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있느냐! 요한복음 21:1∼14 08.3.30
백만장자 데일 카네기는 경제 불황이 미국을 덮쳤을 때 뉴욕 맨하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도 모든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었었습니다. 깊은 절망감에 빠진 데일 카네기는 차라리 이대로 인생을 끝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강물에 몸을 던지려고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강 쪽으로 가기 위해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한 남자가 그를 소리쳐 불렀습니다. 뒤돌아보니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이 바퀴 달린 판자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보나마나 아주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카네기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연필 몇 자루만 사 주시겠습니까?" 카네기는 남자가 내미는 연필 자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1달러 한 장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강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남자가 카네기에게로 굴러오면서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연필을 가져 가셔야죠." 카네기는 그에게 고개를 저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그냥 두시오. 난 이제 연필이 필요 없는 사람이요." 하지만 그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두 블록이나 따라오면서 카네기에게 연필을 가져가든지 아니면 돈을 도로 가져가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는 동안, 내내 그 남자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연필 몇 자루를 받아든 카네기는 자신이 더 이상 자살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훗날 카네기는 말했습니다. "난 내가 살아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두 다리가 없으면서도 미소 지을 힘을 갖고 있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한 미소 하나가 한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어넣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애인의 미소는 어디에서 온 것 같습니까! 비록 몸은 장애를 가졌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서 기대감, 소망, 희망, 이런 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소명감이 그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여유와 미소를 갖게 한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사명감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던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시는 내용입니다.
1. 사명감을 상실한 제자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3년 동안 제자로서의 삶을 청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3절에 보면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라고 합니다. 그때 함께 따랐던 제자들이 도마와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 즉 야고보와 요한 과 또 다른 두 제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분명 예수님의 제자로서 3년 간의 삶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좋았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있었던 행복한 순간들, 보람찬 순간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오고, 그 군중들 속에서 늘 중심이 되어서 일했던 시간들이 그들에게는 꿈과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첫 순간부터 그들에게는 놀라움이었습니다. 가나안의 혼인잔치자리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을 가지고 포도주로 만들었던 그 이적의 순간부터 그들은 정말로 한순간도 흥분을 멈출 수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감격스러웠던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셨던 그 기적은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다른 기적은 주님의 손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기적은 예수님이 축사하신 것을 자신들의 손으로 남녀노소 합해서 2만명도 더 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직접 나누어주면서 경험한 기적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고 나면 또 생기고, 주고 나면 또 생기는 그 놀라운 기적을 그들이 경험했습니다. 시간, 시간, 틈만 나면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로 꿀 같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들은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이제 이 위대한 예수님과 함께 평생을 같이 지내면서 일을 할 것이다! 라는 비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분을 떠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각오를 스스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을까 를 생각했던 제자들의 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고통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였을 때, 마음속에 내가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넘쳤을 때에, 우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교회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옵니다. 남들이 뭐라고 욕을 해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교회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교회가 좋고, 목사님이 좋고, 사모님이 좋고, 성도들이 좋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하고 성경을 공부하면 정말로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열심히 합니다. 예수 믿고 은혜를 받으면 누구나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예수님이 어느날 자신들의 기대와 달리 너무나 무참해서, 허무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십니다. 그때 제자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일 후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요한복음20장24절부터 보면 그 중에는 의심하는 제자 도마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의심을 했으면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 라고 까지 이야기했던 것을 봅니다. 그러나 분명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도마에게도 오셔서 그 손을 보여주시고 도마의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게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 도마도 분명히 눈으로 확인을 했고, 그리고 고백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까지 했던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스스로 보따리를 싸고 있습니다. 스스로 제자의 길을 청산하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들은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일까요! 주님이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의 주님을 만나봤는데, 왜 그들은 고향을 향하여, 다시 옛 직업을 향하여 갔을까요! 그것은 이제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꿈을 상실했습니다. 비젼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 엄청난 일들 앞에 자신들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인하고, 도망하고, 숨어 지내고, 이것이 다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상실해서 고향으로,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간 것은 사명감을 상실해서 그렇습니다.
