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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예수님의 마음 막10:13-16

예수님 마음              마가복음10:13-16        어린이주일  09.5.3

미국의 윌버트 챠프만 박사가 4,500명이 모인 집회에서 한 통계를 얻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400명은 10살 이전에 예수를 영접하였고, 600명은 10살에서 14살 사이에 예수를 영접했으며, 또 600명은 14살에서 16살 사이에,1,000명은 16-20살 사이에 예수를 영접하였고, 겨우 24명만이 36세 이후에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흥미를 느낀 챠프만 박사는 더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통계를 얻었습니다. 25세 이후에는 천 명에 겨우 한 명, 35세 이후에는 5만 명에, 45세 이후에는 20만 명에, 55세 이후에는 30만에, 75세 이후에는 70만 명에 겨우 한 명 꼴로 예수를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서 들어야 할 것은 위대한 전도자들의 생애를 조사해 보면 어린 시절에 회심을 하고 큰 일꾼이 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 하면서 우리의 가정 속에서 자녀들, 또 손자, 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 부모된 이들이 해야 할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이 모인 것을 바라보시고 말씀을 하시는 중에 생긴 일입니다.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가 하면 가정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내용은 결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 둘이 부모를 떠나서 한몸이 되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리라" 하시면서 결혼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중에 마침 어떤 사람이 자기의 어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는 장면입니다. 오늘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어린이 주일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부모의 마음
첫째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상에 자기자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도둑도 자기의 자식은 도둑이 나쁜것이라 가르칩니다.
세베대의 어머니가 자기의 두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면 하나는 우편에, 또 좌편에 앉혀달라고 부탁했던 일도 따지고 보면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마음속에는 자식이 잘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자 하는 결의가 있습니다.
그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늘 무엇으로 나타나냐 하면 예수님께로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한번 만져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아이를 예수님께서 한번 앉아주셨으면, 손이라도 한번 얹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아이에게 눈길한번이라도 주었으면, 그리고 우리아이의 이름이라도 한번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린시절에 자신이 존경하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줄때의 영향력은 대단히 큰것입니다. 평생 그의 삶을 좌우할수 있는 일들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지금 유엔사무총장으로 있는 반기문 총장의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어린시절에 당시 변영태외무부장관이 아령을 들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국제정세에 대한 강연을 하고 다녔는데, 그 모습을 처음 보고부터 반기문 어린이는 자신도 외무부장관이 되려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서 외무부장관이 되었어도 외국에 외교관을 파견할수 있는 힘이 없어서 외무부장관이 국내를 돌면서 강연을 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경속에서도 시골에서 처음 본 외무부장관의 모습을 보면서 외교관의 꿈을 가질수 있었던 것이 어린아이의 순수성입니다. 그후 그는 봉사정신을 배우기 위해서 청소년 적십자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버스타 라는 미국연수프로그램에 차출이 되고 영어성적이 제일 좋아서 한국대표로 뽑혀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외교관이 되려는 그의 꿈이 더욱 가시화되고 결국은 한국에서 외교부를 거쳐서 세계정부인 유엔의 사무총장이 되는 놀라운 인생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몇 년전에 선교사수련회때에 전체사진을 찍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에 한국에서 누구라 이름대면 다 알만한 권사님이 강사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때 그 권사님이 우리집 아이들을 이쁘다고 앉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부모인 저희들에는 그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에게도 훌륭한 사람에게는 그 손이라도 한번 만져보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들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자기의 자식을 데리고 와서 한번 안아주시고 만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부모의 마음속에 자식 사랑하는 당연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오늘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는 누구를 뜻할까요, 정말로 나이가 어린 아이들만을 말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리다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는 신앙적으로 보아도 신앙이 아직 어린 영혼들이 교회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 모든 영혼들을 말합니다. 아직 예수를 믿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영혼들,  우리 모두가 돌보아 주어야 할 영혼들입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하고 만져주심이 필요한 영혼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를 먼저 믿은 성도들은 아직 신앙이 어리고, 예수 믿은지 얼마 안되는 성도들을 부지런히 권면해서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권면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본인이 전도한 영혼들을 향해서는 더욱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전도는 해놓고 그 다음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향해서 "믿음 안에서 나의 아들된 디모데"라고 칭합니다.  우리는 전도하는 것은 낳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온전하게 자랄 때까지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권면 하고 데리고 오는 것은 바로 부모가 자기의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 제자들의 마음
