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사랑 감사 마태26:6-13 07.11.11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저런 곳에서 설교를 하다가 어떤 부분을 설교할 때는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헌신을 설교할 때 등장하는 인물이 있고, 선교를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 할 때 등장하는 인물이 있고, 회복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의 이야기 할 때가 가장 신이 납니다. 왜냐 하면 그분들이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분이고, 또 그분들이 저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면서 일어났던 변화와 헌신의 모습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들은 제가 한국에 가서 설교 할 때도 일본 선교할 때 일어났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분의 이야기가 복음과 함께 전해집니다. 미국에 가서 설교를 할 때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뉴질랜드에 집회 차 갔을 때에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 여인의 모습도 예수님에게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이 여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26:13)
우리는 어떤 일을 설명할 때 함께 이야기되어지는 좋은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만약에 불신앙과 불충성과, 고집과 교만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인물이 되어진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이미 우리교회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 순종과 헌신의 모습, 사랑의 모습이 제가 이곳 저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위한 아름다운 예화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여인의 이야기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러분의 이야기도 그렇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시고, 또 복음과 함께 이 여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까요!
1. 거부당한 사랑
이 여인은 거부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인에 대한 설명들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 여인의 삶은 그리 건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7:37절에 보면“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이 여인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누구엔 가 거부당해 본적이 있습니까! 세상에 그것처럼 서글프고 서러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 주시 않을 때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21장에 보면 하갈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의 몸종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자녀가 생산되지 않자, 그의 부인 사라가 자신의 몸종을 남편에게 주어서 이스마엘 이라는 아들을 낳아줍니다. 이스마엘은 한동안 아브라함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후에 하나님이 사라의 몸을 통해서 이삭을 낳게 해주면서 이스마엘은 서자의 서러움 속에 자라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삭이 미웠고, 그래서 아무도 안 보는데서 이삭을 조롱하는 모습을 사라에게 들키면서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로 버림을 받게됩니다. 거절당한 사람들의 서러움입니다. 광야에서 물도 떨어지게 되자 광야에서 방성대곡을 하는 모습은 아들로서 비록 첩이지만 부인으로서 거절당한 사랑입니다.
구마모토시에 한 병원에서 “아까짱 포스터”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고서 양육할 수 없는 형편 속에 있는 부모들이 아이를 버리지 말고 이 병원에 설치한 아까짱포스터에 넣어두면 그 아이를 양육시설에 보내서 키우겠다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올 한해동안 8명의 아이들이 이 포스터안에 놓여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아이는 나중에 부모가 다시 와서 찾아갔다고 합니다. 저는 이 뉴스를 보면서 부모가 자식을 그 포스터에 넣어놓고 문을 닫을 때 부모의 마음도 찍어지게 아프겠지만, 비록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아이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렇게 거절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거절당하고, 부인에게 거절당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녀들에게서도 거절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집에도 못 있고, 딸집에도 못 있습니다. 첫째 집에도 못 있고, 둘째 집에도 못 있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늘 말썽만 부리고 사고만 치게 되면, 식구들로부터도 거절을 당합니다. 하는 일 마다 실수를 하면 직장에서도 거절을 당합니다. 친구들로부터 거절당하고, 같은 동료로부터 거절당해서 이지메를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시험을 치러 갔는데 실력이 없다고 거절당하고, 실력은 있지만 빽이 없어서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거절의 아픔을 가진 분이 혹 없습니까!
오늘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왔는데, 이 여인의 행위를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에게 그는 또 거절을 당했습니다. 야단을 치면서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렇게 낭비를 하냐고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에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2. 따뜻한 사랑
그런데, 이 여인을 품어주신 분이 있습니다. 안아주시고 찾아가 주시고 친구가 되어 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바로 이분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이분 때문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여김을 받았던 가족이지만, 병들어있었던 오빠 나사로와 그리고 열심히 일만 하던 언니 마르다를 두고 부모도 없이 그저 그런 집안으로 사람들에게 천하게 여김을 받았던 이 남매를 사랑했던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들의 가정을 심방하기를 즐겨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요한복음11장에 보면 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빠가 아파서 죽으려고 할 때 벌써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을 모셔오라고 합니다. 예수님만 오시면 오빠가 살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급하게 불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예수님은 계속 지체하셨고 결국 오빠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미 장례가 다 끝난 다음에 도착한 예수님을 향해서 서운한 감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마르다가 얼마나 많은 영적 지식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시니까 “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하시니 “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이신 줄 네가 믿나이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또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알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고백들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 가정을 참으로 따뜻하게 사랑해주셨던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했었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이 가정을 정말로 따뜻하고 또 편안하게 사랑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바로 이런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바로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세상에서 변변치 않은 것 같은 내 모습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내어놓을 것이 없는 내 모습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고 허물이 많아도 주님은 우리를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힘들 때 내 손잡아 주시고, 외로울 때 안아주시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용기 주셔서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도록 결단하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눈감고 기도하면 가까이 오셔서 말씀해주시고, 성경을 읽으면 우리 눈에 눈물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 속에 잠기도록 우리의 마음도 열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거절당하고, 거부당했던 사람들도 예수님은 다 안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삭개오에게도 일부러 찾아가 주셨고 그의 집에 일부러 들어가셔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셨고, 그래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를 거부했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신 따뜻한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사랑을 오늘 우리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랑을 받았기에 오늘도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할수 있는 사람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껏 받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받은 사랑을 네 이웃에게 나눠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눠주기 전에 먼저 내가 소유해야 합니다. 내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눠줄수 있는 것입니다.
