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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창39:1-3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39:1-3 2010.10.31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지독히도 운이 없는 사람. 불행한 사람, 엎친데 덮친사람, 이렇게도 볼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사람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창세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창세기 37장에서 50장까지 무려13장에 걸친 이야기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왜 요셉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하게 그리고 길게 다루고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요셉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강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가지고 있었던 한 인물이 어떻게 그 꿈을 이루게 되는지, 그 꿈의 성취를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계획하시고 이루고자 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꿈은 있지만 현실은 슬픈 사람들, 마음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 사람들, 생각은 있지만 오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별 다를바 없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했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요셉에게서 승리의 비결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흔히들 꿈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때 하나님은 그에게 두가지 이해하지 못하는 꿈을 주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곡식단에 형들의 곡식단이 둘러서서 절을하는 꿈이었고, 또하는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입니다. 이 꿈 이야기 때문에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 때문에 그의 인생을 꼬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좋은 일이 생길수 있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만큼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냥 좋은마음에 자랑을 했는데 그 자랑이 결국은 화근이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열왕기상에 보면 히스기야 라는 왕이 나옵니다. 그왕은 죽을병에 걸렸을때 성전에서 눈물로 기도하는것을 통해서 15년을 더 사는 복을 받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가 침입할 때에 기도하여 이기는 놀라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서 그 소식을 듣고 조문차 온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무기고와 내탕고에 있는 모든 무기와 보물을 자랑을 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모든 보물, 그리고 자신의 군사력까지 다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후에 유다는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서 멸망하게 되는 결과를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자랑은 잘못하게 되어 지면 사람들의 시기를 받게 되고, 그 시기는 결국 자신의 인생에 씻을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결국 요셉도 그 자랑으로 폼 잡고 다닐 때,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아버지의 보호가 없는 도단이라는 곳에서 형들에 의해서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난 것이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1. 팔려온 사람.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노예시장에 팔려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노예시장이라는 곳이 어떨것 같습니까! 신자적이고 인간적인 장소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지요!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붙잡혀서 끌려온 노예들의 분노의 눈빛과 처절한 모습들, 그리고 그들을 무슨 짐승 보듯하는 경멸의 눈빛이 가득한 곳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려는 노예상들의 잔인한 모습들이 있는 곳입니다. 도망하지 못하게 쇠사슬로 묶어놓고, 힘좀 쓸것같은 사람은 손과 발뿐 아니라 목에도 사슬로 묶어 놓았을 것입니다. 노예를 사려는 사람들 역시 사람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얼마나 일을 잘하게 생겼는데, 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여기, 저기를 찔러보고, 까뒤집어보는 그런 곳입니다. 요셉은 하루아침에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원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늦둥이들이 다 그렇듯이 제일 좋은 것은 다 늦둥이 것이 되어집니다. 모든 우선순위도 늦둥이것이 되어지고, 야단을 맞는 법도 없고, 그저 이쁘다, 이쁘다 소리만 듣고 자란 요셉입니다. 온갖 비단옷으로 치장을 하고 고생이라고는 해본적이 없던 그야말로 사랑만 받았던, 곱게 자란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꾼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결국은 하루아침에 노예시장로 팔려왔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을 까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엄마가, 아빠가 보고 싶었을까요!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리고 형들이 얼마나 미웠고, 지금 노예시장에서 묶여있는 지금 이 시간, 자기를 무슨 짐승취급하면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어느날 갑자기 당하는 환란, 상상하지 못했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비참한 사고나, 사건들을 메스컴에서 보면서 어는 누구도 그런 일이 자신에게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우리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늘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늘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많은 기도와 믿음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면 혹 그런 일을 당할 때,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능이 있지만, 평소에 그런 위기에 대해서 무심하고 지난다면, 영적인 것에 무심하고 지난다면 혹 그런 일이 왔을 때에 감당할 수 없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무일이, 없을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아무 일이 없을때, 믿음을 많이 심어놓으시길 바랍니다. 아무일이 없을때, 말씀을 많이 암송하고 공부해 두시길 바랍니다. 아무 일이 없을 때, 더욱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섬기시고, 예배하시길 바랍니다. 아무일이 없다는 것은 그냥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 하라는 것입니다. 환난의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내 주변, 내 신변에는 아무일이 없는 것 같지만, 지구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종말은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일 없이 버리고 했던 화학세제들, 그리고 내뿜고 버렸던 것들이 결국은 환경파괴를 가져오고, 그 결과를 온지구는 지금 경험하고 있습니다. 100년만에, 50년만에 라는 말이 이제는 별로 어색하지 않게 들릴만큼, 폭염과, 폭우를 경험합니다. 야채값이 치솟고, 환경오염에 감염된 물고기, 육류들, 재앙이라는 말들이 쉽게 들리는 말세를 이미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평안할 것 같을 때, 우리는 환난의 날을 준비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유도선수들은 처음에 연습하는 것이 넘어지는 것을 먼저 연습한다고 합니다. 쓰러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지는 것입니다. 얻어맞는 것입니다.

쓰러지는 것을 먼저 연습합니다. 낙법이라고 해서 떨어지는 것을 먼저 연습합니다.

