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축복하라 민수기6:24-26 2010. 10. 10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복 인 것 같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신 후 에 제일먼저 하신 것이 창세기1장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제일처음 하신 말씀이 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제일처음 주신 것이 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제일 필요한 것은 바로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 성도들에게도 이런 복이 많으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복의 모습은 번성과 충만과 정복과 다스림의 복입니다. 번성과 충만은 외적인 것입니다. 정복과 다스림은 내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복은 겉으로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하고, 그 속을 보아도 꽉찬 것을 알수 있을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겉만 번지름 하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속도 내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복을 주시는 것일까요! 우리만 복을 받고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분명 그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하다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을 시켜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서 광야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명하게 알 수있도록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도록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예배법에 대해서 모세를 통해서 자세하게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를 불러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백성들을 축복할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축복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의 백성된 이들이 제사장이 빌어주는 복을 받아 누리면서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복을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즉 제사장의 역할 중에 중요한 역할이 복을 빌어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가 무엇이냐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바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일어났던 현상이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2장9절에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우리들의 존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사장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사명 역시 오늘 본문에서 제사장들에게 명하고 있는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복을 빌어주는 사명입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에게 명하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복을 받을 사람, 복을 받은 사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복을 어떻게 빌어주라고 명하고 계십니까!
1. 지키는 복
24절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보호의 복입니다. 즉 지켜주시는 복입니다.
여러분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키는 것입니다.
정상에 올라가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정상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상에 있는 사람은 늘 외로운 것입니다. 더 이상 외부와의 경쟁이 없는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하지 못합니다. 지키질 못합니다. 복을 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헌신하고, 섬김으로 복을 받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그 복을 계속해서 지키는 사람은 보기가 힘이 듭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복을 받은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끝까지 잘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오히려 비참한 말로를 보낸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역시 지키는 부분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빌어주는 것에서 처음의 내용이 지킴에 있습니다. 지키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려고 하니까 힘이 들고, 외롭고, 고독한 것입니다. 정상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런 복을 주신다고 하는데, 바로 지켜주심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엄마의 품입니다. 그 품안에만 안기면 아이는 세상의 어떤 전쟁, 기근, 지진, 핍박, 고난, 배고픔 속에서도 평안하게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1858년 미국 뉴욕 한 가정에 다리는 절고, 눈은 잘 안보이고, 호흡에 문제가 있는 소아마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처음에 그 부모는 하나님을 원망했으나 곧 생각을 바꾸어 아이를 선물로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부모는 날마다 아이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하나님이 너와 늘 함께하시고 지키신단다. 너를 귀히 쓰신단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 아이가 28세 때 뉴욕시장이 되었고 그후 뉴욕 주지사와 미국 부통령을 거쳐 43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26대(1901∼1909)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입니다. 부모의 기도대로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켜주심이 복입니다. 지켜주심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지켜주심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심, 우리의 환경을 지켜주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심,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을 지켜주시는 것이 큰 복입니다. 내입의 말을 지켜주시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소유하고 쌓아두었던 모든 것을 지키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켜주어야 할 복은 믿음을 지킬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어떤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그들의 믿음을 지켜주셨습니다. 히브리서10장에 보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들이 믿음을 빼앗아가기 위해서 사탄은 얼마나 치열하게 공격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들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지킴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는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빌어주어야 할 영혼들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할 환경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지 못할 환경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돈벌려고 이땅에 왔으니 물질의 유혹이 강하고, 온갖 외로움과 고독으로 인한 유혹은 또 얼마나 많겠으며,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통해서 좌절하는 일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 모든 것이 믿음을 흔드는 일들이 되어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옆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의 가족들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서 그들의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제사장된 우리 모든 성도들이 빌어 주어야 할 축복의 내용입니다.
2. 얼굴을 비춰주시는 은혜.
