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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상 주심을 바라고 빌3:13-14

상주심을 바라고
           
 빌립보3:13-14              교회설립43주년 기념예배    09.2.8

오늘은 우리교회가 43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이기준목사님에 의해서 1966년 2월 7일에 아까사카 뉴재펜호텔에서 설립이 되어졌습니다. 그후 오랜 세월을 5군데의 회관과 일본인교회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다가 14년전인 1994년 8월에 지금의 건물을 구입하고 교회당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성도들이 일본에 주재원 또는 유학생으로 왔다가 우리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다가, 많은 사회적인 일군들도 배출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목사님들도 여러분이 바뀌면서 제가 10대 목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사람의 나이로 하면 중년의 나이가 된 것이지요. 중년은 아름답습니다. 중년은 매력이 있습니다. 중년이 매력이 있고 멋이 있는 것은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경험들이 있어서 무엇을 해도 어색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이제 그런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많은 교회들에게 있어서 매력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써야할 때는 쓰고, 베풀 때는 베풀기도 하며, 역할을 해야할 때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적당한 무게감도 있어야 하는 것이 중년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또 중년은 적당한 경제력도 있어야지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교회에도 재정적으로도 적당하게 체워지는 은혜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도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면서 쓴 내용입니다. 그의 사역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쓰여진 내용인데도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여전히 복음에 대한 열망이 가득해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람은 이제 됐다! 하는 그 순간부터가 위험하다고 합니다. 다윗 왕이 무너진 것도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승리를 하고 나라가 강대국이 되었고, 이제는 자신이 직접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 다들 전쟁에 나갔는데 혼자서 궁에서 머물면서 있다가 다윗이 타락하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지, 얼마나 사역을 오래했든지 상관없이 언제나 초년생과 같은 마음을 가질 때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달려갈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이제 43년이 되었다고 연수의 자랑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의 고백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이제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역을 해야지 우리교회가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쓰임 받게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1. 뒤에것은 잊어버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은 13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라고 합니다.
나는 아직 잡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미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수많은 업적을 내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 갖혀 있었는데,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하고, 수많은 이단자들과의 논쟁속에서 복음을 튼튼하게 만들어놓았고, 수많은 교회들이 그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생겨났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로 인하여 변화되고 또 일꾼 되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는 아직 아무것도 잡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의 행했던 일들은 다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내가 그동안 내 업적만을 생각하고 있으면 앞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모든 업적을 다 잊어버리겠다고 고백합니다.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이집트를 방문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유산들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과거 찬란한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로 가난하고, 어떤 아이는 신발도 신지 않고 허드렌 물건을 원달라를 외치면서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은 과거를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처럼 보여졌습니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어떤 모습이 있든지 언제까지나 과거만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신앙간증만이 있고 오늘의 신앙간증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과거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오늘과 내일이 어두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성공한 과거가 있고, 실패한 과거가 있습니다. 성공한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도 앞으로 전진을 하지 못하지만 실패한 과거에 붙잡혀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실패가 두렵고, 사람들이 두려운 사람들입니다.
미국에 “할랜 샌더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과거의 모습을 보면 어디하나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5세 때 아버지를 잃었고 7세 때부터는 삯바느질하던 어머니를 도와 두 동생들에게 빵을 구워주기도 했습니다. 10세 때에는 이웃농가에서 일했고 11세 때에는 독일인의 집에서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매일 쟁기질을 하고 저녁마다 16마리나 되는 젖소들의 젖을 짜는 등 하루 14시간씩 노동해야 했습니다.
어렵사리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장장이, 철도 소방원, 직업군인, 보험외판원, 유람선종업원 등을 전전했고 29세 때 주유소를 차렸습니다.
어떤 차가 들어오든지 우선 세차를 한 후 주유 여부를 묻는 서비스정신 덕분에 번창했으나 대공황으로 망했습니다. 1929년 39세 때 주유소 귀퉁이에 식당을 차려 돈을 모았지만 4년 만에 불이 나 다 잃었습니다.
다시 식당을 열어 25년 동안 붙박이처럼 일했습니다. 그러나 64세 때 주 정부가 갑자기 간선 고속도로를 마을의 서쪽으로 7마일 가량 옮기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그의 카페로 찾아오던 손님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습니다. 1년 후 그는 파산하기에 이르렀고 매월 연금 105달러가 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이미 60대 중반이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느냐며 그가 눈물로 기도했을 때, 닭이 날아오르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닭튀김 기술과 압력 요리비법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을 함께 할 동업자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60을 넘은 노인과 함께 동업을 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려 1,008번의 거절 끝에 피터 하먼이라는 사람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KFC 창업주, 커널 할랜드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 1890-1980)의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그가 자신의 슬프고 아픈 과거 절망으로 가득찬 과거에 사로잡혀서 살았다면 그에게 이런 노년의 엄청난 성공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든지 과거에 사로잡혀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2. 목표를 향해서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이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 라고 합니다. 모든 목사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다면 바울입니다. 그래서 유난히 성서속의 인물을 들어서 자신의 이름을 짖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쓰는 이름이 바울이니다. 모두다 자신의 이름을 바울이라고 부르고 싶어합니다. 모두의 마음이 바울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겠지요.
