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가치 히브리서 2:1-4
옛날에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흑인교회인 성 시온교회에서 세족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올리버라고 하는 백인 대법원장이 참석하였습니다. 세족식 시간이 되자 그는 마르다라는 흑인 여성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놀라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 보았습니다. 백인 대법원장이 흑인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발을 다 씻기 올리버 대법원장이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내집에 노예로 있는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 아이들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 사람의 발을 씻겨주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렇게 한 것 뿐입니다.”
그는 그 일 때문에 대법원장직에서 파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제야말로 참으로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라고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에서 올리버는 자신의 신분에 개의치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람을 실천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자신이 받은 구원의 가치를 잘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조셉 스토웰이라는 사람이 쓴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것”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몇 달 전, 웨스트코스트(West coast)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키이스라는 청년이 다가와 자신을 소개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오백 개의 대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팅 회사의 기획 및 직원 교육 담당 자문 위원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 무디성경학교에서도 직원교육담당자를 구한다고 말하며 그에게 명함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명함을 주면서 “내가 무디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다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에서 지급할 수 있는 연봉은 현재 그가 받는 연봉에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키이스는 우리 학교 직원교육분야의 책임자로 있습니다.
몇 주 전 나는 그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무디 성경학교에 와준 것에 몹시 감사한다고 말했고. 더불어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상당한 수입을 포기한 거룩한 희생임을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그가 대답한 말을 평생잊지 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혀 희생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중시하겠다고 늘 그분께 다짐했습니다. 마침내 그것을 입증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의 이야기속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꼇습니까! 그들은 자기 자신이 구원받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 구원의 가치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 2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책망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 구원은 어떻게 해서 주어진 것입니까?
옛날에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흑인교회인 성 시온교회에서 세족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올리버라고 하는 백인 대법원장이 참석하였습니다. 세족식 시간이 되자 그는 마르다라는 흑인 여성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놀라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 보았습니다. 백인 대법원장이 흑인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발을 다 씻기 올리버 대법원장이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내집에 노예로 있는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 아이들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 사람의 발을 씻겨주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렇게 한 것 뿐입니다.”
그는 그 일 때문에 대법원장직에서 파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제야말로 참으로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라고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에서 올리버는 자신의 신분에 개의치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람을 실천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자신이 받은 구원의 가치를 잘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조셉 스토웰이라는 사람이 쓴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것”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몇 달 전, 웨스트코스트(West coast)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키이스라는 청년이 다가와 자신을 소개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오백 개의 대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팅 회사의 기획 및 직원 교육 담당 자문 위원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 무디성경학교에서도 직원교육담당자를 구한다고 말하며 그에게 명함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명함을 주면서 “내가 무디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다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에서 지급할 수 있는 연봉은 현재 그가 받는 연봉에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키이스는 우리 학교 직원교육분야의 책임자로 있습니다.
몇 주 전 나는 그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무디 성경학교에 와준 것에 몹시 감사한다고 말했고. 더불어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상당한 수입을 포기한 거룩한 희생임을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그가 대답한 말을 평생잊지 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혀 희생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중시하겠다고 늘 그분께 다짐했습니다. 마침내 그것을 입증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의 이야기속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꼇습니까! 그들은 자기 자신이 구원받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 구원의 가치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 2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책망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 구원은 어떻게 해서 주어진 것입니까?
1. 죄인된 우리
구원받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원래의 우리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어떤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합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본래상태는 죄인 된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출발하는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짖는 모습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 동산에 만들어놓으시고 절대로 따먹지 말라 명하십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엄하게 명하십니다. 그런데 그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절대로 금하신 금기를 어기고 맙니다. 그것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의 죄악은 아담과 하와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의 아들 가인은 급기야 자기의 동생 아벨의 죽이는 살인자의모습으로 인간의 출발을 시작합니다.
그 죄악은 흘러, 흘러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흘렸는데, 로마서 3: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였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 모든 사람 안에 오늘 여기에 있는 모두가 다 포함된 것입니다.