그리고 얼굴을 비춰주시는 은혜 베푸심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25절에“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로 우리를 비춰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실 때가 있었습니다. 언제인가 하면 에스겔서39장24절에 보면 “내가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한 대로 행하여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가리웠었느니라” 고 합니다. 즉 죄악이 관영할 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그 얼굴을 가리우십니다. 죄악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그는 하나님을 피해서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얼굴을 가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이 장면입니다. 내가 죄악중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고, 하나님은 내게서 그 얼굴을 가리시는 장면입니다. 이사야53장에 보면 또 하나의 얼굴을 가리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사야53장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요?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안봤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무엇인가 잘못을 하면 엄마, 아빠얼굴을 안보려고 합니다. 숨으려고 합니다. 안보이는데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불행의 시작인 것입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근심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온갖 염려, 근심,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수 없다면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취어 주시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우리에게 비춰주시겠다는 말은 다시 은혜를 베프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은 곧 은혜입니다. 창세기33장에 보면 얍복강가에서 고민하는 야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형에서를 만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습니다. 그 옛날에 형을 두 번씩이나 속이고 도망을 쳤던 야곱이기에,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형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를 잡겠다고 오는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얍복강앞에서 다른 식구들은 다 건너보내고 혼자서 그 강을 건너지 못하고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그 밤에 천사를 만나고 하나님의 축복을 놓고 씨름을 합니다. 결국 환도뼈가 부러지는 일을 당하고서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는 용기를 내어서 형을 만나러갑니다. 얼마나 근심이 많고 걱정이 많았겠습니까! 형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형이 야곱을 보자마자 달려와서 안고 입을 맞추고 “오랜만이다, 동생아!” 하면서 서로 우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에 야곱이 형에게 한 말입니다. 창33장10절“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형님의 얼굴을 본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랬더니, 군사400을 거느리고 오던 형이 마음이 변하여 그를 끌어안고 화해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동안 쌓여 있었던 미움의 감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동생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만해도 분노가 가득했었고, 그래서 이놈을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으로 군사를 이끌고 왔던 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화해와 용서를 해주는 그 얼굴은 하나님얼굴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그 얼굴을 비춰주시는 것입니다.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죄사함의 축복, 용서받았다고 하는 축복, 이것처럼 우리를 자유롭게, 즐겁게, 또 눈물나게 감사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을 우리에게 먼저주십니다. 제사장의 축복입니다. 너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용서의 축복입니다. 죄를 떠나서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이것은 정말로 은혜중에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용서받지 못한 죄악이 하나도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이복을 누구에게 빌어주시겠습니까! 우리의 형제들에게 빌어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암송하면서 기도하는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에 무엇이라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시옵소서” 누군가를 용서해주신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여러분을 처다 볼때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이 처다 볼 것입니다. 우리가 빌어주어야 할 축복입니다.
3.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평강주시는 복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어주는 복은 26절“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시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고 합니다. 이번에는 좀더 적극적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라고 합니다. 즉 나를 바라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안보고 너만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를 집중해서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운동회때 부모의 눈은 다른 모든 아이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그 많은 아이 중에서 자기아이 찾는 것 만 중요합니다. 요즘은 운동회 철이라서 저도 지난번토요일에 막내 보육원 운동회가 있어서 갔습니다. 비디오도 챙겨들고 카메라도 챙겨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비슷하게 서있는 아이들 틈에서 우리애 찾기가 쉽지 안더라구요, 그래서 비디오를 통해서 줌으로 땡겨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가리고 있어서 못 찾았는데, 그렇게 속상하더라구요! 그리고 운동회가 시작되고 카메라는 돌아가는데, 누구만 쫓아서 찍게 됩니까! 우리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어쩌다 찍히는 것이고, 아이아이 옆에 있기 때문에 찍히는 것이지요, 운동장에서의 주인공은 그때 그때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제 카메라 안에서의 주인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아이만이 주인공입니다. 뛸때도, 넘어져도, 그냥 앉아있어도, 아빠 카메라의 주인공은 오로지 사랑하는 자녀뿐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꼭 그런 마음으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시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하나님은 나를 찾아내셔서 지켜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빠가 나를 처다보고 있다는 것이 자신감입니다. 아빠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아빠가 나를 지켜준다는 확신이 평강입니다. 내가 너를 보고 있을테니까 편안하게 해! 엄마 아빠 앞에서 하는 것 처럼 편안하게 해! 집에서는 아이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노래도 잘하고, 재롱도 잘 부립니다. 편하니까! 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편안함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나를 처다 보시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불안하지 않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집니다. 왜요, 만약에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금방 엄마가 아빠가 뛰어와서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27절에서는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을 주시는 통로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비는 복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시겠다 합니다. 이 말은 나의 이웃이 내 형제와 자매들이 복을 받고 못받고 가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왕 같은 제사장된 나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남이 복 받는 것을 보면 왠지 배가 아픈 것 같은 나쁜 습성이 있지만 여러분 그래도 우리는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도 똑같은 복을 빌어주기 때문입니다. 서로 복을 빌어주는 교회, 서로 복을 빌어주는 성도, 서로 복을 빌어주는 사회, 서로 복을 빌어주는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일전만 하면 이를 악물고 해야 하는 서글픈 세상이 아니라 서로를 응원해줄 수 있는 그런 날들이 오기를 우리가 애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여러분의 비는 복을 통해서 축복된 세상을 만들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가까이는 옆에 있는 성도들에게, 형제, 자매들에게, 그리고 집에서는 부모에게 자녀들에게, 직장에서는 동료들에게, 사회에서는 어렵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국가적으로는 평화의 복을 빌어주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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