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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믿음의 삶 히10:36-39

믿음의 삶                              히10:36-39                    08.6.29

 

터키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어진 왕이 민정시찰을 나갔습니다. 그때 한 가난한 여인이 왕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고 “제가 잠든 사이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쳐 달아났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물건을 생각하면 잠들지 말았어야지. 어찌 잠들었는가?”하고 여인을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저는 폐하를 믿고 편히 잠들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늘 깨어 백성을 보살펴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이 믿음의 여인에게 큰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백성이 왕을 믿고 편안히 잠들 수 있다면 그것은 왕에 대한 믿음입니다. 왕은 그 여인의 믿음에 큰 감동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야지 참 저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야!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인내하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먼저 인내하는 것입니다. 본문36절에 보면“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고 하면서 믿음의 삶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내란 무엇입니까! 참는 것입니다. 견디는 것입니다. 이겨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그 구원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으로 지킵니까! 인내로 지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4:13에서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단거리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장거리를 달리는 것입니다. 단거리는 전력을 다해서 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불과 1,2분 안에 얻어 집니다. 그러나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라고 하는 42.195Km를 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기록보유자는 작년 9월 30엘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세운 2시간 4분26초입니다.  불과 몇 분 안에 얻어지는 결과와 두시간이 넘는 자기와의 끝없는 싸움을 해야하는 마라톤은 그 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마라톤을 올림픽의 꽃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하는 게임입니다. 모든 시선을 집중하게 하는 경기입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이런 마라톤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 코스를 뛰기 위해서 달리는 페이스를 조절을 합니다. 마라톤선수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뛰는 선수는 없습니다. 처음에 뒤젖다고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끝까지 달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것에는 이런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이 구원을 빼앗아 가려고 악한 사단은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지게 만듭니다. 중간에 포기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위협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롱을 하기도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힘을 빼게 만듭니다. “나 같은 것이 뭔 믿음을 갖는다고 하는가! 나 같은 것이 교회는 다녀서 뭐하나! ”하면서 우리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이 올 때에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무조건 참아야 합니다.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에 대해서 잘 압니다.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에 승한 사람이었다 (민12:2)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온갖 원망과 불평 속에서도 그는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생활 40여년이 다 되었을 때에 모세가 그만 참지 못하고 범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전히 백성들은 조금만 문제가 있고 불편함을 느끼면 원망과 불평을 하고 하는데, 그 날도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은 물이 없다고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차라리 우리가 죽는 것이 더 낮았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가 더 좋았다고 합니다. 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해서 여기서 죽게 하려고 하냐고 원망과 불평을 할 때 모세가 하나님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반석을 향해서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동안 잘 참아왔었는데, 그 날 따라서는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을 향하여 “이 패역한 너희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서는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씩이나 치면서 반석에서 물을 내었습니다. 모세는 화가 났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향하여 패역한 자들이라고 하면서 마치 자기가 물을 주는 것처럼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씩이나 힘있게 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렇게도 소망이었던 가나안에 들어가는 영광을 빼앗아 버립니다. 결국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후에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한스러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인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내는 결코 쉬운 환경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악한 사단 마귀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뜨리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 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8:35-39) 고 합니다. 결단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강제적으로 끌어낼 수는 없지만 그러나 마귀는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공격을 해서 스스로 포기하게 만듭니다. 우리 스스로 믿음을 포기하게는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실망, 좌절, 슬픔, 이지메,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포기하게 만듭니다. 스스로 믿음에서 떨어지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내함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믿음 좋은 처녀가 결혼을 하고 남편의 고향인 전주로 내려가 가정을 꾸몄습니다. 시어머니는 불교에 독실한 보살이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처음에는 몰래 교회를 나갔는데 시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10년만 참자. 그 후에는 어머니도 수그러질 것이니 그 때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속셈은 '10년쯤 지나면 신앙을 아주 포기하겠지'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는데 부인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인은 몸만 교회에 안 나갈 뿐 구역장에게 부탁하여 매주 주보를 받아 가지고 혼자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 부인은 약방을 경영했는데, 구역장을 통하여 십일조를 꼬박꼬박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얼마 후 자녀를 삼남매 낳았는데 그 아이들을 교회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행사가 있을 때는 꼭 목사님이나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서 삼남매를 순서에 넣게 하고는 항상 시어머니를 가게 하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교회가 못마땅해 안 가려고 했지만, 그러면 부인은 "저는 바빠 서 못 가니 꼭 어머니가 가셔야지요. 아무도 안 가면 아이들이 얼마나 섭섭하겠어요"라고 하면서 권면 하였습니다. 손자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교회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뒷자리에 앉아 있었으나 손자 손녀의 재롱에 점점 앞으로 나가 박수도 치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긴 세월이 흘러 10년째 되는 날 부인은 남편에게 정색을 하며 물었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압니까?" "결혼기념일? 당신 생일?" "오늘이 바로 당신이 약속한 10년째 되는 날이에요. 그러니 이제 허락하세요. 이제는 교회에 나가겠어요. 그 동안 나는 혼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남편이 깜짝 놀랐습니다. '10년 동안 신앙 생활을 안 했으니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하였습니다. 남편은 어머니 방에 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냐고 물으니 시어머니가 무릎을 탁 치며 하는 말이 "얘! 한 사람이 그렇게 예수 믿는데도 이렇게 부자가 되고 집안이 잘 되는데 이왕이면 우리 식구 다 예수 믿고 더 부자 되어 잘살아 보자꾸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에는 이런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렵고 힘이 들지요, 참으시길 바랍니다. 견디시길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의 날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의인으로.
