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교에 있어서의 일본인의 세계관적 특성
장경태선교사
1.서론
일본을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표현한다. 오늘날의 일본인의 삶과 정신구조 등에 대한 지식은 일반화 되어 있으나 그 보다 깊은 연구는 보이지 않고 이로 말미암아 일본에 대한 이해나 파악이 부족한 편이다. 이는 아마 일종의 경계심일지도 모를 한국과 일본의 미묘한 감정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수백년 앞선 16세기에 복음이 들어왔다. 서구의 선교 단체들과 선교사들은일본 선교를 위해서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복음화 비율은 1% 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왜 그렇까! 우리는 사도바울의 아덴에서의 사역에 관심을 갖게하는데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1) 하면서 그곳에 있는 것에서 부터 선교의 접촉점을 삼아서 복음을 전한것처럼 우리도 선교지 일본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세계관에서 부터 그들의종교성을 찾아내서 복음을 전하는 접촉점으로 삼으려고 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Ⅱ. 본 론 1. 일본인의 의식 구조의 세계관 A. 일본인의 의식구조 이사야 벤다신은 일본인의 의식구조의 형성 요인으로 벼농사를 들고 있다. 일본은 본래 농업을중심으로 한 나라로 벼농사란 하루를 게을리 하면 한달을 망치게 되기 때문에 게으름은 무능하고, 느린것은 죄악이며, 하면 된다는 철학을 낳았다고 언급하고 있다.2) 여기서 일본인들은 "집단 우선주의"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일본인의 집단 우선주의는 개인의 존재 목적을 집단을 위해서인 양 집단 속에 개인을 소속시키고 남을 의식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타인과 다르기 보다는 동일하며 우월하거나 저조하여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3) 조상숭배가 가져다 준 집단의식은 최종적으로 일본인의 귀속의식으로 나타난다. 결국 자신들이소속한 집, 마을, 국가를 떠나서는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는 장소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자기가 어느 집단에 소속해 있을 때 비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을 귀속의식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다른 종교를 갖는 것도 좋지만 집이나 회사에 방해를 주지 않고 집단으로서 정한 것은 반드시 지킬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야말로 일본에서는 "최대의 악"이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4) ------------------ 1)사도행전 17장22-23절 2)이사야 벤다산, 일본인과 유대인, 진웅기 역(서울:범우사,1982), pp. 63-66. 3)택정언,일본기독교회사 (서울:대한기독교서회,1979) p. 11. 4)데라다 유이찌 . 데라다 리사, 일본선교의 비밀을 벗긴다. 곽명옥 역(서울 베다니,1995)p.181 - 1 - 따라서 교회에 나가는 것은 좋지만 집의 종교는 반드시 고수할 것, 세례는 받지 말 것, 집에 용무가 있을 때는 그것을 우선순위로 지키며 무엇보다도 집이라는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지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새로운 삶의 원리가 되는 기독교와의 대립은 피할 수 없고, 결국 어는 한쪽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으로서 해결방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일제시대의 신사 참배는 바로 이런 문제였다. 일본 정부가 행한 것은 기독교 금지가 아니라 종교는 어떤 것을 믿어도 좋지만, 먼저 그 이전에 일본을 보호하는 신인 "아마데라스"를 숭배하고난 후에 하라는 것이었다. 신사 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의지표명인 것이며, 그를 위한 "국가 의례"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일본인으로서 어떠한 종교를 믿는다 해도 그것은 자기 마음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전쟁전의 일본교회는 이 뜻을 받아들여 정말 종교가 아닌 신사참배를 행하였다. 즉 자신들은 기독교인이기 이전에 일본이라는 집단에 소속된 일원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5) 이와 같은 일본인의 집단으로서의 강한 결집력과 친화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는 외부와 접촉할 때는 이중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불교, 유교, 신도등을 구별하지 않고 생활에 도움만 되면 어떤 종교라도 흡수, 수용하는 정신적 종교성과 현실 존중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일본의 풍토는 몬순 지대에 속한다. 몬순의 특징은 더운 열기와 습기의 혼합이고 수용적인성경이 기본이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전투적인 반항이 폭발하는 성격을 낳게 된다.6)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인은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 탐미주의를 숭배하는 동시에칼을 숭배하는 무사에게 최고의 영에를 돌린다는 특징을 갖게 한다. 지금도 수 많은 일본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집에서는 부쯔단(불단)이나 가미다나(신단)를 두고 있으며 자신들이 소속해 있는 집단에 대해 죄의식을 가진 채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것이다. 따라서 죽어도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가 없으며 결국 불교식으로 치르는 경우가많다. 일본에서는 집이나 마을, 국가라고 하는 집단을 떠나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 집단의소속감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받으며 자신의 존재의식마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에게 있어 이런 의식은 너무나 중요한 것으로서, 청년 때는 그다지 느끼지 못해도 집단의식이 40대가 되면 매우 강하게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일본인의 종교의식은 이러한 집단에 대한 귀속의식을 통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7) 1) 일본인의 역사의식. '자연에 순종하는 삶'의 가치관은 그것이 그대로 일본인의 역사의식이 되어 나타났고, 타민족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규범으로 되어 버렸다. 