도쿄디즈니랜드는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그대로 축소한 모델입니다. 그 디즈니랜드에 가서 보면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동화속에 들어온 것 같고, 특히 저녁에 하는 퍼레이드는 환상적입니다. 이것을 보기 위해서 북한의 김정일 아들까지도 가짜여권을 만들어서 구경을 올만큼 인기가 있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의 꿈이 디즈니랜드에 가보는 것일 만큼 아이 어른들에게 꿈을 줍니다. 그런데, 이 멋있고, 화려하고, 누구든지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 디즈니를 만든 사람. “월트 디즈니” 에대한 자서전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 신화적이고 아름다운 자서전들이 많이 쓰여졌으나, “마크 엘리엇” 이라는 사람이 그에 관한 새로운 전기를 썼습니다. 그 내 용은 “평생을 FBI의 비밀요원으로 지냈고, 유대인에 대한 각별한 편견을 갖고 반유대주의 운동을 벌였으며, 철저한 알코올 중독자로서 밤을 지새우면서 괴로워했던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또 다른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씀하며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어두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죄악의 어두움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성경은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엄중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고통이라는 것은 얼마나 크고 두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 크고 두려운 고통에서 인간은 벗어나 볼려고 얼마나 몸부림치는지 모릅니다.
병든 이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그 몸부림은 살수 있다고 한다면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 약을 써 볼려고 애를 쓰고, 심지어 똥물이라도 살 수 있다면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을 찾기도 하고, 굿을 하기도 하고 사람이 죽음 앞에 얼마나 추해지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큰 지요. 성경은 준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구원받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원래의 우리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어떤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합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본래상태는 죄인 된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출발하는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짖는 모습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 동산에 만들어놓으시고 절대로 따먹지 말라 명하십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엄하게 명하십니다. 그런데 그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절대로 금하신 금기를 어기고 맙니다. 그것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의 죄악은 아담과 하와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의 아들 가인은 급기야 자기의 동생 아벨의 죽이는 살인자의모습으로 인간의 출발을 시작합니다.
그 죄악은 흘러, 흘러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흘렸는데, 로마서 3: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였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 모든 사람 안에 오늘 여기에 있는 모두가 다 포함된 것입니다.
도쿄디즈니랜드는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그대로 축소한 모델입니다. 그 디즈니랜드에 가서 보면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동화속에 들어온 것 같고, 특히 저녁에 하는 퍼레이드는 환상적입니다. 이것을 보기 위해서 북한의 김정일 아들까지도 가짜여권을 만들어서 구경을 올만큼 인기가 있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의 꿈이 디즈니랜드에 가보는 것일 만큼 아이 어른들에게 꿈을 줍니다. 그런데, 이 멋있고, 화려하고, 누구든지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 디즈니를 만든 사람. “월트 디즈니” 에대한 자서전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 신화적이고 아름다운 자서전들이 많이 쓰여졌으나, “마크 엘리엇” 이라는 사람이 그에 관한 새로운 전기를 썼습니다. 그 내 용은 “평생을 FBI의 비밀요원으로 지냈고, 유대인에 대한 각별한 편견을 갖고 반유대주의 운동을 벌였으며, 철저한 알코올 중독자로서 밤을 지새우면서 괴로워했던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또 다른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씀하며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어두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죄악의 어두움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성경은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엄중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고통이라는 것은 얼마나 크고 두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 크고 두려운 고통에서 인간은 벗어나 볼려고 얼마나 몸부림치는지 모릅니다.
병든 이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그 몸부림은 살수 있다고 한다면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 약을 써 볼려고 애를 쓰고, 심지어 똥물이라도 살 수 있다면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을 찾기도 하고, 굿을 하기도 하고 사람이 죽음 앞에 얼마나 추해지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큰 지요. 성경은 준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2. 구원의 은총
그런 죄악으로 죽어 가는 우리들을 바라보시고 우리하나님께서 어느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마음을 먹으신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한 사람의 죄악을 용서받으려면 양을 잡아서 대신 그 양에게 자기의 죄를 뒤집어 쒸어서 그 양이 대신 죽으므로 죄의 용서가 있었습니다. 즉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은 한번에 한사람이상의 죄를 담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전체를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신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죄 없으신 주님께서 내 대신에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즉 이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일이 생겼는데, 그저 믿기 만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믿기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무 비싼 것은 값으로 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가 3분만 숨을 못 쉬어도 우리는 고통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 숨쉴 수 있는 공기를 우리가 돈으로 살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가난한자에게나, 부자에게나, 어떤 종류의 사람에게도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준다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 그냥 주는 것으로 잘못 생각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돈을 주고 산 것은 아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냥 받은 것은 아무렇게나 다룹니다. 여기 집어던졌다가, 저기 집어던졌다가, 그리고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찾지도 안습니다.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냥 받은 것에 대한 태도입니다.