오늘 요셉은 어느날 갑자기 당하는 고난으로 인하여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고통의 자리에서 누구를 불렀을까요! 그는 하나님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는 순간, 순간 주여! 주여! 를 외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휼하심과, 도우심을 간절히 외쳤을 것입니다.

2. 섭리의 사람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꿈을 주신 사람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와 함께 하셨고, 그의 당한일 속에서 하나님은 섭리를 가지고 움직이시고 계셨습니다.

당할 때는 몰랐던 일입니다. 나중에 되어서야 그것이 섭리였구나! 하면서 알수있는 일이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이런 모습이 아니라면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라면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애굽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그 애굽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했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의 발걸음을 그때부터 인도하시기 시작하는데, 노예시장에서 그는 정부의 고관의 집에 팔려가게 하십니다. 그의 운명을 바꿀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마음이 착하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보디발장군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집에서 그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록 히브리인이었지만, 그의 집안의 모든 것을 총괄할 수 있는 총무의 역할을 맡길 정도의 인격적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갖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정말로 운명적인 사람들을 만나는데, 애굽왕 바로의 신하들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비록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썻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갔던 감옥은 일반감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로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만약에 보디발 장군이 그를 일반 감옥 속에 집어넣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로 죄수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장군은 요셉을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에 가둘수 있을 만큼의 권력자였던 것입니다.

보디발장군도 자신의 부인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을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아내에 의해서 당했던 사람들이 요셉밖에 없었을까요! 그전에도 아마도 많은 노예들을 그런 식으로 농락 했을 것이고, 그리고 또 넘어갔을 것입니다. 아마도 요셉이전의 노예도 그렇게 당하고 짤려 나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요셉의 성품을 알고 있었던 보디발장군은 그를 다른 감옥이 아닌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넣었을때는 아마도 나름대로의 배려인지도 모르 겟습니다.

그리고 그 감옥에서 정말로 운명적인 사람, 그를 왕앞으로 데리고 갈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술 맡은 관원장입니다. 하나님은 또 한명의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왕의 신하를 만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적당한때에 꿈을 꾸게 하고 요셉의 주특기인 꿈해몽을 하게 합니다. 그렇게 만났던 신하와의 만남이 약 2년간의 정적이 흐르고 난후에 이번에는 누구도 해석할수 없는 꿈을 바로왕이 꾸게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왕의 꿈을 해몽하는 해몽가의 모습으로 왕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로움을 주셨고, 그 지혜로움으로 왕의 꿈을 해석했는데, 그 해석이 바로 애굽의 총리가 되는 놀라운 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꿈이 성취되어지게 되는데, 당시 가나안땅에 있었던 형제들이 기근으로 인해서 모든 양식이 끊어졌고, 오로지 양식이라고는 요셉의 현명한 정치덕분에 가근의 때를 위해서 풍년을 잘 간수하고 준비했던 애굽 땅에만 양식이 있게 했습니다. 형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에 오게 되고, 애굽의 총리라고 하는 감히 상상도 못할 자리에 앉아있던 동생 앞에 절을 하면서 양식을 구하는 모습을 통해서 꿈은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과정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면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섭리의 시각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한 사람, 한사람, 모든 만남들이 그리고 모든 일어나는 현상들이, 비록 그것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는 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 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생애를 하나님은 어떻게 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당하는 일들, 오늘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거룩한 역사를 이루기 위한 조연들이고,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미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울해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실망할 일들이 아닙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의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만약에 요셉의 노예로서 불평불만과 과거의 자신의 모습만 생각하고 보디발의 집에서 불성실했다면 그는 집안의 총무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보디발장군의 부인의 유혹을 받아들였다면 요셉은 왕의 신하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신하들에게 일어난 꿈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리고 말았다면, 왕의 꿈을 해몽하는 일들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조차도 알지 못 햇을 것이고, 성경에는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살아간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오늘에 충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그 일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이어갈 수 있게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3. 형통한 사람.

요셉의 이야기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가는곳마다, 그가 하는 일마다 간섭하여 주셔서 그일을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의 손을 들어주셨고, 그가 계획한 것들을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해 주셨습니다. 보디발장군의 집에는 이상한 일이 생겼는데 요셉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때부터 그집이 부자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요셉이 복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집안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그집이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안에 사람 들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통은 무엇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까! 본문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형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형통의 출발입니다. 그렇다면 불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하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시고, 그 성경대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요셉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노예로 팔려 와서 노예노릇을 하고 있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감옥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서도 총리로 있는것이 중요한일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 속에 처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느냐! 아니냐! 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면 그는 어떤 일도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총리로서의 일을 훌륭하게 할수 있었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야곱의 일가를 애굽으로 이주시키셔서 요셉의 보호아래서 민족으로 번성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을 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요셉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셨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민족을 이루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족장의 체제로 있었던 당신의 백성들을 이제는 민족으로 만드시기 위한 요셉의 꿈속에 숨어 있었던 요셉도 미쳐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사람의 꿈이 한사람에게 머물러 있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한사람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놀라운 섭리를 가지고 꿈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해야할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간직하고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그 일에 형통을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형통으로 여러분에게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섭리대로 한걸음씩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꿈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전진시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때로는 그 일이 요셉의 감옥 같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절대로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당하는 어떤 일도 긍정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성실한 땀을 통해서 형통케 하시는 은혜를 맞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