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왕처럼 대하 34:1-7 어린이주일 08.5.4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더 많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의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장래가 결정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환경만 좋아진다고 아이의 장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상 보면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악하고 나쁜 환경 속에서 더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요시야라는 왕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요시야는 참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철저한 우상숭배를 하는 왕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는 더욱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보고자란 것이 우상 섬기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되는 므낫세왕은 12살에 왕이 되어 55년을 왕으로 있으면서 그의 아버지인 히스기야 왕이 모두가 없애버렸던 우상단지들을 다시 만들고 각종우상을 섬기는 악행을 보다 못해서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통해서 일국의 왕이 쇠사슬에 묶여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러 가는 그런 수모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기가 회개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시 왕위를 회복시켜주셔서 겨우 다시 우상을 제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런 므낫세가 죽고 난 다음에 요시야의 아버지인 아몬왕은 24살에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불과 2년밖에는 왕위에 앉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악행 때문에 신하들이 혁명을 일으켜서 26살에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혁명이 일어난 것을 보고 국민들이 그 혁명가들을 붙잡아서 다 죽여버리고 그리고 그의 아들이었던 요시야가 불과 8살밖에 안되었는데, 국민들이 왕위의 정통성을 위해서 8살 아들을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8살짜리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인생이겠습니까! 요즘도 그렇습니다만 반역자들의 혁명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살아남았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있었겠습니까! 한이 맺히고 그래서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그의 한풀이를 할 것 같았는데 그는 유다의 가장 훌륭한 왕 중의 한사람으로 그의 이름을 남깁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교회에 요즘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처럼 어린 왕이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는가를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정직했다.
먼저 요시야왕의 모습은 정직으로 대변됩니다. 2절에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라고 합니다. 그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정직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누구 때문에 그랬다고 핑계하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으면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쫒겨 났을까! 생각해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정직하게 게을러서 땅에 묻어놓았다고 고백했으면 그의 한 달란트가 빼앗겼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을 정직하게 시인하는 용기가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용기가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주셨을 것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란 유명한 말을 남긴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브라함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보고 싶은 책도 사 볼 수 없었습니다.
책을 좋아했던 그는 좋은 책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가 책을 빌려서 읽었습니다. 어느날 링컨은 서점에서 워싱턴 전을 빌려 와 읽다가 머리맡에 놓고 잤는데, 밤중에 폭우가 내려 통나무 틈으로 빗물이 새어 책이 흠뻑 젖어 버렸습니다. 며칠 뒤 링컨은 서점에 찾아가 책이 젖은 경위를 설명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버린 대가로 3일간 일을 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사과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링컨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책 주인은 링컨의 말에 감동하여 그 책을 링컨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링컨은 그 책을 몇 번이고 읽으면서 자기도 워싱턴과 같은 훌륭한 정치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것은 링컨이 시골 조그마한 가게의 점원으로 있을 때의 일인데, 어느 날 저녁, 그 날 판 물건값을 계산하는데 이상하게도 10센트의 돈이 남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왜 10센트가 남지?' 거스름돈을 잘못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한참 동안 생각한 끝에 앤디 할머니에게 덜 준 것임을 알아 냈습니다. 그는 그 길로 4킬로미터나 떨어진 할머니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할머니는 10센트 때문에 이 밤중에 달려왔느냐며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10센트가 아니라 1센트라도 돌려드려야지요. 할머니 돈인걸요."
링컨의 정직한 생활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 주 의회 의원에 출마했을 때의 일 입니다. 당에서는 선거 자금으로 200달러를 보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선거 운동 자금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습니다. 선거 운동 참모들은 하나같이 불평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돈의 액수가 많고 적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링컨은 그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거 자금에서 남은 돈이라며 199달러러 25센트를 당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겨우 75센트를 썼다는 얘기입니다. 많은 당원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그러나 링컨의 편지를 읽은 사람들은 한참이나 숙연해졌습니다.
"남은 선거 자금을 되돌려드립니다. 선거 연설회장 경비는 제 돈으로 지불했고, 이곳 저곳 돌아다닌 일은 말을 탔기 때문에 별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동네 어른 한 분이 목마르다고 하셔서 음료수를 대접했는데, 그 경비로 75센트를 썼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것에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정직하고 싶어도 정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요시야왕이 처해있는 입장은 주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나름대로 정의감을 가지고 있었던 반군들에게 의해서 죽음을 당하였고, 그런 반군들을 또다시 죽인 백성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던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왕의 자리에 앉혀놓은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친 앗수르정책을 썻었는데, 우상을 숭배하는 강대국 앗수르의 눈치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더군다나 나이도 어린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8살 왕을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이런, 저런 일을 간섭하면서 대리정치를 하던 사람들이 북적이는 왕궁에서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 일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고 있었고 그를 지키시고 계셨던 것을 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지 않으셨다면, 연약한 그를 도와 주시지 않으셨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용기를 가지고 정직하십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사용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특징 중에 하나인 정직한 모습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보고들은 데로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하루는 어떤 집에 별로 내키기 않는 사람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마련하고 사람들이 왔습니다. 내키지 않아도 웃는 얼굴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자리에 앉은 어린 딸을 보면서 대신 식사기도를 시킵니다. 딸은 뭐라고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때 엄마가 말합니다. 괜찬아! 그냥 엄마가 기도하던 대로하면 돼! 그때 딸이 알았어! 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들을 초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초대했으니 밥이나 얼른 먹고 가게 하소서! ” 엄마가 밥을 차리면서 혼자말로 했던 말을 그대로 했던 것입니다.
2. 신앙의 본이 있었습니다.