이러한 일본인의 역사의식이 결국 일본인을 특별한 민족으로 만들어 버렸고,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원칙도 없는 민족으로 규정지어져 버린원인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출발했던 조상숭배의 원리는 철저하게 현실주의로 변하여 일본인의의식을 지배하였다. ------------------ 5) Ibid., p. 182. 6) 택정언, op. cit., p. 8. 7) 테라다 유이치 . 데라다리사, op. cit., p. 183. - 2 - 이것은 일견 종교적으로 비치게 하면서 실제로는 일본인을 현실적인 민족으로 만들어 세계적인경제대국을 이룩하게 했던 것이다. 조상숭배를 원리로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적 이익주의로도 보여지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눈앞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처리해 왔을 뿐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은 현재의 안정된 상황을 어떻게 보호할까, 그리고 일어난 문제를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내에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생각들이다. 그 역사의식은 섬나라라고 하는 일본의 특수한 자연환경에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8) 일본은 역사상 거의 한번도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또한 그로 인해 고난을당한 참혹한 일도 없다. 따라서 '자연에 순종해 나가면 된다'라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몸에 배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면 일본인에게는 대외적으로 무서운 싸움이나 침략은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무서운 것이 자연재해다. 이것이 일본인을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을 지닌 민족으로 형성시켜 가게 했다. 모든 것을 자연재해와 같다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에 인간적인 반성이없고 결과적으로 역사적 측면에서의 사고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여기에 일본인의 사고방식의 큰 특징이 존재한다. 일본인에게 인간의 삶이란 변하지 않는 자연 속에 있으며, 그때마다 변화에 대응해 나갈수는없지만 과거의 여러 자기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그 기반 위에미래를 세워 나간다는 의식이 아닌 것이다. 즉 일본인은 자연현상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간에 항상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상황에 대처해 왔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일본의 번여을 쌓아왔던 것이다. 자각적인 역사의식이 없는 일본인, 그 무의식의 사고방식은 조상숭배의 원리가 그 뿌리라고 할수 있다. 기독교를 엄하게 금지시켜서 제도에 지배를 받다보니 자동적으로 이중적인 모습을 하게 되었고, 현실에 닥쳐진 상황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지극히 현실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2) 일본인의 죄의식. 일본인들의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문제점은 죄의식이 결여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올바른 죄의식이 일본인에게 전달되지 않는담코 일본선교의 벽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본에도 당연히 죄라고 하는 개념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죄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죄라는 단어를 똑같이 사용하지만 그 뜻하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우선 사회적인 관심에서 볼 때, 일본인의 죄의식은 확실히 윤리, 도덕이라고 하는 사회적 규율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법률을 지킨다거나 거짓말하지 않는다거나 약속을 지킨다고 하는것과 같이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집단윤리를 말한다. 물론 이 중에서는 중요한 것으로서 풍속습관,전통문화를 지키는 것도 포함된다(즉 조상숭배). 일본인의 집단주의에 대한 사회적 책임으로서 이러한 것을 지키지 않았을때 정말 엄한 비판과 함께 사회적 제재까지도 받게 된다. 다시말해서 이러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크나큰 죄의식과 함께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 8) Ibid., p. 190. - 3 - 따라서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성경 말씀에 근거를 두고 말문을 열면 "도대체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렇게 말할 수 있소, 나는 사람에게 이렇게 비난을 받을 짓을 한적이 없는데"라며 반드시화를 낼 것이다. 결국 일본인의 죄인식은 "히토니 메이와구 가게나이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는다)" 는 것을 전제로 인간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려서부터 어린아이들에게 이생각을 주입시켜주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괜챦다는 사상인것이다. 3) 일본인의 직업의식. 일본사람들은 일(직업)에 목숨을 걸고 있는것 같다. 회사에서의 잔업이나 철야 또는 일요일에도일하러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자신들의 책임업무도 아니면서도 회사 일에 책임을 지고자살을 한다거나. 상사의 명령을 위해서는 가족까지도 희생시키며 하는 등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정말 일에 미쳐서 목숨을 걸고 사는 걸까? 대답은 반반이다. 일본인들 모두가 일에목숨을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 따라서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향은 '일본인은 일에 성실하며 꽤 강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때문에 일본인은 그토록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사는가! 제일의 이유는 그들이 일하고 있을때 인생의 현실감을 가장 느끼고 있기때문이다.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라를 받들고, 가족을 부양하며,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 나가고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귀속의식이다. 자신이 임무를 충실히 다할수록 자신은 집단 속에서 더 필요한 인물이 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단체속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만큼 일본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없다. 