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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말씀

믿기만 하라 막5:35-43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5:35-43                  09. 8. 23

레나 마리아는 스웨덴 태생으로 수영선수이며 가스펠 싱어입니다. 세 살부터 시작한 수영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스웨덴 국내대회를 휩쓸었고, 서울 장애인올림픽대회에 참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었고 다리도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비해 절반 길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절망하지 않고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그녀가 물에 친숙하다는 것을 알고 어려서부터 수영을 가르쳤는데, 수영은 천성적으로 약한 그녀의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었고, 그래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긴 호흡의 노래도 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스터스 보이스라는 가스펠 합창단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스웨덴 국왕의 도움으로 국제성서학교에 입학했으며, 대중 앞에서 가스펠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세계를 돌며 하나님의 노래를 전했습니다. 이런 그녀를 옆에서 같이 활동하며 지켜보던 한 남자가 청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지금도 결혼반지를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며 아름답고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같은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전 세계를 돌면서 찬양으로 간증하는 아름다운 모습니다.
또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999년 2월4일, 미국 링컨센터에서 인간승리의 주인공인 스테파니 바스토스(21)의 발레 공연이 열렸을 때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95년 교통사고를 당해 발목을 절단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녀는 절망했습니다. “나는 이제 발레리나로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내 인생은 껍데기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바스토스의 곁에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의족을 바라보면서 눈물짓는 딸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였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잃은 것은 오른쪽 발목 하나 뿐이란다. 의족으로 사람들에게 멋진 춤을 보여줄 수 있겠니?”
바스토스는 어머니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힘차게 재기했습니다. 그리고 의족의 발레리나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두사람의 이야기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수 있습니까, 자식의 아픔과 고통을 대신 해주시 못하지만, 그 자식의 아픔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스스로 견디고, 일어설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고 싶은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제 12살밖에 안된 어린 딸이 그만 병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어린 딸이 병들어죽게 되었을 때 그의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향한 믿음의 열망으로 이미 죽어버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1.고통의 우선순위.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소원은 불치의 병에 걸린 이제 12살밖에 안되는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부모들은 이상하지요, 자기의 자식들이 어디가 아프면 꼭 자기가 무슨 죄를 지은 것 같이 안타까워합니다. 내죄 때문이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 내 잘못이다. 내가 죽였다! 그래서 아이의 아픔을 부모가 대신 지려고 하는 안타까움이 우리네 부모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여기에도 딸의 고통을 지고 온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는 비록 회당장이라고 하는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었고,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직책도, 물질도, 그 딸의 고통을 질병을 고치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도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자신의 체면도, 자존심도 다 잊어버리고 예수님께 달려나와서 우리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이런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날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시간들이 우리에게 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숨이 조금이라도 붙어있으면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이 살려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야이로는 아직 살아있을 때 예수님을 데려오려고 자기가 직접 달려가서 예수님께 사정을 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도중에서 예수님의 발걸음을 지체시키는 일이 생겼습니다. 중간에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고 만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딸의 죽음을 알리러 온 것입니다. 이제 끝났으니 예수님을 모시고 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기가 막힌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이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기만 했어도 나을 수 있었던 딸, 지금 예수님에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혈루병 걸린 여인이야 이왕에 12년씩이나 고생을 했으니 갔다와서 다시 고쳐주면 되지만 지금 내 아이는 지금 죽어간단 말이지요? 예수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원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내 입장에서 세워질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보다도 언제나 내 고통이 제일 큽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내가 먼저 챙겨놓고 보자는 것이 우리를 이기주의자로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의 한계는 병든 것과 죽은 것이 갖는 고통의 정도가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병든 자를 고치는 것과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아무런 순위도 없습니다. 병든자를 고치는 것은 기도를 한번해도 되고, 죽은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도를 쎄게 두 번해야 한다는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장에 눈앞에 나타난 그 여인의 그 고통을 먼저 해결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고통의 정도는 어떻습니까?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견디어낼 수 있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좀 힘은 들지만 해볼만하다!. 아휴 조금 힘이 드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아휴! 안되겠다 하나님을 찾아야 되겠다. 하나님! 나 살려주세요. 이렇지 않습니까?
아픈 사람이 의사를 찾아와 그 고통을 호소할 때는 벌써 일이 많이 진행되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의사선생님 날 살려주세요! 하면서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 징조때 의사에게 와서 보여 주였으면 금방 치료가 될 것인데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 는 조그만 한 일에서부터 기도하는  입니다. 일이 많이 잘못되고 난 다음에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주님을 부르는 어리석은 이들이 되지 마시고, 조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을 부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느냐! 내가 늘 주님을 신뢰하고 있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2.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그만 예수님이 지체하는 동안에 딸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모든 소망은 끝이 났습니다. 예수님도 아이가 살아 있어야 뭘 하시지 이미 죽어버렸으면 이제 끝이야,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아라.(35)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에 아직 살아 있었을 때에 예수님을 불렀지만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고 난 다음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뭐 하러 왔냐! 는 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죽음 앞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을 갖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에게는 감기를 고치는 것이나 암을 고치는 것이나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나 동일한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어떤이는 감기를 낫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꼭 암을 고쳐야지만, 죽을병을 고쳐야지만 주님을 위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여러분 어떻습니까?
수년전에 미국에서 어떤 형제가 간증집회를 다니는데 그의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간증의 내용은 자기가 10년전에 감기가 들었는데,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간증을 간증집회를 열어서 하는 것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싱겁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간증은 들어면 소름이 끼칠정도로 엄청난 간증을 합니다. 내가 화재가나서 불속에 있는데, 그속에서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나를 이끌어 내셨다는둥, 내가 어느날 갑자기 병원에 갔더니 말기암이라고 해서 40일을 금식하고 기도하고, 화장실에 갔더니 피고름이 몸에서 나오면서 암덩어리가 다 빠져나왔다는 간증, 이런 정도가 간증집회의 내용들 아니겠습니까! 감기 낳은 것이 뭐 대단한 간증이 되겟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형제의 간증은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감기를 낳게 하시고는 지난 10년 동안 감기에 한번도 안 걸리게 하셨습니다!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죽음과 같은 절망 앞에서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감기를 낳게 하시는 것이나 죽을 병자를 고치는 것이나 차이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말고 믿기만하라 (36)에 말씀하십니다.
문제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어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 죠지 뮬러는 배를 타고 가는데 도저히 정시각에 도착할 것 같이 않아서 그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장이 그의 기도소리를 듣고 하는 말이 당신은 이 안개가 안보입니까? 이 상태로는 도저히 그 시간에 못 도착합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죠지 뮬러가 하는 말이 나는 안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자욱했던 안개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문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두려움이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시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건너가라고 하시고는 한밤중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서 바다 위를 걸어서 가신 일이 있습니다. 캄캄한 밤에 어떤 사람이 흰옷을 입고 바다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제자들이 두려워하면서 귀신인줄 압니다. 그때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만약 주시면 나를 명해서 바다 위를 걷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베드로는 바다위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파도가 오니까 그만 바다 속에 빠지고 맙니다. 여러분 이 사건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베드로가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그도 바다를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예수님말고 유일하게 바다를 걸었던 사람은 베드로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파도를 보았을 때, 물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라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을 데리고 야이로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는 말씀에 비웃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세상사람들은 우리를 비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어떤 비웃음에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행동을 모든 사람들이 다 응원해 주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비웃을 수 있습니다. 조롱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바보라고 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최후승리를 얻습니다.

