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성숙 에베소 4:15 2010. 1. 3 신년예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정말로 복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복도 많이 받고, 분복의 복도 많이 받고, 형통의 복도 많이 받고, 사람의 복도 많이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세상에서의 복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성장하여 받은 복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0년을 맞이하면서 첫 번째 주일에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은혜가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작년에는 우리의 믿음이, 소망이, 사랑이 예수님께로 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목회를 했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의 마음이 그런 생각을 가졌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 속에서 조금이라도 삶의 방향이 주님을 향해서 움직여졌다고 한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어는 성도 분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감사했었습니다. 성도의 삶의 방향이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씩이라도 방향을 계속해서 주님께로 바꾸어 가는 생활을 계속해서 해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 없이 바뀔 수 없습니다. 담배를 피는 분이 금연을 각오를 할 때면, 얼마나 많은 유혹를 뿌리쳐야 되겠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의 삶의 방향이 바뀌는데, 유혹이 없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 유혹에 수없이 발목이 잡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시도해보면 언젠가는 승리를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아직 교회를 나온 것이지, 예수가 믿어지지 않는 분들도 있고,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로 작정한 초신자 들도 있고, 신앙의 결단을 하고 세례를 받고, 1년, 2년 되신 분들도 있고, 그런가 하면 10년을 다니신 분, 20년을 신앙생활을 하신 분, 어떤 이는 한평생을 하나님을 섬겨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든지, 누구든지 신앙생활을 처음 했던 첫출발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그 시점입니다. 모태신앙을 가지신분들도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그 첫 출발점은 누구든지 있습니다. 그런 시절을 우리는 신앙의 유아기라고 합니다. 신앙의 유아기 때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변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영적인 유모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주변에서 사랑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그때는 한가지, 한가지 믿음의 반응들을 보여주면 주변에서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박수를 쳐줍니다. 그런데, 그런 시절이 너무 오래간다고 한다면 근심꺼리 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조금 자라면 밥을 혼자서 먹는다고 박수 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밥을 흘리면서 먹는다고 야단을 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더 이상 박수를 받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야단을 치는 그런 시절도 있습니다. 아이가 어느 시점에서는 더 이상 살이 오르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은 안찌고 자꾸만 다리가 아프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성장통이라고 합니다. 뼈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육이 땡기게 되고, 그러니 자꾸만 아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도 그런 성장통과 같은 시절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옆에서 잘 챙겨주어야 합니다. 어디가 병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안심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안에서도 이런 신앙의 성장통을 겪고 계시는 분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이들이 다 겪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몸은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사람은 성숙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모든 면이 성숙해 집니다. 한마디로 어른스러워집니다. 신앙생활에도 어른스러워지는 그런 시절이 있어야 합니다. 왠만한 고난, 환란이 와도 덤덤하게 받아 들 일수 있고, 오히려 그 속에서 더 주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누가 봐도 든든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어집니다.
금년한해에는 이와 같이 여러분의 신앙이 또 한 단계 성장하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2010년을 동경제일교회의 목사로서 어떻게 목회를 할까! 를 고민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변화와 성숙” 이라는 목회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1. 믿음의 변화 그리고 성숙
신앙생활을 하면서 절대로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본질입니다. 이 본질은 변하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무엇이 신앙의 본질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복음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죄인이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신앙의 본질,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진리의 말씀들, 이런 것은 절대로 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본질에 해당하는 것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손을 대서는 안됩니다. 성경의 내용을 누구든지 더하거나 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모양은 변해야 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초신자때 가졌던 믿음의 모양으로 한평생을 갈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모양이 점점 더 성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메너리즘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일을 날마다 똑같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긴장감은 사라지고 몸에 익숙해 진 대로 살아갑니다. 숙달되고 숙련공이 되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인데, 마음이 그 속에서 빠져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메너리즘이 위험한 것은 더 이상 변화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더 좋은 방법이 생겨도, 그것보다는 몸에 익숙한 것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편안한 것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후에 불감증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을 우리는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종종 듣게 됩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쳐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내 한몸 편한 것이 더 좋으니까! 오늘도 아무 일없이 넘어가게 되니까! 더 이상 고치려고도 바꾸려고도 하지 않다가 결국에는 큰일을 당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이런 메너리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기도로 시작을 하고 기도로 마칩니다. 더욱이 내가 어떤 한일을 맡았을 때는 긴장이 되어서 그 일이 주님의 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철야를 하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 몇날, 몇일을 걱정을 하고 하던 것들이 그런 일들을 한번, 두 번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기도도 없이 그냥 일만 하는 모습들이 되어지기도 합니다. 교회 일이 몸에 배어져서 더 이상 영적 긴장감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또 한 면에서 보면 영적 전투이기도 합니다. 악한 사탄은 날마다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신앙의 메너리즘에 빠지고 나면 이런 영적 긴장감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처음 믿으신 분들이나. 믿은지 오랜 된 분이나 우리는 이런 신앙의 메너리즘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모습은 날마다 변화를 주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날마다 나를 처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바울 같은 분들도 날마다 죄악과의 싸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부단하게 애를 쓰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우리의 믿음생활에도 올해는 변화를 주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일주일동안 한번도 읽지 않았던 분은 일주일에 성경 한 장이라도 읽으려고 변화를 주시길 바랍니다. 식사기도이외의 기도를 하지 않았던 분들은 따로 시간을 내어서 기도의 시간을 가지시질 바랍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안부의 전화를 걸어주시고, 사랑을 실천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까를 고민하면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말씨도 바꾸려고 애를 써보시길 바랍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남들은 어떻게 하는가를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서적들도 읽어보고, 간증들도 들어보고,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 같으면 나도 그렇게 한번 따라서 해보고, 그렇게 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신앙의 변화들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또한 성도를 섬기는 모습들도, 위에 분들을 섬기는 일에도 이전보다 좀더 관심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의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을 변화시키십시오, 그러면 성숙해집니다. 한국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믿음이 10년이면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소망의 변화 그리고 성숙