미안하지만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그냥 주신 그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편 에서는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믿음으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어진 그 구원을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달리 할 방법이 없어서 전도지를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냥 주면 안받을까봐, 사탕을 하나씩 달아서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전도를 합니다. 그냥 주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받지를 않습니다. 어쩌다가 받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비록 사탕 때문에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았다는 사실앞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마음이 아플 때는 그 전도지가 눈앞에서 사람들의 발에 밣혀 버리는 것을 보면 쫒아가서 그것을 주서서 정성스럽게 딱아내곤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했는데, 하면서 원망 아닌 원망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까! 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누구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그 사람이 대수럽지 않게 받고 그리고 그것을 버렸을 때 서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와 똑같은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치루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는데, 그것을 그냥 받았다고 그 구원을 소홀히 여길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죄악으로 죽어 가는 우리들을 바라보시고 우리하나님께서 어느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마음을 먹으신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한 사람의 죄악을 용서받으려면 양을 잡아서 대신 그 양에게 자기의 죄를 뒤집어 쒸어서 그 양이 대신 죽으므로 죄의 용서가 있었습니다. 즉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은 한번에 한사람이상의 죄를 담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전체를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신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죄 없으신 주님께서 내 대신에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즉 이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일이 생겼는데, 그저 믿기 만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믿기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무 비싼 것은 값으로 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가 3분만 숨을 못 쉬어도 우리는 고통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 숨쉴 수 있는 공기를 우리가 돈으로 살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가난한자에게나, 부자에게나, 어떤 종류의 사람에게도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준다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 그냥 주는 것으로 잘못 생각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돈을 주고 산 것은 아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냥 받은 것은 아무렇게나 다룹니다. 여기 집어던졌다가, 저기 집어던졌다가, 그리고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찾지도 안습니다.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냥 받은 것에 대한 태도입니다.
미안하지만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그냥 주신 그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편 에서는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믿음으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어진 그 구원을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달리 할 방법이 없어서 전도지를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냥 주면 안받을까봐, 사탕을 하나씩 달아서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전도를 합니다. 그냥 주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받지를 않습니다. 어쩌다가 받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비록 사탕 때문에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았다는 사실앞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마음이 아플 때는 그 전도지가 눈앞에서 사람들의 발에 밣혀 버리는 것을 보면 쫒아가서 그것을 주서서 정성스럽게 딱아내곤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했는데, 하면서 원망 아닌 원망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까! 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누구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그 사람이 대수럽지 않게 받고 그리고 그것을 버렸을 때 서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와 똑같은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치루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는데, 그것을 그냥 받았다고 그 구원을 소홀히 여길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3.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오늘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그런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3절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길 때는 없습니까?
주일 예배 빠지는 것을 식은 죽 먹듯이 하고, 자기의 일은 잠을 못 자가면서도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일은 시간이 나야지 만하고, 조금도 자기 일에 손해가 되어질 것 같으면 그만둬버리고, 교회 왔다가 사람들하고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나 시험 들었어!”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다 남들이 잘못으로 간단하게 돌려버리고, 지금 자기가 교회 안 나가는 것을 내 잘못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돌려버리는 면죄부로 삼아버리는 습관들, 자기는 몸을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늘 상대방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들,
조금이라도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나, 설교가 있다면 금방 교회 안나오는 것으로 반응하는 모습들, 성도가 마땅히 해야할 십일조의 이야기, 헌금이야기만 나오면 금방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 수고와 헌신은 어디로 가고 누리고 즐기는것만을 찾는 것이 현대교인들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그러지 않으리라 믿습니다만. 여러분 이런 모습들은 전부다 우리가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구원을 절대로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우리 안에 혹시 그 구원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성도들이 있습니까? 찾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 잃어버렸던 그 구원을 다시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그 구원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8:8~9 "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그런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3절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길 때는 없습니까?