그런데 여러분 그 부모들이 오늘 예수님께로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제자들이 꾸짖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았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마도 그것은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일 것입니다. 어떤 선입견이요! 분명히 떠들 것이다. 장난을 칠 것이다. 분위기 망쳐버릴 것이다. 라는 생각들 말입니다. 여러분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들과 뭘 하려고 하면 성가신 일이 많이 생깁니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고, 부모가 무슨 중요한 일을 이야기하려고 해도 중간에 말을 가로채 버리고, 부모 또한 아이들을 눈에서 뗄 수가 없어서  한가지 일에도 집중도 못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이라도 한번 가면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어떤 집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아에 밖에도 나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서 신앙이 어린 사람들도 역시 같은 일들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전혀 교회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돌발적이 질문을 할 때도 있고 돌발적인 일들이 생겨날 수 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다가 깊은 생각에 빠져서 자기도 모르게 담배 한개피를 피워 물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한테 불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고,  어쩌다 은혜라도 받으면 기분 좋다고 목사하고 술 한잔 같이 하지고 말할 수도 있는 돌발적이 상황이 일어날수도 있습니다.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 혹시 들어오면 예배시간 내내 질문을 퍼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만 오면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오늘 제자들이 가졌던 그 마음을 갖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만의 거룩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 다른 이들이 이 분위기를 깨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들, 이런 마음들을 갖는 순간 우리는 아이들을 쫓아낸 제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우리만의 즐거움과 고상함을 즐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렇습니다.
약하고 어린 사람들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지메하고, 우습게 보고, 무시하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 우리도 충분히 오늘 제자들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라!" 하면서 밀처낼수도 있습니다.
교회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올 수 있습니다. 세상에 교회처럼 허술한데도 없습니다. 교회에 오는데 자격을 보지 않습니다.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성격을 보지도 않습니다. 배경을 보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아무나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전에 목회지에서는 도둑도 들어왔었습니다. 교회에서 자꾸만 물건이 없어졌습니다. 기타가 없어지고, 사무실에 있던 카메라도 없어지고, 어떤 때는 헌금함의 헌금도 없어졌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교회 문을 잠그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물건은 잃어버리면 다시 사면 되지만. 교회에 기도하고 싶어서 교회문을 열었는데, 잠겨있다면 그 영혼이 얼마나 상처를 받겠느냐는 것이 제 마음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교회에 왔다가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다시 살수도 없고 오히려 영적이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에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도둑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고한일도 없는데 어떻게 우리교회에서 도둑맞은 것을 알았냐고 했더니 범인이 수순히 다 자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도둑이 우리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네교회를 다 떨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는 차를 대절해서 피아노까지 수리상을 가장해서 훔쳐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둑에게 물어보았더니, 교회처럼 도둑질하기가 좋은데가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들어갔는데 누가 있으면 기도하러왔다 그러면 되고, 아무도 없으면 가지고 나오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교회처럼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도 닺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문을 잠그고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확인되는 사람만 들어오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땅에 모든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모인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늘 말썽이 일어납니다. 시끄럽습니다.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자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런것들을 생각하게 되면 나도 역시 제자들처럼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예수의 마음
이런 제자들의 태도에 오늘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 분을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분은 내신 적이 흔하지 않는데, 오늘 분을 내셨습니다. 후에 또 한번 분을 내시는데, 언제냐 하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다가 성전을 더럽히고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을 보시고 분을 내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화가 나신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일입니다. 예수께로 나아오는 아이들을 자기의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고르는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분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도시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한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이 음악가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서 그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좌석에 앉자마자 아이는 몸부림을 치며 불평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안절 부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연주회가 곧 시작되기를!.