3. 사랑에 감사해서.
오늘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이 여인이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이제는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여인의 사랑의 표현방식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향유의 값어치를 제자들이 얼마라고 정했습니까! “300데나리온” 이 향유는 나드향인데, “매우 값진 향유”라고 했습니다. 이 나드향은 ‘나르도스타카스 비타만시’라고 불리는 향나무의 뿌리에서 빼내는 액체 향으로 그 값이 3백 데나리온이라고 했으니 노동자의 거의 일년 치의 임금과 맞먹는 고가 품입니다. 이 여자는 이처럼 소중하고 매우 값진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깨어 그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다고 했습니다. 옥합은 값진 나드 향유를 담은 호리병인데 부드럽고 반투명한 그릇으로 만든 대리석 비슷한 광물질입니다.
여인들에게 있어서 평생에 한번 갖고 싶어하는 물건이지요. 아마도 자신의 재산 목록 1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아무리 소중하고 비싼 것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받은 사랑에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 졌습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그것을 깨어서 예수님께 부어 드린 것입니다. 한순간에 그 어마 어마한 돈이 날아간 것입니다. 온 집안은 향유냄새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향유의 아름다운 냄새에 감동한 사람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좋은 냄새를 맡으면서도 이 장면을 눈을 찌푸리면서 보고 있었고, 보다못한 가롯 유다는 책망까지 했던 것을 봅니다. 오로지 그 향유를 느끼고, 즐기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만 기뻐하시면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것으로 행복해 했습니다. 이것이 이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것도 아깝지 않습니까! 아무리 평생을 일해서 모은 것이라 해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사람들에게 어떤 소리를 들어도 그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기꺼이 드릴수 가 있습니까!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게 만듭니다.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사랑입니다. 더 줄 것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향유를 붇고 자신의 머리로 예수님을 닫아드렸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거절당했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남편이, 아내가 나를 향한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서 나 혼자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늘 외로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었습니까!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한번도 한순간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한순간도 우리를 당신의 눈에서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늘 우리를 지켜보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고 계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외로워하니까 안타까워 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힘들어합니다. 내가 힘들어서 울고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엎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기에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여전히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기에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주변에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웃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해주고 있는 중보 기도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에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받고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랑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받은 사랑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 여인은 받은 사랑에 너무 감격해서 예수님께 사랑의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랑 받고 있다는 감정,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는 어떤 사람도 거부당하거나 거절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죄인도 품에 품고 용서해주는 사랑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제 감사의 계절에 우리 그 사랑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서러움, 거절당한 아픔이 미움이 되어서 분노가 가득차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그것보다도 더 큰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아픔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 받은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옥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것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가 큰 사람들입니다. 받은 사랑이 큰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미움을 이야기하지 말고, 분노를 이야기하지 말고, 서러움을 이야기하지말고, 억울함을 이야기하지말고,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이야기합시다. 예수님의 은혜를 이야기합시다. 이것이 이 감사의 계절에 우리가 받은 그 사랑에 보답하는 최소한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도와주셨던 것,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은 것, 말씀을 읽다가 눈물을 흘린 것, 내가 힘들어할 때 하나님이 천사 같은 사람을 보내주셔서 도와주셨던 것 이것을 이야기합시다. 이것이 여러분의 향유입니다. 이것이 옥합 입니다.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이제는 그 옥합을 깨어서 여러 안에 있는 사랑의 향기를 온 세상 안에 퍼뜨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향기를 맡고 기뻐하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의 이야기도 함께 전파되리라는 영광스러운 여인의 이야기처럼 여러분의 하나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향기 되어 퍼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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