결국 일이란 조상숭배 원리가 일본인에게 가장 요구하고 있는 종교적의식과 같은 것이다. 조상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은 최종적으로 일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행위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일에 충실한다는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충실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본인들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두번째 이유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9) 실제로 일본인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하챦은 일이라도 귀찮다기 보다는 즐겁다고 생각한다. 일에 자기 인생을 걸고 세밀한 부분까지 충성하기 때문에 끊없는 연구가 더하게 되고, 또다른 일에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세번째 이유는 일을 통하여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지면, 일본인의 인간 관계란 조상숭배와 일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을 통한 관계에서 사람들과 교제가 잦기 때문에 부부의 교제가 깨져 이혼하는 케이스도 있다. 교제를 갖지 않으면 자기 위치가 흔들린다는 이유로 내세워 밤늦게까지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 술좌석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사업상의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명확하다. 일본인의 일에 대한 이러한 의식의 그 바탕에 깔린 가치관만 바꿔놓을 수 있다면 일본선교를좀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 9) Ibid., p. 218. - 4 - B. 일본문화의 특성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에 의하면 일본 문화는 중국 문화의 아류로 분류되고있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 문화는 서구 문화의 절대적인 영향으로 중국 문화의 틀 속에서만 해석하기가 심히 어려운 실정이다. 그들은 중국문화와 서구 문화를 자기들 나름대로 토착화시켜서결합시킨 형태를 가지고 있다. 흔히들 일본 문화의 특징을 국화와 칼이나 무사, 장인, 수치, 축소지향, 이라는 말로 표현하고있다. 일본인들은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보호를, 다양성의 확일을, 능력보다 권위를, 추상보다현실을, 종교조차도 생활로 끌어내려 무교적인 종교를 생활화하는 특이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10) 박준희는 그의 책 '확대지향의 일본인' 에서 일본문화의 본질을 "확대"라고 정의 한다.11) 언뜻 축소가 일본문화의 특성으로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항상 "확대", "커져야겠다", "강해야겠다" 그리고"왜소하다"는 콤플렉스로 부터 벗어나야겠다는 등의 욕구와 페이서스(Pathos)가 잠재되어있다. 이러한 심층심리가 그들의 집단주의, 페쇄성, 비공개성, 표리부동의 인정, 배신 등과 같은 생활 형식을 독특하게 간직하게 했고 오늘날 그들의 문화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12) 회전웅차는 그의 저서 "일본인의 의식구조"에서 일본인의 이같은 페쇄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잘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일본인의 성격을 유럽의 꿀벌과 일본의 꿀벌을 비교하며 설명했다. 일본의 꿀벌을 유럽 꾸벌 집에 넣으면 그집을 부숴버리고 자기에게 맞는 벌집을 만든다는 것이다.13) 이와 같이 일본인의 전투적인 특징은 집단 우선주의와 맛물리면 엄청난 군국주의로 발전하게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잘 드러나게 되었고 모든 나라들이 일본을 경계하며그들의 군사적인 동향을 에의주시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그들의 집단의식으로 인해 그들의 문화는 타 문화, 타 민족, 그리고 타 국가에 대해서는 지극히 배타적이 되는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섬이라는 고립된 지리적 조건에 의해 균질성을 놓여온 일본 민족은 일본적인 '가족 집단주의'와 더불어 경제적 조건과 환경 조건에 의해 상호의존의 공동의식을 키우고가꾸어 왔다. 이러한 가족의식은 촌락의식, 동향의식, 나아가서는 국가의식으로 발전하여 그들만의 특이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14) 이들의 특이한 집단 귀속현상은 교회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교회의 연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우에무라 마시히아는 "준정통주의 교파운동'을 일으키면서 외국 단체들로 부터 철저하게 독립된 일본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집단 결속이라는 그들의 특이한 의식구조로 인해교회는 국가를 위한 존재로 전락한것이다. 일본 기독교 사상가인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이 기독교를 처음 경험하면서부터 교파주의의 폐단을 통감했다고 하면서 외국의 지원으로 목회자들이 외국의 주교 관할 하에 놓여지게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외국의 간섭이 없이 받아들인 기독교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아들인 교회15)라고 하여 외국으로부터 독립 된 일본만의 교회를 주장하였다. -------------------- 10) 도광순, 동아시아 문화와 한국 문화(서울:교문사, 1988), p. 89. 11) 박준희, 확대지향의 일본인 (서울: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88), p. 7. 12) Ibid., pp. 7-8. 13) 회전웅차, 일본인의 의식구조, 최명순 역(서울:자유문학사, 1978), pp.36-37. 14) 한배호 외, 현대일본의 해부(서울:한길사, 1982),p. 303. 15) John M. L. Young, The Empire in Japan (Philadelphia: The Presbyterian & Reformed Publishing Co., 1961), p. 47. - 5 - 이처럼 일본의 기독교인들의 염원 중의 하나는 적대 세력에 대항할 단합된 강력한 비교파주의이다.이런 현상도 역시 집단 귀속의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의 사고 방식이 교회에도 작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교회 연합을 통해서 강력한 교회를 추구하였는데 이런교회 연합의 결과 교회에는 여러 가지 이질적이 요소들이 스며들어와서 교리가 약화되었다. 범신론적이며 다신론적인 사고 방식이 지배하던 일본 사회에서 이와 같은 교회 연합의 결과는 무기력한 교회로의 전락을 의미하였다. C. 