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시는 꿈 창15:1-7 09.9.6
심리학자들은 비전을 가질 때 세 가지 이적이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기회를 구하는 뇌 활동이 머리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뇌 세포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결단을 촉구하는 화학 성분이 혈관 속에 주입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전을 가지게 되면 뇌 세포와 혈관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비전을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비전을 가지게 되면 몸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그래서 마침내는 환경도 변화시키는 역사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심장을 뚫고 지나가는 화살을 맞고도 생명을 잃지 않지만 비전이 없으면 바늘에 찔리고도 생명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전이 있는 사람과 몽상가는 다릅니다. 몽상가는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존 맥스웰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비전이 있는 사람은 말은 적으며 행동은 많이 한다. 몽상가는 말은 많으나 행동은 적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기내면의 확신에서 힘을 얻는다. 몽상가는 외부 환경에서 힘을 찾는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겨도 계속 전진한다. 몽상가는 가는 길이 힘들면 그만둔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뭐 이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힘든 일이 있을 때에 그 일을 견디어내는 것은 내년에는 좀 낮겠지! 올해가 지나가면 낳겠지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55년간의 긴 정권속에 그들의 비리와 좀처럼 낳아지지 않는 경제상황, 사회상황등이 좀처럼 낳아지지 않고 점점 더 후퇴하는 것 같은 일들이 결국은 국민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민주당이 좋아서 찍었다기 보다는 자민당이 싫어서 자민당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괜찬다는 생각으로 민주당을 찍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른 것에 기대감을 잠시나마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늘의 어렵고 힘든 일을 견디어 나가게 만들어줍니다. 좀 낮겠지라는 마음은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그 마음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고,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차원의 소망이 아니라 큰 소망을 가지라고 합니다.
1. 평범한 나의 꿈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오셔서 그에게 꿈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잡는가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는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잡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기회는 항상 찾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4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쏟은 물과, 쏜 화살과, 내 뱉은 말과, 그리고 흘러간 기회라고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비전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런 아브람의 모습에서 그의 말하는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내용입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라고 대답하면서 곧 이어서 “나는 자식이 없으니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 이니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그가 다메섹에서 데려다가 자기자식같이 키우고 있었던 종(하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엘리에셀 이라는 아이였습니다. 아브람은 자식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후계자를 자기의 하인 중에서 하나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한계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한계는 어디입니까? 우리의 한계는 내가 얼마나 배웠는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경험했는가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그 사람의 한계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많이 배워야 하고 또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볼 것도 많이 보고, 듣는 것도 많이 듣고, 그리고 여행도 많이 하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고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브람 역시 자신의 경험과 당시 사회의 습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평범한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3절에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 이니이다.’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자식이 없을 경우에는 자기집에서 종으로 낳고 길러진 아이들 중에서 하나를 자신의 양자로 삼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주시려면 엘리에셀에게 부어달라고 말을 하고 있는 아브람의 모습입니다.
그러자 아브람에게 큰 꿈을 주시려고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런 소극적이고 자신의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믿음의 그릇을 보시고 답답해하십니다.
2. 하나님이 주신 꿈
하나님은 아브람의 그 한계를 아시고는 그의 손을 이끄시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때는 밤이라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무수한 별의 바라보게 하십니다.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자식 낳을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자신의 종 중에서 하나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넓은 것을 보여주십니다. 수많은 별들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꿈을 달라집니다. 비전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라보는 대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많이 본 사람은 그 많이 본 것으로 인해서 그의 삶이 풍부해집니다. 이야기거리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꿈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도 그래서 되도록 이면 많이 볼 려고 합니다.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 있으면 주님이 많은 것을 보여주십니다. 많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제 사고의 한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안에서는 여름, 겨울만 되면 청년들을 단기선교나 이런 명목으로 해외를 많이 보내줍니다. 그것이 젊은이들에 대한 교회의 투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많이 보면 그것을 본 사람에게도 유익이지만 그런 성도들이 있는 교회에도 큰 유익이 되어집니다. 그 청년들에 의해서 교회의 꿈이 새로워 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청년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도 하고 문화도 경험하는 그런 시간들이 주어지기를 원합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주님이 여러분의 폭을 넓혀주십니다. 꿈을 넓혀주십니다.