그러나 그녀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 아이는 도망칠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재빠르게 자리를 빠져나가 서로 밀치는 관객들에게 밀리며 계속 앞쪽으로 나갔습니다. 바로 그 순간 커다란 공연장에 조명등이 하나 둘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그 분위기에 완전히 매혹되었습니다. 그는 그와 같이  커다란 피아노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계단을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조그만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려놓고  [젓가락 왈츠]를 치기 시작할 때까지 정말 그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갑자기 떠들썩하던 관람석이 조용해지더니 수백 명의 화난 관중들의 시선이 무대로 향했습니다. 그 녀석 누구야? 도대체 누가 연주회장에 이런 어린애를 데려왔어? 그런데 그 유명한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소동과 [젓가락 왈츠]를 듣고 곧장 옷깃을 여미고 무대 위로 뛰어나왔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는 그 어린 소년의 뒤에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년의 손에 맞추어 함께 한쌍의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며 [젓가락 왈츠]를 더욱 멋있게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주를 하며 그 유명한 연주자는 소년의 귀에 계속해서 속삭였습니다.
멈추지 말고 계속해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
여러분 우리는 아이들은 모든 것을 망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초신자들보다는 신앙생활을 오래 한사람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님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초신자들을 통해서 멋지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 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아이가 들고 온 작은 도시락 때문이었던 것을 기억합니까?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목사는 교회 운영위원회로부터 사임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의 사역을 평가해 본 결과,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한해동안 회심자도 하나도 없었고, 세례를 받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설교도 기억에 남는 것이 딱 한번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한번의 설교도 목사의 설교내용 때문에 아니라 어느 작은 꼬마아이가 벌인 소동 때문에 기억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주일 헌금 바구니가 지나갈 때, 한 꼬마가 헌금 바구니를 땅바닥에 내려 놓더니 그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서 왜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하나님께 드릴것이 없어서 자신이라도 드리기를 원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예배 순서를 방해한다는 꾸지람으로 받았고 그일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앞에 자신을 드렸던 그 아이는 후에 정말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고 내중에는 남부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되어서 많은 영혼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이가 바로 바비 모펫이라는 선교사입니다.  한 작은 아이의 헌신이 어른들에게는 꾸지람거리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헌신으로 선교사로 불러주시는 놀라운 일을 하신 것을 봅니다. 
우리 주님은 작은 아이들의 헌신을 통해서 어른들이 못하는 일을 하게도 하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신자를 통해서 큰일을 이루시기도 하십니다.  사실 신앙이 가장 뜨거울 때는 예수 믿고 4년이내라고 합니다.  첫사랑의 감격과 감동이 유지되고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는 모습들을 교회생활을 통해서도 볼수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의 연륜이 깊으신분들은 보이지 않는곳에서, 뿌리깊은 나무와 같이 그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들이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우리의 판단이나 생각으로 구별해서도 안됩니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순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잘못된 구별이나 판단으로 한 심령이 상하고, 시험을 들고, 낙망할까 해서 분을 내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영혼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 조그마하고, 사람들이 무시하기 쉽고, 그냥 넘어가기 쉬운 대충, 대충 대하기 쉬운 영혼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14-15)는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른인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높아지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나는 다 안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보이시면서 시청각 교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섬겨라!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높이신다"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 오늘 어린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모습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어쩐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믿음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냥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믿어 버리는 것처럼 예수님은 그렇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천진난만하게, 성경이 그렇다하면 그대로, 단순하고 순수하게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삶의 사시길 바랍니다. 기도를 해도, 봉사를 해도 , 무엇을 하든지 순수함으로 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여러분을 세우시면서 어느 누구에게 샘풀로 말씀하실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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