런 사단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단이 유다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돈에 관심이 있는 그의 약점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를 가지고 놀기 시작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파는 도구로 사용이 되고, 그 좋아하던 돈을 한푼도 써보지도 못하고 그는 자기 스승을 팔았다고 하는 죄책감에 빠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의 영적 자긍심을 잃어버리게 되면 사단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시키는 대로합니다. 그래서 주일을 범하는 것, 하나님의 물질에 손을 대는 것, 믿는 사람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부터 출발을 합니다. 이 정도야 괜찬겠지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이 무슨 죄가 되는가 라는 생각으로 출발을 합니다. 술, 담배가 무슨 죄가 된단 말인가! 성경에 하지 말라고 어디에 써 있냐! 하면서 자꾸만 스스로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누구도 하는데! 하면서 공범자를 자꾸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됨, 자긍심을 잃어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보여도 이것들이 나중에 보면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골리앗으로 어느날 우리 앞에서 서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 라는 말처럼 어느날 골리앗에 내 앞에 서게 되고 그 앞에서 쩔쩔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윗처럼 서시길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외치는 다윗의 모습으로 우리의 영적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만나는 그 무엇 앞에 서시길 바랍니다.
 
3. 자존심의 회복
오늘 다윗이 이런 영적 자존심을 가지고 골리앗앞에 서서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자신의 양떼들을 지키던 물멧돌을 가지고 칼과 방패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골리앗을 향하여 힘껏 던졌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조그마한 돌맹이가 골리앗의 이마에 박에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는 쓰러진 골리앗에게 달려가 다윗을 죽으려고 차고 있었던 골리앗의 칼을 빼어들어서 단칼에 목을 쳐내는 일어 벌어졌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블레셋진영은 놀라서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장면을 보고 있었던 사울의 진영 즉 하나님의 군대의 진영은 순식간에 사기가 백배하였습니다. 잃어버린 자존심이 한순간에 살아간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골리앗 앞에 우리는 다윗의 물멧돌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물맷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의 손에 익은 것이었습니다. 손에 잡으면 안정감있게 잡히는 것입니다. 이번에 교회학교 캠프에 가서 강가로 물놀이를 나갔습니다. 저는 그런곳에 가면 꼭 하는 놀이가 있습니다.  돌날리기입니다. 평평하고 매끈한 돌을 고릅니다. 그리고는 수면을 향해서 힘껏 던지면 그 돌이 수면에 뜅기면서 멀리 날아갑니다. 저는 그런 놀이를 좋아 합니다. 수면을 타고 중간에 물이 안 빠지고 강건너편으로 건너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남자들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놀이입니다. 이때 중요한것인 돌입니다. 그냥 돌이 아니라 손에 잘 맞는 돌을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평소에 이런 물멧돌 던지기를 많이 해본 사람입니다. 자신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겠습니까? 그러니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서 던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물멧돌이 있습니까! 영적 전쟁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사단을 향해서 골리앗을 향해서 던질수 있는 물멧돌이 있습니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싸울 수 있고,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회를 물맷돌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금식기도를 물멧돌로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멀어서 새벽에 나오지 못하는 분은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성경을 보고 묵상을 하는 QT를 물멧 돌로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늘 빠지지 않는 예배생활, 경건 생활, 이런것들이 우리에게 물멧돌이 되어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술, 담배는 하지 않겠다고 자신을 지키는 이들도, 그것이 후에 물멧돌이 되어서 여러분의 신앙과 건강을 지켜줄 수 도 있습니다.
여러분 일주일에 교회에 딱 한번만 나오는 것만으로는 우리 손에 딱 맞는 물멧돌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제 이런 영적 싸움에서 이기시기를 원하시면 한번씩만이라도 더 늘리시길 바랍니다. 일주일에 딱 한번 교회에 나오던 분은 두 번씩 나오려고 애를 쓰시길 바랍니다. 새벽기도회를 한번 더 나오던지, 수요예배를 나오던지, 금요기도회를 나오던지, 한번이라도 더 나오려고 애를 쓰시길 바랍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물멧돌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이 터진 다음에는 늦을 수도 있습니다. 손에 맞지 않아서 던져도 빚 나갈 수도 있습니다. 아무 일이 없을 때, 건강할 때, 모든 것이 형통할 때 물멧돌을 던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경건의 연습”이라고 합니다. 이 경건의 연습이 잘된 사람은 나중에 환난의 날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물멧돌을 잘 던지는 연습이 되어 있기에 골리앗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조금도 떨거나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영적 자존심을 손상당해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주체하지 말고 당당하게 싸울수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안 하던 것을 하려면 잘 안됩니다. 평소에 기도훈련이 안된 사람은 기도하려면 잘 안나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릅니다. 당황이 되어서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이것도 생각이 안 나서 하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에 군에 있을 때 훈련소 군종이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었는지 모릅니다. 이름만 군종 입니다.
평소에 성경을 읽는 버릇이 안되면 성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신약에 있는지, 구약에 있는지도 모르고, 헌금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주일을 왜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고,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물멧돌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공격을 당했을 때. 무엇을 가지고 대처하시겠습니까? 여기에 마땅히 대처하지 못하면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창피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동경제일교회의 성도로서, 집사로서, 권사로서, 장로로서 자긍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킬수 있는 영적 물멧돌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연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상처받은 하나님의 군대를 단숨에 일으켜서 블레셋을 단숨에 물리쳤던 것 같은 영적승리를 매일 하시는 여러분과 우리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일의 말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것에 관심을... 마18:1-7  (0) 2010.07.31
예수님을 찾아서 눅2:41-51  (0) 2010.07.31
믿음으로 사는 삶 히11:1-3  (0) 2010.07.31
복주신 날 창2:1-3  (0) 2010.07.31
삼겹줄의 은혜 전4:7-12  (0) 2010.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