2.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런 상실감속에서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간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닷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옛날 타던 배를 다시 타기 시작합니다. 배를 오랜만에 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타는 배는 오랜만에 타는 배입니다. 고기를 잡기 위한 배였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만져보고 던져보는 그물입니다. 오랜만에 이리 저리 그물을 던져보는데, 워낙 오랜만이라 그런지, 어부의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리 던져도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것을 보니까! 제자들이 힘이 더 빠집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이렇게 녹이 슬었나! 하면서 빨리 그때의 어부의 감각을 되찾아야 되는데! 하면서 한숨쉬었는지 모릅니다.
전문직을 가졌던 사람이 잠시 한눈을 팔다가 다시 하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운동선수들이 군대에 안 가려고 하는 것은 감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군에 가면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군대를 안 가려고 어떤 이는 편법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올림픽이나 큰 국제대회때 우승을 하면 군 면제라는 특전을 국가에서도 내어놓는 것을 봅니다. 전문직을 가진 사람이 감각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한참 바다에서 어부로서의 전문직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이 예수를 쫒는다고,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외도 아닌 외도를 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 사이에 잃어버린 것은 고기 잡는 감각, 그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허탈한 모습으로, 이제 이것으로도 먹고 살수 없게 되어지나! 하면서 한숨쉬었는지도 모릅니다. 실망과 좌절, 그 속에서 몸부림을 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시는 말입니다. 5절에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 내용을 일본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子たちよ,何か食べる物があるか" 제자들을 부르는 소리가 "애들아!" 입니다. 이 말은 "파이디온(paidion)인데, 이것은 아주 작은 아이들을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어른들인 제자들을 부르는데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평소에 제자들에게 이렇게는 부르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딱 한번 "어린 아이들아!" 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사명감을 잃고 처량하게 있는 그 모습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이 보인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부활하셨는데, 그리고 자신들 앞에 나타내 보이시기도 했는데, 그 예수님 앞에 좋아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그리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이 어린아이같이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애들아! 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을 야단 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스스로들 생각하기를 이제는 예수님이 나를 모른 척 하실꺼야! 내가 이렇게 잘못을 했는데, 이제 제자라고 말도 못하지! 하면서 스스로 시무룩해져 있는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는 철부지 어린아이들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일을 하다보면 실수도 있고, 잘못도 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 어떤 사원이 야심 차게 일을 벌이다가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임을 지고 사표를 쓰기로 작정을 하고 사장실에 들어가서 사표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이 하는 말이 "아니 이게 무슨 짓인가! 회사에서 얼마나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자네에게 교육비를 지출했는데, 사표라니 무슨 말인가! "하면서 격려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용기를 내어서 그 사원은 정말 회사의 충성스러운 사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배반할 수 있습니다. 도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한마디도 책임을 묻지도 않았습니다. 섭섭한 말을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다 용납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까지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 하셧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조그만 일에도 실망하고 좌절하고, 나 안해! 나 못해! 하면서 한번실수 했다고 그러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애"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런 애들이 하는 일을 보시면서 또 하시는 말씀이 "뭐 먹을 것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고기가 있느냐! 는 말씀이 원문에는 "뭐 먹을 것이 있느냐" 라고 합니다.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서 다시 옛날 직업을 찾은 제자들에게 뭐 먹을 것이 있냐! 다시 돌아가 보니 살만하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세상에 다시 돌아가면 먹을 것이 생길 것 같습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믿어보려고 했더니 여러 가지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살다가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합니다. 은혜 받았을 때, 기쁨으로 할 때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던 교회 봉사도 하다가 보니까 자기 혼자만 하는 것 같습니다. 맨날 하던 사람만 하는 것 같고, 슬슬 일이 부담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번 두 번 꾀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한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아예 안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주일예배도 빠지게 됩니다. 은혜 받았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이 물어보십니다. 그렇게 살아보니까! 좋으냐! 편하냐! 하던 봉사 안 하니까 살만하냐! 시간이 많아졌냐! 그 많은 시간으로 뭘 했냐! 좀 건강해졌냐! 그 건강으로 뭐를 했냐! 돈이 좀 모였냐! 그 돈으로 뭘 했냐! 주님이 그렇게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그 질문이 바로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고기가 있느냐" 물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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