주일 예배 빠지는 것을 식은 죽 먹듯이 하고, 자기의 일은 잠을 못 자가면서도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일은 시간이 나야지 만하고, 조금도 자기 일에 손해가 되어질 것 같으면 그만둬버리고, 교회 왔다가 사람들하고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나 시험 들었어!”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다 남들이 잘못으로 간단하게 돌려버리고, 지금 자기가 교회 안 나가는 것을 내 잘못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돌려버리는 면죄부로 삼아버리는 습관들, 자기는 몸을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늘 상대방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들,
조금이라도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나, 설교가 있다면 금방 교회 안나오는 것으로 반응하는 모습들, 성도가 마땅히 해야할 십일조의 이야기, 헌금이야기만 나오면 금방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 수고와 헌신은 어디로 가고 누리고 즐기는것만을 찾는 것이 현대교인들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그러지 않으리라 믿습니다만. 여러분 이런 모습들은 전부다 우리가 그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구원을 절대로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우리 안에 혹시 그 구원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성도들이 있습니까? 찾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 잃어버렸던 그 구원을 다시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그 구원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8:8~9 "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3등입니다”라는 이런 내용의 글 을 읽었습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 ,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 하고 싶은 일 다하고 해야할 일도 다 마치고 그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번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하나님은 3등입니다. 거리에서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나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는1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울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1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꼭 붙잡는 내게 1등으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1등이신 하나님을 나도 1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 ,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 하고 싶은 일 다하고 해야할 일도 다 마치고 그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번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하나님은 3등입니다. 거리에서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나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는1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울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1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꼭 붙잡는 내게 1등으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1등이신 하나님을 나도 1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이 우리의 구원보다 더 소중합니까? 우리의 건강입니까? 우리의 사업입니까? 우리의 인간관계들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부자가 되는 것입니까? 무엇이 우리의 구원보다 더 소중합니까?
이땅에 있는 모든 것은 주님 오라시면 다 놓고 갈 것 밖에 없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 때문에 우리의 그 소중한 구원을 바꾸는 어리석은 이가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에서는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팟죽 한 그릇에 장자의 직분을 팔아먹어 버렷습니다. 그것 때문에 에서의 인생에 얼마나 엄청난 불행이 다가왔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잃어버리면 당장은 배부른 것 같이 보일지 몰라도 잘못하면 영원한 후회의 자리, 돌이킬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빌립보서 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우리의 가치관과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살아간다면 그것보다 행복한일이 어디에 있겟습니까! 사도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에 그가 가졌던 그 모든 학문과 지식과 명예와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노라고 고백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만나고 난 다음에 그의 모든 물질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면서도 행복해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일본에서 살아갑니까? 아무리 아둥,바둥 살아가도 가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다른 차들을 추월해서 가도, 과속을 해서 달려도 결국 도착점에 도달해보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호등앞에 그런 글귀가 있지 않습니까?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장 소중한 그 구원을 최선을 다해서 지켜나가는 그래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 했다, 라고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사랑하는 동경제일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구원보다 더 소중합니까? 우리의 건강입니까? 우리의 사업입니까? 우리의 인간관계들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부자가 되는 것입니까? 무엇이 우리의 구원보다 더 소중합니까?
이땅에 있는 모든 것은 주님 오라시면 다 놓고 갈 것 밖에 없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 때문에 우리의 그 소중한 구원을 바꾸는 어리석은 이가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에서는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팟죽 한 그릇에 장자의 직분을 팔아먹어 버렷습니다. 그것 때문에 에서의 인생에 얼마나 엄청난 불행이 다가왔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잃어버리면 당장은 배부른 것 같이 보일지 몰라도 잘못하면 영원한 후회의 자리, 돌이킬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빌립보서 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우리의 가치관과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살아간다면 그것보다 행복한일이 어디에 있겟습니까! 사도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에 그가 가졌던 그 모든 학문과 지식과 명예와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노라고 고백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만나고 난 다음에 그의 모든 물질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면서도 행복해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일본에서 살아갑니까? 아무리 아둥,바둥 살아가도 가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다른 차들을 추월해서 가도, 과속을 해서 달려도 결국 도착점에 도달해보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호등앞에 그런 글귀가 있지 않습니까?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장 소중한 그 구원을 최선을 다해서 지켜나가는 그래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 했다, 라고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사랑하는 동경제일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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