이미 여기까지 온 사도바울의 사역은 수많은 일들을 상당히 이루어 놓은 상태입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바울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만큼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수많은 성경을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고, 그의 학문적 소양이나, 신앙적의 수준은 이미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그를 통해서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된 사람들이 또한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는 말하기를 아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신앙의 목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성과위주에 있지를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업적위주에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의 신앙의 목표는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 였습니다. 언제나 그의 신앙의 목표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나는 예수님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목표가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는 날까지 예수님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말고 다른 어떤 성과를 찾아서는 안됩니다. 업적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사무엘하24장에 보면 다윗왕이 이제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강대국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에 장관들에게 명해서 인구를 조사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인구조사는 좋은 정치를 하기 위한 생각이 아니었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한 생각으로 인구를 조사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것이 되어서 큰벌을 받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지 그것들을 마치 자신이 이룬 것처럼 자랑거리로 삼게 되었을 때에 우리가 달려왔던 목표는 예수님에서 벗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어야 합니다. 오로지 그분이 뜻하는 것이 우리가 뜻하는 것이고, 그분이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고, 그분이 하시고자 하셨던 일이 우리가 하고싶은 일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삶의 목표 라는 글이 있습니다.
1.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를 나타내기. (고후 4: 11) 
2.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 (빌립보서 4: 11)
3.세상에 대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기. (갈 6: 14) 
4.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교회의 유익을 구하기. (고전 10 : 24) 
5.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만을 담대히 전하기. (고전 2: 2)
6.복음을 전할지라도 전혀 자랑하지 않기. (고전 9 : 16) 
7.항상 자신의 몸을 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복종시키기. (고전 9: 27)  8.날마다, 매순간 자신에 대하여 죽기. (고전 15: 31) 
9.그리스도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기. (고후 4: 10) 
10.언제 어디서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기. (갈6: 14) 
11.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기. (빌3: 8) 
12.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기. (빌3: 14) 
13.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기. (롬14: 8)
14.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기. (고전 10: 31)
이렇게 사는 것이 예수님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KFC의 창업자 할랜 샌더스는 34세 때 그는 가족들과 함께 차를 몰고 가다가 다리가 끊어지는 바람에 15미터 아래로 추락했지만 멀쩡하게 살았습니다. 식당일을 하면서 48시간이나 잠도 못 잔 채, 졸음운전을 하다가 차가 절벽 아래로 3바퀴나 회전했지만 전복되지 않는 정상위치로 안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차례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은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삶의 방향을 예수님께로 맞추기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경건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는 눈비가 와도 매주일 2.5마일을 걸어서 교회에 다녔고, 자신도 모르게 교회생활이 몸에 배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신앙을 기념해 서부 인디애나에 작은 시골교회를 헌납하기도 했고 그는 인정이 많았고 언제나 후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아동들을 수없이 도왔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가난한 목회자들도 많이 후원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십일조를 드리는 등 교회에 다니면서 배운 것들을 다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죄용서와 같은,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교회를 끔찍이 사랑했고 은퇴 후 남은 생애 동안 주님을 증언하는 데 자신의 경험과 재산을 사용했습니다.
극빈자에서 부자가 됐던 그는 기꺼이 주님을 위해 다시 가난하게 되는 길로 돌아섰습니다.
마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자신의 생명처럼 생각해왔던 그 많던 재산을 이웃을 위해서 다 내어주고 그는 오로지 예수님만을 따르면 살기로 작정했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만은 목표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경건하게 만들어주고, 바르게 만들어줍니다. 기꺼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을수 있는 삶이 바로 예수님을 목표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니다.
우리교회도 예수님을 목표로 사역해 나간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설사 우리의 계획 속에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예산에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그일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3. 상주심을 믿고.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상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 에게서도 상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받는 상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이 땅에서는 어떤 일을 잘해서 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이나, 어떤 특정의 사람들은 상을 굉장히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들은 분명 잘해서 받는 것들이지만, 대부분의 상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 빛이 바라고, 나중에는 먼지가 가득하고 나중에는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맙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했던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는 오히려 방해거리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예수님만을 목표로 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앞에서 상 받기를 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외롭고, 쓸쓸하고, 오해받고, 괴롭고, 아픈 일들을 그는 일부러 갔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서 상 받고 복 받을 수 있는 기준이 우리가 이 땅에서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자가 복을 받는다하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하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고, 화평케하는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고합니다.
그러면서 그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 (마5:3-12) 라고 합니다.
복을 받고 상을 받는 기준이 다릅니다. 그 내용도 다릅니다. 
사도바울을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에 의해서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주어지는 그 상을 받고 싶어서 고린도후서11장에서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분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중의 위험을 다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번 자기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날마다 눌리는 일이 있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고후11:23-29)
바울이 이렇게 할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늘의 상을 받을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칭찬을 듣고 상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욕을 먹고 오해를 받고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이 주님앞에 잘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바울의 거룩한 상에 대한 거룩한 욕심이었던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는 교회43주년생일을 맞으면서 이제 우리의 목표가 이땅의 가식적인 목표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다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바로 우리성도들의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중년의 교회를 섬기는 지체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중년의 매력이 있는 교회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줄로 믿습니다.
과거 우리의 모습이 화려했든지, 어두웠든지,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앞에 있는 거룩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땅에서 칭찬받기 위함도 상받기위함도 아닌 하나님앞에서 받을 상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고통과 어려움이 손해남이 있어도 그것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라면 그꺼이 그렇게 할수 있는 우리동경제일교회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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