일본의 성격을 보여주는 용어의 특성 일본문화의 이중구조는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은 하라게이와 네마와시 그리고 혼네와 다테마에등이 있다. 1) 하라게이와 네마와시. はらげい(하라게이)는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적인 기술로 "하라"와 "게이"가 혼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사전에서는 대부분 "풍부한 경험에 의지하여 언어나 그 외의방법으로 사람을 적절하게 움직여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라고 쓰여 있다. 이 기술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의 흥미, 욕망, 경험을 이해하고 그 외의 상황에 관련된 그 사람의 배경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상대방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하고 좋은 시기를 택해서 대화를 해 나가야 한다.16) 이 용어에서는 아무리 높은 직책의 사람이라도 너무나 쉽게 아랫 사람들에게 수없이 머리를 굽히고 절하는 일본인들을 이해할 수가 있다. ねまわし(네마와시)는 어떤 사항을 결정하기 위해 정식 회의가 열리기 전에 관계자들에게 접촉하여 목표로 하는 합의점에 이르도록 개인적으로 지지를 확보해 두는 배후적 노력을 의미한다. 일본 사회는 집단 결정과 만장일치를 통해서 일하고 있으므로 이를 위해 네마와시의 과정을 불가피한 것이다. 네마와시의 관계에서 전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 되도록 수정해 나가며 사실상회의에서 결정되는 사항은 이미 준비된 사항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17) 2) 혼네와 다테마에 흔히 "혼네(本音)와 다테마에(立前)를 이해할 수 있으면 일본을 다 이해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네"는 "본심에서 하는 말"이고 "다테마에"는 "그냥 하는 말"이라는 뜻으로 일본인들의 애매하고 이중적인 성격을 나타내 말이다.18) 혼네와 다데마에, 이 두 단어는 개인의 본심과 사회적으로 제한된 의견이라고 하는 대립 개념으로써 잘 사용되고 있다. 본래 일본어의 혼네는 사물의 내면을 의미하며 다테마에는 외면을 의미하는 것으로 혼네는 마음 깊은 곳의 동기나 건의이지만, 다데마에는 사회적 규범에 맞는 것,또는 그것에 억압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혼네와 다테마에는 사실 대립 관계가 아니다. 이 두 단어는 말하는 사람과 상황에 의해 변화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자가 그 다테마에를 말할 때 "군비도 국가도 필요 없다"라고 하나, 혼네를 말할 때는 군비도 국가도 필요하다고 인정할지 모은다. 이와 같은 명백한 모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어 생활에서 두 종유의 의견을 구분해서사용한다. 상황에 따라 혼네와 다데마에를 교묘히 비꿔쓴다.19) -------------------------- 16) 유기남, "일본 문화의 이해", 빛과 소금 1992년 1월호, p. 202 . 17) Ibid., pp. 202-203. 18) 김현구, 일본이야기,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6), p. 118. 19) 유기남, op. cit., p. 203. - 6 - 그러므로 일본을 깊이 관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본적인 당위와 실재를 인식할 수 없으며, 외면과 내면의 차이를 알고 있는 일본인이라 할지라도 사건의 내면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를주의 깊게 재어 보지 않는 한 겉으로 나타난 양태가 전부인 것으로 믿기 쉽다.20) 2. 일본인의 종교의식으로 본 세계관 표면적이 일본인의 종교의식은 대부분의 일본인은 자신을 '무종교'라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당신 집의 종교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일본인은 명확하게 '우리집의 종교는 불교이고, 무슨무슨 종(宗)입니다'라고 대답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게 '무슨무슨 진자(神社)입니 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반드시 '그렇지만 저 자신은 별로 믿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말을듣게 된다. 이것이 일본인의 종교의식의 특징이다.21)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인이 세계에서 가장 무종교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일본인은 세계에서도 가장 완고한 종교의식을 지닌 민족에 속한다. 이것이 일본인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종교의식이다. 일본인들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종교란 어떤것을 말하는가. 어느 종교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일본인은 '나에게 있어 종교란 그다지 필요하다고 생가지 않는다. 종교가 없어도 살아 갈 수있다. 그렇지만 종교를 부정하려는것은 아니다. 약한 자나 불행한 자, 노인이나 여자들에게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런 점에 있어서는 이해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어떠한 종교를 믿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 너무 깊숙히 빠지지만 말고 그 상태에서 믿어라. 하지만 나에게는 필요치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22) 이런것을 볼때 일본인은 종교를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연약한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자신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만 자신의 삶을 둘려싼 것들을 살펴보면 어느것 하나 종교와무관하지 않는 삶을 바라보게 된다. 예를 들면 집에는 부쯔단,가방이나 소지품중 하나는 반드시부적을 몸에 지니고 있고, 마을의 신사나 절을 지날때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고 경건하게 지나가는 모습들을 어디에서나 볼수 있다. A. 신도(神道) 1)신도란 무엇인가? "신도"(神道)라는 단어는 "센따오".(Shen-tao)라는 중국어로 부터 유래된 것으로서 "神들의 道"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신도는 일본 토양에 뿌리를 내린 토속적 종교로서 이 역사적 기원은일본 민족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3)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로서 신도는 자생적인 종교이다. 신도는 조상 숭배와 자연 숭배의 범신론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 그들이섬기는 "아마테라스오오가미"(天照大神)은 일본의 전설적이 건국 신화에 나오는 태양여신으로서모든 신들 위에 가장 뛰어난 신으로 여겨진다. 신도에는 특별한 경전이나 교리가 없다. ------------------------ 20) 존 워러노프, 일본은 망한다. 고유석 역(서울:우아당,1981), p14. 21) 테라다 유이치.테라다 리사. op. cit,. pp. 174-175. 