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성도 마11:20-24 08.8.31
체험적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참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많은 경험과 체험도 중요하지만 더욱 진정한 믿음은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자기의 이성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예수님의 제자 도마에게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자가 복되다"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체험적인 신앙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더욱 떨어지게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에 사는 한 여성도가 간증을 합니다. 남편이 일터에서 갑작스런 심장 쇼크로 쓰러졌지만, 헬리콥터까지 동원된 완벽한 후속 조처로 목숨을 구하게 된 간증이었습니다. 만약 1초만 늦었더라도 회복 불능이었을 것임을 간증하는 그녀의 얼굴 표정은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은혜롭던 그녀의 간증은 한숨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그 사건으로 인해 직장에서 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고, 평생 사업과는 무관하게 살았던 남편은 퇴직금으로 몽땅 주식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미국의 주식 시장은 얼어붙기 시작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주가가 계속 떨어지면 남편과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긴 한숨으로 자신의 간증을 끝 마쳤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하나님께서 심장 쇼크로 쓰러진 남편을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구해 주셨음을 믿고 간증했다면, 왜 그 하나님께서 남편과 자신의 내일 역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지 못할까요? 과거에 자신과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비록 자신이 소유한 주식의 가격이 지금 떨어질 망정, 그 과정을 통해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오늘보다 더 보배로운 내일을 준비하고 계심을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
체험적인 신앙을 갖는 것이 대단히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날마다 체험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아침마다 만나를 먹었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기도 했고, 쓴 물이 단물이 되기도 했고, 홍해가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체험적인 신앙을 가졌던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금송아지를 만들기도 했으며, 우상을 섬기기 도 했으면, 원망과 불평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그 우상을 섬기고 있는 그 시간,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 그 시간에도 변함 없이 그들의 머리 위에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경험하고 그 아침에도 분명히 만나를 먹었을 것인데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과 권능을 베푸셨던 동네들을 향하여 책망하시는 내용입니다.
1. 많은 기적을 받은이들.
20절"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고을들" 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과 기적들을 행해주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기도 하시고, 특별히 벳세다는 예수님께서 5병2어의 기적으로 유명한곳입니다. 특히 벳세다는 히브리어로는 베데스다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예수님께서 38년된 환자를 고쳐주었던 곳으로 유명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다른 곳보다도 더 많은 기적을 베푸셨다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기적을 베푸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기적을 베푸실 때는 그들이 그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해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공산주의가 팽배한 동구권에 들어가서 성경을 전달하고 전도하는 일을 하시던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선교사님이 한번은 기도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좀 당당하게 성경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을까?’ 그래서 보통 때는 007작전처럼 성경을 숨겨서 들어갔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담대함이 생겨서 배짱 좋게 가방에 성경을 잔뜩 집어 넣었습니다.
헝가리의 세관을 통과하는데, 세관원이 물었습니다. “신고할 물품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예,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뭡니까?”라고 묻는 세관원의 물음에 선교사님은 가방을 열면서 “성경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세관원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이것이 왜 신고할 물품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이게 워낙 비싸서요”라고 말하자 “얼마나 비쌉니까?”라고 되묻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은 침착하게 “이건 너무 비싸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 안에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평화가 없던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고, 죄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용서와 구원을 주는 말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세관은 “그 책을 나에게도 하나 주시오”라고 하면서 나머지는 그냥 들고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21세기에도 분명히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일어나는가 하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사람들에게 자랑거리로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말로해서는 믿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예수님께서 특히 많은 기적을 베푸셨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완악 했다고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주님께서 그만큼 인내를 가지고 한가지, 한가지 기적을 베풀어주실 때마다 기대하셨던 것이 있는데,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그만큼 컷다 라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함부러 기적을 일으키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혔을 때에 빌라도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헤롯 에게로 보냈습니다. 그때에 헤롯이 예수님이 왔다는 사실을 듣고는 반가워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 소문난 기적꾼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마술쑈라도 보려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기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만약에 헤롯의 눈앞에서 조그마한 기적이라도 일어켜 주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풀려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리에서는 절대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기적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많이 베풀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께서 고라신과 벳세대에 대해서 기대하는 마음이 컷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일생 속에 기적이 많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많은 기적을 보아야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적이 많으면 많은 만큼 많은 것들이 요구되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심은 만큼 거두어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많은 기적을 욕심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그 기적에 맞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회개하지 않는 이들.
오늘 예수님께서 강하게 책망을 하십니다.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 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하십니다.