3. 달리다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비웃음을 뒤로하시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하신 말씀이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말씀하십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살이라 그리고는 그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주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의 한계에 부딛혀 모든 것을 다 포기할 문제라도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주님이 내 손을 잡아주시기만 하면 달리다굼 말씀해 주시기만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문제를 가지고도 주님께 가져오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죽음과 같은 고난이라 할지라도 주님 앞에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이를 살려낸 것이 엄청나 기적이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그와 같은 기적도 일상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에 대해서 너무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사람들은 놀라지만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뭘 그래! 기도하면 되잖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어떤 수도사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말씀을 해주시더랍니다. 그래 알았다. 하시면서 응답을 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심장마비로 죽었답니다. 설마 하나님이 정말로 말씀하실 줄은 몰랐다나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기적이 일상화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모습. 뭐든지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믿음, 우리의 삶이 그래야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래야 세상과 구별됩니다. 세상하고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예배드리다가 병이 났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닌 믿음 안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있는 곳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주님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살리려고 하시면, 고치려고 하시면, 아무리 문제가 심각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야이로는 딸의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지신의 직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고 그래도 자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예수님께 달려가는 길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이 오시기만 하면 다 해결된다, 살아난다. 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마태복음8장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말씀만 하셔도 내 종이 낳겠다는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보기도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중보기도자는 무엇을 대신 해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그 사람의 문제를 안고 예수님께 나와서 될줄로 믿고 기도해주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아무리 엄청난 문제가 우리의 생애 속에 일어난다 해도 믿음을 가지시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역사 하시는 주님의 그 놀라운 일들이 우리 생애 속에 일상적인 것처럼 일어납니다.
세상사람들은 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하면서 놀라겠지만 우리는 놀라지 않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주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릴 수 가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고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두려움은 믿음을 갖지 못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우리로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큰 문제가 있다해도, 아무리 엄청난 일이 있다고 해도, 아무리 죽음같은 일이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이 보여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시면, 예수님이 이 문제에 간섭하시기만 한다면, 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역사를 만들어내고, 이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 한 주간에 아무리 큰일이 일어나도 두려워  하지말고 다만 믿기만 하는 모습으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