여러분도 많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바라보되 긍정적인 것을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도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야! 저걸 나에게 주시는구나?” 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저걸 어떻게 하라고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가능성을 상실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저는 아브람의 믿음의 모습을 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바라보고 6절에 뭐라고 합니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고 합니다.
아브람에게 있어서 그의 생각은 좁고 좁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자마자. 그 많은 별들처럼 네 자신이 이와 같으리라는 그 말씀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에게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은 자신에게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의 꿈과 비전을 이렇게 넓혀주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아브람처럼 아멘 하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아멘 할 때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미국 기카고에 가면 무디 기념교회당이 있습니다. 1871년에 시카고에 대 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입니다.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고, 더욱이 시가지 한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도 모두 불타버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무디 목사 곁으로 다가가 목사님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 하셨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만 두십니까? 라고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없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밤중에 화재를 당하여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빈주먹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다시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얼마 안 가서 불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볼 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 화재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디 목사는 영국 국민이 바친 헌금으로 화재가 난 자리에 옛날 교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다릅니다. 모든 일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런 큰 꿈과 큰 비전을 주십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환경 속에 잡혀있지 않습니다. 그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해도 큰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사람입니다.
3. 성취되는 꿈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통해서 가능성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 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켄터키 프리이드 치킨 사를 세운 토머스씨는 11살 때부터 식당에서 일을 했습니다. 학교라고는 다녀본 기억이 없는 그가 29살 때 오하이오에서 식당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너무 장사가 안되서 페업신고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한 고객으로부터 당신의 식당에서는 닭튀김이 제일 맛있더군요 라는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토머스는 갑자기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이거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그리고는 토머스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서 복잡한 메뉴를 없애고 닭튀김만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꿈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이 한 손님을 통해서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그 가능성 앞에 아이디어를 얻고, 그리고 곧바로 실천하는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부분이 있고, 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모든 일을 하나님께만 떠맡기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지만 그 꿈의 성취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꿈을 주시고 아브람은 그 꿈의 성취를 위한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그 꿈의 성취를 위해서 아브람의 이름은 아브라함이 되어지고, 아브라함은 많은 시험과 시련을 겪었어야 했습니다. 100세에 겨우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고난도 있었습니다. 꿈의 성취를 위해서는 치러야할 많은 댓가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 이르기까지의 이 땅에 있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원대한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치루신 댓가가 무엇입니까?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를 이 땅에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루시고 인류구원이라는 엄청난 꿈을 이루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댓가를 치루지 않고 이루어지는 꿈의 성취는 없습니다. 만약에 댓가를 치루지 않고 얻어진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노소득입니다. 불노소득, 그것은 우리에게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 당장은 좋아 보일 수 있지만 나중에 그것은 반드시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003년도에 당시 10대였던 캘리 로저스양은 일본돈으로 약 3억엔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복권에 당첨돼 인생역전으로 화제를 모았던 모았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파산위기에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현재는 청소부로 일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고백은 그 많은 돈으로 자신을 위해서도 이웃을 위해서도 펑펑썼는데 돌아오는 건 단지 자신의 돈을 노린 배신뿐이었고 마음에 상처를 받아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가난해도 지금 청소부로 일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꿈은 우리의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 한계를 넘은 꿈을 가지면 사람들은 “올라갈 나무를 보고 올라라 ” 라고 빈정 됩니다. 공상이라 합니다. 허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꿈의 한계를 넘어서 원대한 것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꿈을 깨어버리고, 큰 꿈을 간직할 수 있도록. 우리를 밖으로 끌어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밤하늘의 별과 같은 꿈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생각과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읽는 그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땅을 처다보면서 사는 것이 아닌 하늘을 처다보면서 수많은 별들을 처다보면서 꿈을 간직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만을 생각하고 산다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습니다. 꿈이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꿈을 간직하게 하십니다. “내입을 크게 열라 그러면 내가 체우리라” 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꿈을 크게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같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생각에 맞추어야 합니다. 꿈이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고 싶어도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컷 주실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준비한 사람이 꿈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 준비는 자기 희생입니다. 자기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준비한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꿈의 성취가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모습 속에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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