여러분 주님이 이토록 화를 내시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이처럼 험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그만큼 주님은 실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많은 권능을 기적을 일으켜주신 것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는 단 한가지 마음이었는데, 그들은 전혀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고기 잡던 베드로에게 오셨을 때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 날 베드로는 완전히 실패했었습니다.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았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하십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엄청난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기적을 경험한 베드로가 예수님께 어떻게 했습니까?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회개를 했다는 것입니다. 기적 앞 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그 모습은 기적이후에 일어난 베드로의 반응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시고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고 말씀하셨던 것을 봅니다. 많은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기적 후에 예수님을 따랐던 경우들을 많이 바라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보였던 고라신과 벳세다에서는 전혀 회개할 줄을 몰랐다고 하는 것이 주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셨습니까? 그 경험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그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게 하고 그 회개에 맞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경험한 성도들은 주님을 성심으로 따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목사님에게 찾아와 “진정한 변화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말하기를 “마르틴 루터는 세 가지 변화를 말했습니다. 머리의 회심과 가슴의 회심, 돈지갑의 회심이 그것입니다. 머리의 회심이란 지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복음의 세계, 진리의 세계를 깨닫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가슴에 뜨거운 사랑과 정의가 있어 그것을 이웃에 실천해야 하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물질에 대한 변화입니다. 물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회심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고 체험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한다면 우리의 온 인격을 다해서 회개하고 돌이켜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주변에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도 전혀 그 인격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혀 예수믿는 냄새도 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다가 떨어진 사람들, 이들을 만나보면 과거에 다 깊은 영적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오히려 무당이 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너무 많은 기적만을 경험하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단들은 자꾸만 기적만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우리의 영혼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체험시키려고 합니다. 결국 그런 곳에서는 그 이단 교주의 개인적 욕망을 체우는 것으로 가득 차게 되고 모여든 많은 영혼들이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가지 오해를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금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신 분들의 그 신앙을 깍아내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분명히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땅에는 기적이 필요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로 병이 낳고, 문제가 해결되고 인생의 놀라운 변화가 필요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그 하나님의 기적을 받은 다음의 우리의 신앙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적을 경험한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어느 사람들보다도 이 세상 어떤 기적보다도 더 큰 기적을 이미 경험한 성도들입니다.
어떤 기적일까요. 우리가, 내가,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기적입니다.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서 놀란 사실이 있었답니다. 그것을 저사람은 반드시 천국에 갔을거야! 했던 사람을 찾을수 없었다는것과, 또 저사람은 도저히 구원받을수 없는 사람이야! 라고 정죄했던 사람을 그곳에서 만나는 것과 마지막 놀란 것은 자기 자신이 천국에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 일본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0.5%도 안되는데, 우리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성도들입니다. 50억 인구들 중에서 하나님이 나 한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이미 경험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앞에 겸손하게 무릎꿇고 회개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앞에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3. 교만한이들.
그 다음에 주님이 또 책망하신 동네는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 까지 낮아지리라" 즉 가버나움의 교만을 책망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주로 활동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많은 이적을 행함으로써 예수님의 신성과 전지전능함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설교하셨고 문둥병자를 고치셨으며 중풍병으로 누운 종을 낳게 하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으며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셨으며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낫게 하셨으며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셨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펴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였던 갈리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번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물질의 풍요가 많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발달하고 번화하고 화려했던 동네 가버나움은 그 풍요로움과 또 유명한 유대인의 회당이 그곳에 있었으므로 교육적으로도 상당한 지역이었습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지적 교만으로 이어져서 예수님을 배격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가버나움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교만이 예수님을 거부했고, 예수님을 배격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그 교만을 책망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잠언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라 고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어느 것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고, 어느 것도 귀에 들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교만한 자에게 신령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당나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와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다 아는 이야기라 합니다. 저 정도 이야기는 나도 하겠다고 합니다. 결국 그 교만이 자신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30장에서는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네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7-9) 라고 고백합니다.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봐 필요이상의 부를 구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는 이의 간구는 진실한 간구요 겸손한 기도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교만하게 만들 것 같습니까! 돈이 사람을 그렇게 만듭니다. 물론 돈 자체가 그런 것은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디모데전서 6:10 에 보면 그 돈을 사랑하게 되면 그 돈은 금방 우리를 교만으로 밀어 넣어서 일만 악의 뿌리가 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돈은 철저하게 내가 관리해야 할 대상이지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많이 배웠다고 하는 것이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에 자신의 모든 학문을 분토와 같이 여긴다고 하였던 것을 봅니다.
오늘 주님은 교만한 영혼들을 향하여 엄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의 그 교만이 심판날에 소돔땅이 오히려 더 낳을 것이다 라고 책망하십니다. 여러분 소돔이 어떻게 멸망했습니까? 그들의 교만과 죄악으로 인하여 하늘에서 불 유황이 떨어져서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아주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돔이 교만한사람들이 심판 날에 당할 재앙보다 휠씬 더 쉬울 것이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교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겸손하시길 바랍니다. 그 겸손의 자리에 내려가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은 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언제나 회개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릎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를 아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이적과 기사들. 기적들은 우리영혼을 사랑하셔서 우리가 주님앞에 겸손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주님앞에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주시는 것들입니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주시는 권능들입니다. 그러므로 늘 주님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회개하면서, 주님앞에 무릎을 꿇는 영혼들을 주님은 사랑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그말씀을 기억하여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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