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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삭개오의 변화 눅19;1-10

삭개오의 변화                  누가19:1-10                 10.1.10

낸시 오스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이즈가 큰 여성들을 위해 옷을 만들어 여성 의류업계에서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녀가 의류업계에서 큰 성공을 이룬 비결은 바로 그녀의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입니다. 옷을 살 때마다 자신의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상기시키는 숫자로 된 치수를 표시하지 않고 새로운 용어들을 사용하여 표시했습니다.  허리사이즈가 16~20인치인 경우는 ‘쁘띠형’(꼬마형), 22~26인치의 경우는 ‘코킷형’(요염형), 27~33인치 정도의 통통한 여성들은 ’마드모아젤형’(아가씨형), 그리고 33인치 이상의 여성들은 ‘퀸사이즈’(여왕형)로 구분 지어 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해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가졌던 여성들은 기분 좋게 옷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똑 같은 것이지만 작은 변화 한가지가 성공을 가져 올 수 있었던 것을 봅니다.
변화는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엄청난 성공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서 변한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바로 삭개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그가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변화를 통해서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삭개오의 가치관.
삭개오라는 사람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가지 신체적으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았다는 것입니다. 삭개오에 대해서 연구를 한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그는 그의 이런 콤플렉스는 한가지 일에 집착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누구에게든지 무시 받지 않고 살수 있을까! 오로지 그것만이 그의 고민이었고, 그리고 그의 관심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 뛴 것이 물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돈은 벌자! 돈을 벌면 사람들에게 무시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돈을 벌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이던 그가 돈을 벌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정상적인 일을 해 가지고는 돈을 벌 수가 없기 때문에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당시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일들 중에 하나가 “세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리라는 것은 세금을 걷어들이는 직업인데,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꺼리는 직업 중에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에 의해서 지배를 당하고 있었는데, 로마의 관리들이 직접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걷으면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 그런 일은 유대인 자국민들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국민들을 통해서 세금을 걷어들이게 하고 자신들은 그 뒤에서 그 세리들만을 관리를 하면 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세리들에게는 얼마를 걷어들이든지 상관을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정한 금액만 채우면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이 로마라고 하는 지배국을 등에 엎고, 자신들의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리하게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부분은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더 악랄하게 세금을 메기고, 또 강제징수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로마사람들보다도 자국민의 세리들이 더 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왠만하지 않으면 이 세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배경 속에서 세리가 된다는 것은 이미 사람들에게 매국노가 될 각오를 한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끊으려고 독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하는 직업이 바로 이 세리였던 것을 봅니다. 삭개오는 오로지 물질을 모르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물질이 필요 했다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무시 받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착같이 물질을 모으기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험한 소리 해가면서, 그는 얼마나 열심히 세리의 일을 했는지, 로마 관리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그는 그 지역의 세리장이 되었을 만큼 그는 성공을 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놓고 무시를 하면 나중에 어떤 세금폭탄을 맞을지 모르기 때문에, 적어도 눈에 보이는 때만이라도 사람들은 웃어야 했고, 그리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는 그에게 오히려 잘 보이기라도 해야 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세상적인 성공을 했습니다. 이제는 떵떵거릴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만족을 가져다 줍니다.  세상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삭개오가 그런 자리에 올랐는데, 그에게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물질은 마음대로 쓸만큼 있는데, 그를 고독하게 만드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대인은 재물을 모으는 일에 천부적입니다. 그런 유대인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유대인 아이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돈이 뭐예요?" 아버지는 "잘 봐라"하면서 유리 조각을 집어 창문 앞에 놓았습니다. 아이는 유리를 통해서 길이며 행인이며 마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아버지는 "이제 돈을 잘 봐라"하더니 "유리 조각 대신 돈을 여기에 놓겠다. 은화 때문에 거리 풍경은 하나도 안 보이고 돈만 보이지"라고 말했습니다. 돈 앞에서 다른 것은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돈만 보입니다.
물질을 모으려는 사람들은 돈에 눈이 먼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에 눈이 멀게 되면 세상이 보이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삭개오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삭개오의 고민.
사람들은 물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삭개오도 역시 그런 생각 때문에 물질에 집착해서 돈을 위해서 가족도, 민족도 버렸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안되는 것, 못 사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돈으로 침대는 사지만 달콤한 잠은 살 수 없다. 책은 사지만 명석한 두뇌는 살 수 없다. 음식은 사지만 식욕은 살 수 없다. 화려한 장신구는 사지만 아름다움은 살 수 없다. 집은 사지만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다. 사람들은 사지만 친구는 살 수 없다. 약은 사지만 건강은 살 수 없다. 오락은 사지만 행복은 살 수 없다. 종교는 사지만 구원은 살 수 없다. 장식용 십자가는 사지만 구세주는 살 수 없다. 쾌락은 사지만 영생은 살 수 없다. 여권은 사지만 천국은 살 수 없다.”