22) Ibid., p. 176. 23) 陰斗眞, 「일본선교를 위한 신도이즘의 종교사회학적 연구」. 선교학 문학석사학위논문. 아세아연합신학연구원. 1990. p. 17. - 7 - 단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집단. 국가. 지배자에 충성할 것과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24) 신도의 800만 신의 개념은 번개와 태풍등 자연현상, 산.폭포.바위등 자연물인데, 거기에 조상숭배의 사상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종교의 원시형태라고도 할수 있다. 그러나 그 원시적 형태가 오늘날까지 성전이나 계율도 없는 채 계속 되고있는 것은 드물다. 결굴 신도는 종교로서의 절대적 가치관, 즉 '신의 말씀과 율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그것이 신도에 영원의 생명을 주었다. 절대적인 가치관이 없는 탓에 다른 가치관과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25) 2)신도와 천황제 천황제를 종교적으로 성립시키고 있는 "기끼신와"(記紀神話)를 보면 하늘에서 봉림했다는 니니기의 자손으로부터 "덴무"(天武)천황이 출현하고, 니니기가 봉림할때 '아마데라스'로부터 부탁받았다는 "덴죠무규 노 신규"(일본땅을 치리하라는 명령)을 기도로 해서 일본을 정복하고 처음으로나라를 개국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제1대 천황이라고 한다. 26) 이러한 배경을 가진 천황이 신도(애니미즘적인 토착민간신앙)를 교묘하게 받아 들여 신격화시킨것이 최초의 천황제 시스템이라 할수 있겠다. 이 천황제는 많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면서 한때는 그존재조차 잃어버린 시기도 있었다.27) 그러나 도꾸가와 막부 말기, 메이지 유신의 시대적 전환기가 시작되면서 국가신도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지닌 사상과 고대 국가주의(식민지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배경을 지닌 국가중심으로 나타나게 되었다.28) 기끼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메이지에 들어서면서부터 만들어졌던 천황가의 우지가미(氏神,본래 천황가만이 신이라 하는 것)였던 아마데라스를 기원하는 이세징구(일본황실의 종묘 즉 천황계의 조상신 묘지)를 정점으로 한 황실신도 아래 일본에있는 신들을 (기독교 포함)통합한다고 하는 교묘하고 강력한 종교의 국가적 통합을 이루게까지되었다. 29) 이것은 밀려오는 외세에 대항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천황을 중심으로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명령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희생시킬수 있는 절대국가의 중심을 천황에게 두었던 것이다. 또한 근대 천황제를 확립시키기 위해서 메이지 헌법에서는 제1조에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함', 제3조에서는 '천황은 신성이므로 침범해서는 안됨'이라 하면서 천황이 일국구의 '신'이라는 것을 헌법으로 절대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천황이 신성절대통치권을 빌려 군의 통수권까지도 장악하였다.30) B. 佛 敎 불교가 처음 일본에 들어온 것은(고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긴메이 천황시대(539-571)라고 한다. 이때 긴메이천황은 백제로부터 전해 받은 불상을 "소가노 이나메"에게 주어 모시도록 했다고 한다. 즉 천황이 즉 정부가 불교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의 신도가 명확한 규칙.원칙.계율등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불교를 관대하게 인정할수 있었을 것이다. ----------------------- 24) 유기남, pp. 18-19. 25) 堺屋太一,「日本이란 무엇인가」.동아일보사옮김. 동아일보사. 1992. pp. 116-117., p. 120. 26) 데라다 유이찌.데라다 리사 op., cit. p. 45. 27) 도꾸가와 막부시대(AD1603-1869)에 일본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견고한 지배체제에서 행한 쇄국정치의 의해서 천황제는 그 종재조차 잃어버렸던 시기도 있었으나 그 시기는 짧았다.(Ibid.,p.56) 28) Ibid., p. 57. 29) Ibid., p. 61. 30) Ibid., p. 63. - 8 - 일단 불교신앙의 자유가 인정되고 나서 귀화인의 증가와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동경 등으로 이러한신흥종교는 급속히 펴져 나갔다. 특히 불교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동반한 것이 그 보급을 앞당겼다.31) 1)불교와 신도의 대립 이로써 고대 야마토 왕국이 번영하고 산업도 융성해지면서 토지개발이 진전되었다. 당연히 불교도의 정치적 발언권이 이 강화되고 필연적으로 민간신앙만이 아니라 정부와 천황자신의 신앙으로 할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일에 긴메이 천황의 뒤를 이은 비다쓰천황시대(572-585)는 그런대로 지나갔지만, 그 다음의 요메이 천황시대(585-587)가 되면 "천황이 비로소 불교를 믿게 되었다"는 기록이 (고사기)에 나타난다. 그러나 요메이 천황의 행위는 개인적인 예불이었을 것이다. 이에소가씨를 비롯한 승불파들은 "공식예불을 하라"고 주장했다. 즉 종교가 비로소 큰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한 것이다. 천황이 공식적으로 예불을 하고 불교를국교화하려면 당연히 신도를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메이 천황은 이 문제를 그대로 남겨둔 채 재위 3년만에 죽고 말았다. 이후 차기 천황의 인선문제와 관련하여 불교를 국교화하려는 승불파와 일본 고래의 '간나가라(隨神)의 도'를 보호하려는 배불파간에 대전쟁이 일어났다. 이것이 일본역사상 유일한 종교전쟁인 소가(蘇我)-모노노베(物部)전쟁이다. 이때 압도적으로 많은 호족들이 소가씨를 수령으로 하는 승불파에 가담해서 승불파의 승리로끝나게 된다. 그 결과로 승불파로 보이는 스슐천황(587-592)이 소가씨에 의해 옹립된다. 그러나 스슐천황도 곧 불교신앙의 정치적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32) 2)신도신화의 부정- 천황가의 위기 원래 천황가가 일본의 최고위에 있을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신도신화에 있다. 일본은 아마데라스오미가미(天照大神)의 자손인 진무(神武)천황이 강림해서 건설한 나라다. 그 진무천황의 자손이 천황가라는 신도신화에 의해 천황가가 일본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신도를 부정하는 것이고, 아마데라스오미가미도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천황가에게는 물론, 일본 정치체제 전체의 문제였다.33) 이때문에 스슐은 이리저리 불교의 국교화를 미루면서 신도를 지키려고 한다 그 결과 5년 후에는소가노 우마코에게 살해되고 만다. 일본의 역대 천황중에서 '살해된' 유일한 천황이다. C. 신불유습합(神佛儒習合) 스슐천황이 죽고 나서 그 뒤를 이어 천황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스이코천황(592-628)인데, 이 사람은 명확한 역사기록으로 남아 있는, 동아시아최초의 여제다. 