변화해야 할 것 중에 우리의 소망도 변해야 합니다. 어릴 적에 품었던 꿈은 허망한 것들이기도 했습니다. 물어볼 때마다 장래의 꿈이 달라졌던 것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어릴 적의 꿈에 좋아했지만, 그러나 그런 꿈이 이 아이에게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의 꿈은 좀 황당한 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도 아이가 철없을 때 하는 말을 신용하고, 너는 그렇게 되어야 해! 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웃어줄 뿐입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우리의 아이가 어떤 꿈을 가진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는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무엇을 잘하는지, 재능을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시켜보고, 저것도 시켜보면서,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를 찾아내고는 그리고 그것을 아이에게 가르쳐 줍니다. 어떤 때는 부모가 아이에게 꿈을 제시해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꿈의 제시가 부모의 욕심일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재능과는 상관없이 부모가 이루고 싶었던 꿈을 아이에게 강요시킬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이런 것들이 나중에는 불행을 가져오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정말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꿈, 이루고 싶었던 꿈보다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 재능이 있는 것을 찾아내서 제시해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인 것입니다. 전에 섬겼던 교회에 권사님이 있었는데, 그 권사님의 고민인 아들에게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아들의 꿈이 미용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니까! 한숨을 쉬고, 걱정,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냐고 했더니 좋아하더랍니다. 그러면 시키세요. 요즘은 미용사라고 안하고 “헤어디자이너”라고 말합니다. 전문직입니다. 그리고 실력이 있으면 돈도 많이 벌어요! 했더니 그 권사님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망도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무시한 소망을 가지는 것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어지면 소망이 달라집니다. 구체적으로 바뀝니다. 비록 그 소망의 가치가 세상의 기준으로 보는 거대하고, 엄청난, 눈에 뛰는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극히 작고, 보 잘 것 없는 소망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속에는 휴머니즘이 있습니다. 이웃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그런 일일수도 있습니다.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그런 소망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분들은 성숙하신 분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의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성품과 적성을 찾아서 거기에 맞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무조건 원대한 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작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망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망대로, 꿈대로, 살지 않은 사람을 우리는 허풍쟁이 라고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허풍쟁이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기도한대로 살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응답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도했으면 기도한대로 살아야 합니다.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비 올 것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망을 가졌습니까! 그러면 소망의 맞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소망을 이룰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실상을 그리면서 그렇게 되어질 것을 믿고 지금의 삶을 변화시켜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맨 날 말로만 하고, 말로만 그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3. 사랑의 변화 그리고 성숙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랑의 변화입니다. 어릴 적의 사랑의 대상자는 모두가 자기 주변의 사람입니다. 엄마사랑입니다. 아빠사랑입니다. 언니사랑입니다. 누나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의 주변밖에는 사랑의 대상자가 없었습니다. 자기 식구들만 사랑합니다. 자기 자식만 사랑합니다. 이런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숙한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 달라집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도 사랑의 대상자가 되어집니다. 가난한 이웃이 사랑의 대상자가 되어지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랑의 대상자가 되어집니다. 우리가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휴머니스트들이 되어가서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바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숙도에 따라서 사랑의 대상자의 넓이가 달라집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최고의 휴머니스트들이 사랑의대상자는 누구냐 하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휴머니스트들이고, 그리고 최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죄 때문에 원수 되었던 관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원수를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던 사랑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런 사랑은 어떻게 해야지 가능한 줄 아십니까! 사랑은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할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사랑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사랑밖에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자족밖에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사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자기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나라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의 사랑도 조그만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끼리, 끼리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울타리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약의 우리의 공동체가 그런 사랑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사랑의 울타리를 넓힐 수 있을까요! 내가 받은 사랑의 경험을 넓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람의 경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경험입니다. 이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경험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느끼지 못할까요! 그것은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과 나는 원수간이 아니었다고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원수를 우리가 생각하는 흉악한 사람, 어는 누구라고 생각하지 그 대상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사랑의 대상자가 내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장 싫어하시는 분 이신데,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았는지 아십니까! 그 죄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성경이 정의하는 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행동으로 옮긴 것만을 죄라고 생각을 하는데, 성경에서는 생각을 품은 것까지도 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악 속에서 살았습니까! 무엇보다도 큰 죄악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인데, 불 신앙의 죄악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원수사랑의 대상자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의 기억을 되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정죄 하지 않습니다. 욕하지 않습니다. 나는 저보다 더 못한 사람이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사랑의 대상자가 변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미워하고, 싫어했던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어지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성숙을 우리는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새로 시작된 2010년에는 우리 변화와 성숙을 이루어봅시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은 물론이요, 우리교회의 모습 속에서도 바로 이런 변화와 성숙을 이루어 봅시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한번 다시 읽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가 주님께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해서 자라야 합니다. 우리의 외적인 것도 자라고 우리의 내적인 것은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라기는 금년한해에 우리교회가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사업장이, 직장이 이런 변화와 성숙으로 이어지는 한해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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