또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의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여러분 우리는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모든 죄 값을 치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즉 용서받은 의인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짖고 도망 다니는 사람은 평생을 쫒기는 신세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용서받은 사람은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용서받은 사람은 당당하지만, 건방지게 살지 못합니다. 교만하게 살지 못합니다. 당당하게 살지만 언제나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언제나 남을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관대하게 살아갑니다. 이것이 용서받은 의인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인줄로 믿습니다.
프랑스왕 루이12세가 왕좌에 오르기 전에 그에게 많은 적들이 있었는데 그가 왕위에 오르자 그 적들은 신변에 위협과 함께 극도의 불안에 쌓였습니다. 흘러나오는 말에 의하면 왕은 자기를 반대하고 대립하던 모든 사람의 명단을 작성했다는 것이고 더욱이 그 명단 하나 하나에  왕이 직접 검은 색깔로 십자가를 일일이 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들을 들리자 어떤 이들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채 부랴 부랴 파리를 벗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간 이들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즉 왕은 전에 적이었던 그들을 용서했으며 목숨을 보장했다는 것인데 왕이 직접 그린 검은 십자가는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로 용서받았으므로 자기도 과거의 원수를 한사람, 한사람 모두 용서한다는 의미로 검은 십자가를 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의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용서하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처럼” 너희도 형제를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의인 만들어주신 그분이 뜻하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믿음을 지키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믿고 있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읽었으면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용서하라고 하는 말씀을 읽었으면 용서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섬기라고 읽었으면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읽고 믿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삶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지도 못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도 아시고, 우리의 부족함도 아시고, 우리의 능력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을 쓰고, 애를 쓰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나이가 10살이면 열 살에 맞는 믿음의 행위를 원하시고, 20살이면 20살에 맞는 믿음의 행위를 원하십니다. 40살이면 사십에 맞는 믿음의 행위를 원하십니다. 교회에 나온지는 1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1살, 2살처럼, 살아간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척교회가 보여주는 믿음이 있고, 10년된 교회가 보여주는 믿음이 있고, 40년된 교회가 보여주는 믿음이 있습니다.  금년이 재일교단의 100주년을 맞이했는데 100년이 되었으면 100년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과연 용서받은 의인인가! 를 먼저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먼저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들 때, 우리의 삶의 모습은 확실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좌절금지.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중요한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39절의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이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고 합니다.
바로 그 앞에는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침륜에 빠지는 자가 아니다 라는 말은 우리는 멸망당할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넘어지고, 좌절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겠다고 고백을 했으면 이제 우리에게는 좌절은 금지라는 것입니다. 좌절을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갈 수도 실망하고 좌절할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을 들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좌절하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철 왕 카네기는 젊은 시절 세일즈맨으로 이집 저집을 방문하며 물건을 팔러 다녔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 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집을 들어서자마자 카네기를 완전히 압도해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집의 벽 한 가운데 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황량해 보이기까지 한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과 낡아 빠진 노가 썰물에 밀려 흰 백사장에 제멋대로 널려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하단에는‘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라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카네기는 그림과 글귀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그 그림으로 인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노인 댁에 찾아가 그 노인에게 부탁하기를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그 그림을 자신에게 꼭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그의 간절한 부탁은 받아들여져 결국 그 노인은 그 그림을 카네기에게 주었는데 카네기는 그의 사무실 한 가운데에 그 그림을 일생동안 걸어 놓았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 그림은 카네기의 일생을 좌우한 굳건한 생활신조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썰물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옵니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희망의 날을 준비해 주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먼저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그 믿음의 기초가 든든하면 그것을 무너트리려는 어떤 환난이 와도 시련이 와도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인내할수 있는가는 여러분의 구원의 가치에 대한 믿음의 크기 만큼입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위해서 인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어리석음이고, 그것은 고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지키려는 인내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조금만 더 견디자,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주님이 내가 복을 주실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천국의 상급이 있다, 주님의 영광이 임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상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 부르심의 상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 당한 경주를 쉬지 않고 달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용서받은 의인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나를 구원해주신 그 구원의 은혜만 생각하면, 나를 용서해주신 그 용서만 생각하면,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그 은혜만 생각하면 우리는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이 와도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는 피할 길도 내어주시는 것이 주님의 은총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것을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끝까지 달려서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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