그 때 천황가에 성인 남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소가씨들의 유력호족이 조정하기 쉽게 여성을 추대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여자의 아버지는 긴메이 천황이었지만 어머니는 소가씨 가문 출신의 가다시히메였다. 이때에 천황가에 대 천재가 출현하게 되는데, 우마야도노 도요토미미 황태자, 즉 쇼토규(聖德)태자다. 태자는 고모인 스이코천황의 섭정으로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하고, 불교와 천황제도를 양립시킬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소위 '신불유습합(神.佛.儒習.合)'의 사상이다. 즉 '신도를 근간으로 하고 불교를 기술로서 발전시키며 유교의 예절을 장려하여 현실적인 번영을 이룩한다' 는 논리를 짜맞춰내고, 하나에 하나를 더한다고 해서 다른 것이 부정되는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당시의 많은 일본인이 고뇌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적절하고도 현실적인 해답이었다.34) ---------------------- 31) 堺屋太一, pp. 120-121. 32) Ibid., pp. 121-123. 33) Ibid., p. 123. 34) Ibid., pp. 125-126. - 9 - '신들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존경을 해도 징벌을 내리기도 하는것이 일본의 신들이다. 이 징벌을 막아 줄 수 있는 것이 불교다. 때문에 우리는 불교도 숭상해야 한다.' 태자는 그런 취지로 논하고 있다. 신들에 대한 공포를 더욱키워서 이를 폐지하는것을 억제하는 반면, 자애를 설파하는 불교의 일면을 강조하여 그 신앙도 긍정했던 것이다. 이때 부터 일본에 더이상의 심각한 종교적 대립은 없어졌다. 동시에 엄격한 종교논리나 신앙심도 없어졌다. 이것이 그후 일본에끼친 정신적 영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은종교적 계율에 사로 잡히지 않고 외량 문화를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고, '신의 말씀과 율법'을 전면적으로 믿지 않고 모든 문화를 경우에 따라 좋은 부분만 취하는 습관을 체득하게 되 었다.35) D. 조상숭배 일본에는 문자가 없었던 8천년이란 긴 시간이 있었다. 즉 석기시대로부터 승문시대까지로 원시시대(BC8,000-300)였다. 특히 신도는 이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 조상숭배의 원리이다. 그래서이 원리가 일본문화의 기초가 되었고, 이 원리를 제외하고 생각할 수 있는 문화란 일본에서는 없는 것이다. 이 조상숭배는 개인의 가치관을 다루고 있으며, 이가치관이가문을 받들고, 혈육을 받들고, 지역을 받들어서 종국에는 나라를 받드는 근본 원리로 확대된다. 신도는 이것들을 이용해서 성립된 것으로 조상숭배 원리가 무너지면 자동적으로 신도는 무너지고마는 것이다. 36) 1)죽음에 대한 공포와 조상숭배 조상숭배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형성되었던 자연발생적인 원시 토착종교이다. 신도는 그것을 의식화했고 형식화했다. 따라서 신도의 본질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여러 가지를 두려워하며 인간의 안정을 해치는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들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것들을 두려워하는 표현이 신도의 제사이다. 조상에게 해를 끼치는 것들에 비는 행위를 통해서 재해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을 남기고 죽은 사람이나 비참하게 죽음 당한 사람의 영을공양의 대상으로 삼았다. 즉 신으로 받들어 신사에 모심으로써 화근을 모면하려는 것이었다. 조상숭배는 그러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당연한 행동이었고,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자연스러운 수단이었다. 37) 2) 조상숭배의 가치관 조상숭배의 원리는 결국 인간의 죽음을 사람들이 얼마나 잘 이용하는가 라는 면을 보여준다. 일본인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인데, 조상숭배란 죽은 자의 영을 기원한다는 의식에 따라 죽음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두개의 가치관이 나타난다. 즉, 놀랄 정도의 현실주의(경제동물이라고 불리우는 점)와 이해할 수없을 정도의 우상숭배이다(가미다나, 부쯔단, 진자등).38) 일본인들은 죽음을 냉철히 바라보며 배우고자 하는 것보다 그것을 의식화하여 죽음을 항상 가까이에 둠으로써 공포를 가볍게 하자는 것이었다. ---------------------------- 35) Ibid., pp. 128-129. 36) 데라다 유이치,. p. 110. 37) Ibid,. p. 113. 38) Ibid., pp. 113-114. - 10 - 3)영혼의 순환 일본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은 산으로 간다고 하는 산중타계설에 있어서의 영혼관은 조상숭배원리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데 일본인의 사생관에 있어 죽은 후 죽은 사람의 영은 아직도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시예(신도에서는 죽음을 더러운 것으로 생각함)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손들이 이것을 받들어 모시지 않으면 끝까지 깨끗해지지 않고 영적 권위를 가지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받들어 모심으로써 죽은 사람의 영이 점점 격한 개성을 잃게 되어 '시예'도 정화되어간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산의 낮은 곳에 있었던 죽은 자의 영이 의례가 반복되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 마침내더러움이나 슬픔, 분노 등을 초월하여 깨끗하고 부드러운 영으로 되어간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해서 완전하게 정화되어진 죽은 자의 영은 '소레이'(神靈)가 되고, 이 소레이가 더 승화되면 조상신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승화된 조상신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리하여 새로운 생명으로서 어느 날엔가 나까쯔구니(이 세상)에 재생한다는 것이다. 39) 생→ 사→ 소레이(조상신)→ 재생이 조상숭배의 근본원리가 되는 영혼의 순환이다. 4)조상숭배에 의한 귀속의식 조상의 영을 모시는 사람은 다음 대상으로 자기 자신이 받들어 모셔지게 된다는 것과 또 그 모셨던 조상신들이 집이나 마을에서 그 모시는 협동체를 보호함으로 말미암아 조상숭배의 공양을중요하게 생각하고, 스스로가 그 일부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이것은 집안에 있는 부쯔단(佛壇)을 지키고, 묘를 지키며, 여러가지 행사를 지키는 것이다. 