오늘 요시야왕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본받고 따라할수 있는 신앙의 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2절 중반에 보면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해하여”라고 합니다.
아까 링컨도 위싱턴 이라는 좋은 모델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좋은 모델이 있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낫세는 신앙 좋은 히스기야 왕에 의하여 양육되었고, 요시야는 악한 왕이라고 하는 아버지 아몬에 의하여 양육되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되었고 요시야는 오히려 가장 신앙 좋은 왕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요시야는 자신이 닮고 싶어하는 왕의 모델인 다윗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달려가는 그 모습을 본받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신앙의 모델이 누구이겠습니까!
초신자들에게는 자신을 인도한 성도가 신앙의 모델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가에 따라서 나와 똑같은 사람이 또 한사람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것을 배울 때에 본받을 수 있는 모델이 있다면 그 일을 하는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형제는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서 자기와 친한 한 일본인을 모델로 삼아서 그가 하는 억양, 말투,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실력이 부쩍 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따라하는 것, 흉내내는 것, 모방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모방이 창조를 낳는다고 합니다. 열심히 따라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와 똑같은 것을 만들어낼 날이 오고 그 시기가 지나면 오히려 앞서는 일들도 생기게 됩니다. 한국의 전자제품은 초기에는 모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전자제품시장을 리더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은 일명 짝퉁이라고 하는 모방의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무서운 것은 언젠가는 그들이 모방의 단계를 지나고 창조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전세계의 모든 시장을 리더하게 될것입니다.
오늘 요시야는 자신의 모델을 다윗으로 정했습니다. 그는 다윗의 어떤 부분을 모델로 선정했을까요!
성경에 보면 다윗의 길로 행한 왕 세명이 나옵니다.
요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왕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전에서 우상을 제거하고 신앙부흥을 일으킨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성전 짓기를 사모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성전을 지어서 봉헌하고 싶은 그 뜨거운 마음을 하나님은 거절하십니다. 다윗은 전쟁을 많이 치렀기 때문에 그 손에 피가 묻어 있어서 피묻은 손으로는 거룩한 성전을 지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절당했는데도 그의 성전에 대한 열망은 뜨거워서 자기 손으로 성전 지을 모든 물품들을 다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주어서 대신 성전을 짖게 합니다. 결국 성전의 모든 준비는 다윗이 하고 솔로몬은 조립만 한 것입니다. 이런 열정을 요시야는 본받아서 그가 왕이 된지 18년이 된후 즉 24살 때에 그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함께 성전을 수리합니다. 그동안 찢기고 헐벗은 성전입니다. 형편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조상들이 앗수르를 섬긴다고 성전의 기물을 조공 물로 바치기도 하였고 이방 신을 섬긴다고 이방신의 제단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성전을 수리할 것을 결심합니다. 결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수리할 수 있도록 사람을 임명합니다(9). 자금을 확보합니다(9). 그 자금을 감독자에게 주어 집행하게 합니다(10). 일을 맡은 사람들은 진실하게 성전 수리를 수행합니다(12). 요즈음 말하면 교회 중심의 삶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김연숙씨가 쓴 “흔들리는 신앙, 붙들어 주소서” 라는 글에 22년 동안 미국 이민 교회에서 108번 교회를 옮긴 장로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년에 약 5번 정도, 평균 두 달에 한 번 정도 교회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상향의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옮기는 날로부터 그 교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목사의 허물을 맨 먼저 찾아냅니다. 그리고 자기 눈에 드러난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합니다. 교회주보, 성가대, 주방, 교인들의 태도 등 108개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병으로 죽게 되자 어느 교회도 그의 장례식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섬긴 교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기 전 108번째 교회 목사님이 불쌍히 여겨 그의 장례식을 해주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천국에 올라가 주님 앞에 108개 교회의 허물을 기록한 두툼한 노트를 펴놓는다면 주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 사람의 허물이 적힌 수십 권의 노트를 던져주시지는 않았을까요? 그의 후손은 얼마나 불행했을까요?
세상에 이상형의 교회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란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신앙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델을 찾지 못했다고 이리, 저리 방황하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모델이 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고 합니다. 자신도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때로는 너머지기도 하고, 실패도 하지만,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 다시 일어나서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일어서는 그 모습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부족하고 실폐 하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실망하지 않고 또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우리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모델이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3. 치우치지 않았다.
그리고 요시야의 모습은 어떠했다고 합니까!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라고 합니다.
그는 한가지 마음을 정했으면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는 워낙 어려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이 뜻하고 계획한 것을 위해서는 어떤 위협이 와도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이 되었으면 그대로 실행할수 있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강한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던 다윗왕을 모델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었는 줄로 믿습니다.
모세의 후계자로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첫 번째 교훈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서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여호수아 23:6을 보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것입니다. 서커스에서 한평생 줄타기를 한사람이 은퇴하게 됐습니다.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줄타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줄을 타는 비결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앞만 바라볼 것, 중심을 잡을 것, 절대로 나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 계속 연습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맨 처음 그가 시작한 일은 맨땅에 줄을 그어놓고 한쪽발로 그 줄 위를 걷는 중심 훈련이었다고 합니다. 땅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사람은 공중에서 중심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쪽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중심이 되어질 때, 우리는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시야왕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그동안 선대 왕들이 우상을 숭배하면서 어디에 두었는지도 몰랐던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율법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말씀에서 벗어나 있었는지를 알고는 옷을 찢으며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유월절을 다시 회복하는 신앙부흥운동을 일으킨 것을 봅니다. 오늘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칭찬하시는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8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요시야왕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정직입니다. 그리고 모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을 기준이 되는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그 어린 왕을 지켜주셨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놀라운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도 요시야왕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이 자랑하시는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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