여러분 우리는 물질로 살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삭개오는 바로 이런 고민 속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 고민은 그를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가치관을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늦었지만 깨닥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은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 친구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밥 한끼 따뜻하게 같이 먹어줄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는 늘 외로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환경들, 이미 그는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또 부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잃어버렸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그냥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평생을 외로움과 조롱 속에서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침 뱉고, 그놈 잘 죽었다고 말을 했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생에 물질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소문을 들었던 것입니다. 어떤 소문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늘 많은 사람들이 쫓아다니고,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제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삭개오를 더욱 부럽게 만들었습니다.  갑자기 그의 생각 속에 예수님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그분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귄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제자 중에서는 자기와 같은 세리출신의 제자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예수님이 더욱 보고 싶었고,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이 자신의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동네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상황 속에서 어는 누구도 삭개오를 위해서 앞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삭개오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다보니 도로 맨 뒤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키가 적어서 맨 뒤에서는 예수님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는 포기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 뒷자리에 있었던 뽕나무를 발견하고는 그 나무위를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언제 나무에 올라가 본 적이 있었겠습니까!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그러다 보니 그의 좋은 옷도 찢어지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이미 자신의 모든 체면을 버린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예수님밖에 없었던 것을 봅니다.
여러분!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요! 무엇이 그의 한평생을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을 변하게 만들었을까요! 예수님입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부터 그의 관심이 변하기 시작했고, 그의 생각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럼 그가 들었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라는 것은 어떤 소문이었을까요! 많은 병자들을 고쳤다는 이야기!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병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병자들이야 당연히 의사되신 예수님의 소문에 관심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삭개오의 관심은 아니었습니다. 삭개오의 관심은 친구되신 예수님입니다. 죄인을 가리지 않고 만나시고, 그 집에 들어가셔서 함께 식사하시고, 교제하시는 모습, 심지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던 자기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제자로 삼으시는 그런 모습, 그렇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을 끌었던 예수님의 모습은 죄인들에게 오시고, 그 죄인들을 품에 품어 안으시고 사랑해주시고, 친구 삼아주신 그런 모습에 삭개오의 마음이 끌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랑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 자신의 콤프렉스를 감추기 위해서 잘못된  곳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은 차갑습니다. 냉정하고, 딱딱합니다. 마음은 굳을대로 굳어있고, 얼굴표정 속에서도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야말로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예수님의 사랑에 녹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삭개오의 변화.
드디어 예수님이 삭개오가 있는 곳까지 걸어오시기 시작합니다. 나무 위에서 숨을 죽이고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한번 자세히 보려고 목을 빼고 보고 있던 삭개오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자기 앞에 머물러 스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 삭개오는 놀랐습니다. 그리고 흥분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바라고 보고 싶었던 분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일 것인데, 예수님이 오늘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급하게 내려와서 예수님을 모시고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갑니다. 사람들은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수군거리며,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저 죄인의 집에 들어가실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소리를 삭개오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소리가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신다는 그 엄청난 사실만이 그에게 기쁨을 줄뿐이었습니다.
삭개오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결단을 하고는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으며 만일 뉘게 억지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를 갚겠습니다.” 이 말은 삭개오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놀랍게 변해 있었습니다. 말로만 변한 것이 아니라 그는 실제적으로 변함을 실천했습니다. 
여러분! 삭개오는 지금까지 바로 이 물질 때문에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났더니 지금까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려놓으면서도, 나눠주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흥분하고 어느 누구보다도 기쁨이 가득 찬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자신의 삶에 있어서 배웠던 수많은 학문들, 경험들 이런 것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났더니 분토와 같이 여겨졌다고 고백했던 것을 봅니다.  어떤 기득권의 자리에 앉아 있고, 어떤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었더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그 자리에서 내려앉을 수 있고, 섬기는 자리로 내려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나면 세상에 그렇게 좋고, 즐기던 것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서 보고 싶지도 않고, 만지기도 싫어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변화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사람은 아마도 삭개오 자신일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아마도 자기 자신이 제일 놀라고, 그리고 두 번째는 주변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바뀌어도 어떻게 저렇게 바뀔 수가 있냐고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삭개오의 변화로 당장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그를 손가락질하고 있었던 사람들, 그에게 당했던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세금에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당장에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이 변하면 그 사람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욕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마음을 열어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로 그를 이해하게 되고, 그리고 친구들이 되어주고, 이웃이 되어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런 변화된 삭개오를 보면서 가장 기뻐하셨던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기분이 좋으셨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하십니다.
드디어 진정한 구원이 삭개오에게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있어서 내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정말로 변화되었다고 한다면 진정한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 잃어버렸던 자 라고 합니다. 그도 분명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잃어 버린자가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수 만나고 변화된 모습을 보시면서 찾았다고 합니다. 구원이 임했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도 내가 분명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잃어버린 자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세상의 어떤 것에 집착을 하고, 예수님이 아닌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그것을 소유하려고 달려가고 있을 때 우리는 교회 안에 있으나 잃어버린 자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 자신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자존심, 자신만의 신앙의 틀을 깨어버리지 못하고, 자기의 기준으로 늘 남들을 정죄 하고 책망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자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에게는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삭개오처럼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죄인을 가까이하시고, 사랑하시고, 품어주시고, 친구 되어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려고, 삭개오가 자신의 모든 체면과, 자존심, 명예, 이런 모든 것을 버리고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 순수하게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소리내어서 기도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성경도 찾아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예수님을 만나야 하겠다는 각오로 은혜가 되든, 안되든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도 크게 해보시길 바랍니다.  내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순전한 모습으로 바꾸어갈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누구야! 내려오너라, 오늘 너의 집에 들어가야 하겠다. 오늘 내 마음속에 들어가야 하겠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우리교회성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것을 미련 없이 끊을 수도 있습니다.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구원이 임하고 구원받은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놀라고 여러분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예수님이 여러분을 보면서 기뻐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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