이런행사를 통해서 일본의 집이나 마을이 하나의 협동체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어렸을 때는 그다지느끼지 못했던 귀속의식을 40대가 넘은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그러한 공양을 지키는 것으로 말미암아 귀속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40) 반대로 이러한 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가족이나, 마을, 공동체에서 완전한 '이지메'(따돌림)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일본인은 외국인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조상숭배에 강한집착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들이 얼마나 죽음의 문제를 심각하게 그들의 삶의 중심에 두고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한 예들로 무덤들이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외국인들의 눈에는 마치 죽은 영들과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실제로 무덤주변의 어떤 집들을 다른 집보다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3. 일본인의 세계관을 기초로한 선교방법론 A. 신도이즘을 통해 본 종교의 열성. 신도이즘은 이 세상에서 일본과 일본인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이다. 신도이즘은기독교 신앙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의 종교이다. 신도이즘에서 주장하고 있는 신의 개념은 신화적인 요소들로 가득차있다. 아주 다신교적이고 혼합적인 개념이 농후하다. 그들의 신관은 유일신 사상이 아주 희박하여 신을 말할 때도 가미가미(神神)라고 복수로 부른다. 그들의 종교관은 상황에 따라서 개종 및 배교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배의 대상이 매일 바뀐다 해도 일본인에게는 별로 문제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절대신은 없다는 것이고 인간적인 형편에 따라 종교는 얼마든지 바꿀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죄의 고백이라든가 하는 회개가 없다. ------------------------- 39) Ibid., pp. 123-124. 40) Ibid., p. 125. - 11 - 신도이즘은 인간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고 있다. "세상을 만든 것은 인간이다"라는 것은 일본 종교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다. 41)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과는 전혀 대치되는 사상이다. 일본인은 신이란 고통과 번민, 빈곤과 욕구 불만의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으로인식되어왔다. 신도이즘은 내세론이 없고 오직 현세에만 관심이 있다. 신도이즘은 본질적으로개인적인 신앙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전통이기 때문에 개인은 공통체 속에 잠기게되고 개인적인탁월성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개인은 자연을 포함한 좀더 넓은 세계의 일부분으로 본다. 따라서 신도이즘에 있어서 내세에 대한 이론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42) 신도이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허점은 일본인은 가장 선한 민족이기 때문에 구세주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누구나가 신이 될 수 있다는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죄를 지었든 간에 단순한 의식에 의하여 쉽게 용서 받을 수 있다 는 것이다. 신도이즘은 개인적인 구원 사상을 없다. 그러나 좀더 큰 공동체에서의 조화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신도에서는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은 자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신도이즘은 사상자체가 인본주의 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섬기고 일본의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자기들 끼리의 결속을 위하여 만든 자연 신앙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신도이즘의 이론은 기독교의 복음과는 많은 부분이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 접촉점을 찾기가 쉽운 것이 아니다. 타종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는 접촉점을 근거해서 선교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교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신도이즘의 일본인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복음과 일치점을 찾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아덴사람들과 접촉점을 찾았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구나'(행17:22)라고 이들의 종교성을 지적하였다. 종교성이란 신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인간으로서 갖는 한계점을 알고 있으면서 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은 신도이즘을 통하여서 보면 종교성이 대단히 강한 나라임에 틀림이 었다. 무엇이든지신으로 인식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으로 체워 주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종교성을 가진일본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음을 사로 잡는 다면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여기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믿는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것이 엄청난 기대감과 아울러접촉점중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일본인들의 신에 대한 충성심은 가히 놀랄 만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과학적, 역사적으로 확증할 수도 없는 자연신, 천황에 대한 충성심은 기독교인으로서 본받을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충성심을 하나님께로 돌린다면 일본은 앞으로 기독교 국가의 모범으로 성장할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볼수 있겠다. 영적인 빈곤속에 있는 일본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마음속에 가득체울수 있다면 일본은 세계선교의 선두주자 가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B. 일본인의 종교심을 통해 본 일본선교. 일본인 전도에 있어 가장 핵심적 내용이라 생각되어지는 것이 바로 이 일본인의 종교심에 대한부분이다. 이를 이해하는데 한 일본의 유명한 학자의 말을 인용해보면, 그는 종교에 대해서 "산의정상에 가는 길은 많다. 당신의 길, 나의 길, 여러 길이 있다. 그러나 정상에 가면 보게 되는 것이은 똑같은 정상밖에 없다. 이와 같이 여러 종교가 있으나 문제는 없다. 끝에 가면 똑같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때문이다. 고로 당신의 종교도 좋고 나의 종교도 좋다" 고 했다. -------------------------- 41) 이사야 벤다산, op. cit., pp. 127-129. 42) 노오만 앤더슨, 세계의 종교들, 민태운 역(서울: 생명의 말씀사,1985), pp.314-315. - 12 - 현실적으로 일본인을 전도하면 일본인을 너무 쉽게 그 복음을 받아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오직 예수만을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神 더하기 예수신인 것이다. 그들에게 유일신을 가르키는 방법은 어렵다. 그러나 시간을 걸리지만 그들에게 "내가 곧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마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분명히 말씀하신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C. 가족중심의 선교 일본의 가족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특수한 그룹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일본은 신도의 천황제를 중심으로 하여 "본가(本家)라고 하는 대단히 특이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 는 작게는 한가정으로부터, 회사, 단체 그리고 국가에 이르기까지 확대 적용되는 일종의 가족주의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렇한 범주속에서 일본적인 힘과 결속을 통하여 오늘날의 경제 대국을 이룩해 놓은것이다. 서구화의 개방물결 속에서 많은 변화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적인 관점에서이러한 일본의 가족주의를 역이용하여 가족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개종시킨다면 일본의 복음화는 더욱 가속되리라 전망해 보는 것이다. 성경도 가족 중심의 신앙을 가르친다. 가족 중심의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유지에 많은 이점이 있다. 신앙을 유지하는데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가족들만의 특별한 결속력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일본인의 가족관은 작게는 한 가정에서 크게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인간 관계속에서 "和"라는 점액으로 밀착되어 있는 나라이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언약도 가족 중심이다. 구약에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의 구원, 모세의 가족,라합의 가족, 다윗등 모두가 가족단위로 구원을 받았으며 고라는 가족과 함께 멸망하고 말았다. 신약에서는 빌립보에서 루디아와 그의 전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에서간수장에게 전도한 메시지의 내용도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였다.고린도에서 회당장 그리스보는 온 집으로 더불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행18:8) 사도바울도 스데바나 가족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사상이 일본의 가족중심의 사상에 접목되어진다면 엄청난 역사가 있을것이다. 가족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두터운 인간관계의 형성이 있기까지는 우리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으로 대하기 시작할 때 가능한것이다. Ⅲ. 결 론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가장큰 종교는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이다. 이들의 강한 집단 귀속 정신은일본이라는 집단을 하난의 거대한 우상으로 만들었으며 천황이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극가와 대립되거나 국가의 이해와 상반되는 것은 그 어떤종교나 사상도거부하였다. 기독교는 단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으며 기독교도 집단귀속 정신에 함몰되어 기독교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 종교로 전락하는 아픈 상처도 잔직하게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종교로 변질시켜 그들만이 귀속되어 또하난의 종교를 만든 것이다. 그들의 민족 종교인 신도의 세력은 현대에 이르면서 점점 강대해지고 있으며 신도를 중심으로 일본이 다시 군사 대국으로 성장하여 제국주의로 회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집단 우선 주의는 타 국가의 것을 받아들이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들의 것으로 변형시키는 특징을 낳게 되었다. 사소함 물건에서부터 위대한 문학 작품에 이르기 까지 그것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며 그들의 사상을 주입시켰다. 어떤 종교나 사상도 그들에게 들어가면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일본의 종교나 사상으로 변형되어 버린다. - 13 - 일본인들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존재에 불과하며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神(가미)가 될수 있는 마치 흰두교의 브라만과 아트만, 불교의 색과 공, 우리 나라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심지어 현대 첨단 과학 문명까지도 그들의 범신 사상의 종이 되어주술과 무속 신앙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철저한 인간관계로 똘똘뭉쳐진 일본의 사회를 바라보고 있으며 답답함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벽으로 보이는 그것들이 복음의 최선의 도구로 변할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아직 일본선교의 뚜렸하고 구체적이 방법론이 없지만 단 한가지 방법이라면 인내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복음을 심어줄수있는 방법들을 모색할뿐이다. 최첨단을 달리고 있으면서도 그속에서 일본의 전통성을 부서뜨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복음의 도구가 되어지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사용하고 실험해야 할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그들과의 인맥을 통하여 한사람씩한사람씩 변화시켜 나가기 시작할때 이땅에도 그리스도의 날이 올줄로 믿으며 글문을 닫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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